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사제지연(師弟之緣) (3)
“윽! 윽! 으윽! 윽!”
강우혁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정확히는 나오려는 비명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있었다.
이백의 손이 닿을 때마다 참기 힘든 고통이 강우혁을 괴롭혔다.
이백이 감정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입 다물어라. 소리를 내서 좋을 게 없다.”
“윽! 으윽!”
소리 내지 말라고 해서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이 정도 버텨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백 역시 이 역시 대단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강우혁을 괴롭히는 게 아니다.
추궁과혈로 강우혁의 뭉치 근육을 풀어주고, 막힌 혈을 자극에 열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근육통으로 다음 수련을 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이백의 배려였다.
“이제 되었다. 쉬어라.”
“헉… 헉… 헉…….”
안간힘을 다 써서 고통을 참아냈기 때문인지 강우혁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 시원하고 활력이 생가는 느낌이 들었다.
추궁과혈(推宮過穴)은 평범한 추나술(推拿術:안마)이 아니다.
개정대법(開頂大法)만 못하지만, 세밀한 내공 운용으로 혈(穴)을 자극하여 체질을 서서히 바꿔주어 무공을 익히기 적합하게 만들어준다.
그러한 이유 추궁과혈을 받는 사람보다 이를 향하는 이가 수 배 더 힘들다.
내공 소모 역시 가볍지 않다.
아무에게나 추궁과혈을 해주지 않는 이유였다.
물론 화경에 오른 이백이기에 고작 추궁과혈 한 명 해준 것으로 지칠 리 없지만.
“령아, 너도 누워라.”
“끄응… 저는… 헉!”
괴로워하던 강우혁을 봤기에 당령은 사양했다.
하지만 애초 그녀는 사양할 권리 따윈 없었다.
이백은 그녈 제압해 눕혔다.
휘두르다 보니 철편을 효과적으로 휘두르는 법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지만, 쉴 새 없이 휘두르면서 몸에 피로가 쌓였다.
풀어주지 않는다면 다음 수련이 어렵다.
“입 꽉 다물어라.”
“윽! 윽! 으윽! 윽!”
이백의 손이 당령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밀려오는 고통이 그녀는 아찔했다.
하지만 강우혁과 달리 추궁과혈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당령은 마냥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오히려 연이어 추궁과혈을 펼치는 이백이 걱정되었다.
반각(半刻:7분) 동안 이어진 추궁과혈은 당령을 녹초로 만들었다.
두 사람이나 추궁과혈을 해주었음에도 이백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런 그는 고갤 돌렸다.
“이제 네 차례구나. 우희야.”
“저, 저는… 으아아악!!”
이백과 눈이 마주친 강우희는 겁먹은 얼굴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형지기로 제압된 강우희는 허공섭물로 어느덧 이백의 앞에 누워져 있었다.
그는 강우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이백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자자, 우희야. 입을 꽉 다물어라.”
* * *
“혼란스러워하지만 잘 적응하는 분위깁니다.”
호천각주(護天閣主) 당자경의 보고에 독선은 고갤 끄덕였다.
몇몇 부서의 장들만 바뀐 게 아니다.
세부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하위 부서가 바뀐 자도 있고, 강등된 자도 있으며 호법원에 끌려간 후 돌아오지 않은 자도 있었다.
반대로 상위 부서로 영전하거나 지위가 높아진 자도 있으며 호법원에 멀쩡히 다녀온 자도 있었다.
소란스러워진 게 당연했다.
하지만 명문은 괜히 명문이 아니다.
평소 잘 만들어진 가규와 분위기는 빠르게 적응하게 만들며 소란을 빠르게 정리해갔다.
“호천각 역시 조만간 개편이 있을 것이다. 후임을 준비해두거라.”
“가주님!”
개편의 칼바람은 호천각이라고 피해가지 못 했다.
상명하복이 몸에 밴 당자경이지만, 이번만큼은 따를 수 없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허나 독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호천각주, 명이다.”
“허나… 존, 명.”
독선의 눈빛은 당자경의 의지를 꺾어버렸다.
호천각의 개편. 허나 다른 곳과는 그 방향이 달랐다.
대호법 당문기에 의해 강행된 다른 부서의 개편과 달리 호천각은 독선의 손에 이루어지려 한다.
“헌데 령이가 ‘그’의 수련을 받고 있다고?”
“특별한 절기를 전수하는 건 아니고, 기본부터 잡아주고 있습니다.”
당령을 삼신룡보다 높게 치고 있는 신성이다.
당외삼비가 직접 무공을 가르친 만큼 기본이 부족할 리가 없다.
특히 절정지경에 오른 지금 기본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허나 독선의 생각은 다른 듯싶었다.
“기본이라… 과연…….”
무언가를 엿봤는지 독선은 감탄했다.
당자경조차 그 이율 알 수 없었지만, 감히 독선의 뜻을 가늠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존재의 뜻을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는가.
“령이에 대해선 관여하지 마라. 그라면 맡겨도 되겠지.”
“그리고 강우혁과 강우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자로 삼으려고 한다 합니다.”
강씨 남매를 언급하자 독선의 눈빛이 바뀌었다.
일개 이성방계에 불과한 남매일 뿐인데, 사천당가의 절대자 독선 당문후가 알고 있다니.
그가 총애하는 당령의 곁에 아무나 둘 리가 없다.
강씨 남매로 하여금 당령의 시동으로 삼은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역시 알아본 건가.”
“명하신다면 빼 오겠습니다.”
당자경은 단호히 말했다.
그 역시 이백이 보통 인물이 아니란 걸 느꼈다.
허나 그에게 최우선은 가주의 명이었다.
독선이 명령한다면 목숨으로 이행하는 게 호천각의 본분이다.
그런 당자경을 보며 그는 피식거렸다.
“되었다. 헛되이 목숨을 버리려 하지 마라.”
“…….”
그의 죽음이 확정된 것처럼 말했다.
‘얼마나 강한 거지?’
이백의 무위를 알아볼 수 없는 당자경으로서는 의문이 들었지만, 독선의 말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독선은 결국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하지 않는 인물이니까.
당자경의 귓가에 독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의 핏줄을 알아본 건가.”
* * *
“오빠, 괜…찮아?”
강우희는 오라비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백에게 수련을 받은 지 열흘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고되었다.
어리다가 봐줄 그가 아니었다.
오히려 혹독하게 가르쳤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이 혹독한 수련을 받는 오라비가 걱정스러웠다.
헌데 걱정과 달리 강우혁은 쌩쌩했다.
“안 괜찮을 게 있겠어?”
“그, 그럼 다행이고.”
자신의 설득 때문에 오라비가 고생한다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강우혁은 너무도 멀쩡했다.
오히려 너무 쌩쌩했다.
매일 숨이 헐떡일 정도로 수련을 받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오히려 시동 일을 할 때보다 두근거렸다.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넌 어때? 그만하고 싶어?”
“그건… 아니지만…….”
수련이 기대되는 강우혁과 달리 그녀는 조심 힘겨웠다.
강우희는 제 오라비와 달리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근골도 아니었거니와 강우혁처럼 빠르게 성장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수련에 큰 흥미를 느끼긴 어려웠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또 없었다.
강우희도 나름 승부욕이라는 게 있었다.
무엇보다 이 고비를 넘기고 정식 제자가 되어야 금수를 다루는 공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해.”
이백이 가르치는 건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달리기는 시작으로 스쿼트,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버피 등 체력과 근력 훈련을 했다.
훈련을 받는 동안은 이백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혹독하게 가르치지만, 지옥과 같은 그의 추나를 받으면 오히려 쌩쌩해졌다.
그리고 스스로 강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고작 열흘. 열흘이 지났을 뿐인데도 말이다.
흡족해하는 오라비를 보며 강우희는 슬쩍 물었다.
“응… 근데 이제 사부님을 따르기로 결정했어?”
“어? 그건…….”
강우혁은 쉬이 대답하지 못한 채, 말끝을 흐렸다.
그런 오라비를 보며 강우희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자신과 달리 훈련을 즐기는 듯하면서 왜 이리 고집을 부리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사부님을 믿지 못하겠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저…….”
수련은 물론 식사까지 이백과 함께하다 보니, 하루의 절반을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축약하면 좋은 사람이다.
단, 수련에 한해서는 귀신과 다름이 없었다.
신뢰까지는 아니지만, 믿지 못할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저는 무슨, 고집부리지 말고.”
“하… 사부님으로 모시게 되면 이곳을 떠나야 해.”
강우혁의 말에 강우희는 움찔했다.
이백은 사천당가에 평생 지내는 게 아니다. 아니, 곧 떠날 생각이다.
그의 제자가 되면 자신들도 이백의 따라 사천당가를 떠나야 한다.
강우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이곳을… 넌 그래도 괜찮아?”
부모가 살아있을 때는 본가가 아닌 당가타에 살았지만, 어찌 되었든 사천당가의 그늘에서 지내왔다.
그런 이곳을 떠나야 한다.
그게 강우혁으로 하여금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어미의 피를 물려받은 강우혁도 이백의 제자가 되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면서도 미련을 가지게 만들었다.
고향은 그러한 곳이다.
이득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입술을 앙물었던 강우희는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
“정말… 괜찮아?”
강우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되물음에 강우희는 고갤 끄덕였다.
“이곳을 떠난다고 해서… 아빠, 엄마와의 추억이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
그녀의 말에 강우혁의 눈이 커졌다.
어리고 연약하게만 봤던 누이건만, 지금 이 순간만큼 자신보다 강해 보였다.
놀라던 강우혁은 고갤 끄덕였다.
그는 입을 열었다.
“그렇지… 이곳을 떠난다고 추억이 사라지는 게 아니지. 그런데… 제자가 되고 싶다고, 당가를 떠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으… 응?”
간과한 게 있었다.
자신들은 이성방계라도 혈족이고, 이곳이 사천당가인 것을.
하인 한 명도 고르고 골라 받아들이는 사천당가다.
당령의 시동으로 있으나 사천당가의 혈족이기도 했다.
사부로 모시는 걸 떠나, 그와 함께 이곳을 떠나는 게 허락될 리가 없다.
데릴사위제가 당연시 여길 정도로 폐쇠된 사천당가인데 말이다.
그를 깨달은 두 남매는 밤잠을 설쳤다.
* * *
“내가 해결해주면 문제가 없는 건가.”
밤을 잘 자지 못했는지, 얼굴색이 좋지 못한 강씨 남매에게 이율 물었다.
그들은 우물쭈물하다 자신들의 현실을 알려주었다.
헌데 이백은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해, 해결하실 수 있다고요! 사, 사천당가예요, 이곳은!”
“그건 내 몫이니, 너희가 걱정할 거 아니다. 그럼 더 이상 날 못 믿는 게 해결되는 건가?”
밤잠을 설칠 정도의 일이건만 이백은 해결해주겠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미, 믿지 못했다기보다는…….”
“대답.”
이백은 단호히 물었다. 굳이 돌려 말할 필요가 없었다.
강우혁은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예… 사부님.”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