115화. 마물(魔物) (2)
“옴 소마니 소마니 훔…….”
운학진인을 필두로한 곤륜의 장로들은 항마진언을 읊으며 흔들리는 삼원봉마진을 진정시켰다.
정확히는 삼원봉마진이 아닌 그 속에 봉인된 마물이 날뛰는 것을 억제시켰다.
“크으으으…….”
“아나야혹 바아밤 바아라 훔…….”
효과가 있는지 마물은 성을 내긴 했지만, 삼원봉마진(三元封魔陣) 자체가 흔들리는 건 잦아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란 걸 곤륜의 장로들도, 마물도 알고 있었다.
완벽하게 삼원봉마진이 운용되었을 때와 달리 진에 균열이 생겨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균열은 빠르게 커져 갔다.
이는 삼원봉마진을 지탱하고 있는 도룡검의 수명이 한계에 달했다는 증거다.
당장이라고 마물이 삼원봉마진을 부수고 나올지 모른다.
“진령분혼(盡靈焚魂)을… 미안하네.”
“아닙니다. 장문 아니, 대사형.”
운룡진인은 장로들에게. 정확히는 곤륜오선에서 진령분혼을 명했다.
영혼을 불태워 바친다는 의미로, 곤륜오선의 선천진기로 삼원봉마진의 균열을 메꾸려 한다.
전전대고수인 곤륜삼성조차 목숨을 바쳐 봉인하는 데 그쳤다.
하물며 곤륜오선의 힘으로 마물을 멸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도룡검의 영험함을 대신할 법기를 찾기 위해서 운현진인이 움직였던 것이다.
허나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하다.
결국 곤륜오선은 차선책을 꺼냈다.
바로 자신들의 선천지기였다.
“시작하세나.”
“예!”
운현진인을 제외한 사선(四仙)이 삼원봉마진의 사방(四方)을 점한 채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운기행공을 시작한 그들의 옷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내공. 정확히는 선천진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로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항마진언을 읊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자신들이 마물을 조금이라도 더 억제하지 못한다면 저들의 희생이 헛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물은 자신의 위기를 느꼈는지 포효하기 시작했다.
“크으…아아앙!!”
“하리한나 훔… 쿨럭.”
마물의 포효는 단순히 울부짖는 게 아니다.
음공의 고수처럼 강한 힘을 담아 발산한다.
마물답게 포효에는 사악한 마기가 담겨 있었다.
마교의 마인들조차 움찔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마기가 말이다.
그렇기에 곤륜삼성이 희생하고, 도룡검이 지탱하는 삼원봉마진에 균열이 생기고 이리 흔들리는 것이다.
마물의 포효에 장로들은 내상을 입었으나 읊던 항마진인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장로들이 버텨준 덕분인지, 맑고 영롱한 빛이 삼원봉마진을 포근하게 깃들기 시작했다.
“크으아앙! 크아앙!!”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마물은 더 거칠고 섬뜩하게 포효했다.
발악하는 마물의 포효에 내상을 입었던 장로들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한 채 피를 뿜어내고 말았다.
“우웩!”
“커억!”
옥죄던 기운이 약해지자 마물이 날뛰었고, 안정을 찾아가던 삼원봉마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허나 흔들릴 뿐 무너지지는 않았다.
사선의 선천진기가 균열을 메우기 시작한 덕분이다.
이대로라면 사선 모두 선천진기를 잃고 목숨을 잃겠지만, 삼원봉마진은 완전히 복구될 것이다.
퍽! 퍽! 퍼퍽!
마물은 미친 듯이 삼원봉마진을 들이박으며 균열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이미 상당 부분 복구된 덕분에 마물의 발악은 말 그대로 발악에 그치고 말았다.
곤륜사선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았다는 듯 말이다.
허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아니면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픈 것일까.
원치 않은 불청객이 나타났다.
“그건 안 되지. 당주, 시작하게.”
“예, 혈타 님. 역육갑주문(易六甲呪文)을 시행하라!”
핏빛의 법의(法衣)를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삼원봉마진을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계(癸), 임(壬), 신(辛), 경(庚)…….”
“해(亥), 술(戌), 유(酉), 신(申)…….”
22명의 혈법사들이 주문을 읊자 사이한 기운이 복구되어가는 삼원봉마진에 닿았다.
파직! 파지직!
영롱한 기운과 사이한 기운이 서로 반발했다.
그러자 진(陣) 안에 있는 마물이 날뛸 때 이상으로, 삼원봉마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丁), 병(丙), 을(乙), 갑(甲)… 쿨럭!”
“…사(巳), 진(辰), 묘(卯), 인(寅), 축(丑), 자(子)… 쿨럭!”
역육갑주문을 완성하는 순간 22명의 혈법사는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 순간, 삼원봉마진이 핏빛으로 변하기 시작하며, 옅어지기 시작했다.
삼원봉마진이 강제로 해진(解陣)되어 가는 것이다.
이를 본 곤륜사선의 눈이 커졌다.
“쿨럭… 아, 안 돼…….”
“마, 마물을 세상에 꺼내… 우웩!”
삼원봉마진의 균열을 메워서 복구하기 위해 선천진기의 상당 부분을 소모한 곤륜사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해진되어 마물이 세상 밖에 나오는 걸, 허망하게 지켜보며 죽어가는 게 전부였다.
“자, 장문 사형! 장로님들!”
“흐흐흐… 이미 늦었다. 당주, 뭐 하는가. 제압하지 않고.”
죽어가는 곤륜사선과 쓰러진 장로들을 보며 절규하는 자. 그는 대설산에서 죽을 힘을 다해 달려온 운현진인이었다.
이백에게 받은 자금홍호로(紫金紅葫爐)의 법기(영기)로, 삼원봉마진을 복구하기 위해 달려왔거늘, 한발 늦고 말았다.
자신을 제외한 곤륜오선의 죽어가는 모습에 진령분혼을 시행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삼원봉마진의 복구는 실패하고 말았다.
“네 이놈들! 빈도가 살계를 범하더라도 용서치 않겠다!!”
운현진인은 하늘을 노다니는 용과 같은 움직임으로 날아왔다.
곤륜파의 전설,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이었다.
운현진인은 군륜오선의 한 명일 뿐만 아니라 운룡진인과 함께 초절정지경에 오른 강자다.
그는 혈법당주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태청용형검(太淸龍形劍)이라면 그를 단숨에 벨 힘이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태청용형검은 곤륜파의 절정검학이니까.
쾅!!
“안 되지. 그건…. 당주, 뭐 하는가!”
“죄, 죄송합니다. 혈타 님. 임(臨)! 병(兵)! 투(鬪)…….”
운현진인의 태청용형검을 막아낸 건 혈타였다.
군사(軍師) 혈불(血佛)의 오른팔이라는 혈타(血駝)다운 무위였다.
혈불은 혈법당만으로 믿음이 가지 않은 지, 자신의 오른팔인 그를 동행시켰다.
상대는 구파일방의 곤륜.
비록 삼원봉마진의 복구로 기진맥진해 있겠지만, 숨겨진 한 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비책이었다.
그리고 혈불의 예견대로 숨겨진 한 수. 아니, 동참 못 한 운현진인이 나타났다.
“망종들이여! 무슨 짓을 벌이는 것이더냐!”
“개(皆)! 진(陣) 열(列)…….”
혈법당주는 포박자(抱朴子)의 육갑비축(六甲秘祝)을 읊었다.
포박자는 위진남북조의 동진(東晉) 사람이다.
그는 연단술부터 방중술 등 신선이 될 수 있는 신선술을 연구하고, 저술한 도인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혈법당주가 읊은 육갑비축이다.
그런 육갑비축은 바다를 넘어 왜국에 전해지며, 음양술(陰陽術)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육갑비축의 주문인 구자진언九字眞言)을 구자호신법(九字護身法)이라 부르며 음양도화(化) 시킬 정도로 변형과 발전시켰다.
그에 비해 원류인 중원도문에서는 육갑비축의 전승이 간신히 이루어질 정도다.
“크앙! 크아앙!!”
“큭!”
옅어진 삼원봉마진 너머의 마물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과거 자신을 구속했던 그 불길한 기운을 느낀 탓이다.
육갑비축을 읊던 혈법당주는 휘청였다.
그런 그를 보며 혈타는 짜증을 냈다.
“이 머저리야! 주인님께서 주신 제마범종(制魔梵鐘)을 사용하지 않고 뭐 하느냐!”
“아… 전(前), 행(行)!”
더엉~!
혈법당주는 육갑비축을 이으며 주먹만 한 초소형 범종을 주먹을 가격했다.
그러자 중후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근!
“크앙! 크앙! 크아앙!!”
“태상노군(太上老君)!”
마물은 옥죄여 오는 기운에 발악하기 시작했다.
더엉~! 더엉~!
다시 방울을 흔들자 마물은 멈칫했다.
제마범종(制魔梵鐘).
사찰에 설치된 범종에 비하면 너무도 작지만, 실상은 정신을 맑게 만들거나 반대로 영혼을 제압하는 법기다.
불사강시인 야차왕(夜叉王)을 제어하기 위한 법기인데, 혈불이 특별히 빌려주었다.
야차왕의 제강을 실패할 때의 대안책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운현진인은 다시 검을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지만, 결코 선하지 않겠지!”
“우린 혼돈(混沌)을 제어하려는 것이니, 곤륜의 뜻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그러니 방해하지 마라.”
“그, 그게 사실이오!”
“그게 아니면 이리 번거로운 짓을 하겠는가.”
당장이라고 검을 휘두르려던 운현진인은 멈칫했다.
삼원봉마진의 복구를 실패한 지금, 마물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수 있다.
저들의 주장이 맞다면 방법은 다르지만, 재앙을 몰아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는 사이, 육갑비축은 완성을 앞두고 있었다.
더엉~!
“급급여율(急急如律)…컥!”
“마물을 가지기 위해 이 일을 꾸민 자들을 믿는 것이오, 진인.”
육갑비축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완성 직전 예상치 못한 훼방 때문이다.
혈법당주는 이립도 채 되지 않은 청년에게 제압되고 말았다.
그것으로 부족해 법기 제마법종까지 빼앗겼다.
“서, 설마 삼원봉마진에 균열이 간 게… 이자들의 소행이란 말입니까. 도우.”
“그뿐만 아니라 무림맹이 쫓고 있는 암류입니다. …소주에 있던 자들이 전부가 아니었군.”
혈법당주를 제압한 자는 바로 이백이었다.
강소의 소주에서 혈법주를 위시한 혈법사들을 전멸시켰다.
헌데 그들과 같은 복장을 한 자들이 이곳 곤륜산에 나타났다.
암류를 쫓을 생각이었던 이백으로서는 하늘의 뜻이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역천자(逆天者)?”
“역천자? 날 말하는 건가.”
핏빛의 무복을 입은 허리 굽은 노인 혈타는 이백을 향해 역천자라 칭했다.
그의 말에 이백은 어이가 없었다.
혈타는 그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본궁(本宮)은 하늘(天)이다! 그런 본궁을 방해하는 네놈 역천자는 죽어 마땅하지!”
“미친놈들….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 것들이 하늘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암류에선 이백을 역천자라 칭하고 있었다.
불쾌하기 그지없는 칭호였다.
우드득!
이백은 혈법당주의 턱을 뽑아버린 후 움직일 수 없게 점혈했다.
거친 행동을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마물에게 무슨 짓을 벌이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컥!”
“크아아아앙!!”
콰지직! 콰콰쾅!!
마물의 포효와 함께 핏빛의 삼원봉마진에 금이 가더니, 결국 파괴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운현진인과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곤륜의 도사들은 기겁했다.
그럼에도 이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설군아, 부탁할게.”
―걱정 마라.
그때 강우희의 품에 있던 설군이 뛰쳐나가는 순간, 황소보다 큰 거대한 백호로 바뀌었다.
설군의 거체를 본 적이 없는 강씨 남매의 눈이 커졌다.
“오, 오빠! 서, 설군이가! 설군이가!”
“…….”
놀라며 방방 뛰는 강우희와 달리 강우혁은 거체의 설군을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신수(神獸) 백호.
마물이 얼마나 대단할지 모르지만, 신격을 회복한 설군보다 대단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차하며 암류를 제압한 후 자신이 도우면 된다.
“우혁아, 갖고 있거라.”
“엇! 예! 사부님!”
혈법당주에게 빼앗은 제마범종이 허공을 가른 후, 강우혁의 앞에 멈췄다.
그는 조심스럽게 제마범종을 들었다.
그런 강우혁의 곁에 있는 누이 강우희 팔목에 은빛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바로 은고아(銀箍兒)였다.
애초 강우희의 법력을 증폭시켜주기 위해 찾아온 은고아였으니 당연했다.
강우희에게만 법기를 준 게 내심 미안했는지, 제마법종은 그에게 준 것이다.
이백은 혈타와 숨어 있는 기척들을 향해 말했다.
“네놈들을 죽이지는 않으마, 알아내야 할 게 있으니까.”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