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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02화 (102/200)

102화. 궤변(詭辯)

“부르셨사옵니까.”

중년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수십의 요리가 놓은 술상 너머로 중년 사내가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자네가 하오문의 향주인가.”

“예, 소첩이 성도를 담당하는 향주이옵니다. 소가주님.”

이곳은 하오문이 운영하는 주루 중 하나로, 중년 여인의 정체는 하오문 성도 향주였다.

하오문이 거파는 아니지만, 향주를 가볍게 대하긴 어렵다.

하오문이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지만, 그들과 척을 지면 귀찮은 일이 많아진 탓이다.

기본적으로 하오문은 정보 집단. 적에게 자신의 정보를 넘기면 곤란해지니 말이다.

그렇기에 하오문을 무시하면서도 대놓고 막대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녈 이리 발걸음하게 만든 사내는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자명이었다.

“그럼 본 소가주가 왜 이곳에 온지도 알겠군.”

“소첩이 미력하여…….”

쓸데없이 말이 길어지자 당자명이 살짝 기운을 드러냈다.

그 역시 목적이 있어 방문한 만큼 경고가 될 수준 정도로 조절했기에 향주가 기절하지는 않았다.

“본 소가주와 말장난 칠 생각은 하지 말게나.”

“…독비(毒秘)께서 흑시에 방문한 일이 있나 알아보시러 오신 걸로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문의 명성답게 사천당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지 알고 있었다.

그런 하오문이니, 그들의 정보는 신뢰할 만했다.

당자명은 뭔가 기대하는 눈치로 물었다.

“그럼 고하라.”

“…하찮은 것이지만, 본문은 정보상이옵…….”

쉬익~! 푹!

무언가 날아와 향주의 앞에 꽂혔다.

그건 놀랍게도 전표였다.

얇고 가벼운 전표를 빠르게 던진 것으로 부족해, 바닥에 꽂히게 만들다니. 과연 암절(暗絶)이라 불릴 만한 실력이었다.

“백 냥이라면 부족하지 않겠지.”

“독비만이 아니라 삼비(三秘) 중 누구도 흑시에 방문한 기록이 없사옵니다.”

금자 백 냥짜리 전표였다. 은자로 이천 냥에 해당하니, 대금으로 부족하다 못해 넘쳤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닌지라 당자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고작 이딴 대답을 듣기 위해 은밀하게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기록이 남지 않게 출입했을 가능성은? 애초 흑시에서 기록 따위가 있느냐.”

“흑시가 무법지대로 보이지만, 오히려 더 철저히 관리되는 곳이옵니다.”

흑시(黑侍)는 하오문에서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

흑시의 주인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배후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러한 곳이니, 관리가 더욱 철저할 수밖에 없다.

원래 이런 정보는 외부에 유출되지 않으나 흑시와 하오문은 공생관계이기에 알 수 있던 것이다.

“젠장, 돈만 날렸군.”

“허나…….”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향주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나왔다.

헌데 거기서 멈췄다.

당자명은 그 의미를 깨닫고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고작 돈 때문에 향주에게 힘을 쓰는 건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또 한 장의 전표가 바닥에 꽂혔다.

“고하라. 만약 또 장난질이면, 다음 전표는 네년의 이마에 꽂히게 될 것이다.”

“무, 물론이옵니다. 삼비는 흑시에 방문하시지 않았으나…….”

말이 끊기자 당자명의 얼굴이 짜증이 엿보였다.

움찔한 향주는 그가 정말 위협하기 전에 다급히 말을 이었다.

“자, 잠영귀(潛影鬼)께서 흑시에 방문하신 적이 있사옵니다!”

“잠영귀? 북천표국의 그 잠영귀 말인가.”

그제야 당자명이 관심을 보였다.

잠영귀는 북천표국 사대 대표두의 한 명으로, 그의 과거는 표국주 외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소문에는 살수 출신이란 말이 있지만, 확인된 바가 없었다.

그는 대표두들과 달리 표행을 떠나지 않는다.

잠영귀의 역할은 표행이 필요한 정보수집과 표물이 유출되었을 시 회수, 흔치 않으나 정체를 숨겨야 하는 암표(暗鏢)의 의뢰만 맡았다.

그런 잠영귀이니, 흑시 방문이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다.

허나 잠영귀는 북천표국의 일원이고, 북천표국은 당령의 외가다.

잠영귀가 흑시에서 신선폐를 구입해 당은에게 전달했다면? 앞뒤가 딱 맞는다.

“다만 잠영귀가 무엇을 구입했는지, 알 수 없사옵니다. 그건 흑시의 총관과 주인이 외에는 알 수 없사옵니다.”

“그럼 제일 중요한 걸 알 수 없지 않은가!”

당자명은 짜증이 났다.

문제는 하오문은 몰라도 흑시까지 찾아가 알아보는 건 어렵다.

“하오나 정황 정도로도 압박은 가능하지 않겠사옵니까? 독비 역시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로 알고 있사옵니다.”

“으음…….”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당은 쪽의 자작극에 무게가 실린다.

암우부대주가 입을 열지 못하게 당은이 손을 쓴 것으로 여론을 바뀌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자명은 자리에 일어나 돌아갔다.

그러자 언제 겁을 먹었냐는 듯 향주는 차가운 얼굴이 되었다.

“큰돈을 받았으니 손해 볼 건 없는데…. 재밌군. 혈족들끼리 속이고 속으니… 컥!”

“이래서 천한 것은 안 된다니까. 입을 쉬이 놀리니 말이야.”

조소를 짓던 향주는 신음과 함께 고갤 돌렸다.

그녀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자 눈이 커졌다.

허나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땐 절명한 탓이다.

“내가 아닌 그였다면 곤란할 뻔했잖아? 괜히 많은 돈을 준 게 아닌데 말이야. 안 그런가. 총관.”

“죄송합니다. 상부에는 오해 없게 해명해두겠습니다.”

하오문은 점 조직이기에 향주가 죽으면 그 지역의 향이 무너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향주가 임명 될 때까지 총관이 대리를 맡게 된다.

물론 총관의 주 임무는 향주의 감시였다.

외부인의 의해 향주가 죽었으나 정보상으로서 금기인 의뢰인의 신원 노출이 일어날 뻔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죽음으로 문제를 삼기는 어렵다.

‘부디 잘 반격하라고… 멍청아.’

*  *  *

“방계였군.”

이백은 당혼에게서 강씨 남매에 대해 듣게 되었다.

설마 했는데 그들은 사천당가의 방계혈족이었다.

“어미가 본가의 방계이니, 이성방계(異姓傍系)지요.”

“그럼 부모님은 어떤 분들입니까?”

강씨 남매의 성이 당씨가 아닌 이유는 모친 쪽이 당가혈족이었던 탓이다.

사천당가는 데릴사위제를 따르며 성씨 역시 당씨로 바꾼다.

하지만 방계까지 고집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사천당가에서 이성(異姓)을 가진 자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자세한 건 알지 못하나, 어미가 의방(醫幇)에 속했다 들었습니다.”

“그럼 아버지는…….”

사천당가에는 내당의 독의각(毒醫閣)과 외당의 당가의방(唐家醫幇)이 존재했다.

독의각이 독과 해독제를 연구한다면 의방은 당가의 의료사업체로써 운영되었다.

강씨 남매의 어머니는 그 중 당가의방에 속한 여인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물음에 당혼은 고갤 저었다.

“아비에 대해선 알지 못합니다. 궁금하시다면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수고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궁금하긴 했지만, 당가의 호법인 당혼에게 그렇게까지 수고를 끼칠 수는 없었다.

그들에 대해 그렇게 알아야 할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당혼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공녀님을 가까이서 모시는 아이들인데, 어떤 이들인지 알아보지 않았군요.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시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작 가솔들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는 없다.

허나 당령의 위치를 생각하면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셨고, 8년 전 본가로 오는 길에 습격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면 마냥 안전하다 할 수 없다.

헌데 이성혈족의 아이들이 시동으로 왔다.

이백의 물음이 아니었다면 이 중요한 걸 놓쳤을 거란 생각에 당혼은 자책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대형, 가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묵아, 무슨 일이더냐.”

당외삼비의 검비(劍秘) 당묵이었다.

평소 표정 변화가 없는 그답지 않은 다급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이백이 당령의 의숙이라도 외인이기 때문인지, 당묵은 설명하지 못하는 듯했다.

“먼지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났다.

그런 그의 곁에 여인들이 다가왔다.

형주상단에서 동행했던 그녀들이었다.

“가가, 아이들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시는 거라면…….”

“주 언니, 이상한 말하지 마십시오.”

주예빈의 말에 제갈혜원이 타박했다.

그녀의 신분 때문에 소란이 일어날 걸 우려해 군주(郡主)라는 칭호는 삼가기로 했다.

헌데 주예빈이 제일 연장자라 그녀에게 언니라 칭하게 되었다.

억울하다는 듯 주예빈은 말 없는 교정정에게 물었다.

“아니, 내가 뭘 이상한 말을 했다고… 안 그래? 교 동생.”

“하, 하하…….”

대답하기 여의치 않은지, 교정정은 어색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주예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딱딱하고 위엄 넘치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약간 푼수끼가 보일 정도였다.

허나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의 노력은 눈물 겨웠다.

이백이 군주라고 자신과 거리감을 드러내기 때문이었다.

“백아, 그 아이들은 왜?”

“그냥… 평범한 듯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거 같아서.”

영수인 금군이 마음을 연 걸 설명하기 여의치 않은 탓에 애매모호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대답에 세 여인은 오히려 의아했다.

특히 제갈혜원은 갸웃했다.

“평범하지 않다고? 오빠 쪽은 근골이 괜찮긴 하지만 무골(武骨)이라고 볼 정도는 아니고, 누이 쪽은 특별한 게 없어 보이던데? 내게 잘못 봤나?”

“소첩도 같습니다. 남아는 군부무공을 익히면 좋을 거 같던데…. 여아는…….”

강우혁은 어린 소년이지만, 뼈가 굵고 어깨가 딱 부러진 게 외공 쪽에 재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누이인 강우희는 무공에 재능이 보이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이백이 본 건 강우희의 무재(武才)가 아니니까.

‘아버지 쪽과 관련이 있을 거 같은데…. 곧 알 수 있겠지.’

*  *  *

“소가주,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십니까?”

당은은 기가 찬다는 듯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나 당자명은 의외로 당당했다.

“어찌 말이 안 된다 말이오, 독비 호법.”

“암우대 부대주가 공녀님의 의부와 의숙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게 밝혀졌는데, 어찌 자작극일 수 있단 말입니까! 설마 부대주를 본녀가 포섭했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당은의 열변에도 당자명은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변명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고, 대비했으니 말이다.

당자명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오공녀의 의부와 의숙이 암살당할 뻔했다고, 그 범인이 부대주라고 했는데…. 증인이 있소?”

“그야 본녀가!”

오공녀는 바로 당령이다.

기존에 오공녀라고 불린 여인이 있었으나 당령으로 인해 칭호가 밀리게 되었다.

흥분한 당은의 말을 당자명이 차분한 목소리로 끊었다.

“독비. 그대만이 아니라 삼비 모두가 오공녀와 가깝다는 걸 모르는 자가 있소?”

“그건!”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지난 8년간, 당외삼비가 당령과 함께 지낸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 당은에게 당령이 유모라 부를 정도였다.

그들이 모두 한통속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허나 이대로 밀리기만 해서 답이 없기에 당은이 입을 열었다.

“부대주는 어찌 설명하실 겁니까? 그리고 신선폐는 또 어떻고요. 설마 본녀가 훔쳤다 말하고 싶은 겁니까!”

“꼭 부대주일 필요는 없었겠지. 본 소가주와 연관이 있는 자 중 아무나 유인해 범인으로 위장하면 그만이니…….”

누가 뒤에서 조언을 했는지 말도 안 되지만, 완전히 부정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자작극이라는 전제를 두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당자명은 그녀가 해명하기도 전에 다음 말을 전했다.

“그리고 신선폐를 언급했는데… 분명 신선폐가 사용된 흔적은 발견되었소. 허나 부대주가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소. 게다가 재미있는 정보를 입수했소.”

“…그게 무엇이지요.”

당은은 잘못한 게 없음에도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잠영귀가 흑시에 방문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소.”

“그가 진짜 흑시에 방문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설사 방문했다고 해서 이 일과 무슨 연관이…….”

“잠영귀가 오공녀의 외가인 북천표국의 대표두임을 모르는 자가 있소!”

그 순간, 의심의 눈초리는 당자명에서 당은으로 넘어갔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부 궤변이지만, 진실을 흐리기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여론이 바뀌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도…….”

“여기들 있었군.”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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