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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06화 (106/200)

106화. 사제지연(師弟之緣) (1)

강우희는 제 오빠를 힐끔거렸다.

흡사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이.

주저하던 그녀가 용기를 냈는지 입을 열었다.

허나 자신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단 걸 깨닫지 못했다.

“…오빠.”

“어.”

자신 딴엔 용기를 낸다고 내서 부른 것인데, 오라비의 반응이 무미건조하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입을 뗀 이상 다음 말을 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공녀님께서… 돌아…오셨다는데?”

“들었어.”

강우희만이 아니라 강우혁 역시 당령의 처소에서 일했다.

그러니 직접 보지 못했어도 그녀가 돌아온 걸 들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이니 강우희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 그러니까… 어… 어…….”

“공녀께서 오셨으니, 이 대협께서 떠나신다는 말을 하려는 거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못하고 끙끙거린 강우희가 허무하게, 강우혁은 차분히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꺼냈다.

알면서 모른 척했다는 생각에 강우희는 살짝 화가 났다.

그녀의 뿔이 난 표정에도 강우혁은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칫! 알면서… 알면서…….”

“그래서 넌 따라가고 싶다는 거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널, 우리의 미래를 맡기겠다는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오라비를 보며 강우희는 다시 당황했다.

신체적인 조건은 아비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으나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격은 어미의 피였다.

당우희는 그 반대였다.

여리여리하고 귀여운 외모는 어미를 닮았지만, 금수(禽獸)와의 친화력과 감성적인 성품은 아비를 닮았다.

“누, 누군지 모르다니! 공녀님의 의숙이시잖아! 그, 그리고 우리가 남아봤자…….”

“맞아, 이 대협께서 오공녀님의 의숙이지. 그게 그의 성품을 대변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대단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지만, 그나마 있는 당가라는 그늘마저 없어지면 지금보다 나을까?”

비록 당령이 다른 직계들과 달리 가솔들에게도 잘 대해준다지만, 그것이 그녀의 의숙 이백의 인품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그나마 사천당가라는 그늘이라도 있다.

그조차 사라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성방계(異姓傍系).

그것도 묘족의 아비를 둔 탓에 차별을 당해 왔던 강우혁으로서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가 믿는 건 자기 자신과 오직 피를 나눈 누이 강우희뿐이다.

“나, 나으면! 왜 낫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짓는 거야! 동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어!”

“그게 설득력 있다고 생각해? 동물 좋아하는 것과 성품은…….”

설득력 전혀 없는 누이의 말에 강우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아비의 출신인 백묘족에 대해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다.

맹수를 가축처럼 키우는 그들을 무식하고 잔혹한 오랑캐.

그 말이 십 할 맞다 생각하지 않으나 동물을 좋아하는 것과 성품은 관련이 없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오라비의 너무도 냉정한 말에 폭발했는지, 강우희가 그의 말을 끊은 채 제 귀를 맞으며 설득을 거부했다.

“아, 몰라! 몰라! 몰라!”

“하…….”

설득력 없고, 감성적인 반응을 보이는 누이를 보며 강우혁은 한숨만 나왔다.

그라고 이백이 마냥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정말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부가 되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강우혁은 자신만이 아니라 누이의 미래까지 생각해야 하기에 모험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짐승만도 못한 변태라면, 그땐 후회한들 돌이킬 수 없으니까.

이런저런 상황을 고민하느냐 속이 편치 못한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누이가 살짝 야속하기도 했다.

“사부님이 떠나시면 어떡해!”

“하…….”

이젠 이백을 아예 사부라고 부르는 누이를 보니, 강우혁은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평소 자신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 누이지만,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씩씩거리는 강우희는 보자 결국 먼저 항복한 건 그였다.

“알았다! 알았어. 다시 한번 여쭤보고 결정하자.”

“이히히! 고마워, 오빠!”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방긋 웃고 있는 누이를 보자 강우혁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결국 강씨 남매는 이백을 찾아갔다.

*  *  *

“결정은 내렸느냐.”

이백은 당가를 떠나기 위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다 자신을 찾아온 강씨 남매를 발견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강우희가 자신의 오라비를 바라보자, 강우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조금 더 대화를 나눠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대화라… 좋다. 허나 난 곧 떠나야 하니, 긴 시간을 줄 수 없구나.”

이백의 대답에 강우혁은 고갤 끄덕였다.

일전에 당령이 돌아오면 사천당가를 떠난다고 언질을 주었기에 알고 있었다.

그가 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강우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협의 제자가 된다면… 저희는 무엇을 하면 되나요?”

“나의 공부를 배우면 된다. 아직 정확히 너희의 재능을 확인한 게 아니라 조금 더 살펴봐야겠지만… 우혁이 너는 무공을, 우희는 금수(禽獸)를 조련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게다.”

강우희는 금수를 조련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눈을 반짝였다.

그에 비해 강우혁은 미심쩍은 마음이 들었다.

“…그게, 전부인가요?”

“그게 전부가 아니면? 아…….”

어리둥절하던 이백은 탄성을 질렀다.

그 모습에 강우혁은 속으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이백이 말을 이었다.

“우희의 경우는 만약을 대비해 보법도 익혀야 하고, 원하면 무공도 가르쳐주마. 우혁이 너도 재능이 있다면 금수를 조련하는 방법도 알려주마.”

“예? 그거 말고는 없나요?”

당황한 강우혁을 보며, 이백은 그가 원하는 게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백은 잠시 고민해 본 후에 입을 열었다.

“글자를 모른다면 글도 알려주고, 산법도 원하면 가르쳐주마. 그 외도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말하거라. 내가 모른다면 따로 선생을 구해주마.”

“!”

이백의 말에 두 남매의 눈이 커졌다.

허나 그들이 놀란 이유는 서로 상반되었다.

강우희는 배우고 싶은 걸 모두 가르쳐주겠다는 말에 좋아하는 것이라면, 강우혁은 ‘대체 무슨 꿍꿍이지’라는 반응이었다.

이백은 강우혁의 경계심이 더 커질 걸 느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말해 보거라. 뭘 원하느냐? 뭐가 그리 의심스러우냐?”

“…저도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흴 하인…으로 삼으시려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운 말투면서도 할 말 다 하는 그를 보며 이백은 피식거렸다.

그는 그제야 강우혁이 뭘 걱정하는지 알아차렸다.

“굳이 너흴 하인으로 부릴 이유가 있더냐? 하인이 필요했다면 조금 더 잘 부려 먹을 수 있는 녀석들을 구하겠지. 이제 열 살과 그조차 안 된 아이들을 얼마나 부릴 수 있다고 말이더냐.”

“그, 그야 부, 부자들 중에는 트, 특이한 취미를 가진 분들도 있다…….”

당황한 강우혁은 마음 깊숙이 숨기고 있던 본심을 꺼내고 말았다.

이성적인 성격이라도 아직은 고작 열 살짜리 어린아이에 불과하니, 숨긴다고 해도 완벽하게 숨기진 못한 것이다.

이백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을 본 강우혁은 심장이 철렁했다.

“으흠…….”

“죄, 죄송합니다. 대협! 모, 모욕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해요.”

강우혁이 몸을 바짝 엎드려 사과하자, 그걸 본 강우희도 당황해 덩달아 몸을 바짝 숙였다.

그때 나직한 이백의 목소리가 귀가에 들려왔다.

“일어나거라, 난 화가 난 게 아니란다.”

겁이 난 강우혁은 쉬이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오라비가 몸을 일으키지 않으니, 강우희는 눈치만 보며 그대로 숙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일으켜졌다.

이에 두 남매는 깜짝 놀랐다.

“어? 어어!”

“어~어?”

화경에 오르면서 터득한 무형지기(無形之氣)였다.

“겁먹지 말거라. 너희에게 화가 난 것도, 화를 낼 생각도 없단다.”

이백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말 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는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강우혁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내 너흴 헤아리지 못하고, 성급했어. 내가 너희를, 그리고 너희 역시 날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

강우혁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만 돌아갔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웃다가 갑자기 화를 내는 사람이 있고, 미안해하다가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있다.

이백이 그러한 자가 아님을 아직 확신할 수 없기에 긴장의 끈을 풀 수 없었다.

“부모님을 잃고 서로에게만 의지할 수밖에 없던 너희에게, 낯선 자가 난데없이 제자로 삼겠다고 했으니… 너희가 당황하고 의심스러운 마음을 가지는 게 당연하겠지. 좋다. 당가를 떠나는 걸 잠시 보류하겠다. 그렇다고 오래는 어렵고. 그동안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주마. 내 제자가 아니라도 익혀두면 도움이 될 게다. 그 후에 결정하는 것은 어떠냐?”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백으로서는 많이 양보했다. 그걸 아는지, 강우혁은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곁에 있던 강우희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따라 허릴 숙였다.

“너희에 대해선 령이에게 말해둘 테니, 다른 건 하지 않아도 된다.”

“저… 일은 그대로 하면 안 될까요?”

떠나는 일정을 미루긴 했지만, 오래 남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최대한 시간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헌데 정작 강우혁은 당령을 모시는 일을 그대로 하고 싶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을 게다. 아니, 분명 버텨내지 못할 테지. 난 설렁설렁 가르치는 성격이 아니다.”

“그게… 후우…. 저희가 남게 되었을 때,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서… 죄송해요.”

강우혁은 호흡을 가다듬고 솔직하게 말했다.

혼이 날 걸 감안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백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과 강우혁이 나이에 비해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안타까웠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아직 어린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분들에 비해 한정되었을 테지. 안 그러느냐.”

“예… 맞아요.”

“결국 령이를 모시는 게 일이지?”

“예… 맞아요.”

맞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이 아니기에 강우혁은 반박하지 않고 수긍했다.

이백은 강씨 남매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령이의 무공 수련을 봐줄 테니, 너희도 함께하거라.”

“예? 그건…….”

예상치 못한 제안에 강우혁은 당황했다.

허나 이백도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단호히 말했다.

“어차피 너흰 무공을 익힌 령이만큼 수련할 수 없다. 그러니 중간중간 쉬면서, 령이가 마실 물과 땀 닦을 천을 준비하면 되지 않겠느냐. 이조차 안 되면 내가 오래 당가에 있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사천당가의 혈족이라도 방계도 이성방계라 실제론 가솔이라도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다른 가솔들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으나 이백이 그만큼 양보했다.

더 이상 제 뜻만 고집하는 건 이기심이란 걸 알기에 강우혁은 고갤 끄덕였다.

“그럼 말해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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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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