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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10화 (110/200)

110화. 야수왕의 후예

“야수왕이라…….”

독선을 만나고 돌아온 이백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에게서 강씨 남매에 대한 예상치 못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야수왕(野獸王)은 야수족이라고 불리는 백묘족의 전대 대족장이다.

무림십왕의 일좌를 차지한 건 아니지만, 왕(王)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십만의 백묘족을 이끄는 대족장이니, 소국의 왕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다.

그리고 화경에 오르지 못했을 뿐, 화경고수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다.

헌데 이백은 예상치 못하게 그 별호를 독선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다.

“자질이 범상치는 않다 생각했지만, 설마 그의 핏줄일 줄은…….”

강우혁이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근골을 타고났지만, 무골(武骨)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금수(禽獸)와 친화력을 가진 강우희의 재능도 놀랍긴 하지만 그뿐이다.

그저 묘족. 그것도 야수족의 피를 물려받아 으레 그런 줄 알았다.

헌데 강씨 남매는 평범한 야수족의 피를 이은 게 아니었다.

그들 남매의 선친인 강영이 전대 야수족의 대족장 야수왕의 막내 아들이었다.

“독선께서 녀석들을 령이의 곁에 두려고 할만하지.”

강우혁은 무골은 아니지만, 가르침에 따라 충분히 고수로 성장할 재능이 있었다.

사천당가는 묘족만큼은 아니지만, 독물을 다룬다. 강우희의 재능이라면 당가에서 키우는 독물들의 관리자로 양성할 수 있다.

독선은 강씨 남매를 당령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당외삼비가 있던 것처럼.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역시 미래는 스스로 쟁취해야 하지.”

당령이 사천당가의 고위급에 오른다면 그녀의 사람이 된 강씨 남매의 미래도 상당히 밝을 것이다.

하지만 이백은 강씨 남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의 미래가 정해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록 당령이 자신의 의질(義姪)이라도 강씨 남매의 미래는 그들의 것이니까.

그리고 그건 당령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천당가의 직계로서 고위급에 오르거나 분가(分家)를 하던지, 아니면 출가(出嫁)를 하든 그걸 선택하는 당령의 몫이다.

아무리 독선이 그녀의 조부라도 대신 선택해주는 건 있어선 아니 된다.

비록 무림에선 스스로의 의사(意思)와 상관없이 가주의 의지(意志)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고 해도.

이백은 강씨 남매가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한 권리를 지켜주기로 마음먹었다.

“부…르셨습니까.”

이백의 부름을 받은 강씨 남매가 그의 처소로 왔다.

가주를 만나고 왔다는 걸 알기에 그들 남매는 긴장이 되었다.

그가 가주를 설득하지 못했다면 자신들은 이백의 제자가 될 수 없으니까.

이백은 그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강씨 남매는 더욱 긴장이 되었다.

“너흰 너희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허나 무작정 그 권리를 행사하긴 어렵겠지. 해서 너희에게 세 가지를 제시하마. 그중 선택한다면 내 그리할 수 있게 도와주마.”

“선…택인가요?”

이백의 말에 강씨 남매는 눈이 동그래져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선택. 그들에겐 생소한 단어였다.

선택이란 가진 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당가에 남는 것이다. 가주께선 너희를 령이의 사람으로 키우려 한다는구나.”

“아… 예?”

사천당가에 그대로 남는다는 말에 그들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가 당령의 사람으로 키우려고 한다는 말에 놀랐다.

이백은 놀란 그들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가주께서도 너희의 재능을 알고 계셨다고 하더구나. 둘째는 내 제자가 되어 당가를 떠나는 게다. 그럼 난 너희의 사부로서 너희가 배우고 싶은 걸 가르쳐주마. 선생을 구해서라도 배울 수 있게 해주마.”

“예!”

두 남매의 목소리에 힘이 담겼다.

바라던 바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백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기에 경계심이 들었으나 열흘뿐이지만, 충분히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백의 제자가 되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은… 남만으로 가는 게다.”

“나, 남만이라면…….”

말뜻을 알아들은 강우혁은 당황했는지 말끝을 흘렸다.

비록 선친이 묘족이라도, 자신들은 중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비의 고향이라도 남만으로 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헌데 이백의 입에서 남만이 언급되자 당황스러웠다.

이백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너희 선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남만의 묘족 출신이시고, 어머니께 치료를 받다가 사랑에 빠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백은 고갤 끄덕였다.

그들은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던 건 아니다. 정확히는 강씨 남매가 알아도 될만한 사실만 들었다.

이백은 그들이 진정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울 작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강씨 남매가 모르는 사실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그럼 남만의 묘족이 어떻게 중원에 왔고, 너희 어머니께서 어떻게 치료를 받았다는지 생각해 보았느냐.”

“예? 어… 그건…….”

강씨 남매는 당황했다. 특히 평소 이성적이라 생각했던 강우혁도 평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부분이다.

부모님의 만남에 관한 부분이기에 그냥 ‘그렇구나’라고 일부러 머릿속에서 받아들이고 넘겼기 때문이다.

“너희도 알겠지만, 백묘족… 즉, 야수족은 여러 부족이 결속한 부족연합이다. 그리고 너희의 아비인 강영은 야수족 중에서도 대호족(大虎族) 출신이다. 알고 있느냐?”

“대호족이라면… 대족장의 부족 아닌가요? 그건… 듣지 못했어요.”

이백의 말에 두 남매의 눈이 동그래졌다.

야수족의 대족장은 대대로 대호족에서 배출했다.

처음 야수족을 규합한 인물이 당시 대호족의 족장이기도 했지만, 타부족에 비해 대호족이 월등히 강한 탓이다.

특히 대호족의 수호신 대호(大虎)는 남만의 모든 금수의 왕이다.

그 강대함은 전설의 궁기(窮奇)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니 어느 부족이 대호족을 쓰러트리고, 대족장의 지위를 차지하겠는가.

“그럼 강영이 전대 대족장의 막내아들이라는 것도 몰랐겠구나.”

“헉!”

“헉!”

두 남매는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없는 것이, 묘족 출신의 아비를 둔 탓에 차별을 당해왔다.

그래선 안 되지만, 아비에 대한 원망이 없지 않았다.

헌데 그런 아비가 사실 야수족의 왕자였다니, 믿기질 않았다.

“믿기지 않느냐. 가주께 들은 것이니 사실일 게다.”

“그럴 수가…….”

강씨 남매는 반쯤 얼이 나가 있었다.

이백은 설명을 이었다.

“전대 대족장 즉, 너희 조부가 타계하신 후 대호족의 족장이자 야수족 대족장의 자리를 놓고 형제들끼리 전쟁이 났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여럿 형제가 죽거나 굴복했는데, 너희의 아비 강영은 부상을 입은 채 중원으로 도망쳤다 하더구나.”

“…….”

왕좌를 두고 형제의 난이 벌어지는 건 중원에서 으레 있는 일이다. 남만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어린 나이지만, 강우혁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강우희는 달랐다.

“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가, 가족인데…….”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권력은 부자지간도 나눌 수 없다 하더구나. 너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물론이에요. 우희는 제가 지켜줄 거예요.”

강우혁은 누이의 손을 꽉 쥐었다.

그러자 강우희는 환하게 웃었다.

“원한다면 남만에 보내줄 수 있다. 다만 너희가 야수왕의 손주 대우를 받을지, 아니면 배신자의 자식 취급받을지는 모르겠구나.”

“…그렇군요.”

형제의 난에서 승리한 자가 모든 걸 차지하고, 패배한 자는 모든 걸 잃게는 당연하다.

승자의 자비로 살아남을 수도, 죽을 수도 있다.

강영은 패배했다. 동시에 남만에서 도망쳤다.

살아남기 위함이지만, 야수족에겐 어찌 비추어질지 알 수 없다.

전자보다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너희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그 선택을 지켜주마. 그러니 신중히 결정하거라.”

“…….”

강씨 남매는 서로를 바라봤다.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결심이 섰는지, 이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는…….”

*  *  *

“조급할 필요 없다. 아직 닷새밖에 지나지 않았다. 기를 느끼는 데 한 달 걸리는 사람도 있다 하더구나.”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던 강우혁은 조바심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를 느끼기 위한 수련. 즉, 기감수련을 시작한 지 닷새가 되었으나 느낌이 전혀 없던 탓이다.

기초 체력과 근력 등 외공(外功)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던 강우혁이다.

헌데 내공(內功)에는 그러한 재능을 보이지 못했다.

애초 기를 느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한 달 걸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걸 생각하면 ‘고작’ 닷새일 뿐이다.

“하아… 저는 재능이 없나 봐요, 사부님.”

“우혁아, 고작 닷새 동안 기감수련한 것으로 재능을 논해서 아니 된다.”

강우혁답지 않게 풀이 죽어 있었다.

그는 이백을 향해 사부(師父)라 칭했다.

강씨 남매는 이백이 제시한 세 가지 중 두 번째를 선택한 것이다.

그날 두 사람은 이백에게 구배지례를 한 후,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연을 맺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기감수련을 시켰다.

기를 느끼지 못하면 내공심법을 익힐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집중하거라.”

“맞아, 오빠! 할 수 있어!”

“…응…….”

강우혁과 달리 강우희는 기감수련을 하지 않았다.

강우혁만 가르친 게 아니다.

놀랍게도 강우희는 단 사흘 만에 기를 느꼈다.

재능을 인정받은 명문의 후기지수도 이레에서 열흘 사이에 기를 느낀다.

그것을 생각하면 강우희는 기감에 한해선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강우혁은 고작 사흘 만에 기를 느낀 누이와 달리 자신은 닷새가 지났음에도 진전이 없으니 주눅이 든 것이다.

그걸 느낀 이백이 강우희에게 말했다.

“우희야, 우리가 방해가 되는 거 같구나. 나가서 기초 수련을 하자꾸나.”

“사, 사부님 바, 방해하지 않을… 네에엡.”

강우희는 가슴이 철렁했다.

기감수련에선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그녀이지만, 신체 단련을 하는 외공에선 오라비와 반대의 상황인 탓이다.

강우희는 이백의 진지한 눈을 보자 거절할 수 없었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를 보는 듯한 누이의 모습에 강우혁은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자신 또한 마냥 웃을 입장이 아니었다.

강우혁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사부님께 못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  *  *

“삼촌… 꼭 떠나셔야 해요?”

당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떠날 채비를 마친 이백을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으니, 삼촌의 마음이 무겁구나.”

“그럼 떠나지 않으시면 되잖아요.”

당령은 이렇게라도 그를 붙잡고 싶었다.

그녀의 곁에 많은 사람이 생겼다.

의부인 장철우와 당외삼비, 조부. 그리고 조부를 호위하는 당숙 당자경.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다가와 주려는 많은 혈족들과 가솔들이 있다.

하지만 의부를 제외하면 이백만한 사람은 없다.

이백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돌아오마. 령이 너와 형님이 이곳에 있는데, 이리 떠나더라도 돌아오지 않겠느냐.”

“하지만…….”

당령의 얼굴에는 우울함과 불안감이 엿보였다.

그걸 알아본 이백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 삼촌은 후회하고 싶지 않구나. 그렇기에 해야 한단다. 이 삼촌을 기다려줄 수 있지?”

“…예…….”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은 그녈 배신했다.

이백을 걱정시키기 싫기에 마음과 달리 대답하고 말았다.

그는 당령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건강히 잘 지내고, 다음에 볼 땐 더 강해져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삼촌이 바빠도 령이의 혼례식엔 꼭 참석…….”

“삼촌!!”

이백은 축 처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농을 던졌다.

부끄러운지 당령은 얼굴은 새빨개졌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함께 마중 나온 장철우와 당은 등이 소리 내지 않고 웃고 있었다.

“백 아우, 조심히 다녀오게. 기다라고 있을 테니, 꼭 돌아오게.”

“삼촌, 건강히 돌아오셔야 해요.”

이백은 당철우와 억지로 웃는 당령은 보고 고갤 끄덕였다.

작별 인사를 마친 이백은 마부석에 앉아 고삐를 흔들었다.

‘놈들을 찾아내면… 돌아오겠습니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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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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