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형주상련(荊州商聯) (1)
“슬슬 일 년이 되어가나…….”
방립을 쓴 이백은 형주상단이 아닌 강가에 앉았다.
그가 형주에 온 지도 벌써 일 년이 되어갔다.
그러는 사이 형주상회는 빠르게 커져 갔고, 이젠 상단으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 상단호위단의 인원도 늘려 벌써 일백이 넘어섰다.
그조차 부족해 단원을 추가 모집할 정도였으니, 형주상단의 성장은 눈이 부실 정도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는 거 같은데…….”
이백이 형주상회에 온 건 그들이 상단으로 성장할 때까지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젠 상단으로 자리까지 잡았으니.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의지하는 게 형주상단이 자립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이유로 이백은 거리를 두기 위해 최근 잦은 외출을 하고 있었다.
“하… 난 낚시도 못 하겠네.”
이백은 휘어진 낚싯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끼도 달지 않은 빈 낚싯대를 걸어두었을 뿐인데, 물고기들이 몰려들어 바글거렸다.
생계를 위해 낚시를 하는 자들에겐 꿈 같은 일이건만, 시간을 낚으러 온 이백에겐 한숨만 나올 일이었다.
만수통령신공의 기운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짐승들이 몰렸다.
그러한 이유로 이백은 평소 기운을 갈무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평소에 짐승들이 몰리는 불상사는 면했지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느냐 방심한 사이 갈무리했던 기운의 일부가 새어 나온 모양이다.
이백은 물고기 몇 마리를 건져 설군에게 내어주었다.
싱싱하기 때문인지 설군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물고기의 뼈만 앙상해지자 그제야 이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자, 설군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군이 그의 품에 안겼다.
사실 그들은 이제 말이 필요 없는 사이였다.
이 말은 설군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히이잉~!
기다렸다는 듯 흑마(黑馬) 야군이 다가왔다.
비싼 말을 풀어 놓는 건 무척이나 어리석은 행동이다.
말이 홀로 도망칠 수 있고, 말을 노리는 말 도둑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허나 야군은 보통 말이 아니다.
애초부터 명마였는데, 이백을 만나고 예비 영수(靈獸) 자격을 얻었다.
일개 말 도둑 따위에게 당할 거라 생각하면 야군을 무시하는 일이다.
이백은 야군의 위에 올라탔다.
“그만 돌아가 보자꾸나.”
히이잉~!
이백의 말에 야군은 거친 콧바람을 내쉬며 달릴 준비를 했다.
형주상단에서 강가까지는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야군에겐 먼 거리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백은 가깝지 않음에도 이리 잦은 외출을 할 수 있던 것이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형주상단은 원치 않은 손님을 맞이했다.
* * *
“으음… 상련(商聯) 말입니까.”
현유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형주상단을 찾은 이들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제안이 나온 탓이다.
“우리 형주가 언제까지 촌구석 취급을 받아야겠습니까?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이곳 형주만이 아니라 호북 중부는 우리의 것이 될 겁니다!”
“맞습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쳐선 안 됩니다!”
그들은 믿는 구석이 있는지, 상기된 얼굴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허나 현유는 왠지 느낌이 좋지 못했다.
“기회라 하셨습니까? 이 일에 여러분 외에 도움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 그게…….”
현유의 물음에 그들은 아차 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그들을 뒤에서 부채질한 자가 있던 것이다.
형주에서 가장 많이 미곡을 다루는 오가미곡의 주인이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유씨상단에서 제안을 해왔습니다.”
“끙… 유씨상단 말입니까.”
오가미곡의 주인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유씨상단이었다.
얼마 전까지 형주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유씨상단은, 유경표의 투옥으로 인해 상당히 무너졌다.
그렇다고 한들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형주의 여러 상단, 상회의 압박에도 아직 버티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반대로 유씨상단이 쥐고 있던 상권을 야금야금 빼앗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헌데 저들의 입에서 유씨상단이 언급되니,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형주상단주님. 유씨상단의 주인은 더 이상 형주유가가 아니니까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유씨상단의 주인이 바뀌었단 말입니까?”
현유는 깜짝 놀랐다.
상단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유씨상단은 형주유가가 세웠다.
그런데 주인이 바뀌었다니, 현유가 놀라는 게 당연하다.
그런 그를 보며 금하상회의 상회주가 입을 열었다.
“추원 상단주께서 인수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생소한 이름에 현유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내심 당혹스러웠다.
유씨상단이 거대상단은 아니지만, 규모가 작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 상단을 이름조차 듣지 못한 자가 인수했다고 하니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형주 상계에서 나름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 흠뻑 빠져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추 상단주께선 소주(蘇州)에서도 큰돈을 만지시던 분입니다.”
“맞습니다. 이미 확인까지 마쳤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늘에 천당이 있고(上有天堂), 땅에는 소항이 있다(下有蘇杭)는 말이 있다.
소항은 절강의 항주와 함께 소주를 묶은 명칭이다.
이러한 말이 있을 정도로 소주는 중원을 대표하는 향락의 도시다.
술, 미인, 도박. 어느 하나 빠졌다면 어찌 향락의 도시라 칭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이유로 소주에 흐르는 금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소주에서 큰돈을 만졌다면 상단 한두 개 사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만 그게 왜 하필 유씨상단이냐는 것이다.
“그럼 형주상련의 련주는 추원 상단주께서 맡으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추 상단주께선 본 상련의 련주로 현유 상단주님을 추천하셨습니다.”
현유는 더욱 당혹스러웠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맡고 있는 상회와 상단은 규모가 크다 할 수 없지만, 형주상련의 이름으로 묶인다면 말이 다르다.
게다가 이곳에 모인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탄생할 형주상련은 거대상단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규모가 예상된다.
그런 형주상련을 세우려는 목적은 분명 그 힘을 가지기 위함일 수밖에 없다.
헌데 예상과 달리 추원은 련주의 자리에 본인이 아닌 현유를 추천했다고 한다.
“본인…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절대 손해 보실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이미 앞으로 펼쳐질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것일지 모른다.
정작 현유는 머리가 차가워졌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수많은 군상의 밑바닥까지 볼 수 있는 장소가 소주고, 그런 소주에서 큰돈을 만질 정도라면 보통 영악한 자가 아닐 수 없다.
헌데 남 좋은 일만 한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맡아주시겠지요?”
“으음… 조금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현유는 말미를 요구했다.
이 좋은 기회를 앞두고 무슨 말미가 필요한가.
그를 찾아온 이들은 어이가 없었다.
“커험… 상단주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시간을 드려야지요.”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어느 한 명 현유가 거절할 거라 생각한 자는 없었다.
체면 때문에 한 번 튕긴 것뿐이라 생각했다.
진심으로 고민하기에 형주상련은 너무도 먹음직스러우니 말이다.
그들이 모두 돌아간 후 현유의 얼굴이 굳어졌다.
“독이 든 줄 알면서 마셔야 하나…….”
* * *
“…거부하긴 어려운 제안이군요.”
“그렇다고 한들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유는 형주상단의 수뇌부를 소집해, 형주상련에 대해 전했다.
의외로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라고 형주상련이 가진 영향력을 예상치 못하는 게 아니다.
그저 오랫동안 현유와 일을 해왔던 이들이기 때문인지 다들 신중한 편이었다.
모두가 부정적인 반응인 건 아니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우리 형주상단은 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누군가는 맡아야 할 자립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추원 상단주께 내어줄 바에는 상단주님께서 맡으시는 게 더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들은 앉질 못해서 안달이건만, 형주상단에서는 계륵처럼 느끼고 있었다.
어느 누가 좋아서 남 좋은 일만 시키겠는가.
형주 일대의 상회와 상단주를 선동해 형주상련을 세우려 함에도 련주 자리를 내어준다?
내막이 있단 걸 모를 수 없었다.
현유는 갑론을박하는 동안 침묵하고 있는 이백을 바라봤다.
“호법님께서 고견을 주시겠습니까.”
“제가 무얼 알겠습니까. 경험 많은 상단주님과 행수님들께 좋은 결정을 내리시겠지요.”
이백은 대답 대신 한발 물러났다.
그 모습을 흡사 자신은 상관없다는 걸로 보여 행수들은 심기가 불편했다.
비록 이백이 상인은 아니지만, 형주상단의 호법인 만큼 이러한 행동은 거리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정작 현유는 고갤 끄덕였다.
“그렇군요….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예, 상단도 자리 잡았고 제가 없다고 해도 대처가 가능해졌으니 더 이상 밥을 축낼 수 없지요.”
이백의 말에 좌중은 깜짝 놀랐다.
거리를 두는 듯한 그의 행동이 불편했지만, 이백이 어떠한 존재인지 잊은 게 아니다.
형주의 터줏대감인 형주유가는 물론 구화당마저 무너트린 자가 바로 이백이다.
게다가 와룡상단, 일월상단과 줄을 댄 것도 그 때문이란 걸 다들 알고 있었다.
막상 이백이 떠난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났다.
“바, 밥을 축내다니요!”
“맞습니다! 저희가 서운하게 한 게 있다면…….”
총관과 행수들은 이백이 떠날까 노심초사하며 그를 말리려 했다.
허나 현유만은 달랐다.
“저희가 자립할 때가 되었군요. 바로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단장님께서 벽을 깨시면 돌아갈 생각입니다.”
이백의 말에 연자광은 깜짝 놀랐다.
벽에 막힌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절정지경에 닿지 못했다.
일류지경도 고수라 불리지만, 진정한 고수는 절정지경부터다.
“저, 저는…….”
“단장님께서 이미 자격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 계기가 없었을 뿐입니다. 그 계기, 제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고수의 작은 가르침조차 금과옥조와 다름 없다.
하물며 초절정고수가 도와주겠다는 건, 필생의 운을 다 쏟아부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이백이라고 무작정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연자광은 내공과 외공 모두 일정 경지까지 도달했다.
계기만 만나면 언제든 벽을 넘을 수 있는 상태다.
다만 그 계기는 언제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일각 후일 수도 있지만, 평생 못 만날 수도 있다.
“가, 감사합니다!”
* * *
“이걸 천문산장에 전해주거라.”
끼익!
이백의 말에 한 마리의 새가 고갤 끄덕였다.
전서구로서의 특별한 조련을 받은 새가 아니다.
이백의 앞에선 평범한 새조차 전서구로 탈바꿈된다.
백수통령술은 그걸 가능하게 만드니까.
쪽지를 다리에 묶은 새는 허공 위로 날아올랐다.
“답장이 올 때까지… 연 단장을 절정고수로 만들어 볼까?”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