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소주(蘇州)
“그, 그럴 리 없… 흐윽!”
장원에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원래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가장의 주인은 무려 무림맹 부군사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허나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찾아라! 우국현을!”
“존명!”
무사들의 정체는 바로 무림맹 비각이었다.
비록 비각이 정보조직이지만, 무력(武力)이 없는 게 아니다.
특무조가 몇몇 존재했다.
현재 비각은 흉수로 우국현을 확정한 건 아니다.
허나 총군사의 피살 직전 그의 방문 사실과 그 이후, 우국현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점에서 흉수로 보고 있었다.
우가장의 식솔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이었다.
특히 우국현의 아들은 반발했다.
“아, 아버님께서 변절하실… 히힉!”
“총군사님의 암살 사건이오. 협조해주시오.”
특무조장의 검이 언제 움직였는지, 우국현 아들의 목에 닿았다.
비록 무림맹 소속이라도 우국현은 무력과는 거리가 먼 군사부 소속이었다.
그의 아들 역시 무공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기에 직접적인 위협에 반발하기 어려웠다.
그러는 사이, 우가장을 수색하던 특무조원 중 한 명이 달려왔다.
“조장님! 화골산(化骨散)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뭐! 화골산!”
시체를 한 줌의 혈수로 만들어 버리는 독이다.
살인의 흔적을 지울 때나 사용되는 만큼 평범한 사람들은 구할 수도 다룰 수도 없다.
무엇보다 화골산이 사용된 흔적은 무림고수라도 찾아내기 어렵다.
허나 비각 소속 특무조의 눈을 피하는 건 어렵다.
화골산은 그들도 많이 사용하는 독이니 말이다.
특무조장이 직접 살폈다.
“피살자가 부군사라면… 젠장!”
화골산에 의해 혈수가 된 피살자가 아직 누군지 파악할 수 없다.
행적인 묘연한 우국현의 장원.
총군사를 암살한 후 자결을 했다?
“처음부터 부군사로 위장한 살수였단 말인가!”
우가장이 발칵 뒤집혔을 때,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중년 사내가 있었다.
‘역시 비각… 반응이 빠르군.’
무사들이 허창 전역을 휘젓고 있었다.
허창은 정파무림의 심장부 무림맹의 본성이 있는 지역이다.
상주 인원만 수천여 명.
그런 곳에서 총군사가 암살당했으니, 눈에 불을 켜고 수색하는 게 당연하다.
허나 그 많은 이들은 흉수도 모른 채 누굴 찾아낸단 말인가.
그들과 달리 비각에선 우국현의 흔적을 찾아냈다.
‘킥킥… 그래봤자, 나 백면독주(百面毒蛛)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지.’
제갈중경에게 접근하기 위해 우국현의 신분을 빌렸던 백면독주는 득의했다.
이미 도망쳤어도 부족한데, 어이없게도 그는 아직 허창 내에 있다니.
백 개의 얼굴을 가진 독거미란 별호에서 알 수 있듯 역체변용술(易體變容術)과 독술의 대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림맹을 벗어난 이후 얼굴을 몇 번이나 바꾸며 혹시 모를 흔적을 끊었다.
그러니 자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무림맹 무사들이 가소롭게만 보이는 게 당연하다.
‘흐흐흐, 그래도 이제 사자(使者) 딱지를 뗄…….’
악명 높은 백면독주라면 사도련에 가도 장로급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헌데 그런 그가 일개 사자 취급을 받는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니, 그런 대우를 받고도 백면독주가 납득했다는 게 더 이해하기 어렵다.
비록 초절정고수는 아니지만, 역체변용술과 독술로 초절정고수도 여럿 암살한 자가 바로 그인데 말이다.
납득한 게 아니다. 납득 당한 것이다.
그가 속한 집단에는 초절정고수가 수두룩하며, 화경고수조차 여럿 존재하니 백면독주라도 사자(使者)의 지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상황이 바뀌었다.
무림맹 총군사를 암살했으며, 호법의 자리가 둘이나 빈 덕분이다.
즐거워하던 백면독주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나왔다.
“이런 썅!”
그가 임무를 위해 임시로 준비된 안가(安家)에 비문(祕文)이 발견되었다.
특수한 암호로 만들어진 비문은 겉보기에는 낙서처럼 보여, 해석 전문가라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소주로 가라.]
정보수집과 요인 포섭 및 암살 등이 순찰령의 임무라면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강자의 처리는 호법원에서 맡는다.
무림맹 총군사와 같은 거물이라면 호법급이 맡는 게 맞다.
그렇기에 백면독주는 드디어 호법사자에서 사자 딱지를 뗄 수 있다 생각했다.
허나 호법 임명은커녕 다음 임무가 하달되었으니 분통이 터진 것이다.
그렇다고 불복할 수는 없었다.
불복의 대가가 죽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림맹 심처에서 총군사를 암살한 백면독주이지만, 조직의 눈을 피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원치도 않은 호법사자 노릇을 하는 것이다.
우득, 우드득.
백면독주는 어느새 중년 사내에서 초로의 사내로 바뀌었다.
“젠장! 간다, 가!”
결국 백면독주는 이를 갈며 안가를 벗어났다.
그 직후, 누군가가 안가로 향하다가 사라졌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잘생긴 흑마였다.
“놓친 건가…….”
흑마를 탄 청년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안가에서 아무런 기척을 느낀 탓이다.
“그냥 경공을 펼칠 것을…. 아, 널 탓하는 게 아니다. 너도 답답했을 텐데 미안해.”
청년은 흑마의 콧등을 쓰다듬으며 사과를 했다.
그럼에도 흑마는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갤 푹 숙였다.
그런 야군의 모습에 이백은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달래주었다.
통감술로 역용술을 펼치는 수상한 자를 발견한 이백은 지체없이 움직였다.
전설의 천리신마에 비견되는 야군의 속도라면 단숨에 올 수 있지만, 허창 시가지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마음 급하다고 야군이 달렸다면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허창 곳곳에 무림맹 무사들이 들쑤시고 있으니, 오해만 살 뿐이다.
“단서가 있을지 몰라. 그땐 네가 실력 발휘할 수 있을 테니, 실망하지 말고.”
“흐~응!”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듯 야군은 강한 콧바람을 뿜어냈다.
야군을 다독인 이백은 안가 안으로 들어갔다.
작고 평범한 장원이었다.
의심의 눈으로 살폈음에도 어느 하나 찾아낼 수 없었다.
“하… 생각보다 더 철저…….”
한숨을 내쉬며 실망감을 드러내던 이백의 눈동자가 황금빛을 냈다.
[혜안이 발동됩니다.]
[비문을 발견했습니다.]
[비문을 해석합니다.]
비문 해석의 전문가라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잡한 낙서다,
허나 진위를 식별하고 근원을 파헤치는 혜안(慧眼)을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비문의 해석에 성공했습니다.]
비문의 존재를 식별해내는 것에 이어 해석까지 성공했다.
혜안의 성취가 높아진 덕분이다.
“소주? 꼬리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단서를 잡은 이백은 안가를 나왔다.
다시 통감술로 찾아내면 좋겠으나 이미 또다시 얼굴이 바뀌었을 자다.
통감술에만 의지할 수는 없었다.
“가자!”
이백이 등에 타자 야군은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강한 콧바람을 뿜으며 움직였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진 후 조금 전, 안가에 다가가려 했던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 백 장 밖에 벗어났거늘, 들킬 뻔했네.”
이백의 기감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전(全) 무림에서도 극소수에 불가능하다.
백 장 밖이라도 감지할 수 있다.
이곳이 허창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백 장 내에 존재한 기척만 수백은 훌쩍 넘는다.
그렇기에 이백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헌데, 이걸 좋아해야 하나. 저 아이가 끼어들게 한 게…….”
* * *
“쉬파, 항주 것들이 왜 소주까지 와서 지랄… 컥!”
소주는 매일이 전쟁이었다.
어디선가 흑천회주의 죽었다는 소문이 흘러나온 탓이다.
처음에는 다들 콧방귀만 뀌었으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들 ‘설마’하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사건이 터졌다.
흑천회주의 자리를 노리고 몇몇 지부장이 움직인 것이다.
그제야 소문이 사실이라 확신하며 여타 조직까지 반응했다.
“우리 귀갑군(鬼甲軍) 역시 흑천회의 식구인데, 자격이 있지!”
“맞습니다! 부군장(副軍將)님!”
가슴에 귀면(鬼面)이 새겨진 등갑(藤甲)을 입은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황실의 군대가 아니다.
한때는 황실의 군사(軍士)로서 왜구와 싸웠던 이들이다.
허나 왜구의 약탈에도 관심 없는 조정과 왜구의 뇌물을 받고 그들의 약탈을 모른 척하는 절강군 수뇌. 이를 보다 못한 한 장수가 군사들을 이끌고 약탈하기 위해 침입한 왜구를 무찔렀다.
허나 돌아오는 건, 항명에 따른 즉결처분.
분노가 쌓일 대로 쌓인 군사들은 군 수뇌부를 습격해 장수를 구출했다.
황실에선 그들을 반역죄로 다스리기 위해 군(軍)을 움직였다.
허나 그들은 오랜 시간 왜구와의 싸움으로 단련된 최정예이며 이 지형에 익숙했다.
게다가 가벼우면서도 쉽게 베이지 않은 등갑(藤甲)까지 입으니 수의 열세에도 정벌군을 상대로 연전연승했다.
노한 황실에선 더 많은 군사를 움직이려 했으나 북방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더 이상 군병력을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그들은 황실을 상대로 살아남았고 스스로 귀갑군이라 칭했다.
“대군장(大軍將)님께서 오시기 전에 쓸어버려!”
“예! 부군장님!”
항명을 감수하고 왜구를 무찌른 장수를 중심으로 모인 귀갑군은 군비(軍備)를 마련하기 위해 절강의 흑도를 쓰러트렸다.
그 과정에서 귀갑군은 더욱 커지고 강해졌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흑도를 통해 세를 키웠기 때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귀갑군은 흑도화(化)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외부에선 귀갑군을 절강 흑도의 패자로 보게 되었다.
암천회 역시 그리 생각했는지 십병암귀를 움직였다.
귀갑군의 대장군도 강했지만, 결국 패배한 후 흑천오주(黑天五柱)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런 암천회주가 죽었으니, 귀갑군도 그 자리를 노리게 된 것이다.
“귀갑군은 항주가 있는데, 소주까지 노리는 건 너무 하지 않나?”
“끄응… 황산파의 장로께선 어인 일이시오?”
안휘 남부를 대표하는 세력이 바로 황산파다.
남궁세가로 인해 그 영향력이 남부에 그치지만,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문파다.
다른 흑천오주와 달리 힘이 아닌 협상을 통해 흑천회의 기둥이 되었다.
절강의 귀갑군에 이어 안휘의 황산파까지 움직인 것이다.
흑천회의 영역을 노리고 움직인 강소 흑도조직들은 두 고래 사이에 끼어 등만 터질 뿐이다.
“본파의 입장을 알지 않은가? 우리끼리 피 보지 말고 물러나게.”
“그건 본장(本將)이 할 말이오. 먹을 게 부족하면 호북으로 가시오.”
구화당이 사라진 후 호북 흑도를 장악한 조직은 없다.
그만큼 구화당은 독보적인 탓이다.
허나 호북을 노리기에 한발 늦었다.
상관세가와 무한검문이 발 빠르게 움직인 탓이다.
황산파의 장로는 검을 뽑자 귀갑군의 부군장 역시 칼을 쥐었다.
“피까지 볼 생각은 없었지만…….”
“동감이오.”
소주의 패권을 둔 싸움은 종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