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당가입성(唐家入城)
빛이 사라지며 부공삼매(浮空三昧) 중이었던 이백이 서서히 하강했다.
뜻을 이룬 걸 아는지,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육체의 재구성을 성공했습니다.]
[‘도검불침’을 이루었습니다.]
[‘백독불침’을 이루었습니다.]
[특수능력 ‘무형지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만수통령신공’ 10성에 올랐습니다.]
[무위가 ‘불완전한 화경’에서 ‘화경’으로 상향 조정됩니다.]
[‘도검불침’이 ‘외금강신’으로 진화됩니다.]
[‘백독불침’이 ‘천독불침’으로 진화됩니다.]
[‘백수통령술’, ‘백수휘소’, ‘통감술’이 하나로 섞입니다.]
[합일을 이루는 데 성공했습니다.]
[‘만수통령술’으로 진화했습니다.]
[‘백수행공’, ‘백수군림’이 하나로 섞입니다.]
[합일을 이루는 데 성공했습니다.]
[‘만수군림행’으로 진화했습니다.]
화경에 오르면서 이백에겐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육체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그 외적인 변화도 생겨났다.
특히 절기들은 통합을 이루면서 단조로워졌지만, 오히려 그 위력은 상승되었다.
빛이 사라지자 주예빈이 다급히 다가갔다.
“가가!”
허나 이백의 친구들은 그녀의 접근을 허락지 않았다.
주예빈이 그에게 호의적이란 걸 영수들이 모를 리 없다.
그렇다고 한들 이백의 허락 없이 곁을 내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흑룡위가 도파(刀把)를 쥐었다.
“감히 금수 따위… 큭!”
“히이잉!”
설군이 나설 것도 없었다.
야군의 살기만으로 절정고수인 흑룡위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살기를 뿜어내는 야군의 얼굴은 흉폭한 맹수처럼 보일 정도였다.
명마라도 일개 미물에 불과했으나 이백과 계약을 통해 성장해 영수(靈獸)가 되었다.
야군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다.
그런 야군의 발에 차이면 절정고수라도 즉사할 정도다.
흑룡위라도 다르지 않다.
또 다른 흑룡위들이 주예빈의 앞을 가로막았다.
짐승들의 혹시 모를 돌발행동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그만, 본 군주는 괜찮으니 비켜주게.”
“하오나 군주님…….”
싸늘한 주예빈의 표정에 흑룡위들은 머뭇거리다가 상관인 흑룡중장군을 바라봤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고갤 끄덕였다.
그제야 흑룡위들이 물러났고, 주예빈은 다시 다가갔다.
콧바람을 강하게 뿜어내는 야군만이 아니라 금군 역시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기세였다.
흑룡위들은 움찔했으나 그녀의 명을 상기했는지 다가가지 못했다.
영수들을 보며 주예빈이 나직하게 말했다.
“본녀는 가가를 모시기로 천명한 몸. 가가의 곁에 갈 수 있게 허락해주게.”
흑룡위들이 그랬던 것처럼, 금군과 야군도 고갤 돌려 설군을 바라봤다.
영수라도 결국 짐승. 서열은 너무도 확실했다.
고민하던 설군이 고갤 까딱하자 앞 막던 야군과 금군이 길을 비켜주었다.
주예빈은 영수들의 사이를 지나는 모습에 흑룡위들은 여차하면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예빈은 이백의 곁에 앉았다.
“가가… 괜찮으시옵니까.”
“…….”
그 순간, 이백의 눈이 스르륵 열렸다.
주예빈은 깨어난 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깨어나셔서 다행이옵니다. 소녀… 걱정하였사옵니다.”
“…걱정 끼쳐 미안합니다, 군주님.”
환하게 웃던 주예빈은 그의 말에 고갤 저으더니,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예빈… 그리 불려주시옵소서.”
“…군주님. 알아가는 게 먼저일 거 같습니다.”
주예빈은 덜컥 겁이 났다.
그런 심정을 드러내듯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무엇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 서로에 대해서 말입니다.”
단호한 거절이 아님을 깨달은 주예빈은 안도했다.
이백은 그녈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비켜주시겠습니까? 옷을… 구해 입어야 할 거 같습니다.”
“어머!”
깜짝 놀란 주예빈은 몸을 돌렸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육체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걸레가 되었던 옷마저 소멸된 탓에 이백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이백을 걱정하느냐, 주예빈은 그 외의 것은 생각조차 못 했기에 이런 웃픈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오, 옷을! 가가께서 입으실 옷을 구해오너라!”
“충!”
주예빈의 명을 받은 흑룡위가 움직였다.
허나 멀리 갈 것도 없었다.
형주상단에서 이미 그가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둔 덕분이다.
이백은 옷을 입으며 생각했다.
‘진…심은 아니시겠지.’
* * *
그 시각, 한 마차가 사천의 성도(成都)를 지나 어느 대장원의 앞에 섰다.
일개 가문의 장원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거대했다.
장원의 입구에 있던 사내들이 포권을 취했다.
“이곳은 사천당가의 본가입니다. 어떤 용무이십니까.”
“…귀가(歸家).”
사천당가 무사의 물음에 중년 사내는 짧게 대답했다.
귀가. 즉, 그는 사천당가 소속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선위무사(先位武士:문지기)들은 비켜서지 않았다.
“당가패(唐家牌)를 보여주시겠습니까.”
“…….”
중년 사내는 말 없이 품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선위무사는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했다.
사천당가는 독과 암기의 종주라고 불리는 가문이라 오히려 반대로 상대 역시 독과 암기로 기습할 수 있단 강박이 있었다.
허나 우려와 달리 중년 사내의 품에서 나온 건 은패였다.
[護法 唐黙]
은패에는 호법 당묵이라고 각인 되어 있었다.
중년 사내는 당외삼비의 당묵이었다.
그제야 선위무사들은 허릴 살짝 숙이며 포권을 취했다.
“암우의 당일우가, 호법님의 귀가를 축하드립니다!”
“동(同) 원상이, 축하드립니다!”
암우(暗雨)라는 말에 당묵은 미간을 꿈틀거렸다.
소가주인 암천혈우(暗天血雨) 당자명의 호위대가 바로 암우대였다.
외당 소속이 아닌 내당. 그것도 소가주의 사람들이 외문(外門)을 지키고 있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열어라.”
“죄송합니다. 신분고하를 떠나 본가에 출입하는 모든 이의 신분을 확인하라는 소가주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암우대 고수가 외문에 있던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당묵의 손에 검파로 향했다.
“열어라.”
“소가주님의 명… 헉!”
“그만!”
언제 휘둘렀는지 당묵의 검이 당일우의 목에 닿았다. 아니,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누군가의 외침이 아니었다면 그의 목은 베어졌을 것이다.
죽을 뻔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당일우는 그저 앉고 말았다.
“본가의 호법에게 명을 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가주뿐이시다.”
“묵, 그렇다고 가솔의 피를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죄송합니다. 대형.”
당묵을 저지한 자는 당외삼비의 첫째 당혼이었다.
그는 마차에서 내려 암우대 고수들에게 다가갔다.
“소가주님의 명을 우선시하는 자네들의 입장은 이해하나…. 가주님의 명(命)보다 우선되는 건 없네. 문을 열게.”
“예, 예… 호법님.”
당혼은 웃고 있는 입과 달리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아니, 그들은 당령에게 해가 된다면 상대가 소가주라면 피를 볼 각오가 되어 있었다.
헌데 소가주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 적의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당령이 타고 있는 마차는 사천당가의 장원 안에 입성했다.
그 소식은 빠르게 전해졌다.
“소문의 ‘그’분이 타고 계신 마차라고?”
외원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시선이 마차에 향했다.
사천당가에서 일하는 하인과 시비들만이 아니라 외원의 무사들 역시 기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차 안에 가주의 죽은 장남이 낳은 외동녀가 있다는 걸 귀 있는 자는 모두 들었으니 말이다.
외원을 지나는 동안, 수근거림과 시선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당령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그녀의 주먹을 누군가 감쌌다.
“긴장되느냐.”
“그게… 예, 아빠.”
떨리던 당령의 손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녀는 장철우를 보며 환히 웃었다. 허나 그 웃음은 어색하기만 했다.
긴장은 쉬이 가라앉지 않은 탓이다.
“아빠도 긴장이 된다. 무림의 전설이신 분이지 않느냐.”
“…….”
그가 긴장되는 이유와 당령이 긴장되는 이유는 달랐다. 그걸 장철우가 모를 리 없음에도 이리 말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이곳 사천에서 가히 왕과 다르지 않으신 분이지. 그런 그분이 널 위해 세분을 보내주시고, 이리 기다려주셨다. 말 한마디면 부를 수 있으신 분이신데 말이다. 그만큼 널 아끼시는 분이란다. 긴장하지 말라 해서 긴장하지 않겠지만, 걱정하지는 말거라.”
“예, 아빠.”
그 순간 떨리던 당령의 손이 멈추었다.
장철우의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 속에 따스함이 차올랐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당외삼비의 홍일점 당은이 미소 지었다.
‘역시… 장 협사이시네…….’
한참 움직이던 마차가 멈췄다.
그리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아가씨, 이제 내리셔야 합니다.”
“예, 혼 숙.”
당혼의 말에 당령은 숨을 크게 내쉬곤 마차에서 내렸다.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조금 전처럼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그녀의 눈에 멋스럽게 거대한 전각에 눈에 들어왔다.
그때 초로의 사내가 다가왔다.
“네가 령이구나. 가주님께서 출입을 허하셨다.”
“각주.”
당혼이 그를 불렀으나 당주는 손을 들어 접근을 막았다.
“가주께서 허하신 건 령이 뿐이오, 당혼 호법.”
“…알겠소. 호천각주.”
당혼은 호천각주의 말에 물러났다.
호천각(護天閣)은 사천당가의 가주를 수호하는 집단이다.
당연히 최정예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호천각주는 충성심과 무위가 뛰어나야만 맡을 수 있다.
당대 호천각주는 이를 위해 가정조차 꾸리지 않았다.
―호천각주 당자경은 아가씨의 당숙이고, 선부와 친형제보다 더 가까이 지난 자입니다.
멈칫.
당혼의 전음을 들은 당령은 멈칫했다.
다들 혈족(血族)이니 대수로울 게 없으나 선부(先父)와 가까웠다 하니, 그에게 호기심이 들었다.
그런 그녈 향해 당자경이 나직이 말했다.
“…가주님을 뵙는 게 먼저란다.”
“예…….”
당령은 그를 어찌 불러야 할지 몰라, 호칭을 생략했다.
당자경은 그녀의 심정을 눈치챈 듯싶었으나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닌 척하면서 당령을 향한 시선이 따스했다.
‘성아, 네 딸이 돌아왔다.’
가주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아들 당자성이기 때문에 같은 항렬 사이에 질투와 질시를 받아야 했다.
특히 이복아우들의 질시는 너무도 컸다.
당자성이 외로워지는 건 당연했다.
유일하게 그와 마음을 나눈 이는 바로 당자경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당자성을 제일 싫어하는 이 중 한 명이었으나 어떠한 계기로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네 딸만은 기필코 지켜내 주마. 놈들이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당자성 부부의 죽음은 불운의 사고로 결론이 났다.
눈이 뒤집어진 독선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 조사였기에 음모를 의심하던 자들도 찜찜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당자성의 죽음으로 드러누운 독선이 납득할 정도였으니, 수긍 안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더러운 음모라 생각하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근 이십 년이 되어가는데 말이다.
그러는 사이, 당령은 어느 문 앞에 섰다.
두근. 두근.
문 너머에 누군가 있는지 알기 때문인지,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들어오너라.”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