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독선의 손녀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당령은 들고 있던 대나무 찜통을 내밀었다.
설마설마하던 일이 벌어지자, 축하객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당가의 후기지수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당천희라는 기재에게 깨달음까지 주었다는 말에 한껏 기대했던 터라 실망도 컸다.
정작 독선은 기쁜 마음으로 찜통을 받았다.
“고맙구나. 령아.”
“따뜻할 때 드셔보세요!”
찜통의 뚜껑을 여니, 김이 확 퍼졌다.
김이 흩어지자 소룡포 다섯 개가 보였다.
모양은 그럴듯했다.
헌데 소룡포를 보는 독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들 손녀가 손수 준비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생각했다.
“맛있겠구나.”
“어서 드셔보세요~!”
당령의 말에 그는 고갤 끄덕이더니, 소룡포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뜨거운 육즙이 입 안에 퍼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뜨거움에 호들갑 떨었겠지만, 독선은 매우 맛있게 먹었다.
헌데 그의 입에서 나온 평가는 예상과 달랐다.
“훌륭하구나. 고기가 상하지 않고 부드럽게만 할 정도로 화골산(化骨散)을 조절했구나. 부추는 자심검망(刺心劍芒)으로 다졌고…….”
독선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다들 놀람을 넘어 경악할 정도였다.
화골산이란 시체를 녹일 정도로 지독한 독인데, 고작 고기가 연육될 정도로 조절했다는 건 용독술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그것으로 부족해 당가의 검법 중 하나인 자심검망으로 부추를 썰었다.
그 외에도 소룡포의 피(皮)는 회타연편십삼식(廻打軟鞭十三式)의 수법으로 치대고, 칠절수(七絶手)로 소를 버무리고 빚었다.
마지막으로 도반삼양귀공의 기운으로 소룡포를 쪘다.
용독술, 검법, 편술, 금나수이자 암기술 그리고 내가심법까지.
비록 절학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천당가의 공부를 집대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늙은이만 맛보기 아깝군. 소가주, 외총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은 소룡포 중 두 개가 두둥실 뜨더니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허공섭물(虛空攝物). 무림의 전설다운 멋진 수였다.
두 소룡포는 소가주 당자명, 외총관 당자원의 앞에 멈추었다.
독선의 아들들로 다음 대 가주위에 가장 가까운 이들이다.
동시에 당령의 존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기도 하다.
당자명과 당자원은 마지못해 소룡포를 받아먹었다.
소룡포를 씹던 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독선이 설명한 모든 공부를 알아차린 건 아니지만, 각자의 특기에 맞는 몇몇은 확인된 것이다.
‘젠장! 놈의 핏줄이다 이거지!’
제 아들보다 예닐곱이나 어린 계집이건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비상했다.
아들들의 표정만 봐도 인정한다는 걸 확인한 독선이 말을 이었다.
“…고기가 들었으니, 대사와 진인께 드리는 건 안 되겠고…. 하나는 천뢰권군 그리고 마지막은…….”
천뢰권군(天雷拳君)은 사천당가와 함께 오대세가의 수좌 자리를 다투는 남궁세가의 장로다.
무림십왕 검왕의 가문인 남궁세가의 별종이라고 불리는 초절정 권사다.
명성 높은 검가(劍家)답게 검왕 이외에도 창천검군, 창궁팔검 등 뛰어난 검객을 다수 보유했다.
게다가 구룡삼봉 중에서도 수위를 차지한 삼신룡의 천룡(天龍)이 있다.
당대에는 독선 때문에 오대세가의 수좌 자리를 넘겨줬지만, 다음 대. 하다못해 다다음 대에는 다를 거라 자신한 것도 다 천룡 때문이다.
허나 독선은 ‘너희에게 천룡이 있다면 우리에겐 저 아이가 있다’라고 선포한 것이다.
독선이 소룡포의 마지막 주인을 고르고 있을 때,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은 후학(後學)이 먹어 보고 싶습니다.”
나지막한 목소리였으나 소란을 뚫고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도 평범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좌중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일제히 바라보았다.
예상대로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였다.
헌데 특이한 점은 곁에 아리따운 여인들이 여럿 보인다는 점이다.
“사, 삼촌… 백이 삼촌!!”
“령이? 네가 정말 령이더냐!”
사내를 발견한 당령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그를 향해 단숨에 달려갔다.
우~욱!
경지에 오른 영사보법(靈蛇步法)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외간 남자의 품에 안겼다.
그 모습을 본 독선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독선만이 아니다.
사내의 곁에 있던 아리따운 여인들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정작 두 사람은 주변의 시선 따윈 무시한 채 얼싸안고 반가워했다.
“그럼 령이지, 누구겠어요!”
“8년 전만 해도 요만한 꼬맹이였으니 하는 말이지.”
이백은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가리켰다.
당령은 8년 전의 얼굴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 외에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놀라워하는 그를 보며 당령은 양손을 자신 허리춤에 얹히곤 우쭐댔다.
“그게 언제 일인데, 꼬맹이예요!”
“알았다. 녀석아.”
이백은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귀여워했다.
아무리 몸이 커져도 그에겐 여전히 어린 조카였다.
머리가 부스스해졌지만, 당령의 얼굴에 기분 나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의부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제 머리를 쓰다듬는 걸 허락한 존재가 바로 이백이니 말이다.
그때 작고 새하얀 무언가가 이백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걸 본 당령의 눈이 커졌다.
“너… 설군이 맞지!”
그녀는 8년 전과 다름없는 설군을 보며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이는 설군도 다르지 않았는지, 그녀의 어깨로 넘어가 뺨을 비볐다.
이백 이외에 허락지 않았던 행위였다.
그래서인지 이백의 곁에 있던 세 여인은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한 달간 동행하면서도 그녀들의 손길을 거부했던 설군이기 때문이다.
당령은 그녀들을 발견하곤 팔꿈치로 이백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삼촌, 숙모님이에요?”
“수, 숙모는 아니고…….”
예상치 못한 당령의 발언에 이백은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정작 세 여인은 방긋 웃었다.
“령 조카님 반가워요. 가가를 모시는 주예빈이에요. 편하게 숙모라고 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분이 하시는 말은 잊어도 돼요. 저는 백이와 친우인 제갈혜원이라 하고…….”
두 여인의 신경전을 본 당령은 이백이 마냥 쑥맥은 아니라는 점에 안도했다.
그러는 사이 교정정이 말을 걸어왔다.
“령아,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정정 언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죠!”
초면인 주예빈, 제갈혜원과 달리 교정정과는 형주상단에게 자주 만난 사이였다.
그러다 보니 당령도 저 둘보다는 그녀가 더 편했다.
그건 본 두 사람은 아차 했다.
‘저 여우…! 이게 다 군주님 때문이에요!’
‘무슨! 협정을 먼저 깬 건 너였어!’
제갈혜원과 주예빈은 눈빛만으로 의사(?)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녀들은 또 어부지리로 교정정만 점수를 따게 만들었다며 다시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들이 끼어들기도 전에 독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넨 누군가?”
“후학은 이백이라 합니다. 8년 전쯤 장 형님, 령이와 함께 지낸 적이 있습니다.”
독선은 당령에 대해선 일거수일투족 보고를 받았기에 이백에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다만 생각 이상으로 당령이 그를 따르니, 심기가 편치 않았다.
그런 조부의 질투를 못 느꼈는지 당령이 이백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백이 삼촌이에요, 할아버지!”
“그…렇구만.”
그때 찜통에서 마지막 남은 소룡포가 떠올랐다.
코앞에 있으니 짐통을 내밀어도 되는데, 일부러 허공섭물을 펼친 것이다.
두둥실 떠오른 마지막 소룡포를 이백이 자연스럽게 받아먹었다.
그걸 본 독선의 눈빛이 바뀌었다.
앞서 소룡포를 받아먹은 세 사람과 달리, 이백에겐 골탕 먹을 속셈으로 내공을 담았다.
내공이 부족하거나 내공 수발 능력이 떨어지면 소룡포가 형태를 유지 못 하고 찢어졌을 것이다.
헌데 이백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었다.
비록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도 무려 독선의 내공이 담겼는데 말이다.
“잘못 느낀 게 아니었군…. 재밌군, 재밌어.”
독선의 의미 모를 중얼거림을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알아들은 몇몇만은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이러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십 년 전이었다.
그 후로 누구도 독선의 이런 반응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때 당자명이 끼어들었다.
“가주님, 객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음…. 당 모는 소림이 보낸 선물의 주인이 정해진 거 같소만…. 다들 어찌 생각하시오들.”
독선의 말에 다들 고갤 끄덕였다.
당가의 후기지수들이 보인 무공도 놀랍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헌데 당령은 흔하고 흔한 소룡포에 당가의 공부를 집대성했다.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럼 이건…….”
“아, 아직! 소손은 아직입니다!”
감히 독선의 말을 끊은 청년이 있었다.
사천당가의 일공자 당천악이었다.
아들의 행태에 당자명은 이를 악물었다.
소림의 선물이 아깝기는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마무리에 달했다.
게다가 가주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것도 눈치채지 못한 아들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정작 당천악의 머릿속에는 하나 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대환단은 내 거야. 대환단만 복용하면…….’
소림의 선물이 정말 대환단이라면, 단숨에 절정지경에 오를 수 있다.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 구룡삼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야욕 때문에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좋다. 무엇을 준비했는지 보자꾸나.”
“예! 가주님!”
당천악은 힘차게 대답했다.
싸늘한 독선의 눈빛도 읽지 못한 채.
당령 등이 연무대에서 내려가자 당천악은 당당한 보무로 올라갔다.
수백 쌍의 눈이 연무대 위, 당천악에게 몰렸다.
그는 꽁꽁 숨기고 있던 녹피 수투를 벗었다.
그렇게 드러난 당천악의 손을 본 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손이 왜 저래?”
“대체 뭘 익힌 거야?”
당천악의 손은 푸른 녹빛을 띠고 있었다.
손의 색이 특이한 게 아니었다.
어찌 된 것인지, 피부가 주름진 게 흡사 비닐처럼 보였다.
외인들과 달리 당가인들은 그의 손에 저리된 이유를 알아차렸다.
“독룡수(毒龍手)라고?”
“아니, 일공자께서 어찌 독룡수를 연마하셨단 말인가.”
독룡수를 알아본 당가인들은 놀라워했다.
허나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그것도 모른 채, 당천악은 독룡수를 시연했다.
“독룡출해(毒龍出海)!”
당천악이 손을 뻗자 진짜 독룡이 바다를 지나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광룡난무(狂龍亂舞)!”
미친 용이 날뛰듯 당천악의 손이 난해하고 어지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그 모습이 괴이했으나 의외로 객들은 고갤 끄덕였다.
다들 고수답게 저 괴이함에 담긴 무리(武理)를 엿본 것이다.
흥이 난 당천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교룡독무(交龍毒霧)!”
그의 장심(掌心)에서 녹색 안개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이 신비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나름 호응이 있었다.
“과연 당가의 일공자답군!”
“허허, 조만간 사천독룡의 이름이 파다하겠어.”
당천악이 원하는 반응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흐흐흐, 다 내 거야! 대환단도… 대공자 자리도……!’
문제는 항상 방심하는 순간 일어난 법.
“독룡승… 윽!”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