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사제지연(師弟之緣) (4)
“노부의 팔순연 이후 처음이지?”
이백은 독선에게 독대를 청했다.
사천당가의 가주이자 우내오존의 독선.
감히 그와의 독대를 청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있겠나.
설사 독대를 청한다고 해도 허락받는 데까지 몇 날 며칠이 걸린다.
총관부의 선에서 독대를 청한 자의 정체와 이유를 파악하는데, 시작이 걸리기 때문이다.
결격사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제야 호천각을 통해 가주에게 전해진다.
헌데 이백은 그러한 과정도 없이 일 각도 채 지나지 않아 허락되었다.
당령의 의숙이라도 이해할 수 없는 속도다.
“예, 그렇습니다. 노사님.”
“그래, 노부를 청한 이유가 뭔가.”
노사(老師).
분명 상대를 높인 칭호다.
하지만 감히 독선에게 노사라고 칭하는 자가 몇이나 되던가.
보통은 가주 혹은 어르신이라 칭하며 쩔쩔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림원로이자 우내오존이니 말이다.
허나 이백에게선 그러한 게 보이지 않았다.
그가 독선을 윗사람으로 대하는 건, 나이가 많다는 점과 당령의 조부라는 점 때문이지 그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건방지다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독선은 그리 느끼지 않았다.
이백은 그가 이미 알고 있을 거란 걸 알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두 아이를 제자로 삼으려 합니다.”
“제자라… 본가의 아인가 보군.”
독선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이백은 거리낌 없이 고갤 끄덕였다.
“당씨 성을 사용하지 않으나 그렇다 들었습니다.”
“당씨 성을 사용하지 않다라… 이성방계인가 보군.”
사천당가는 데릴사위제가 적용되는 가문이다.
직계의 여식이나 요직의 방계도 이를 적용한다.
헌데 이성혈족이라면 방계이며, 요직도 아니란 의미다.
이는 사천당가의 그늘에 있으나 남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 들었습니다.”
“누군가? 자네가 원하는 아이들이.”
“강우혁, 강우희. 령이의 시동입니다.”
“불가하네.”
쉽게 승낙할 거란 생각과 달리 독선의 입에선 반대가 나왔다.
사천당가의 가주인 그가 근래 이백이 강씨 남매를 가르치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용인한 것은 반쯤 허락과 다름이 없다.
헌데 반대라니, 이백으로서는 독선의 꿍꿍이를 알 수 없었다.
“이유가 뭡니까?”
“이유라… 건방지지만, 알려주지. 령이는 노부의 손녀이며, 대공녀로 삼을 아일세. 그 주변에 있는 인물은 모두 관리대상이지. 시동이라고 아무나 뽑은 줄 아는가?”
당령을 대공녀로 삼는다는 말은 놀라웠지만, 예상 못 할 것은 없었다.
독선이 그녈 얼마나 아끼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게다가 팔순연의 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여인이 당가의 가주가 된 적은 없기에 당령이 소가주가 되면 훗날 가주가 되는 일이 있을지는 모른다.
허나 독선이 살아 있는 한 대공녀 정도는 불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강씨 남매의 자질을 생각하면 일부러 보낸 것도 거짓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예 그렇습니까?’하고 물러날 이백도 아니었다.
“하인처럼 부리는 이성방계입니다. 설사 그게 아니라도 그 아이들의 미래를 노사께서 마음대로 하실 수는 없지요. 그 아이들의 인생은 그 아이들의 것입니다.”
“건방진 놈!”
이백의 말에 독선이 발끈했다.
그 순간 항거할 수 없는 거력이 이백을 옥죄였다.
허나 ‘항거할 수 없는’은 이백에겐 어울리지 않은 말이었다.
그 역시 독선의 무형지기 못지않은 기운으로 대항했다.
화경에 오르면서 터득한 특수능력 무형지기(無形之氣)로 말이다.
이종(二種)의 절대적인 기운이 맞물렸다.
파직! 파지직!
반탄력에 의해 불통이 튀겼다.
그뿐만 아니라 여파만으로 주변에 있는 서탁이나 책장 등이 흔들렸다.
이쯤 되면 호천각이 움직였어도 한참 전에 움직였어야 하건만, 어느 한 명 들이닥치는 이가 없었다.
사전에 모종의 명이 있었다는 뜻이며 이백 역시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쾅!
폭발과 함께 무형지기가 사라졌다.
이백이 나직이 말했다.
“화나신 척하실 필요 없습니다. 시험하고 싶으시다면 하셔도 됩니다. 노사님.”
“하하하, 티가 났는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독선은 시원하게 웃었다.
이백이 건방지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화를 날 정도로 독선의 그릇이 작지 않다.
그럼에도 무형지기로 그를 압박한 건, 이백의 말대로 시험하기 위함이다.
허나 독선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허나 그 아이들에 대해서는 진심이네. 그러니 날 설득해야 할 게야. 그 아이들을 거두려면…….”
“설득이라… 나가시지요. 원하시는 대로 설득해 보겠습니다.”
“역시 건방져.”
* * *
쾅!!
폭음과 함께 천지가 진동했다.
독선과 이백이 손속을 겨룬 탓이다.
설득. 무림인에게 설득이란 결국 무력에 의한 인정이다.
“오호~ 제법이군.”
삼양신장(三陽神掌)을 맞고도 멀쩡한 이백을 보며 독선은 감탄했다.
사천당가의 장법 중 하나로, 독선의 팔순연에서 이공자 당천우가 펼쳤던 장법이기도 하다.
허나 그가 펼쳤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삼재검법도 천하제일고수가 펼친다면 천하제일검이 되는 법이다.
하물며 절학이라고 부릴 만한 삼양신장이다.
독선이 펼쳤으니 그 위력은 절정고수도 절명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이백은 절정고수가 아니다.
그 정도로는 외금강신(外金剛身)을 이룬 이백에게 절명은커녕 부상을 익히는 건 불가능하다.
“인사를 받았으니, 저 역시 인사드리지요.”
은빛 유성이 허공을 갈랐다.
그건 이백의 권강이었다.
묵직하면서도 육안으로 따르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그 위력을 짐작한 독선은 금나수의 일종인 칠절수(七絶手)의 수법으로 흘려 버렸다.
콰쾅!!
독선의 손에서 벗어난 권강은 열 그루를 가루로 만든 후에 사라졌다.
그는 손이 아프다는 것 털어내며 말했다.
“인사라더니, 과하지 않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내오존이시니까요.”
이백의 말에 독선은 피식거렸다.
이게 인사면 본격적인 공격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그 수법은 뭔가?”
“만수군림행(萬獸君臨行)의 평천은우(平天銀牛)입니다.”
백수행공과 백수군림이 하나로 합쳐지며 탄생한 만수군림행.
그의 하나인 평천은우는 하늘조차 평평하게 만든다는 권격이다.
독선은 광오하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흘려냈음에도 손바닥이 욱신거리니 말이다.
그의 손이 진득한 흑녹(黑綠)으로 물들었다.
당가의 일공자 당천악이 익힌 독룡수를 보는 듯했지만, 차원이 다른 공부다.
“독존(毒尊)이라 하네. 과하게 받았으니 보답해야 하지 않겠나!”
“과…합니다만!”
이백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받아낼 수법이 아니라는 것을.
이백은 주천흑린(走天黑麟)을 펼쳤다.
하늘을 달리는 흑기린이라는 보신경(步身輕)으로, 야군(夜君)의 움직임을 형상화 시켰다.
이형환위(移形換位)를 연상케 하는 빠름이었다.
독존(毒尊)을 피한 이백을 보며 독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직… 무르군.”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독존(毒尊)의 움직임이 바뀌어 이백에게 향했다.
그는 다시 주천흑린을 펼치려 했으나 독존의 움직임은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백은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조금 전, 독선이 자신의 평천은우를 흘려버렸듯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요량이었다.
복천청룡(覆天靑龍). 청룡이 하늘을 뒤엎는다는 뜻으로, 일종의 차력미기(借力彌氣) 수법이다.
차력미기란 상대의 기운을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는 수법으로, 그 유명한 이화접목(移花接木)과 사량발천근(四量發千斤)이 이에 해당한다.
이백이 독존을 되돌려 보려는 순간, 그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으…윽!”
[독존에 중독되었습니다.]
[천독불침이 독존의 해독을 시작합니다.]
[천독불침이 독존의 해독을 실패했습니다.]
[천독불침이 독존의 해독을 시작합니다.]
[천독불침이 독존의 해독을 실패했습니다.]
…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독존의 소멸을 시킵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독존 일부의 소멸을 성공했습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독존의 소멸을 시킵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독존의 소멸을 성공했습니다]
[독존이 소멸되었습니다.]
“후우… 지독하군요.”
“……!!”
이백은 복천천룡의 수법으로 독존을 되돌려 보내는 데 실패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만독에 중독되고 말았다.
사천당가의 팔대금독인 신선폐에 중독되었을 때와 같았다.
아니, 신선폐의 경우 천독불침으로 일부나마 해독할 수 있었다.
헌데 독존은 천독불침으로 아예 해독되지 않았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으로도 한 번에 소멸(燒滅)시키지 못해 두 번이나 반응할 정도다.
독선이 괜히 우내오존에 속한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허나 놀람은 이백보다 그가 더 했다.
“허… 놀랍군, 놀라워. 그걸… 막아내다니 말이야.”
“놀리지 마십시오, 하마터면 독사(毒死)할 뻔했습니다.”
독존은 결코 가벼운 절학이 아니다.
그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만독지존공이니까.
비록 만독지존공을 전력을 다해 운용한 것도, 의념기를 담은 것도 아니다.
허나 만독지존공이 괜히 독선의 근원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이백이 독사(毒死)하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있다.
그 역시 화경에 오른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독존에 중독되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중독된 순간 해독되었다.
그가 당령의 의숙이라 독사되는 건 막기 위해 독을 거둘 생각이었다.
헌데 스스로 해독하다니,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만…독불침(萬毒不侵)? 그랬다면 해독할 수 없었을 텐데…….”
독존은 전설의 무형지독(無形之毒)에 비견되는 독기(毒氣)다.
무형지독처럼 무색무취무미무형(無色無臭無味無形)은 아니나 독력 만큼은 우열을 가리지 못한다.
만독불침도 중독시킨다는 무형지독처럼 독존(毒尊)에 중독되었다면 스스로 해독할 수 있을 리 없다.
천하제일고수도 중독시킬 수 있다는 독선(毒仙)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독선의 오른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흑녹광의 영향으로 주변이 녹아버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그…만! 절 죽이실 생각입니까!!”
“…….”
흑녹광이 더 퍼지는 것이 멈춰졌다.
허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행히 이백을 죽일 생각은 아니었는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존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독선의 입에서 침음이 나왔다.
“으음… 다시 받아볼 생각 없는가.”
“없습니다. 아직 죽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요.”
한 번은 불완전한 신의 불꽃 덕분에 해소되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반응하기도 전에 독사(毒死)할 거란 생각이 든 탓이다.
독선은 이백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닌 거 같은데…. 노부를 우롱하는 거라면…….”
“노사님을 우롱하고자 목숨을 거는 취미는 없습니다.”
이백은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신의 불꽃이 완전해지거나 자신이 만독불침을 이룬다면 몰라도 그전에 독존을 상대하는 건 사양이었다.
호기심에 목숨을 거는 성격이 아니니 말이다.
“흐음…….”
독선은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었으나 다행히 이백을 향해 더 이상 독존을 시험하지는 않았다.
설득이 되었다는 생각에 이백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후우… 이제 설득되신 겁니까?”
“자네가 노부를 우롱하지 않은 거?”
독선의 말에 이백은 헛웃음을 지었다.
“우혁이와 우희를 거둔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 그랬지? 그것 때문에…….”
그는 자신들이 손속을 겨룬 이유조차 까먹은 듯했다.
허나 일구이언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자네, 그 아이들이 누구의 핏줄인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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