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사후처리(事後處理)
“…윽!”
당천악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독룡수를 익히기 위해선 약과 독으로 배합된 특수한 약물에 손을 담가야 한다.
그렇게 흡수한 독기로 인해 독룡수를 익힌 손이 청록빛으로 바뀐 것이다.
교룡독무(交龍毒霧)는 그렇게 흡수한 독기를 독무(毒霧)로써 방출하는 무서운 수법이다.
당천악은 이를 악물고 자신이 방출한 독무를 통제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통제가 되기는커녕 그의 기혈만 꼬이고 말았다.
“커억!”
결국 당천악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교룡독무의 독무를 제어하기 위해선 독룡수 8성의 경지. 최소 7성은 되어야 어느 정도 가능하다. 헌데 고작 5성의 경지로 흥에 겨워 그런 중요한 사항을 잊고 말았다. 그것으로 부족해 또 다른 절초까지 펼치려 했으니, 그 대가는 혹독했다.
당천악의 제어를 완벽하게 벗어난 독무가 연무대를 벗어나려 했다.
“젠장! 누구도 좋으니 막아!”
“서둘러!”
자칫 독선의 팔순을 축하하러 온 객들이 중독될지 모를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려 했다.
축하객들보다 당가인들이 더 기겁하며 다급히 연무대로 향했다. 그런 그들보다 먼저 움직인 자가 있었다.
“흡(吸)!”
연무대 밖으로 빠져나가려던 독무의 움직임 바뀌었다.
독무는 손바닥을 뻗고 있는 당령의 장심(掌心)을 통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천악의 독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언제 움직였는지, 독선이 당령의 곁으로 와 있었다.
“령아! 괜찮으냐.”
“후우… 괜찮아요, 할아버지.”
당령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쳤다.
그런 그녈 보며 걱정 한가득한 얼굴로 독선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이 녀석아, 어찌 무리하였느냐. 그러다 네 기혈이 꼬일 수 있단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네가 무리하지 않았다고 해도 설마 본가가 객들이 중독되는 꼴을 두고 봤겠느냐.”
“헤헤… 가능할 거 같았는걸요.”
당령은 배실배실 웃고 있지만, 상당히 지쳐 보였다.
독을 빨아들이(吸毒)는 게 쉬운 일이 아니며, 자칫 흡독을 시도한 자가 중독될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
허나 독선이 그녈 나무란 건, 당령이 해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모두에게 그녀의 공(功)을 알라고 굳이 언급한 것이다.
그런 수고가 의미 있었다는 듯 객들의 머리에 당령의 이름이 각인되었다.
“당가에 대단한 신성(新星)이 나왔구나!”
“봤느냐, 저 어린 여인이 해낸 걸. 본문에 돌아가면 이 사부가 확! 실하게 가르쳐주마.”
여기저기서 탄성과 질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수록 당자명과 당자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멍청한 새끼, 깨어나만 봐라!’
* * *
독선의 팔순연은 예정보다 서둘러 마무리되었다.
돌아가는 축하객들은 이게 당천악의 일 때문이란 걸 눈치챘지만, 입에 담은 자는 없었다.
틀리지 않다는 듯 소가주 주관으로 장로회의가 열렸다.
아무래도 당천악이 소가주의 자식인 만큼 쉬이 결정되지 않았으나 사실상 가문의 얼굴에 먹칠한 것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각 지부의 순시나 상행 호위 등의 제안이 나왔으나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샌다면 결론적으로는 천일폐관으로 결정을 내렸다.
장로들이 하나둘씩 떠났으나 소가주 당자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다가온 자가 있었다.
“형님, 운이 안 좋았소.”
“뭐 운? 비웃는 게냐.”
당자명은 이복아우이자 외총관 당자원의 말에 미간을 꿈틀거렸다.
이복형의 그런 반응에 당자원은 손사래를 쳤다.
“비웃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끝이 마무리가 좋지 않았으나 사실 독룡수는 좋은 시도 아니오?”
“…….”
그의 의도를 알 수 없는지, 당자명은 입을 다문 채 당자원을 지그시 바라봤다.
당자원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보다 대환단은 당령, 그 아이의 몫이 되겠소. 아쉽소. 대환단이라면 우리 우의 성취를 기대할 만한데…….”
“…….”
당자명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를 악무는 걸 눈치챘다.
내심 득의한 당자원은 은근슬쩍 속을 긁었다.
“이걸로 대공자 자리는 불확실해진 거 같소. 에이 그럴 리는 없지만, 대공녀가 나오는 거…….”
“닥쳐!”
단 한마디였으나 살기가 담겼기 때문인지 압박감이 상당했다.
당자명만 못하지만, 당자원도 사천당가에서 손꼽히는 고수다.
움찔했을 뿐, 그 이상의 위협을 가하지는 못했다.
“워~ 진정하시오, 자명 형님. 대공자, 대공녀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소? 자성 형님이 대공자였지만, 소가주는 지금 형님이니 말이오.”
“…….”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었다.
당자성은 당가대공자였을 뿐만 아니라 소가주이기도 했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당자명은 결코 소가주의 자리를 꿰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 그 아이의 의숙까지 나타났구려. 의부야 별 볼 일 없는 놈이니 상관없지만… 의숙이란 놈은…….”
“…….”
별다른 대답은 없으나 당자원을 알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당자명의 눈빛에서 살심이 스쳤다는 것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라진 당자원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도 너무 신경 쓰지는 마시구려, 설마 아무리 고수라도 본가에 무슨 힘을 쓸 수 있겠소? 때가 되면 떠나지 않겠소?”
“…….”
회의장을 떠나는 당자원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홀로 남겨진 당자명은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빠드득… 누구도 용납하지 않는다. 내가 가주가 되는 걸 방해하는 그 누구라도…….”
독선은 장로회의를 소가주에게 미루고, 당령을 불렀다.
* * *
“…이제 너의 것이다.”
“이건 뭔가요?”
당령은 조부가 건넨 작은 나무상자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소룡포를 찌느냐, 독선이 축하객들에게 선포했던 말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당령의 물음에 독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소림의 방장이 이 할애비에게 준 거란다.”
“소림방장님께서요? 귀한 거 아니에요? 그런 걸 제게 주셔서 돼요?”
손녀의 순진한 반응에 독선은 피식거렸다.
다른 손주들은 이걸 얻기 위해 눈이 시뻘게졌다. 당천악만 해도 과욕이 앞서 그 사달이 나지 않았던가.
헌데 당령의 반응은 너무도 달랐다.
“안 될 게 무엇 있겠느냐. 그리고 이 할애비를 가장 흡족하게 한 사람에게 주기로 했단다. 그러니 너의 것이 맞다.”
“감사합니다!”
당령은 소림방장이 준 귀한 환약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게 대환단이라는 것까지는 모른 채 그저 기뻐했다.
그런 그녈 흡족하게 바라보던 독선이 말을 이었다.
“귀한 선물을 복용하라면 그에 걸맞은 심결(心訣)이 필요할 거 같구나. 이 할애비가 알려줄 테니 익히거라.”
눈을 꿈뻑이는 당령을 향해 그는 고갤 끄덕였다.
환약의 복용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실상은 심결 전수가 목적이었다.
당선은 오늘 당령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녈 본격적으로 키우기로 결심한 이상 가르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허나 무작정 가르친다면, 주변의 불만이 터질 수 있다.
주변의 반발을 누를 명분이 필요했다.
“독심결(毒心訣)을 익혔을 게다.”
“예, 유모에게 배웠어요.”
당은을 통해 배웠지만, 정작 그녀는 익히지 않았다.
애초 그녀는 독선의 명에 따라 독심결을 전한 것에 불과했다.
“독혼결(毒魂訣)이라고, 독심결의 다음 단계라고 보면 된다.”
“아, 그렇군요!”
당령은 조부의 말에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저 전수해주시는 이유가 있거니, 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자신이 전수받은 게 무엇인지 모른 채.
독선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독심결과 흡사한 구결이 물밀듯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천지만물 어디에도 독(毒)이 존재하며…….
독심결이 당은의 입을 통해 전해졌지만, 독혼결은 전이각인대법(轉移刻印大法)을 통해 당령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갔다.
독혼결의 방대한 구결이건만, 전이각인대법 덕분에 저절로 기억되었다.
허나 이런 대법은 아무나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막대한 내공 소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허나 상대는 오내오존의 독선.
내공이 부족해 행할 수 없을 리 없다.
‘이 할애비가 널 위대한 제 2의 독존암제(毒尊暗帝)로 만들어주마!’
그 시각, 이백을 찾아온 자가 있었다.
* * *
“…그간, 잘 있었는가.”
중년 사내는 차마 이백의 눈을 보지 못한 채,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보며 이백은 쓴웃음을 지었다.
중년 사내는 무겁게 입술을 열었다.
“…미안, 하네…….”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다. 이리 무사한 걸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백은 고갤 저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중년 사내가 미안할 일도, 자신이 서운해야 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리 무사한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자네만 남겨두고 떠나면 안 되었는데… 안 되었는데…….”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알고 있으니 제게 그만 미안해하십시오. 형님.”
이백의 입에서 형님이라는 말이 나왔다.
눈앞의 중년 사내는 그의 의형 제갈천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천문산장의 봉공도 아니다.
중년 사내는 바로 8년 전, 대설산에서 연을 맺었던 사냥꾼 장씨. 장철우였다.
“하지만…….”
“미안해하시는 게 더 서운합니다. 그러니 그런 말하지 마십시오.”
이백은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장철우는 움찔했다. 허나 손을 통해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에 마음이 진정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백 아우…….”
“맞습니다. 저 형님의 아우 이백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회포를 풀며 마음에 남아 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덜어냈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상당한 고수였으나 기운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지라 경계하지는 않았다.
“아가씨께서 보내셨습니다.”
“령이 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당외삼비의 당은이었다.
그녀의 양손에 술상이 들려 있었다.
장철우는 벌떡 일어나 술상을 받았다.
당은은 용무를 마쳤는지 돌아갔다.
이백은 상에 놓인 술병을 들어 장철우의 잔에 따랐다.
“한잔 받으십시오. 혹시라도 아직 감정이 남아 있다면…….”
“아닐세, 이제 마음 후련하네. 그래도 한 잔 주게나.”
두 사람은 한잔 두잔 술을 나누었다.
그렇게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세 병이 되었다.
평소 술을 가까이하지 않던 이백마저 쭉쭉 들어갈 정도로 향이 좋은 술이었다.
당령이 신경을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많이 마신 탓인지, 이백은 취기가 느껴졌다.
장철우는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형님, 그만 돌아가서 편히… 주무…십…….”
이백은 갑자기 수마(睡魔)가 한 번에 몰려옴을 느꼈다.
그는 머리를 흔들더니, 내공으로 취기의 배출을 시도했다.
허나 그러기도 전에 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내공으로 취기를 배출하려 했으나 잠이 드는 게 먼저였다.
향은 좋지만, 그만큼 독주였는 듯하다.
그때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짐승 같은 새끼… 아무리 검남춘(劍南春)을 섞었다고 하지만 천일취를 몇 병이나 마신 거야?”
검남춘은 사천성을 대표하는 명주 중 하나였다.
허나 이들이 마신 검남춘에는 또 다른 술이 섞여 있었다.
정확히는 주정(酒精)이라고 할 수 있다.
독주의 주정을 뽑아내 다시 주조(酒造)한 천일취(千日醉)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한 번 마시면 천일 간 취한다는 어떤 의미로 전설적인 술이다.
“취했으니 고통은 없을 게다.”
허공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뿌려졌다.
용독술이 뛰어났는지, 이백만 그걸 흡입했다.
[‘신선폐’를 흡입했습니다.]
[천독불침이 신선폐의 해독을 시작합니다.]
[천독불침이 신선폐 일부의 해독을 성공했습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신선폐의 소멸을 시도합니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신선폐의 소멸을 성공했습니다.]
[신선폐가 소멸되었습니다.]
그때 이백의 손이 허공을 훑었다.
“컥!”
“객에 대한 대접 한 번 거하군. 이게 당가의 방식인가.”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