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야수족의 후예
사천당가가 발칵 뒤집혔으나 한 곳만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오공녀 당령의 처소였다.
정작 집주인은 며칠째 자리에 없고, 다른 이들이 지내고 있었다.
“호로록~ 묘족입니까.”
이백은 차를 마셨다.
그의 앞에는 중년 사내가 앉아 있었다.
암비(暗秘) 당혼이 보낸 인물이었다.
“정확히는 백묘족 출신입니다.”
“그 말씀은…….”
이백의 눈빛이 이채롭게 변했다.
묘족은 크게 세 가지 부락으로 나뉜다.
호남의 홍묘(红苗), 귀주의 흑묘(黑苗) 그리고 대표적으로 알려진 남만의 백묘(白苗).
홍묘와 흑묘가 한족과 비교적 친화적이지만, 백묘는 적대적이었다.
“예, 야수족 출신입니다.”
“그렇군요.”
남만의 묘족은 백묘만 존재한 게 아니다.
백묘 이외에도 화묘(花苗)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백묘가 지배한 탓에 화묘는 예하 부족으로 분류되었다.
허나 수백 년 전부터 오히려 백묘보다 강성해졌다.
화묘의 다섯 부족이 손을 잡고 하나의 집단으로 거듭난 덕분이다.
그게 바로 사천당가와 버금가는 독문(毒門) 오독문이다.
그에 비해 백묘. 즉, 야수족은 부족연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나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두 사람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죽었다는 말에 이백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더 궁금하신 점 있으십니까?”
이백이 고갤 젓자 중년 사내는 돌아갔다.
호법인 당혼이 전하라고 했던 걸 모두 전했기 때문이다.
그가 전한 건 바로 강우혁, 강우희 남매의 선친에 대해서였다.
“야수족의 피 때문이었군. 그보다 열두셋은 될 줄 알았는데, 열 살일 줄이야.”
묘족의 무공은 중원의 것과는 그 체계가 다르다.
내공보다는 외공에 치중된 편이었고, 형(形)과 식(式)으로 이루어진 중원과 다르게 감각에 치중되었다.
그렇기에 저급한 무공이라 생각하지만, 변화무쌍하고 예측불허라 더욱 무섭다.
실제로 야수족의 전대 대족장은 야수왕(野獸王)이라고 불릴 정도로 걸물이었다.
대체로 야수족은 거구와 강골이 많은 편이다.
강우혁이 실제 나이에 비해 체격이 좋은 건 아비의 영향인 듯싶다.
“그리고 우희의 그 재능…. 우연이 아니었어.”
백묘족이 야수족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타고난 힘, 짐승과 같은 감각에서 비롯된 전투방식은 야수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짐승을 조련하는 능력이다.
야수족은 호랑이, 늑대, 곰과 같은 맹수는 물론 벌이나 누에 등 곤충을 다루는 부족까지 존재한다.
전자의 재능을 강우혁이 이었다면 강우희의 경우는 후자인 듯했다.
“이것도 인연일지 모르지…….”
이백은 강씨 남매를 불러들였다.
“예?”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강우혁은 깜짝 놀라 이백을 바라보았다.
농이 아닌지, 그의 얼굴은 매우 진지해 보였다.
“저희를 왜…….”
“인연을 느꼈다…라고 하면 납득하지 못하겠느냐.”
강씨 남매가 당황하고 경계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이백은 그들에게 자신의 제자가 될 의향이 있는지 물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모시는 오공녀의 의숙으로, 본가에서도 극진하게 대우하는 인물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자가 자신들을 제자로 삼겠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었다.
제자를 빙자한 하인으로 삼기 위해? 혹시 추잡한 비밀을 가진 자가 아닐까 하는 경계심이 든 것이다.
헌데 이백의 대답에 강우혁은 다시 한번 당황했다.
“예?”
“그걸로 부족하다면, 너희 선친에 대해 들었다.”
선친이 언급되자 남매. 특히 강우혁의 경계심이 최고치까지 올라, 누이동생을 지키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아비가 한족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비록 방계라지만 혈족임에도 가문의 무공을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유이니까.
“죄송하지만 저희는…….”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너흴 제자로 삼으려는 건, 내가 익힌 게 좀 특이하기 때문이란다.”
경계하지 말라고 경계심이 사라질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백은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그는 강우희를 바라보았다.
“너희도 알겠지만, 내게 특별한 친구들이 있단다. 설군, 금군, 야군이지. 그 외에도…….”
“우와~!”
강우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백이 손을 내밀자 창밖에서 한 마리의 새가 날아온 그의 손 위에 앉았다.
굳이 만수통령술(萬獸統領術)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강우혁도 신기하게 보았으나 여전히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내가 익힌 공부의 하나인데, 우희. 너라면 익힐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그럼 저, 저도 귀여운 친구들을 가질 수 있는 거예요?”
강우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
그녀는 반쯤 넘어왔다. 헌데 강우혁은 아니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가문의 일원으로 사는 데 꼭 필요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오, 오빠…….”
강우혁의 단호함에 강우희는 울상이었다.
평소였다면 그녀에게 져주었겠지만, 이번만큼은 어림도 없다는 듯 단호한 얼굴이었다.
그래서인지 강우희는 울상을 지었지만, 떼를 쓰지는 않았다.
아직 어리나 너무 일찍 철이 든 탓이다.
이백은 경계심이 높은 강우혁을 바라보았다.
“가문의 일원이라…. 폄하하는 건 아니나 이후라고 너희의 입장이 나아질 거라 보긴 어렵구나.”
“…….”
이백의 말에 강우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방계의 어미에 묘족의 아비.
당가의 가솔. 그 이상으로 나아가긴 어렵다는 걸 그 역시 모르지 않았다.
이백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너흴 꼭 제자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니다. 흔치 않겠지만, 너희와 같은 재능을 가진 아이를 못 만날 건 아닐 테니까. 하지만 너흰 다르다. 지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게다.”
“…….”
잔혹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백은 그들 남매를 제자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니다. 애초 제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언젠가 당가를 떠날 것이고, 제갈중경을 죽게 만든 암류의 꼬리를 잡기 위해 어디론가로 떠나야 한다.
그런 이백에게 제자는 사실 부담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제안을 한 건, 인연을 느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탓이다.
“령이가 돌아오면 떠날 생각이다. 그전까지 생각이 바뀌면 말하거라. 이제 그만 돌아가 봐도 좋다.”
“예…….”
이백의 축객령에 강씨 남매는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들이 돌아가자 자리를 비워주었던 세 여인이 들어왔다.
“관심을 가지신 건 알고 있었지만, 제자로 삼으시려는 줄은 몰랐사옵니다.”
“그저 인연을 느꼈을 뿐입니다.”
인연이라는 말에 주예빈의 얼굴에 부러움이 어렸다.
자신은 들어 보지 못한 말인 탓이다.
이백은 그녀들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들었겠지만, 령이가 돌아오면 당가를 떠날 생각입니다.”
“그럼 떠날 채비를…….”
주예빈의 말에 이백은 고갤 저었다.
떠날 채비를 하라고 이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그는 보다 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은 이백의 입에서 중요한 말이 나오려 한다는 걸 느꼈다.
“이제 그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가가, 그건!”
주예빈이 대표로 말했지만, 나머지 두 여인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선을 긋는 이백의 태도에 그녀들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들의 표정을 읽었지만, 이백은 흔들리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돕겠습니다!”
“맞아! 우리가 돕는다면…….”
주예빈의 말에 제갈혜원이 맞장구쳤다. 입을 열지 않았으나 교정정도 마음이 다르지 않았다.
허나 이백은 고갤 저었다.
“마음은 감사하나, 방해됩니다.”
“……!!”
방해.
그 잔혹한 말에 세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반응을 예상 못 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백은 그녀들이 상처를 받을 걸 알면서도 방해라는 잔혹한 단어를 선택했다.
흑백쌍괴, 십절흑제와 같은 괴물들이 얼마나 더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암류다.
그 뒤를 쫓는다면 필연적으로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그녀들까지 지켜줄 자신이 없었다.
“저 아이들… 저 아이들은 방해가 되지 않고, 저희만 방해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저의 제자라면… 감수해야 할 일입니다. 저 아이들도, 저 역시…….”
“그건 저희도…….”
그녀들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럴수록 이백은 더욱 단호했다.
“무왕부, 제갈세가, 검모궁. …부담스럽습니다.”
“소첩은 왕부를 나왔습니다! 그러니 군주(郡主)로 생각하지 마시고…….”
“흑룡위들이 따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천륜은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군주님.”
“…….”
그녀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방해된다는데, 부담스럽다는데 어찌하겠는가.
결국 그녀들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는 그녀들. 정확히는 교정정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목숨빚은 나중에 마저 갚겠습니다.
―…….
교정정은 아무런 대답 없이 두 여인의 뒤를 따라 나갔다.
홀로 남은 이백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하아… 젠장…….”
* * *
세 여인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다들 머리가 복잡한 탓이다.
그러던 중 교정정이 입을 열었다.
“어쩔… 생각이세요.”
“뭘 어째? 우릴 떼어 내시려고 한다고 ‘예, 알겠습니다’라고 할 생각은 없어.”
이백이 힘겹게 매몰찬 단어까지 사용했지만, 주예빈은 그의 마음을 외면했다.
당연히 자신의 말에 동조할 거라 생각했는지, 제갈혜원을 바라보았다.
허나 그녀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저는 돌아갈 생각이에요.”
“고작 그 정도였어?”
경쟁자 한 명이 순순히 나가 떨어준다면 좋아해야 할 텐데, 주예빈의 반응은 오히려 차가웠다.
제갈혜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백이가 어떤 심정으로 그리 말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아니까 이대로 물러날 수 없는 거 아니야.”
“그가 이리 말할 정도라면 그만큼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겁나?”
주예빈의 반응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럼에도 제갈 혜원은 담담히 자신의 뜻을 밝혔다.
“겁, 납니다. 정말 그의 말처럼 짐이 될까 싶어서요. 저는 주 언니나 교 동생처럼 절정고수도 아니에요. 형주상단에서의 그런 자를 만난다면… 저를 지키려다가 백이만 위험해질 수 있어요. 그건 도움이 아니라 짐이겠지요. 결국 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구요.”
“…….”
힘없이 중얼거리는 제갈혜원의 말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저’라고 1인칭으로 말했으나 실상은 자신들도 다르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은 탓이다.
입을 다물었던 교정정이 입을 열었다.
“저 역시… 돌아가겠어요.”
“교 동생!”
그녀마저 떠나는 걸 결정을 내리자 주예빈의 언성이 높아졌다.
두 사람 모두 이리 결정한다면 자신의 의지마저 꺾일 거 같았기 때문이다.
교정정은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대협께서 부담이라 말씀하신 건, 무왕부와 제갈세가 그리고 본궁에까지 피해를 끼치기 싫다는 뜻일 거예요. 관계없는 수백, 수천 명이 원치 않게 휘말리는 걸…….”
“그건!”
주예빈은 반박하려 했으나 결국 반박할 수 없었다.
관무불가침(官武不可侵)이라지만, 자신이 다친다면 두고볼 무왕(武王)이 아니다.
그로인해 수많은 피가 흐르게 된다.
그 피가 적(敵)만이 아닐 것이며, 혈채(血債)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건 무왕부만이 아니다. 제갈세가와 검모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백은 그걸 우려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난 약하구나. 스스로 지킬 힘이 있었다면…….”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