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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70화 (70/200)

70화. 십병암귀(十兵暗鬼)

퍽! 퍼퍽!!

노인의 주먹이 움직일 때마다 나무며 바위며 가릴 것 없이 사라졌다.

“쥐새끼 같은 놈.”

이백은 가까스로 노인의 권격을 피해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노인의 표정에 짜증이 묻어났다.

“말하는데 다리는 필요 없지.”

“헉!”

노인의 손에 한 자루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허나 철로 만들어진 검(劍)이 아니었다.

반투명한 빛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백이 놀란 건 그 때문이 아니다.

언제 움직였는지 검이 허공을 가른 탓이다.

“흑성지검을 피해? 정말 보법 하나는 인정할 만하구나.”

그가 펼친 검법은 흑성지검(黑星之劍).

한때 사파제일쾌검이라고 불렸으나 오래전에 실전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헌데 노인이 그런 흑성지검을 익히고 있었다.

“보법이라… 노부도 제법 쓸만한 보법을 알고 있지.”

“…….”

말이 끝나기 전에 사라졌다.

이백은 그를 찾기 위해 기감을 넓혔다.

헌데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때? 유령보(幽靈步)라고 하네, 쓸만한가?”

“헉! 큭!”

감지해 내기도 전에 이미 이백의 뒤에 나타난 것이다.

놀란 이백은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으나 노인이 더 빨랐다.

그의 권격에 이백은 내공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튕겨 나가는 와중에 이백의 정신이 아찔해졌다.

“걱정 말게. 아직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컥!”

언제 움직였는지, 이백이 튕겨 난 자리에 미리 도착해 이격을 날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방어를 못 한 탓에 충격을 그대로 받아야 했다.

입안에 느껴지는 피의 비릿함에 이백은 이를 악물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또다시 튕겨 난 자리에 노인이 당도해 있었다.

예상했다는 듯 이백은 있는 힘껏 오무린 오른손을 휘둘렀다.

노인을 찢을 듯 예리한 기운이 쇄도했다.

외로운 늑대, 고랑(孤狼)이었다.

“이건 청랑조법과 비슷하단 말이야.”

이백의 고랑은 노인을 할퀴지 못했다.

백수행공과 비견되는, 어쩌면 그보다 더한 보법으로 피해낸 탓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노인이 밟은 보법은 유령보.

유령궁의 독문보법이다.

비록 실전되었다고 알려졌으나 무림 십대보법에 속하니 백수행공의 아래가 아니다.

노인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이백을 바라봤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분명 청랑보와 청랑조법이야. 청랑왕의 비동이 비어있다 했더니, 네놈의 소행이었구나.”

7년 전, 대설산에 몰려든 무림인들.

그들은 청랑왕의 유산을 노리고 모여들었다.

흉수는 알 수 없으나 장씨 부녀를 죽인 자가 그중에 있을 거라 추정했다.

허나 노인 역시 그곳에 있었는지, 청랑왕의 비동을 언급했다.

“그 일로 군사가 체면을 구겼지. 그건 잘 되었지만, 모든 건 그분을 위함이었는데…. 널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구나.”

노인의 입에서 의미 모를 말이 나왔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7년 전 청랑왕의 비동이 알려진 건 우연이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암천회, 너희의 소행이었더냐!”

저들만 아니었다면 무림인들이 대설산에 몰려들지 않았을 테고, 장씨 부녀가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 이백의 눈이 뒤집혔다.

고통조차 잊은 그는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훅!

이백의 오무린 손가락이 허공을 할퀴었다.

허나 그가 할퀸 건 노인의 잔상에 불과했다.

“제법이야. 허나…….”

이백의 고랑을 피한 노인이 창(槍)을 휘둘렀다.

검 때처럼 반투명한 무형(無形)의 창이었다.

그 움직임이 일반적인 창법과는 달랐다.

요사(妖邪)하면서도 한편으로 현묘(玄妙)했다.

피하기에는 늦었고 피할 생각도 없던 이백은 만악(慢鰐)을 펼쳤다.

푸욱!

그 순간 피가 튀었다.

노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낚아챌 수 있을 줄 알았느냐.”

*  *  *

“쿨럭… 우웩!”

독안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피를 통했다.

괴한은 너무도 강한 탓이다.

“슬슬 귀찮은 것들이 몰려올 테니, 그전에 죽여주마.”

“피…하십…시…….”

괴한의 엄지와 중지 사이에 검은 구슬이 끼워져 있었다.

독안귀를 가지고 놀 듯 괴롭혔던 그것이다.

검은 구슬이 은은히 빛났다.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죽이겠단 의미였다.

그건 독안귀와 현유 모두 알 수 있었다.

현유는 쓰러진 독안귀의 앞에 섰다.

“죽이려면 나만 죽이시오. 그까지 죽일 필요 없지 않소.”

“노…야… 아니됩…니다.”

자신의 죽음은 변함이 없다면, 독안귀라도 살리고 싶었다.

더 이상 피를 흘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허나 괴한은 생각은 다른 듯싶다.

“죽는 마당에 남 생각하네. 역겹게 말이야.”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 중지를 튕겼다.

그러자 검은 구슬이 현유의 미간을 향했다.

독안귀는 자신의 무력함이 분했다.

괴한은 두 사람을 보며 즐거워했다.

허나 그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했다.

서걱!

검은 구슬은 현유의 미간에 박히지 않았다.

두 쪽 나서 집무실 벽을 뚫고 나가버렸다.

“마, 말도 안 돼! 악귀환(惡鬼丸)이!”

괴한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단순히 쇠로 만든 구슬이 아니다.

악귀존자(惡鬼尊者)의 탄지공으로 펼치면 호신강기도 파쇄한다는 악귀환이다.

베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 놀라운 건, 악귀환을 벤 존재다.

“고양이 따위가 악귀환을 벨 리가 없어! 괴물… 으악!”

서걱!

삿대질하던 괴한의 검지가 떨어졌다.

새하얀 고양이가 기분 나쁘다는 듯 자신을 삿대질한 괴한의 검지를 베어버린 것이다.

그는 피가 솟구치는 오른손을 감싸며 괴로워했다.

눈이 시뻘게진 괴한은 왼손으로 다른 악귀환을 쥐었다.

“죽여 버… 으아악!!”

그는 악귀환을 던질 수 없었다.

악귀환을 쥐고 있던 왼손이 사라진 탓이다.

그의 손목에서 피가 마구 솟구쳤다.

“크! 아아악!!”

오른 검지와 왼손목을 잃은 괴한은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그런 그의 앞에 하얀 털이 붉게 물든 고양이가 부르르 떨고 있었다.

피가 사방에 튀자 붉어졌던 털이 다시 하얗게 돌아왔다.

그 모습을 현유와 독안귀는 멍하니 바라만 봤다.

“내, 내가 보는 게 맞소?”

“…그…런 거, 같…습니다.”

제 눈을 믿지 못하는 현유의 물음에 독안귀는 부정할 수 없었다.

허나 그 역시 믿기지 않았다.

독안귀의 솜씨는 상단호위단의 일류고수들도 인정했다.

괴한은 그런 그를 가지고 놀았다.

궁지에 몰린 순간, 나타난 한 마리의 고양이.

애꿎은 고양이만 죽었다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고양이는 괴한은 너무도 쉽게 제압했다.

고양이는 느릿 하품을 하더니, 두 사람을 바라봤다.

고양이의 빛나는 눈빛이 닿자 그들은 흠칫 놀랐다.

허나 고양이는 그들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갑자기 어딘가를 바라보고 털을 삐죽 세웠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제야 두 사람은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아…. 호법님의 애묘(愛猫) 설군이겠지요.”

무림고수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고양이가 흔할 리가 없다.

애초 설군은 고양이가 아니다.

백호(白虎).

계약을 맺은 이백조차 그저 영물로만 알고 있는.

허나 영물이라고 한들, 설군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독안귀는 사라진 설군을 떠올렸다.

‘주인이나 고양이나 하나같이 괴물이구나.’

고양이에게 구명(救命)을 받았다는 사실은 어이가 없지만, 그 때문에 자괴감이 느끼진 않았다.

살아남는 게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흑도(黑道)에도 몸을 담았는데, 이걸로 좌절하겠는가.

게다가 자괴감을 느끼기엔 설군은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다.

“호법께선 이 상황을 예상하셨나 보오.”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다는 게 서운할 법하지만, 현유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적을 속이기 위해선 아군을 먼저 속여야 하는 법이다.

적의 존재를 알고 있음이 드러나면 적은 오히려 더 복잡한 수를 쓸 수 있으니까.

‘정말 떠나실 때가 되었나 보구나.’

*  *  *

“큭!”

이백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노인의 창을 쥔 대가로 손이 피로 물들었다.

날이 예리하게 선 검을 쥐고도 멀쩡했던 만악(慢鰐)이건만, 노인의 무형(無形)의 창(槍)은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아까워. 노부를 따른다면 살려줄 수 있다.”

“닥쳐! 누가 흑천회 따윌 섬긴단 말이냐!”

자신을 상대로 이만큼 버텨낸 자는 천하에 얼마나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백이 탐이 났다.

허나 이백은 절대 흑천회를 따를 생각이 없었다.

죽은 장씨 부녀에게 받은 따스한 마음을 결코 잊을 수 없으니까.

“그래, 쉽게 굴복하면 재미없지. 허나 너 같은 놈 길들이는덴 도가 텄지.”

“닥쳐!”

죽이기보단 길들여 쓰겠단 생각인지, 무형의 창을 거두었다.

헌데 오히려 강인한 느낌이 들었다.

무형(無形)의 무기를 만드는 건, 노인의 재주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백은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우(愚牛).

백수군림의 수법 중 강(强)에 치우쳐진 권격이다.

이를 모르는지 노인은 피할 생각하지 않고 가슴으로 받아냈다.

퍼억~!

“크윽!!”

“연혼갑(練魂甲)을 익힌 노부는 금강불괴를 이루었느니라.”

신음을 흘린 건 노인이 아니라 이백이었다.

우우도 금강불괴를 어찌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반탄력에 의해 이백의 주먹이 으깨졌다.

금강불괴를 이루게 만든 연혼갑은 엄청난 무공이다.

허나 그 과정은 더욱 놀랍다. 아니, 사악하다.

여인에게는 채음보양을, 사내에겐 흡기공을 통해 완성한다.

상대가 무공을 익혔다면 더 효과적이다.

다르게 말하면 노인은 연혼갑을 완성하기 위해 셀 수 없는 이를 희생시켰다는 뜻이다.

흑성지검, 유령보, 무영마공, 교룡신창에 이어 이번에는 연혼갑.

하나 같이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사마외도의 절학들이다.

노인은 흑천회주의 분신이라고 불리는 괴물이다.

“죽이지는 않으마.”

퍽! 퍽! 퍽!

금강불괴를 이룬 십병암귀의 육신은 그 자체가 흉기였다.

그의 주먹이 닿을 때마다 이백은 영혼이 으스러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백은 혈인(血人)이 되어 있었다.

“허허, 제법 튼튼한 놈이구나. 하마터면 죽일 뻔했어.”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명했을 법한데, 이백은 아직 목숨줄을 붙잡고 있었다.

십병암귀는 이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죽이기 위함이 아니다.

데려가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매우 날카로운 칼을 얻었다는 생각에 십병암귀는 흡족했다.

서걱!

그때, 금강불괴를 이룬 십병암귀의 손에 생채기가 생겼다.

“고양이… 일 리가 없지. 호랑이구나.”

크르르.

십병암귀를 저지한 건 새하얀 새끼 고양이, 설군이었다.

암상을 제압한 설군은 이백이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달려온 것이다.

겉보기에는 작은 새끼 고양이처럼 보이지만, 십병암귀는 설군의 정체를 알아봤다.

으르렁거리는 설군을 보며 십병암귀의 눈빛이 번쩍였다.

“영물인가. 내단이 있을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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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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