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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67화 (67/200)

67화. 형주상련(荊州商聯) (2)

“…진가주조(陣家酒造)에서 납품을 못 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형주상단은 상회 시절부터 거래하던 물품 중 하나가 바로 술이었다.

이십여 주점과 객잔 등에 납품했고, 형주상단의 입지가 높아지며 거래처가 배는 늘어났다.

그런 형주상단에 술을 납품하는 진가주조는 벌써 십 년 넘게 거래를 해왔다.

헌데 난데없이 납품을 할 수 없다고 하니, 현욱 행수는 당황스러웠다.

“미안하다며 위약금을 보내왔습니다.”

“허… 갑자기 이러면 어쩌라고…. 주조장은 내 가볼 테니, 부행수께선 새로운 주조장은 알아봐주십시오. 설득이 안 된다면 새로운 거래를 터야 하니까요.”

“그리 하겠습니다! 행수님!”

형주상단의 거래 품목 중 술의 역할이 크다 할 수는 없다.

허나 가볍게 생각할 일도 아니다.

그렇기에 현욱은 직접 하인 몇을 대동해 진가주조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기에 족히 두 시진은 걸려야 당도할 수 있었다.

“빨리빨리 날라라!”

중년 사내의 재촉에 하인들이 술동을 날랐다.

수레에는 이미 수백 동이 실려 있었다.

그것을 본 현욱은 당황해 한걸음에 달려갔다.

“형남상회의 곡 총관님,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아, 현 행수였군. 보면 모르나, 술 납품받으러 왔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가웠던 그의 묘하게 차가운 반응에 현욱은 당황스러웠다.

형남상회는 주루나 객잔 등에 식료품을 납품하는 걸 주업으로 삼고 있었다.

형주상단과 겹치는 부분도 있으나 별 충돌 없이 지내왔다.

형주상단과 거래하는 주루나 객잔이 그리 많지 않았고, 몇 가지 품목을 거래하지 않은 덕분이다.

“형남상회에서도 진가주조와 거래를 하셨군요?”

“진가주조와 거래한 지 얼마 안 되네. 바빠서 그러는데, 비켜주겠나.”

“아, 예… 죄송합니다.”

수백 동의 술을 실은 수레들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현욱은 느낌이 좋지 않았으나 애써 무시한 채, 주조장 안으로 들어갔다.

주조장 안에서 노인의 지시하에 십여 명의 장정들이 술을 빚고 있었다.

“정성을 다혀. 좋은 술이 그냥 나오능 게 아닝게.”

명주까진 아니라도 맛 좋은 술을 빚어내기로 유명한 곳답게 다들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현욱을 옷을 가다듬고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르신,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형주상단의 현…….”

“시방 뭐하는 겨! 나가! 얼릉!”

노인의 호통에 현욱은 쫓겨났다.

술을 빚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실수로 수십, 수백 동의 술을 버려야 할 수 있다.

그러니 노인의 격한 반응이 당연했다.

주조장 밖으로 쫓겨난 현욱은 노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 시진쯤 지나야 노인이 나왔다.

“아깐 죄송했습니다.”

“커험, 현 상회주님의 아드님 아닌감.”

노인은 진가주조의 주인인 진 노인이었다.

형주상회는 이미 상단이 되었으나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현욱은 더 정중하게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어르신. 이리 찾아뵌 건…….”

“미안혀, 그리 됙써.”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 노인의 말에 현욱은 당황하고 말았다.

차마 그런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진 노인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형남에 넘겨주기로 핵써, 그리 아러.”

“어르신!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형남에서… 5할 더 쳐준 겨.”

매입가를 5할이나 높였다는 말에 현욱은 당황했다.

5할이나 매입가를 높게 쳐주면 형남상회로서는 남는 게 없다.

그럼 주루와 객잔 등에 납품가를 높여야 하는데, 그들이 평소보다 더 비싸게 납품받을 이유가 없다.

그걸 형남상회가 모를 리가 없다.

제 살 까먹기란 걸 알면서 이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그걸 지적할 때가 아니다.

“저희도 매입가를 어느 정도는 조정할 수 있습니다!”

“…미안혀.”

“어르신! 어르신!”

어쩔 수 없이 현욱 역시 매입가를 조정할 의사를 밝혔다.

허나 진 노인은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들어갔다.

진 노인의 마음이 바뀐 건 돈 때문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  *  *

“멍청한 얼굴로 인사를 하는데,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 같더군요.”

형남상회의 곡 총관은 형욱과 만났던 일을 말하며 통쾌하단 표정을 지었다.

형주상단 입장에선 형남상회와 마찰 없이 잘 지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형남상회의 입장은 달랐다.

형주상단 때문에 형남상회로서는 거래처가 한정되었다.

그로 인해 커질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허허, 그리 되었는가?”

“이 모든 게 상단주… 아니, 련주님 덕분입니다!”

형남상회에 새로운 기회를 준 건 유씨상단의 새로운 주인 추원이었다.

그는 막대한 금력을 바탕으로 형주 일대의 많은 주루와 객잔을 사들였다.

그리고 형남상회가 납품할 식재료를 비싼 가격에 사주기로 약조했다.

덕분에 형남상회는 형주상단보다 비싼 금액으로 술 등 식재료를 매입할 수 있었다.

“이게 다 우리 형주상련을 위한 일인데, 당연한 일이지.”

“하하, 맞습니다! 우리 형주상련을 위함이지요!”

곡 총관은 기뻐하며 형남상회로 돌아갔다.

그만이 아니다.

오가미곡, 금하상회, 남양상단 등 형주상련의 일로 현유를 찾아왔던 이들 대부분 형남상회의 곡 총관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형주상단의 성장이 얼마나 눈꼴시렸겠는가.

형주상단의 입지를 깎아내고, 자신들의 입지가 그만큼 커져 가고 있다.

기쁠 수밖에 없었다.

유씨상단의 몰락으로, 형주상단이 새로운 욕받이가 된 것이다.

사람 좋은 표정을 짓던 추원의 얼굴에 조소가 어렸다.

“머저리들, 이제 다 제 살 까먹는 것도 모르고, 흐흐흐…….”

형주상련을 위함이라는 말도 안 되는 포장을 내세웠다지만, 남 좋은 일만 시키는 호구가 어디에 있겠는가.

형주 일대 상인들을 선동한 것도, 방해가 되는 형주상단을 압박하는 것도 모두 온전히 형주 상계를 집어삼키기 위함이다.

형주상련은 형주에 국한되지 않고, 호북 중부를 장악하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호북의 상권까지 집어삼킬 교두보가 되어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리 번거롭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 멍청하게 늪에서 허우적거려라.”

*  *  *

“헉… 헉… 헉…….”

연자광의 입에서 연신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호흡만 거친 게 아니다.

옷은 땀은 훔뻑 젖어 있었다.

“연 단장님, ‘고작’ 이 정도로 지친 겁니까.”

“아아악!!”

고작이란 말에 이성을 잃은 연자광은 이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법의 형(形)과 식(式) 따윈 잊은 지 오래였다.

그저 검을 몸에 맡겨 휘두를 뿐이었다.

분명 지쳐 제대로 휘두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으나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이 범상치 않았다.

후욱~!

허나 이백에겐 닿지 못했다.

그럼에는 연자광은 포기하지 않았다.

후욱!

훅~!

연자광의 검은 조금씩이지만 더 빨라져 갔다.

내공이 담긴 것도 아니고, 지쳐 강한 근력으로 휘두르는 것도 아님에도 말이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연자광은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검이 이백에게 닿기를 강하게 염원했다.

그 염원에 반응하듯 연자광의 눈빛이 번쩍였다.

훅!

이번 역시 이백을 베지 못했으나 그의 그림자를 벤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엔…장…….”

“하하, 축하합니다.”

짝! 짝! 짝!

연자광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백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로서는 이백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연자광은 자신의 검에 의지한 채 몸을 일으켰다.

“대체… 무슨 말…….”

“…벽을 넘으신 걸 말입니다.”

“……!!”

이백의 말에 그의 눈이 커졌다.

벽을 넘다니, 대체 누가 말인가?

허나 이백의 얼굴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벼, 벽을… 넘다니요. 제…가 정말…….”

“절영검법을 펼쳐보십시오. 내공을 담지 않으셔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절영검법(絶影劍法)은 그를 절영검객(絶影劍客)으로 불리게 만들어 준 형산파의 상승검법이다.

검법명에서 알 수 있듯 뛰어난 쾌검이다.

연자광은 설마 하며 검을 쥐었다.

훅!

쾌검으로 유명한 점창의 분광검법이나 귀림의 일점홍이 이럴까.

내공을 담지 않았음에도 검의 움직임을 눈이 쫓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9, 9성이라니…….”

연자광은 자신이 펼치고도 믿을 수 없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절영검법 7성의 벽에 멈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헌데 7성의 벽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단숨에 9성에 올랐다.

이는 그가 정말 절정지경에 올랐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8성부터는 절정고수만이 펼칠 수 있는 경지였으니까.

“절정고수가 되신 걸,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울컥했는지 연자광은 울먹거렸다.

재능을 인정받아 속가제자임에도 절영검법을 전수받았다.

허나 사문의 기대와 달리 그는 오랜 시간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호남을 떠난 호북에 정작한 것도 어찌보면 사문에 돌아갈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헌데 이제 숙원을 이루고 말았다.

오랫동안 묵혀 있던 감정이 폭발한 것도 당연했다.

연자광은 이제 형주 유일한 절정고수다.

자신이 없다고 한들, 형주상단을 지키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를 위해 이백은 연자광을 몰아세워 그의 한계를 넘게 만들었다.

이백이 그에게 약조했던 ‘그’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후우… 이제 나도 마음 편히 돌아갈 수 있겠네.’

그의 이런 마음과 달리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  *  *

쾅!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형주상단의 행수 조량은 분을 참지 못하고, 탁자를 후려쳤다.

매입처에 이어 납품처들까지 돌아섰다.

형주상련에서 형주상단보다 비싸게 사주고, 싸게 팔았다.

시장의 논리로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오랜 시간 쌓은 신뢰 덕분에 아직 형주상단과 거래를 해주는 곳이 많으나 그들 역시 언제 등을 돌릴지 알 수 없었다.

“진정하게 조 행수. 화를 낸다고 해서 바뀔 게 없지 않은가.”

“큭!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를 타박할 일이 아니었다.

조 행수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그저 분을 속으로 삭이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형주상단의 상황이 좋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그때 누군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 상단주님!”

“부행수, 이게 무슨 무롄가!”

다들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이기에 행수 중 한명이 언성을 놓였다.

현유는 좌중을 다독이며, 움찔한 부행수에게 말을 건넸다.

“급한 일이니 저러지 않겠는가. …무슨 일인가.”

“제, 제갈세가의 가, 가주님께서 오셨습니다!”

“……!!”

“……!!”

부행수의 말에 다들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형주상단이 이름을 알리고 있다지만, 제갈세가의 가주와 어찌 비교하겠는가.

연륜이 깊은 현유라고 다르지 않았다.

“가주께서… 어디 계시는가.”

“개, 객당에 모셨습니다.”

부행수의 말에 총관과 행수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단에서 제일 좋은 별채에 오셔도 시원찮은데, 객당이라니.

허나 외인이 상단에 방문하면 객당에 모시는 당연하니, 대놓고 질책하지는 않았다.

현유는 나직하게 말했다.

“백화각에 모셔… 아닐세. 내 직접 객당으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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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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