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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69화 (69/200)

69화. 형주상련(荊州商聯) (4)

쾅!

“망할 놈들! 감히 본회의 일을 방해해!”

형주상련을 내세워 형주상단을 피 말리게 만든 장본인, 추원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형주상단의 목을 점점 조여갔다.

그들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허나 그런 예상과 달리 형주상단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 형주상단을 믿고 거래를 유지하는 곳들도 있거니와 예상치 못한 지원을 받은 탓이다.

형주상련이 형주의 상권 7할 이상을 점거했지만, 어디까지나 형주와 그 일대만이었다.

의창과 형문, 잠강과 감리현 등 형주 일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지역은 아니었다.

그것에서 통상 가격에 물자를 넘겨주면서 형주상단은 숨통을 트일 수 있었다.

호북에서 손꼽히는 와룡상단과 천하 십대상단이라는 일월상단이 움직인 것이다.

“이것들을 확 죽일 수도 없고!”

성질 같아선 와룡상단과 일월상단의 수뇌부를 암살해 경고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의 뒤에는 제갈세가와 상관세가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성(省)이 아닌 강남 일대의 어둠을 지배하는 암천회의 힘이라면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다. 허나 암천회 역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고작 형주 하나 집어삼키겠다고 그러한 피해를 입는 건 오히려 손해다. 아무리 호북 상권을 손에 넣기 위한 교두보라도 말이다.

게다가 암천회의 전력까지 끌어써야 한다는 건, 다르게 말해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암천회주는 그런 무능을 보고 너그럽게 넘어갈 자가 아니다.

“결국 현유를 죽이는 게 가장 쉬운 일이긴 한데…….”

와룡상단과 일월상단의 지원 때문에 더 이상 자금력으로 압살(壓殺)하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다행히 그들은 어디까지나 형주상단을 지원하는 입장이다.

주체인 형주상단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면 두 상단이 아무리 많은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무의미하다.

급성장으로 인해 아직 많은 면에서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형주상단이 여태껏 버틸 수 있던 건 현유의 인망이다.

그가 죽는다면? 아들인 현욱으로는 그 공백을 메꿀 수 없다.

그럼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문제는 그 괴물 놈이 지키고 있다는 건데… 방법이 없나?”

쉬쉬했으나 취개의 죽음에 이백이 있단 사실은 숨겨지지 않았다.

항복한 구화당의 생존자와 낭인막의 천랑을 모두 죽일 수는 없던 탓이다.

구화당의 생존자도 생존자이지만, 항복한 마당에 천랑들을 죽일 수 없었다.

자칫 낭인막에서 움직일 수 있다.

나머지 이태랑도 문제지만, 그 뒤에 있는 낭왕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낭왕은 무림십왕이니까.

결국 적절한 배상을 받고 돌려 보내주었다.

그 과정에서 이백의 존재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취개를 죽인 고수를 죽일 방법이 없다. 아니, 없는 건 아니다.

암천회에 초절정고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초절정고수도 죽일 수 있는 특급살수가 세상에 없는 것도 아니니까.

암천회 초절정고수를 움직일 수 없으니, 추원은 거금이 든다고 해도 특급살수에게 청부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암상(暗商), 주군을 얼마나 더 기다리시게 할 겐가.”

“헉! 아, 암귀 님께서 여, 여기 어떻게…….”

어둠 속에서 웬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추원… 아니, 암상은 사색이 되었다

암귀(暗鬼).

정확히는 암귀들을 양성한 존재, 십병암귀(十兵暗鬼)였다.

암천회주의 분신이라고까지 불리는 그가 움직였다는 건, 이 일을 암천회주가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왜 말이 없지. 고작 형주 하나 때문에 주군을 얼마나 더 기다리시게 할 참이더냐.”

“죄, 죄송합니다! 거의 다 끝났는데… 제갈세가와 상관세가 때문… 큭!”

변명하던 암상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무형의 기운이 그를 압박한 탓이다.

비록 암귀 중 상위에 속하지 않으나 절정지경에 오른 강자다.

그럼에도 십병암귀의 기운에 숨조차 쉬지 못했다.

암상의 숨이 껄떡거리자 기운을 거두었다.

십병암귀의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변명 따위 듣자고 노부가 직접 왔다 생각하느냐.”

“쿨럭… 죄…송합니다.”

삼도천의 앞까지 갔다 왔음에도 암상은 오히려 사과해야 했다.

십병암귀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해결책은 뭔가.”

“형주상단주를 죽이면 제갈, 상관 놈들이라도 더 이상 별수 없을 겁니다.”

다행히 암상은 다음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었다면 십병암귀의 지옥보다 공포스러운 손속을 맛봐야 했을 것이다.

“해결책이 있으면서도 손 놓고 있던 이유는.”

“형주상단에는 초절정고수가 있습니다. 낭인막의 취개를 죽인 자입니다.”

암상의 대답에 십병암귀의 눈빛이 바뀌었다.

“옥룡개를 죽였다라… 제법이군.”

“예?”

암상과 달리 십병암귀는 취개의 숨겨진 정체를 알고 있었다.

개방의 치부, 옥룡개.

허나 그의 강함은 진짜다.

그런 취개를 죽인 이백.

그의 무위는 예상보다 더 강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십병암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취개 정도 죽인 것으로는 그를 감당할 수 없을 거란 반증이었다.

“놈을 죽여주지. …헌데 고작 장사꾼 놈까지 노부가 손을 써야 하는 건 아니겠지.”

“무, 물론입니다! 그놈만 처리해주시면 상단주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백이 문제이지, 무공도 모르는 현유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허나 십병암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한 달을 주지. 한 달 안에 형주를 장악하지 못하면, 노부를 헛걸음시킨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게야.”

“거, 걱정 마십시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암상은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그 역시 암귀의 일원으로서 십병암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실상은 조련이지만.

그렇기에 그가 얼마나 지독하고 공포스러운 존재인지 뼛속까지 알고 있다.

암상만이 아니다.

암귀라면 모두 그라면 치를 떨 것이다.

흑천회주의 심복이자, 일각에서는 그보다 강할지 모른다고 알려진 또 다른 괴물.

십병암귀가 움직였다.

*  *  *

“…그렇게 처리하게.”

늦은 밤이지만, 상단주의 집무실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와룡상단과 일월상단의 도움으로 숨통이 트였지만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된다.

형주상련의 방해 공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만 한다.

“아버지. 그러다 쓰러지십니다. 중요한 때라는 걸 알지만…….”

“잔소리 그만하거라. 네 애미의 잔소리만으로도 귀가 아프니. 너야말로 아비 걱정 말고 돌아가서 쉬거라. 너도 남편 노릇해야지.”

투덜거렸으나 아들의 걱정 어린 말이 마냥 싫지 않은지, 현유의 얼굴은 지쳐 보임에도 밝았다.

현욱은 그런 아비가 걱정스럽기만 했다.

“안 그래도 돌아갈 참입니다. 그러니…….”

“알겠다. 알겠어.”

아비의 말에 그제야 현욱은 돌아갈 수 있었다.

현유는 한숨을 내쉬더니 서류를 정리했다.

아들의 성화가 아니라도 스스로 부침을 느끼던 차였다.

내일 일어나기 위해서 잠도 자야 하기에 일어날 생각이었다.

휘~익.

갑자기 등(燈)의 불이 꺼졌다.

“웬 바람이지? 어쩔 수 없지.”

서류 정리가 조금 부족하지만, 다시 등잔에 불을 붙이는 것보다 돌아가서 쉬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그렇게 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챙!

금속이 충돌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겼다.

놀란 현유는 주저앉고 말았다.

“누, 누구시오.”

“쳇, 쥐새끼가 있었나.”

성가시다는 듯한 말투였다.

어둠에 의해 얼굴은 볼 수 없으나 건장한 체구의 윤곽은 보였다.

그와 동시에 놀란 현유의 앞에 누군가 섰다.

“노야, 움직이지 마십시오.”

“아, 알겠소.”

현유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가 누구인지 알았다.

과거 당랑파의 일원으로, 현유를 암살하러 왔다가 되려 제압된.

그리고 지금은 현유의 암중호위가 된 독안귀다.

‘평범한 고수가 아니야.’

독안귀는 두 자리의 비수를 꽉 쥐었다.

괴한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쉬운 상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무음비도술(無音飛刀術)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낸 건, 일류고수로는 불가능할 테니까.

‘곧 지원이 올 거야. 그리고 그도… 그러니 조금만 버티면…….’

소란을 듣고 상단호위단이 움직일 것이고, 무엇보다 이백이 모를 리가 없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자신의 소임은 다한 것이다.

허나 독안귀의 희망은 깨지고 말았다.

“아, 그자를 기다릴 거라면 포기해. 죽을 놈… 아니, 이미 죽었을지 모르겠네.”

“뭐!”

당랑파는 물론 형주유가, 구화당마저 무너트린 이백이 죽을 거란 생각을 하긴 어렵다.

애써 부정하려 하지만, 괴한의 목소리에 어린 확신이 너무도 신경 쓰였다.

굳어진 독안귀를 향해 괴한, 암상은 사망선고를 내렸다.

“둘 다… 그만 죽어.”

*  *  *

“불청객이군…….”

눈을 감고 있던 이백의 눈이 떠졌다.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보냈다는 걸 알아차린 이백은 자리에 일어났다.

“청한다면 받아주지.”

이백은 창을 통해 뛰쳐나갔다.

백수행공을 펼친 그가 형주상단을 벗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느새 시가지를 벗어났고, 인적이 드문 산이 나왔다.

그곳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 고고히 서 있었다.

“노사(老師)께서 본인을 청하신 겁니까.”

“취개를 죽였다는 게 우연은 아니군.”

노사라는 칭호가 어울리지 않게 섬뜩한 느낌을 주는 노인이었다.

최소한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그런 자가 죽은 취개를 언급하니 이백은 긴장했다.

“낭인막의 태랑(太狼)인가? 취개의 복수를 위해 왔나.”

“노부를 태랑 나부랭이와 착각하다니. 안목은 별로군.”

취개의 죽음으로 이제 둘밖에 남지 않은 태랑.

허나 그렇다고 한들 태랑의 평가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헌데 그런 태랑을 나부랭이로 취급했다.

이백의 눈이 커졌다.

“낭왕(狼王)!”

삼류 취급당하는 낭인이면서 스스로 왕(王)에 오른 사내.

초인지경이라는 화경에 오른 절대고수.

무림십왕의 낭왕이 나타났다.

“들개 새끼 주제에 제법이라곤 들었지. 허나 노부는 낭왕이 아니다.”

“…그럼 대체 누구요.”

투박한 말이지만, 태랑과 달리 낭왕은 인정하는 말투였다.

허니 경외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십왕 중 한 명인가. 십왕과 척을 진 자는 없는데…….’

낭왕임을 부정했고, 개방은 보은전까지 주었으니 걸왕(乞王) 역시 아니다.

엉덩이 무거운 무림십왕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낭왕을 부정했으나 그에 근접한 고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림에서는 모래알만큼 기인이 많고, 설사 화경고수가 아니라도 초절정고수 중에는 이백보다 강한 고수도 있을 테니까.

“알아서 뭐 하게. 곧 죽을 놈이.”

“헉!”

노인은 주먹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아지랑이가 이백에게 쇄도했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느끼고 백수행공을 펼쳤다.

다행히 피해냈으나 그가 있던 자리는 소멸되었다.

“청랑보(靑狼步)? 아니, 유사한 보법인가.”

그 순간, 이백은 소름이 돋았다.

백수행공이 청랑보에서 시작되었지만, 상당히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청랑왕이 살아 돌아와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변화된 만큼 노인도 확신은 하지 못했으나 청랑보를 떠올렸다니, 놀랄 따름이었다.

노인의 주먹에 또다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백 역시 그게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떠올랐는지, 눈이 커졌다.

“서, 설마 흑살기(黑殺氣)!”

“음? 흑살기를 알아봐?”

이백의 말에 노인은 부정하지 않았다.

7년 전, 이백을 죽음의 기로까지 떠밀었던 참혹한 기운이다.

그러니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흑천회였나!”

“너… 죽기 전에 말해줘야 할 게 많을지 모르겠어.”

노인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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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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