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혈법주(血法主) (3)
“하하 뭐 하는가? 본 법주는 여기 있다네.”
혈법주의 입에 조소가 어려 있었다.
이백은 몇 번이나 달려들었다.
허나 결과는 매번 같았다.
혈법주는 베지 못한 채, 자신은 원래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아니, 이백은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삼라만상(參羅萬像)의 술(術)이 그의 감각을 완벽하게 방해하고 있는 탓이다.
이백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바뀌었다.
[혜안이 발동됩니다.]
[‘삼라만상의 술’에 저항합니다.]
[‘삼라만상의 술’이 해소되었습니다.]
‘그렇지!’
이백은 혈법주가 다시 삼라만상의 술을 펼치기 전에 달려들었다.
단숨에 끝내겠단 생각에 고랑(孤狼)을 펼쳤다.
당황한 혈법주의 얼굴이 보였다.
‘됐어!’
서걱!
오므린 이백의 손가락이 혈법주를 할퀴었다.
피가 분수처럼 비산…할 줄 알았는데,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백은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어?”
죽어야 하는 혈법주는 무사했다. 아니, 멀쩡했다.
그리고 이백 본인은 여전히 자신이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
“흐흐흐… 혈법술이 깨진 줄 알았더냐?”
삼라만상의 술은 해소되지 않았다.
삼라만상의 술이 혜안을 속였다.
해소되었다고 말이다.
진위를 식별하고 나아가 파헤치는 혜안.
헌데 그런 혜안이 속았다?
이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이백이기에 당혹스러웠다.
“혼세마전 안에선 본 법주가 왕이며 신이니라.”
혼세마전의 술은 혈법술을 익힌 자의 능력을 상승시키고, 익히지 않은 자의 능력은 약화시킨다.
삼라만상의 술의 효과는 상승하고, 이백의 혜안은 약화시키면서 벌어진 일이다.
혈법주는 이백을 향해 조소를 지었다.
“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미천한 넌 죽을 지어다!”
“큭!”
그 순간 이백은 온몸에 죽음의 공포가 휘감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는 듯 심장이 부서질 것과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크아악!”
심장만이 아니라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크나큰 고통에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이대로라면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마저 소멸할 거 같다는 공포를 느꼈다.
“크아아앙!”
이백의 품에 있던 설군은 포효하며 혈법주에게 달려들었다.
설군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를 할퀴었다.
서걱!
“커억! 버…업…주…시여.”
“본 법주는 무사하느리라.”
설군의 발톱에 베인 건 혈법주가 아닌 수석 혈법사였다.
혈법주는 자신의 수하가 죽어가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직이 말했다.
“신(神)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죽음을 이겨낼지어다.”
“크윽! 크으아악!”
죽어가던 수석 혈법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죽어가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때였다.
놀랍게도 수석 혈법사의 상처가 아물어져 갔다.
불사(不死)의 술(術).
불사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혈법주는 정녕 신(神)이란 말인가.
“죽음을 이겨낸 걸 축하한다.”
“법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혈법주는 설군을 가리켰다.
“죽여라.”
“존명!”
혈법주의 명이 떨어지자 수석 혈법사가 움직였다.
이상한 건 혈법사로서 혈법술을 펼친 게 아니라 직접 달려든 것이다.
설군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석 혈법사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컁!
설군의 발톱을 맞은 수석 혈법사는 뒤로 밀려났다.
허나 상처 없이 멀쩡했다.
자신이 멀쩡하다는 걸 깨달은 수석 혈법사는 으르렁거리는 설군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죽어라!”
수석 혈법사는 단단해진 자신의 육신을 믿고 설군에게 달려들었다.
컁! 컁! 컁!
설군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수석 혈법사의 권격을 피하며 베고 또 베었다.
허나 여전히 베이지 않았다.
설군의 발톱을 버텨낸 건 십병암귀 이외에 처음이었다.
“이 고양이가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거…….”
“크으으…….”
으르렁거리던 설군의 몸이 점점 커지더니, 황소만 해졌다.
거체(巨體)로 돌아간 것이다.
“크아아앙!!”
설군의 울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로인해 전각이 휘청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진짜 휘청였다.
정확히는 전각이 아닌 ‘혼세마전의 술’이 말이다.
“이 괴물은… 컥!”
거체로 돌아온 설군의 앞발이 수석 혈법사의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그의 머리가 벽을 부수고 밖으로 날아버리고 육신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그 모습을 본 혈법주는 파안대소했다.
“하, 하하하!!!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혈천법주가 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혈법주는 설군의 정체를 꿰뚫어 봤다.
신령한 짐승, 신수(神獸).
신수의 신령한 힘(神氣)을 취할 수만 있다면 오랜 염원이었던 혈천법주가 될 수 있다.
혈법주가 혈법사들의 존사(尊師)라면 혈천법주는 시조(始祖)다.
그렇게만 된다면 군사 혈불의 오른팔이 아닌 그와 견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어쩌면 그조차 넘어설지 모른다.
“물…러나줘, 설군아. 내가 상대할게.”
“아직 안 죽었군.”
죽어가던 이백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황금 불꽃이 되어 이백의 전신을 감쌌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삼라만상의 술’이 해소되었습니다.]
[‘혼세마전의 술’이 해소되었습니다.]
[약화된 근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약화된 체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약화된 내공이 회복…….]
[약화된 내공 수발능력이…….]
제약되었던 힘을 회복되었다.
혼세마전의 술 자체가 해소된 게 아니다.
혈법술의 힘이 이백에게 닿지 못하게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막아준 것이다.
그런 이백을 바라보던 설군이 그의 청대로 물러났다.
물러난 설군은 어느덧 작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혈법주는 더 이상 설군을 바라보지 않았다.
이백의 육신을 감싼 불완전한 신의 불꽃을 느낀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떻게 그 힘을…….”
혈법주는 두려움을 느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환희를 느끼고 있었다.
설군과 마찬가지로 이백 역시 자신의 염원을 이루게 해줄 영약으로 봤다.
허나 제약을 풀린 이상 이백도 더 이상 불리한 상황이 아니다.
이백은 혈법주가 이상한 짓을 벌이기 전에 움직였다.
캉!
놀랍게도 수석 혈법사처럼 그의 육신 역시 강철처럼 단단해져 이백의 손을 튕겨냈다.
수석 혈법사에게 걸었던 불사의 술을 혈법주 본인에게 건 것이다.
“보았는가. 본 법주는 그 어떠한 힘도 죽일 수 없노라.”
“만사(萬事)에 불멸(不滅)은 없다!”
‘불사의 술’의 또 다른 이름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술(術)’.
일시적으로 육신에 괴력난신을 힘을 부여하는 혈법술이다.
근력, 민첩성, 육신의 강도 그리고 회복력마저 한계를 넘어서게 만든다.
컁! 컁!
“소용없다! 본 법주는 불멸이노…….”
“벨 수 없으면 부숴주마!”
우우(愚牛).
파괴력만 본다면 백수군림 최강이다.
이백의 주먹이 소름 끼치는 파공음을 일으키며 혈법주의 머릴 향했다.
움찔.
혈법주도 위협을 느꼈는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파직!
“큭!”
혈법주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몸을 비틀어 피한다고 피했지만, 완벽히 피할 수 없는지 어깨가 박살나고 말았다.
그로인해 혈법주의 팔이 축 늘어졌다.
즉살시키진 못했지만, 이로써 혈법주의 팔 하나의 봉쇄했다.
우드득!
그때, 혈법주가 어깨를 돌렸다.
“아프군. 허나 본 법주는 불멸이노라!”
“…….”
분명 그의 어깨를 박살냈다.
하지만 순식간에 회복시켜버렸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불사의 술이라고 불리는 괴력난신의 술이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될 때까지 패주마!”
이백의 양 주먹이 넷이 되었고, 여덟이 되었다가 열여섯이 되었다.
퍽! 퍼퍽! 퍽! 퍽!
수십의 권격이 혈법주의 전신을 아주 작살내 버렸다.
[‘군마’를 창안했습니다.]
[칭호 ‘(예비)종사’(3/5)가 되었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내공이 소폭 상승합니다.]
[오성이 소폭 상승합니다.]
[위엄이 소폭 상승…….]
우우(愚牛)의 강(强)과 교후(巧猴)의 산(散)의 무리(武理)를 접목한 초식이다.
비록 우우의 7할에 해당되는 위력이지만, 한 호흡에 수십의 권격을 쏟아낼 수 있다.
그 모습은 흡사 말의 떼(群馬)가 몰아치는 거 같았다.
우득! 우득! 우드득!
혈법주의 전신은 완전히 작살을 냈음에도 엄청난 속도로 회복했다.
“주, 죽여 버리겠어! …파순(波旬)의 칼이여.”
눈이 핏빛으로 바뀐 혈법주의 앞에 한 자루의 칼이 떠 있었다.
실체를 가진 칼이 아닌 혈법술로 구현한 칼이었다.
그 칼에서 풍기는 기운은 무척이나 불길했다.
“욕망의 칼이여, 적을 타락케 하라!”
혈법주가 구현한 파순의 칼이 저절로 이백에게 날아갔다.
그 모습은 화경고수의 이기어검처럼 보였다.
이백은 본능적으로 막아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백수행공을 펼쳐 피했다.
허나 파순의 칼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서걱!
놀랍게도 파순의 칼에 베인 부위의 황금 불꽃. 즉,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 사라졌다.
[‘불완전한 신의 불꽃’을 미량 빼앗겼습니다.]
“……!!”
이백의 눈이 커졌다.
비록 야군을 영수로 진화시키기 위해 불완전한 신의 불꽃 일부를 넘겨주었지만, 강제로 빼앗긴 적은 없었다.
아니, 불완전한다고 해도 결국 신기(神氣)이거늘,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화르르~!
소멸한 부위에 새로운 황금 불꽃이 일어났다.
빼앗긴 미량의 불완전한 신의 불꽃을 회복한 게 아니다.
그저 품고 있던 기운이 옮겨간 것에 불과하다.
“흐흐… 흐흐… 흐하하하하!!”
혈법주는 파안대소했다.
미량에 불과하지만, 신기는 그에게 극한의 쾌락을 주었다.
혈법주는 파순의 칼을 겨누었다.
“본 법주의 염원을 위해 제물이 되어라!!”
이미 신기로 인한 쾌락을 맛보았기 때문인지 혈법주의 눈이 반쯤 돌아갔다.
정말 혈천법주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후욱!
이백은 허공을 가르는 파순의 칼을 전력을 다해 피했다.
파순의 칼은 그를 베지 못했지만, 다시 따라붙었다.
베이면 불완전한 신의 불꽃을 빼앗긴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이백도 사력을 다해 피하고 또 피했다.
번쩍! 번쩍!
그 움직임 빛과 같았다.
이백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멈추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일 각, 이 각, 반 시진.
지칠 법도 한데, 의외로 이백은 멀쩡했다.
육신만큼은 화경에 오른 덕분에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지는 건, 오히려 혈법주였다.
“이런 썅! 계속 도망치게 할 소냐!”
그때 무언가 이백의 발을 묶었다.
[‘그림자의 광기’에 걸렸습니다.]
[‘그림자의 광기’가 해소되었습니다.]
그림자의 광기는 그의 발을 붙잡기 무섭게 황금 불꽃에 의해 소멸되었다.
문제는 그 찰나의 멈칫거림도 때에 따라선 치명적이다.
“……!!”
“베어라!!”
어느새 파순의 칼이 이백의 머리 위에 있었다.
피하긴 이미 늦었다.
결국 파순의 칼이 이백을 베었다.
그와 동시에 황금 불꽃이 아닌 파순의 칼이 불에 타 소멸해 버렸다.
화르르~!
[‘파순의 칼의 술’이 소멸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혈법주가 눈을 부릅떴다.
파순의 칼에 의해 황금 불꽃이 베여 소멸했던 것과 반대의 결과가 나온 이율 깨달은 것이다.
“누가 혼세마전을 해(解)한… 설마!”
이백이 황금 불꽃의 보호로 힘의 제약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혼세마전의 술이 무의미해진 게 아니다.
혈법주는 ‘혼세마전의 술’의 영역 안에서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 혼세마전의 술이 해제되면서 파순의 칼의 술도 더 이상 유지되지 않고 강제 소멸된 것이다.
“마, 망할 호랑이 새끼가!!”
혼세마전의 술을 펼친 건 혈법주이지만, 유지시키고 있는 건 그가 아니다.
그건 바로 혈법당의 혈법사들이다.
혼세마전의 안에선 혈법사들 또한 능력이 강해지지만, 혼세마전의 술을 유지시키는 동력원 역할을 그들이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관계였다.
즉, 혼세마전의 술이 소멸되었다면 혈법사들이 전멸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을 전멸시킨 건, 혈법주의 예상대로 설군이었다.
“컥!”
“하…아… 말해, 네놈의 배후가 누군지. 십병암귀는 어디에 있는지!”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