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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87화 (87/200)

87화. 혈법주(血法主)의 최후(最後)

“괴, 괴물… 컥!”

붉은 도의를 입은 혈법사는 두려움이 떨다 죽음을 맞이했다.

죽은 그에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움직이는 존재가 있었다.

자신보다 수십 배는 더 큰 장정을 물어 죽이는 설군이다.

혈법주가 이백에게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설군은 대전(大殿)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청소를 시작했다. 혈법사라는 이름의 쓰레기들을.

혈법사들은 각종 혈법술을 펼치며 저항했지만, 설군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허나 위기를 기회로 본 자들이 있었다.

“진(震)!”

“태(兌)!”

“리(離)!”

“감(坎)! 사방쇄인(四方鎖印)의 술!”

숨죽이고 있던 혈법술사들이 설군의 사방위를 점하곤 혈법술을 펼쳤다.

그 순간 동서남북에서 사슬들이 솟구치더니 설군에게 향했다.

고수를 제압하기 위한 혈법술이다.

제압하는 건 죽이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려운 법.

그럼에도 치명적인 혈법술이 아닌 사방쇄인을 펼친 건, 설군의 가치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동료들보다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설군은 자신을 향한 사슬들을 민첩하게 피했으나 끝없이 쫓아왔다.

“어? 어? 어!”

“아, 안 돼!!”

다만 설군은 사슬을 피하는 데 급급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사방에서 솟구친 사슬들의 움직임을 간파해, 서로 얽히도록 계산하며 움직였다.

당황한 혈법사들은 사방쇄인의 술을 해(解)하자 얽혔던 사슬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제야 다시 사방쇄인의 술을 펼쳤다.

“사방쇄… 컥!”

“젠장!!”

설군은 단숨에 혈법사 중 한 명의 목을 물어뜯었다.

목의 반쯤 사라졌으나 절명하지 않았다고 한들, 회생은 불가능하다.

이로써 사방쇄인의 술은 봉쇄되었다.

기겁한 혈법사들은 급하게 혈법술을 펼쳤다.

“칼의 숨결!”

“화조(火鳥)의 비상!”

“대지의… 크윽!”

하나하나가 위력적으로 보였으나 상대가 좋지 못했다.

설군은 피할 것도 없이 혈법술을 격파하며, 혈법사까지 베었다.

그렇게 하나둘 죽이니, 더 이상 혈법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장원 전체를 감싸고 있던 불길한 기운이 점점 옅어지더니,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혼세마전의 술’의 원동력이 되었던 혈법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된 것이다.

설군은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듯 대전을 향해 도도하게 걸어갔다.

*  *  *

“킥! 본 법주가 말해줄… 쿨럭…….”

혈법주의 입에서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정보를 캐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또 어떤 짓을 벌일지 몰라 내상을 입혔다.

‘불사(不死)의 술’이라고까지 불리던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술’이다.

일시적이라면 몰라도 장기간 운용이 어렵다. 그걸 가능하게 만든 게 ‘혼세마전의 술’이었다.

헌데 설군에게 혈법사들이 전멸하면서 ‘혼세마전의 술’이 해제되어 버렸고, 덩달아 ‘괴력난신의 술’까지 해제되었다.

그러한 탓에 그의 육신이 너무도 약해졌다. 이백의 권격에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이백은 싸늘한 눈으로 내려봤다.

“곱게 죽고 싶다면 모든 걸 털어놔라.”

“흐흐… 본 법주의 복수는 이미 시작되었… 우웩!”

죽어가는 와중에도 혈법주는 조소를 짓고 있었다.

무엇보다 걸리는 점은 복수가 이미 시작되었단 말이었다.

이백은 그를 이대로 죽게 놔두지 않겠다는 듯 내공을 밀어 넣었다.

“이대로 죽게 놔둘 거 같아!”

“소용…없…다. 흐, 흑제께서… 너의 소…중한… 걸…….”

고문이라도 해서 입을 열게 할 생각이었는데, 혈법주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백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었다.

툭.

혈법주의 손이 힘없이 바닥에 닿았다.

결국 그가 숨을 거둔 것이다.

이백은 혈법주의 마지막 말에 찜찜해졌다.

“흑제(黑帝)… 대체 흑제가 누구지?”

무림십왕 중 제(帝)의 칭호를 가진 자는 둘.

화산파의 검제(劍帝).

혈궁의 혈제(血帝).

헌데 혈법주의 입에서 흑제라는 말이 나왔다.

단순히 이백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거짓말일까?

그때 다수의 기척이 느껴졌다.

혈법사들의 사이한 기척과는 달랐다.

특히 그중 한 명의 중후함은 격이 달랐다.

정체를 눈치챈 이백이 대전 밖으로 나가 그를 맞이했다.

“허허… 이건 한발 늦었군.”

“예, 한발 늦으셨습니다. 방주님.”

그는 개방의 용두방주 걸왕이었다.

개방의 제자들 이외 도의를 입은 노진인도 있었다.

그는 혈법사들과 달리 기운이 매우 맑았다.

“어쩔 수 없었다. 이분을 모셔 오느냐…….”

“무량수불… 빈도는 상청자(上淸子)라 합니다.”

상청자는 손자뻘인 이백을 향해 매우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이백 역시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이백이라 합니다. 진인(眞人)을 뵈어 영광입니다.”

“상청진군(上淸眞君)께선 모산일맥(茅山一脈)의 전승자이시란다.”

별호는 물론 사문 역시 이백에게는 생소했다.

이백이 무림사에 정통하지 못하다고 하지만, 별호에 군(君)이 붙을 정도라면 분명 대단한 위인일 텐데 떠오르는 게 없으니 의아했다.

“이곳을 살피다 무언가 이상하더구나. 분명 있어야 할 게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때려 부술 수 없어 고민 끝이 진군(眞君)을 모셨다. 다행히 모산(茅山)이 강소에 있어서 말이다.”

‘모산? 아! 모산파(茅山派)!’

그제야 이백은 상청진군의 정체를 눈치챘다.

원래 술법은 원래 도문(道門)의 공부로, 도술(道術)이라고도 불린다.

모산파는 그런 술법의 본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문(呪文)이나 부주술(符呪術) 등 술법이 뛰어났고, 진법에도 조예가 깊었다.

연단(鍊丹), 술법(術法), 무공(武功). 모두 등선을 위한 도사들의 노력이었다.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술법을 익히는 도사들이 줄고, 무공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술법은 특별한 재능이 없이는 익힐 수 없던 탓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술법은 사장되었고, 모산파 역시 몰락하게 되었다.

무림에서 사라진 모산파는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었다.

그런 모산파의 전승자라는 말이 이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청진군 님. 실례되지만… 혹시 영환술(靈幻術)도 익히셨습니까?”

“무량수불… 무얼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영환술은 영혼과 관련된 고도의 술법이다.

걱정과 달리 상청진군은 영환술도 가능한 최고의 술법가였다.

“혈법주란 자가 있습니다. 그에게 들어야 할 게 있습니다.”

“소혼(召魂)의 술이군요. 잠깐이라면 가능합니다.”

혈법주라는 말에 걸왕이 이백을 바라봤다.

그가 주범이냐는 의미였다.

이백은 고갤 끄덕였다.

천강개들이 장원의 안팎을 지키는 사이, 세 사람은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옴 급급여율령 사바하(唵 急急如律令 娑婆訶)!”

상청진군의 길고 긴 주문이 끝나자 혈법주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흘러나왔다.

허나 이백의 눈에는 그의 혼백이 뚜렷이 보였다.

혜안(慧眼) 덕분에 소혼술로 불러낸 혈법주의 혼백을 볼 수 있던 것이다.

그러한 것도 모른 채 이백이 물었다.

“흑제가 누구고, 나의 소중한 게 무엇이지?”

―본궁의 총순찰 십절흑제… 형주상단…….

“…!! 형주상단을 노리고 있다고!”

이백의 눈이 커졌다.

십절흑제(十絶黑帝)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을 그렇게 괴롭힌 혈법주를 생각하면 대단한 고수일 것이다.

그런 자가 형주상단을 노리고 있단 걸 알게 되었으니 당황한 게 당연했다.

허나 곁에 있던 두 사람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공자께서 어찌 혼백의 말을 알아들으신 겁니까?”

“예?”

상청진군의 말에 이백이 당황했다.

들리니 들은 것인데, 왜 알아듣냐고 물으니 뭐라 대단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 그를 향해 상청진군이 설명했다.

“혼백과 소통하기 위해선 영환술을 익혀야만 가능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 눈…….”

평범한 사람은 이백의 혜안을 알아보지 못한다.

혈법주에 이어 상청진군이 이백의 황금빛 눈동자를 알아본 건, 그들이 술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상청진군은 그를 향해 합장하며 도호를 읊었다.

“무량수불… 상청이 혜안의 주인께 인사드립니다.”

“혜안…을 아십니까?

이백의 물음에 상청진군이 공손히 대답했다.

“삼라만상(參羅萬像)의 도(道)를 깨우친 선인만이 가질 수 있다 들었습니다.”

“하, 하하… 저는 선인도 삼라만상의 도를 깨우친 게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아 기연을 얻었을 뿐입니다.”

[영웅 : 무림전설]의 퀘스트이자, 소검후가 얻을 기연을 선점한 덕분에 얻은 보상이다.

헌데 삼라만상의 도이니 선인이니 하니 이백으로서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때 걸왕이 끼어들었다.

“아까 흑제라고 했던 거 같은데…. 사도련의 전(前) 련주를 말하는 겐가? 그럼 흑제가 배후인가?”

“아… 물어보겠습니다.”

걸왕의 물음에 이백은 그제야 혈법주의 혼백을 부른 걸 재인식했다.

“흑제가 사도련의 전(前) 련주가 맞나? 총순찰이라면 본궁이 어딜 말하는 거지?”

―윽! 아아악!!

혈법주의 혼백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비명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이백이 이를 악물고 다시 물었다.

“본궁이 어디냐고!”

―으아악!

그 순간, 혈법주의 혼백이 불에 타더니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에 놀란 이백은 어찌 된 건지 묻기 위해 상청진군을 바라봤다.

헌데 그의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금제가 있었나 봅니다. 으윽… 더 이상은…….”

소혼술로 부른 혈법주의 혼백이 소멸하면서 그 충격이 역류하게 되었고, 결국 상청진군이 내상을 입고 말았다.

혈법주의 혼백에는 금언(禁言)에 반응하는 금제가 걸려 있던 것이다.

육신의 금제라면 방법이 많지만, 혼백에 금제를 거는 건 넓은 중원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상청진군은 내상을 다스리기 위해 그대로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모산파에 전승되는 심법은 상단전과 연관된 공부이지만, 심신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

걸왕은 천강개 일부를 불러 상청진군의 호법을 서게 한 후, 이백과 밖으로 나갔다.

“어찌 된 겐가? 그자의 혼백은 뭐라고 한 거고?”

“그게 금제가 있었는지, 대답하지 않고 소멸되었습니다.”

“그럼 총순찰이니 본궁이니 하는 건 뭔가? 그리고 흑제와 형주상단은 또 뭐고?”

“아… 그건 처음에…….”

이백은 혈법주의 혼백이 소멸 전, 대답했던 걸 설명했다.

그의 말을 전해 들은 걸왕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으음… 십절흑제라… 하긴 그 흑제가 아니겠지.”

“아까 말씀하신 사도련의 전(前) 련주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련이 전대 련주라는 말에 이백은 흥미가 생겼다.

“사파의 거두들이 무림맹에 대항하자고 천하를 뒤져 찾아낸 인재가 바로 흑제(黑帝)일세. 사파거두들의 공동전인인 셈이지. 절세의 사마공(邪魔功)들을 익힌 흑제는 사파무림을 하나둘씩 굴복시켜 세운 곳이 바로 사도련이고.”

“대단한 인물이군요.”

이백의 중얼거림에 걸왕은 고갤 끄덕였다.

비록 사파인이지만, 대단한 인물이란 건 그 역시 인정하는 바였다.

“정작 흑제를 기억하는 자는 의외로 적다. 그 이율 아느냐?”

“혹시 당대 련주 때문입니까?”

걸왕은 이백을 대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실제로 이백의 대답대로였다.

“맞다. 사도련을 세운 흑제이건만, 사파지존(邪派至尊)이라고 불리지 못한다. 그건 당대 련주에게 죽은 탓이지. 그것도 처참히…….”

“사존(邪尊)…….”

사파무림을 굴복시킨 흑제를 처참히 죽였다. 그 기억이 너무도 강렬해 죽은 흑제 대신 그를 죽인 사존만 떠올리게 되었다.

사도련의 초대 련주 흑제가 기억에서 사라진 이유다.

이백은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암류라지만, 대체 얼마나 거하게 설정을 잡아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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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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