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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88화 (88/200)

88화. 주예빈

“백팔야차(百八夜叉)의 이차 제강에 성공했사옵니다! 군사님.”

검붉은 핏빛 법의를 입은 노도사가 기쁜 듯 목소리에 희열이 느껴졌다.

허나 핏빛의 가사를 입고 있는 노승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팔대야차(八大夜叉)의 제강은 언제인가.”

“아… 당주께서 복귀하는 백일 후로 잡았습니다.”

붉은 가사를 입은 노승이 바로 혈불(血佛)이었다.

그의 고저 없는 물음에 흥분했던 혈법당의 부당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차 제강(二次製僵)에 성공한 건 분명 대단한 것이지만, 백팔야차는 끝이 아니다.

“야차왕은 본전의 수호신이자 그분의 방패가 될 녀석이다. 기필코 성공해야 하느니라.”

“믿어주십시오, 군사님!”

야차왕(夜叉王).

십병암귀가 복용한 천인혈(千人血)은 사실 야차왕의 제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불과하다.

오백의 동자와 오백의 동녀는 일차 제강을 통해 일천야차(一天夜叉)라는 일반 강시가 되었다.

그들의 피를 정제한 게 바로 천인혈이다.

일천야차로 이차 제강하는 과정에서 백팔 구의 철강시만 남게 되는데, 그들이 백팔야차인 것이다.

백팔야차는 삼차 제강을 통해 여덟 구의 혈강시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 사차 제강마저 성공하게 되면, 단 한 구의 불사강시가 완성된다.

그게 바로 야차왕이다.

불행 중 다행은 아직까지 불사강시가 완성된 적은 없다는 점이다.

군사전에서 뒷주머니를 차려는 이유는 바로 야차왕의 제강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만 돌아가… 음?”

화르르.

군사 혈불이 축객령을 내리려는 순간, 촛대 중 하나의 촛불이 꺼졌다.

그걸 본 혈불의 눈이 커졌다.

“…!! 혈법주가… 죽었다?”

“다, 당주께서 돌아가셨단 말씀이십니까!”

촛대는 단순히 불을 밝히기 위해 켜져 있는 게 아니다.

특별한 주술이 담겨 있었다.

그런 촛대의 촛불이 꺼진 건, 혈법주의 죽음을 의미했다.

혈불의 왼팔이라고 불리는 그였다.

허나 혈불은 냉정히 말했다.

“부당주, 혈법당의 당주로 임명하겠다. 삼차 제강 준비에 집중해라. 제강은 본불이 주관하겠다.”

“조, 존명!”

부당주가 일순간 당주로 승진했다.

허나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

그는 전대 당주와 달리 혈법주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탓에 혈불의 신임을 받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차 제강은 신임 당주인 그가 아닌 혈불이 직접 주관하겠다 하지 않은가.

“그만 돌아가 봐라.”

“존명!”

신임 당주가 물러나자 혈불이 나직하게 말했다.

“혈타(血駝). 알아보게.”

“예, 주인님.”

죽은 혈법주가 혈불의 왼팔이지만, 혈타는 그의 오른팔이다.

게다가 온전히 주인으로 섬기는 진정한 심복이었다.

혈불의 핏빛 눈동자가 빛났다.

“누구의 짓인지 모르지만, 본불을 방해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  *  *

“하… 마지막 잔이라니…….”

거구의 노인은 술잔을 보며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런 노인을 향해 사람 좋은 인상의 노인이 말했다.

“혁련 노사, 너무 아쉬워하시지 마십시오. 후아주 만큼은 아니지만, 좋은 술을 구해드리겠습니다.”

“커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현 대인에게 술 투정 부리는 게 아니오.”

후아주의 마지막 잔을 보며 아쉬워하는 자는 낭왕(狼王) 혁련후였다.

그가 마시고 있는 후아주는 이백이 보내온 술이다.

이백은 자신이 무사하다는 서신과 함께 후아주를 제갈세가와 형주상단에 보냈다.

원래는 직접 전달할 생각이었지만, 신산(神算) 제갈중경의 죽음 때문에 계획이 변경된 것이다.

형주상단. 정확히는 현유에게 전해진 후아주는 다시 낭왕에게 전해졌다.

정확히는 하루에 한 잔씩 선물했고, 그 시간이 낭왕에겐 낙이 되었다.

허나 술 한 병에 담긴 후아주가 얼마나 되겠나.

며칠 만에 동이 나고 말았다.

그렇게 후아주의 마지막 잔을 마실 생각에 낭왕은 기쁘면서도 아쉬워했다.

헌데 낭왕은 마지막 잔을 마시지 않고 지그시 노려보다 질끈 감았다.

“마지막은 현 대인이 마시오.”

“예? 마지막 잔입니다. 후아주는 더 이상 없습니다.”

낭왕은 내민 마지막 잔을 보지 않으며 말했다.

“노부도 양심이 있소. 현 대인에게 온 술인데, 한 잔도 마시지 않고 노부에게만 양보하지 않았소? 그러니 마지막 잔은 현 대인이 맛보는 게 맞소.”

“하하… 알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니 이 현 모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거절하면 낭왕의 마음이 흔들릴 거 같아 현유는 마지막 잔을 마셨다.

그렇게 빈 잔을 보며 낭왕은 하늘이 무너진 표정이었다.

살짝 현유가 원망스러웠기까지 했다.

그런 낭왕을 보며 현유를 미소를 지었다.

“80년 된 서봉주를 선물 받았습니다. 후아주만 못하지만, 입에 맞으실 겁니다.”

“8, 80년! 허… 귀한 술을 선물 받으셨구려.”

서봉주(西鳳酒)는 섬서성을 대표하는 명주다.

30년 된 서봉주부터는 부르는 게 값인데, 80년 되었다면 결코 돈으로도 살 수 없다.

그러니 그 가치는 후아주에 그리 밀리지 않았다.

“백매상단주님께서 보내주셨지요. 아, 백매주는 넉넉히 있으니 걱정마십시오.”

화산파의 상징인 매화.

그런 매화로 담근 술이 바로 매화주다.

화산의 매화주는 서명주만큼 유명하다.

허나 화산의 매화주는 판매가 목적이 아니었다.

사조들께 받치는 제주(祭酒)이며,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술이다.

대신 몇몇 속가제자들에게 비법을 전수했고, 그들은 각자 독자적으로 매화주를 주조(酒造)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백매상단의 백매주였다.

백매상단의 인기 상품 중 하나이니,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술이다.

대형 상단인 백매상단에서 중소급 상단은 갓 벗어난 형주상단을 이리 신경 쓰는 건, 그들이 와룡상단과 일월상단의 비호를 받기 때문이다.

백매상단도 대형급을 넘어 거대 상단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좋은 동반자가 필요하다.

물론 그들에겐 화산파가 있지만, 화산의 비호를 받는 곳이 백매상단만이 아니다.

형주상단이 와룡과 일월상단의 가교 역할을 잘해주면 그들에게도 길이 열린다.

백매주만이 아니라 80년 된 서봉주까지 선물하며 친교를 다지는 이유인 셈이다.

“하… 우리 현 대인이 노부를 놓아주지 않을 작정이구려.”

“…….”

현유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후아주와 80년 된 서봉주는 사용하기에 따라 큰 득을 얻을 수 있다.

그만한 가치를 가진 술이다.

헌데 그런 이득을 포기했다.

정확히는 낭왕의 발목을 잡는 데 사용했다.

낭왕이 특별히 형주상단을 위해 무언갈 하는 건 아니다.

허나 그가 지내는 것만으로 형주상단의 위상이 올라가고 안전이 보장되었다.

그게 바로 무림십왕의 힘이다.

물론 낭왕도 언젠가 떠날 것이다.

언제까지나 붙잡아 둘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능할 때까진 붙잡아 주려고 한다.

“성이의 근골이 괜찮더이다. 허락하면 몇 수 가르쳐보겠소.”

“그걸 생각한 건 아니지만, …고맙습니다.”

현성은 현유의 손자로 일곱 살이 되었다.

명문에서 네다섯 살에 입문하는 걸 생각하면 일곱 살은 이른 게 아니다.

허나 그렇다고 무공에 입문하기에 늦은 것도 아니다.

“물론 제자로 삼겠단 건 아니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현유는 그가 자신의 손자를 가르치되, 제자로 삼지 않는다 했으나 서운해하지 않았다.

낭왕이 이리 선을 긋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한 수 배우는 것과 제자가 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한 수 배우는 것도 인연이 생기는 것이지만, 제자가 되는 건 사부의 무공만이 아니라 은원까지 물려받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혁련후가 낭왕이 되기까지… 아니, 된 후에도 꾸준히 은원을 맺고 풀어갔다.

그가 죽기 전에 현성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른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낭왕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이 현성에게 풀려는 자들이 찾아올 수 있다.

그걸 낭왕도 현유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자로 삼는 게 아니라고 선을 긋고, 훗날의 위협에 대비한 것이다.

“현 행수가 왔구려.”

낭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현유의 집무실에 들이닥쳤다.

현유의 아들이자 형주상단의 행수 현욱이었다.

“아, 아버님!”

“본 상단의 행수라는 녀석이 왜 이러 경망되었느냐! 혁련 노사께서 계시거늘…….”

아비의 꾸짖음에 현욱은 움찔했다.

평소와 같아선 꾸중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이번에는 아비의 꾸중을 끊고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나중에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나가보셔야겠습니다.”

“뭐? 무슨 일이냐.”

아들의 반응에 현유는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남 무왕부(武王府)에서 구, 군주(郡主)님께서 오셨습니다!”

“뭐, 뭐라고 했느냐! 군주님이 오셨다고!”

그제야 현유는 아들이 이리 반응한 이유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아닌 자신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정도로 큰일이었다.

현유는 낭왕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사, 먼저 나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러시오. 아니, 함께 가봅시다.”

그의 말에 현유는 멈칫했다.

낭왕의 위치쯤 된다면 상대가 왕족이라고 한들, 쉬이 굽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군주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낭왕은 몰라도 자신들은 무사하기 어렵다.

게다가 황제의 친아우인 무왕의 여식이라면 무마할 방도가 없다.

그런 현유의 마음을 아는지, 낭왕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시오. 설마 노부가 현 대인이 곤란하게 만들겠소?”

“아, 알겠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  *  *

“아, 안 계신다고…? 본 군주를 속이는 거라면…….”

눈처럼 새하얀 백마를 탄 젊은 여인이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뿜어내는 살기에 무사들은 움찔했다.

결코 평범한 여인이 아니었다.

그때 노인들이 다급히 다가와 부복했다.

“현유가 예신군주님을 뵙습니다.”

“구, 군주님을 뵙습니다.”

부복한 현유를 보며 너나 할 것 없이 부복했다.

그게 황족에 대한 예였다.

허나 단 한 명 낭왕은 허릴 꼿꼿이 세웠다.

이를 본 현유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댄 누구지.”

“노부 말인가. 노부는 낭왕이라 불리고 있네.”

낭왕의 말에 주예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아무리 군주라고 해도 무림에 대해 모르는 게 아니다.

애초 주예빈은 개방의 걸왕에게 무공을 배우지 않았던가.

낭왕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바뀌었다.

“귀하가 낭왕이었군. 과연…….”

“노부가 부복하지 않는다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낭왕의 말에 좌중은 움찔했다.

허나 정작 주예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생각 없다. 모두 일어나라.”

“망극하옵니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좌중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특히 현유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렇다고 한들 방심하지는 않았다.

주예빈의 방문 목적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마음을 놓는 건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유를 향해 물었다.

“백 가가께서 안 계신다는 말, 사실인가.”

“죄송합니다, 군주님. 소인이 귀가 어두워 그분이 어느 분이신지 모르겠사옵니다.”

가가(哥哥)는 보통 오라비나 정인에게 쓰는 호칭이었다.

예신군주에게 친오라비가 있단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으나 친하게 지내는 사촌 혹은 육촌 오라비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의 정인이라는 의미인데, 누구든 그런 귀한 자가 형주상단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현유로서는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그분을 몰라? 백 가가께서 이곳의 호법으로 계신다고 들었는데?”

“이, 이백 호법님을 말씀하시는 것이신지요.”

그녀의 중얼거림에 현유는 물론 모두 경악했다.

그들의 반응에 주예빈은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주예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계신 거야! 안 계신 거야!”

“…그분을 찾아 오신 건가요?”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예빈은 왠지 모르게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고갤 돌려보니 아름다운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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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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