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혈법주(血法主) (2)
개방이 귀갑군을 필두로 흑도(黑道)의 움직임을 살피는 사이, 이백은 그 나름대로 움직였다.
소주 곳곳에 있는 개와 고양이는 물론 새까지 그의 눈과 귀가 되어주었다.
허나 이렇다고 할 단서를 찾아내지 못한 채, 휴식을 취해야 했다.
‘역시 무리였나.’
허창 어느 안가에서 발견된 비문(祕文)에 적인 문장은 소주로 가라는 것뿐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오가는 이곳에서 찾아내기엔 단서가 너무 적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고민할 때, 그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바뀌었다.
[혜안이 발동합니다.]
이백의 의지와 상관없이 혜안이 떠졌다.
혜안이 반응한 이율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이질적인 무언가를 발견했다.
[굴절된 기운을 발견했습니다.]
[굴절된 기운을 분석합니다.]
[분석을 성공하였습니다.]
[‘변색룡의 술’을 파헤칩니다.]
이질적인 무언가가 사라지고, 이백의 눈에 붉은 도의(赤道衣)를 입은 사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백과 달리 주변 사람들은 그를 차마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들의 눈에는 붉은 도의의 사내가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찾았다.’
입꼬리가 올라간 이백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서를 찾아냈다고.
이백은 그의 뒤를 쫓았다.
붉은 도의를 입은 사내는 자신을 뒤쫓는 자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어딘가로 향했다.
헌데 어느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혜안이 발동합니다.]
[굴절된 기운을 분석합니다.]
[분석을 실패합니다.]
[굴절된 기운을 분석합니다.]
[분석을 실패합니다.]
[굴절된 기운을 분석합니다.]
[분석을 실패합니다.]
[분석을 성공하였습니다.]
[‘혼세마전의 술’을 파헤칩니다.]
몇 번을 실패했으나 결국 성공했다.
그제야 인식하지 못했던 장원이 이백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혼세마전(混世魔殿)의 술(術).
변색룡(變色龍)의 술(術)처럼 인식 장애를 일으키는 술법이다.
[‘혼세마전의 술’ 안에 입장했습니다.]
[능력이 제한됩니다.]
[근력이 3할 약화되었습니다.]
[체력이 2할 약화되었습니다.]
[내공이 4할 약화…….]
[내공 수발능력이…….]
“……!!”
신체적인 능력은 물론 내공 역시 제한되었다.
무려 3할에 가깝다.
특히 외공보다 내공의 피해가 더 컸다.
혼세마전의 술은 변색룡의 술처럼 인식 장애만 일으키는 술법이 아니었다.
결계(結界)의 일종으로, 영역 내에선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자는 힘의 제약을 받게 된다. 특정 조건은 ‘혼세마전의 술’의 근간 즉, 혈법술(血法術)의 유무다.
이런 고도의 술법을 아무나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다.
혈법당에서도 오직 한 명, 혈법주만이 가능했다.
‘물러나야 할까?’
이백은 순간적으로 고민이 되었다.
이곳이 암류의 소굴이란 증거는 없다. 허나 의심스러운 곳인 게 사실이다.
만약 십병암귀 혹은 그에 버금가는 강자가 안에 있다면?
힘의 제약을 받은 상황에서 감당할 수 없다.
‘방주님을 기다려야 하나.’
이 순간 이백이 기댈 수 있는 건 개방. 그것도 용두방주인 걸왕(乞王)뿐이다.
개방의 장로 추풍신개도 뛰어난 고수이지만, 힘의 제약을 받는다면 큰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가장 현명한 방법을 술법을 깰 수 있는 존재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얼마나 강한 적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힘을 제약을 받고 있는 건 무척 위험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래 확인만 하자.’
힘의 제약을 받았음에도 웬만한 초절정고수보다 강했다.
여차하면 도망치면 된다는 생각에 이백은 장원 안으로 잠입했다.
장원 내에는 자신이 쫓은 자와 비슷한 복장은 한 자가 다수 존재했다.
하나의 집단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누구도 이백의 잠입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장원에서도 가장 큰 전각으로 향했다.
* * *
“거지들의 움직임은 어떠한가.”
검붉은 핏빛 도의를 입은 노도사의 물음에 비슷한 복장의 초로 도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귀갑군과 흑도조직을 감시하느냐 혈안입니다. 당주님.”
개방에서 소주의 흑도를 감시한다면 그들 역시 혈법당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개방에선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혈법당은 무공이 아닌 혈법술로 그들의 감시하는 탓이다.
“걸왕은 행방은 알아냈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소주에는 없는 듯싶으나… 법사들을 움직여…….”
소주 개방도들의 움직임을 간파하는 것과 달리 걸왕의 움직임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싶었다.
혈법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걸왕은 거지 주제에 왕(王)이라 불리는 거인이다.
그 능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런 걸왕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되었다. 그럴 리는 없으나 걸왕이라면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걸왕이라도 본당의 혈법술을 꿰뚫어 볼 수 없을 겁니다.”
수석 혈법사는 혈법술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힘이 바로 자신들의 혈법술이니까.
괜히 군사가 혈법당을 가까이 두는 게 아니었다.
정작 혈법당주 혈법주는 시원찮은 반응을 보였다.
“자만하지 마라. 분명 혈법술은 위대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그분처럼…….”
“…….”
수석 혈법사는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혈법주의 말처럼 ‘절대’란 오직 한 분을 위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혈법주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중원은 넓다. 저런 자도 있으니까.”
“헙!”
혈법주의 눈에서 혈광이 번쩍이는 순간, 무형의 그물이 천장에 둘러졌다.
천라(天羅)의 술이었다.
하늘의 그물이라는 명칭처럼 걸려든다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혈법주는 이백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던 것이다.
“오호, 천라를 피하다니. 대단하군.”
“너희… 정체가 무엇이더냐.”
천라의 술은 간단한 술법이 아니지만, 이백을 잡아챌 정도는 아니었다.
여유를 잃지 않은 혈법주와 달리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던 수석 혈법사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감히! 거망(巨蟒)이여, 환희(歡喜)하라!”
수석 혈법사가 특이한 수인(手印)을 맺자 반투명한 거대한 뱀이 나타났다.
거대한 뱀은 혀를 날름거리더니 이백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무척이나 위협적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수석 혈법사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이백은 자신을 위협하는 거망을 향해 반쯤 오므린 손을 휘둘렀다.
서걱!
반투명한 거망이 찢기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뱀의 이빨보다 외로운 늑대(孤狼)의 발톱이 더 날카로웠나 본데?”
“마, 말도 안 돼!”
수석 혈법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지만,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화가 나 새로운 수인을 맺었다.
“늑대 따윈 산군(山君)의 위엄에 겁을 먹을지어다!”
사라진 거망 대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오만한 호랑이는 이백에게 달려들었다.
이백은 살짝 움직이는 것으로 달려드는 호랑이를 피했다.
“진짜 산군의 위엄을 보여주마.”
“크아앙!!”
백수군림의 포호(咆虎)가 쩌렁쩌렁 울렸다.
흉포해 보이던 호랑이 역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산군의 위엄’이라는 술법만이 아니라 수석 혈법사 역시 충격을 입었는지, 몸을 휘청거렸다.
“쿨럭… 아직 아니…….”
“수석 혈법사, 물러나라.”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수석 혈법사는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듯 또 다른 혈법술을 펼치려 했다.
그때 혈법주의 나직한 명이 떨어졌다.
수석 혈법사는 분했으나 감히 그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혈법주는 이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놀랍군. 수석 혈법사를 이기다니, 이 혼세마전에서 말이야.”
그의 말에 수석혈법사는 흠칫 놀랐다.
그제야 힘의 제약을 받고도 자신을 물리쳤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수석 혈법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헌데 말이야… 본 법주는 다르다네.”
“헙!”
언제 수인을 맺었는지 언제 혈법술을 펼쳤는지 알 수 없지만, 그림자가 이백을 붙잡고 있었다. 그것도 그의 그림자가.
이백은 그림자를 떨쳐내려고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림자의 광기’에 걸렸습니다.]
[육체의 통제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무의미하다. 본 법주의 손을 거부하려 하지 마라.”
혈법주의 말에 그의 몸이 무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마의 미소’에 걸렸습니다.]
[육체의 통제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백은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안돼… 이래선 안… 돼!’
눈꺼풀이 내려가는 순간,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바뀌었다.
[혜안이 발동됩니다.]
[‘수마의 미소’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수마의 미소’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수마의 미소’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수마의 미소’가 해소되었습니다.]
2개의 술법이 중첩된 탓인지, 쉬이 해소할 수 없었으나 끝내 해소해낼 수 있었다.
[‘그림자의 광기’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그림자의 광기’가 해소되었습니다.]
‘수마(睡魔)의 미소’의 술(術)을 해소한 덕분인지, ‘그림자의 광기’의 술(術)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었다.
그걸 느낀 혈법주는 깜짝 놀랐다.
“동술(瞳術)? 동도(同道)인 줄은 몰랐는데?”
“하아… 후…. 난… 너와 동도가 아니다.”
혈법주는 이백의 혜안(慧眼)을 보고 동술로 착각했다.
동술(瞳術)의 소유자는 술법가 중에서도 희귀하며, 그만큼 특별했다.
허나 혜안은 신의 눈(神眼)의 아류라고 하지만, 감히 동술 따위가 비교할 수 없는 힘이다.
불완전하다고 하지만 신기(神氣)이니 말이다.
이백의 혜안을 바라보던 혈법주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바뀌었다.
“동술은 너만 익힌 게 아니지.”
“글쎄 아니래도!”
조금 전 혈법주가 수인(手印)과 주문(呪文)도 없이 이백에게 혈법술을 걸 수 있던 건, 동술사이기 때문이다.
설사 동술을 익히지 않았다고 해도 이곳은 혈법주의 혼세마전이다.
손가락의 미묘한 움직임과 기침 소리만으로도 혈법술을 시전할 수 있다.
“본 법주는 혼세마전(混世魔殿)의 주인이며 위대한 법통의 존사이니…….”
“누가 기다려줄까 보냐!”
조금 전까지 수인이나 주문도 없이 혈법술을 펼쳤던 혈법주다.
그런 그가 정성을 들여 수인과 주문까지 읊을 정도라면 평범한 수준의 혈법술일 리 없다.
이백은 혈법술이 완성되기 전에 막기 위해 혈법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축지술이라도 쓴 것마냥 혈법주의 앞에 도달했다.
이백은 지체없이 고랑을 펼쳤다.
훅!
이백의 손가락이 혈법주를 갈기갈기 찢었다.
헌데 언제 피했는지 이백의 손가락은 허공만 할퀴었을 뿐이다.
“어?”
이백은 당황했다. 공격에 실패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혈법주가 피한 게 아니라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에 서 있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당황하는 그를 보며 혈법주가 미소를 지었다.
[‘삼라만상의 술’에 걸렸습니다.]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