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구화마검(九禍魔劍)의 최후(最後) (2)
‘이런 개 같은…….’
구화마검은 분통이 터졌다.
그 역시 이백에 대해 알고 있었다.
형주의 일이 몇 번이나 실패한 이유가 형주상회의 호법 때문이란 보고를 받았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자신의 상대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열어 보니 그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홉 재앙(九禍)을 부리는 마검(魔劍)이라 불리게 된 건, 그의 검에 스치기만 해도 그 부위를 마비시키고 종래에는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건 구화검법의 사기(邪氣)가 회복력을 방해하는 탓이다.
[사기가 침범했습니다.]
[혜안이 사기를 소멸시켰습니다.]
‘혜안이 아니었다면 위험할 뻔했다.’
혜안의 근원은 불완전한 신의 불꽃이다.
불완전하다고 해도 신의 불꽃은 항마(降魔), 파사(破邪)의 힘을 가졌다.
구화검법의 사기에는 그야말로 천적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이백이 아닌 다른 이라면 제법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썅! 그만 좀 뒈지라고!”
구화마검의 검에 눈에 보일 정도로 사이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사이(邪異)한 아지랑이들이 사방에서 이백을 조여왔다.
구화천형(九禍天刑).
구화검법의 절초로, 이에 당하면 흡사 나병에 걸린 것처럼 괴이하게 변하는 최악의 수법이다.
‘혜안을 믿긴 하지만…….’
이백은 혜안의 항마력을 믿지만, 굳이 감당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크아앙!!”
“큭! 으윽!”
강렬한 울부짖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만수군림의 음공인 포호(咆虎).
휘두르던 검조차 놓아버린 구화마검은 괴로운 듯 자지러졌다.
일대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으나 내공이 담긴 음파(音波)가 구화마검에게 집중된 탓이다.
호연신검 제갈현호가 그랬듯 구화마검 역시 내부가 진통되어 내상을 입고 말았다.
이백 역시 감수해야 했던 게 있다는 듯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포효는 생각보다 내공 소모가 큰 탓에 무작정 펼치는 건 좋지 않다.
이백도 살짝 지친 듯했지만, 내공 고갈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구화마검의 숨통을 끊기 위해 이백이 손을 뻗었다.
퍽!
이백이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오호~! 그 와중에 날 감지했다? 어이~! 구화마검, 아직도 생각이 안 바뀌었어? 그냥 뒈지게 냅둬?”
“죽여! 저 새끼 죽이라고!”
방관하던 취개가 움직였다.
구화마검이 죽으면 후아주의 행방을 알 수 없기에 살렸지만, 거기까지였다.
취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제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팠다.
“그럼 선불. 후아주의 위치부터 말해. 아니면 그냥 돌아간다.”
“이, 이 개…….”
의뢰를 맡기면서 거래가 성사되었다지만, 그 대상을 제갈현호로 못 박은 건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구화마검은 분노를 몸을 부르르 떨어졌지만, 취개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호연신검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먼저 죽게 생겼으니까.
“젠…장! 운태산(云台山)이다!”
“운태산? 어느 운태산을 말하는 거야.”
취개는 미간을 찌푸렸다.
중원에는 수많은 산이 존재했고, 운태산이라고 불리는 산도 하나가 아니었다.
가장 알려진 곳은 그나마 둘.
하남의 초작현과 강서의 연운항현에 위치한 운태산이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저 새끼 모가지 가져와.”
“흑도 나부랭이 새끼가 감히 노부와 장난하자는 거야!”
취개는 화가 났는지, 안 그래도 붉은 얼굴이 더 붉어졌다.
살기로 피부가 찌릿찌릿했음에도 구화마검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취개는 당장이라도 그의 머리를 후려치고 싶으나 후아주를 포기할 수 없는 한, 칼을 쥔 쪽은 구화마검이었다.
“…….”
“오냐, 한 번만 놀아나 주마. 허나 이번 한 번뿐이다. 또다시 배짱을 부리면 그땐, 모든 운태산을 뒤지는 한이 있어도 네놈을 죽여 버릴 테니까.”
성이 날 대로 나 있는 취개는 이백을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구화마검을 향한 분노를 그가 대신 받아내게 된 것이다.
초절정도 다 같은 초절정이 아니라는 듯 취개의 살기는 구화마검보다 더 섬뜩했다.
그는 이백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수 없다고 생각해라.”
쾅! 콰쾅!
주먹과 주먹이 충돌할 때마다 굉음이 울렸다.
두 사람의 주먹은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건 권기(拳氣)? 아니다. 바로 권강(拳罡)이었다.
간을 보거나 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제대로 임한 것이다.
“핏덩이가 어찌… 가능하지?”
“늙은 거지만 가능하다 생각했나.”
취개는 강했다.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그럼에도 이백을 상대로 승기를 잡지 못했다.
흑백쌍괴를 상대한 후 한 층 더 성장한 덕분이다.
“노부가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고, 애송이가 건방지구나.”
“사정? 늙은이가 추한 것도 모르고 기를 쓰며 달려드는 거 같은데?”
이백은 취개의 연이은 격장지계에 걸려들지 않고, 되려 도발했다.
그 역시 노련하기에 쉬이 걸려들지 않았으나 내심 불쾌한 듯 한 번씩 눈썹이 들썩였다.
평정심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니란 뜻이었다.
“오냐, 노부가 네 애비를 대신해 어른 공경이 뭔지 알려주마!”
취개의 주먹을 감싸고 있는 자색의 빛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그 빛은 흡사 한 마리의 용처럼 보였다.
자룡(紫龍)은 당장이라고 이백을 잡아먹겠다는 듯 성이 난 채, 달려들었다.
이백은 맞서지 않고 만수행공을 펼치며 피했다.
“흐흐… 추어(鰌魚) 같은 놈,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나 보자!”
취개는 이백에게 피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그의 발놀림은 빠를 뿐만 아니라 공간 활용이 매우 뛰어나, 이백은 피하느냐 급급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궁지에 몰려 있었다.
절호의 기회를 잡은 취개의 눈빛에 광기 어린 환희가 엿보였다.
자룡은 광폭하게 허공을 날았다.
탐욕스러운 입은 이백은 당장이라고 씹어먹을 거 같았다.
콰콰쾅!!
광폭한 자룡은 이백이 있단 자리를 초토화시켜 버렸다.
“애송아, 건방도 상대를 봐가면 떨었어야지!”
“아, 안… 돼!”
제갈혜원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너무도 애절해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먹먹하게 만들었다.
슬픔이 분노로 바뀌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갈혜원은 쥐고 있던 비수를 집어던졌다.
“이, 이익! 죽어!”
탄지신통이나 소리비도 따윈 잊었는지, 비수는 빠르나 결코 위력적이지 못했다.
그런 비수에 당하면 취개가 아니다.
그는 가벼운 손짓으로 자신을 향한 비수를 쳐냈다.
“그깟 걸로 노부에게 생채기도 낼 수 없… 큭!”
“이건 생채기 좀 났으려나?”
취개는 신음과 함께 튕겨 나갔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그를 본 제갈혜원은 소리쳤다.
“배, 백아!”
“진정해. 나 맞으니까.”
죽은 줄 알았던 이백이 생존. 그것도 멀쩡해 보였다.
그는 취개의 권강에 형체도 없이 죽은 게 아니었다.
취개의 권강이 닿기 직전에 피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튕겨 나갔던 취개가 일어났다.
“젠장, 방심했…….”
“설마 했는데, 진짜 개방 출신인가.”
이백의 말에 취개는 움찔했다.
그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았는지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취개는 냉소를 지었다.
“뭔 개소리지? 노부가 왜 그런 빌어먹을 놈들…….”
“홍무자염신공(洪武紫焰神功),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
냉소를 짓던 취개는 이백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홍무자염신공과 항룡십팔장은 개방을 대표하는 무공이다.
만약 취개가 두 무공을 익혔다면 개방 출신이란 걸 부정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아무리 개방이 거지들의 방파라고 한들 무공. 그것도 최상위 무공을 유추했을 리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항룡십팔장은 개방 용두방주의 독문무공이다.
설사 취개가 개방 출신이라도 해도, 항룡십팔장을 익힌 건은 이해하기 어렵다.
“감히 노부에게 누명을 씌우려 하느냐!”
“아무리 장법을 권법으로 바꿨다고 한들, 그 근원이 바뀌는 건 아니지.”
“닥쳐!!”
조금 전보다 더 강력한 권강이 이백을 덮쳤다.
허나 그는 취개의 권강을 흘려 버렸다.
맞받아친다면 그 위력에 의해 과도한 충격을 감내해야 하지만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이용해 흘려 버린다면 큰 피해 없이도 가능하다.
그렇게 흘려 버린 취개의 권강은 애꿎은 곳만 파괴해버렸다.
콰쾅!
“항룡십팔장… 무림십왕의 걸왕을 탄생시킨 신공절학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온전치 않은 상태로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지.”
“이, 이익! 닥치라고 했다!!”
쾅! 콰쾅! 쾅! 쾅!
이성을 잃은 취개는 권강을 마구 방출했다.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으나 이백을 해할 수는 없었다.
강력한 위력만큼이나 내공 소모가 심한 무공이 바로 항룡십팔장이다.
이를 생각지 않고 마구 방출했으니, 취개라고 멀쩡할 리가 없다.
내공 고갈이 발생할 정도로 무리하게 내공을 방출한 탓에 낯빛이 새하얘지고,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보였다.
“개방 출신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아. 남을 죽이려고 했으면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지.”
이미 한계에 봉착한 취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다.
허나 그게 착각이라는 듯 취개의 주먹에는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이백은 그 이유를 눈치챘다.
“허억 허억 닥…치라고… 했다!”
“선천진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선천진기(先天眞氣)라고 하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운이다.
후천진기라고 불리는 내공은 소모해도 회복할 수 있지만, 선천진기는 다르다.
한번 소모된 기운은 회복되지 않아 사실상 생명력을 소모한다고 볼 수 있다.
대신 같은 양이라도 내공에 비해 수 배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취개의 강기가 갑자기 몇 배가 강해진 이유다.
이백도 마냥 흘려 버릴 수 없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그의 눈빛이 차갑게 깊어졌다.
“후우… 외로운 늑대(孤狼)는 조심스러우나 한 번 물면 숨통을 끊어 놓지.”
이백은 자신을 향한 취개의 강기를 향해 손을 휘둘러 할퀴었다.
서걱!
그러자 흡사 하늘이 찢겨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고, 취개의 강기 역시 소멸되었다.
“쿨럭… 제, 젠장… 노, 노부는… 안 된다…는…….”
취개는 잠이 들 듯이 숨을 거두었다.
이백의 조법에 베인 탓이 아니다.
선천지기를 무리하게 끌어쓴 대가였다.
취개의 역린이 드러나자 결국 자멸하고 말았다.
그의 역린은 바로 개방(丐幇)이었던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절세고수의 죽음답지 않은 초라한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끝이 났다. 허나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자가 있었다.
“멈춰! 이 계집을 죽여 버리기 전에!”
“혜원아!”
제갈혜원의 목에 검날이 닿았다.
살짝 힘만 줘도 그녀의 연약한 피부가 찢기고 피로 물들 거 같았다.
제갈혜원을 인질로 삼은 자는 이 일은 원흉인 구화마검이었다.
이백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더 구질구질한 놈이구나.”
“흐흐… 구질구질해도 결국 살아남는 놈이 이긴 거야.”
구화마검은 초절정지경에 오른 강자이지만, 근본은 흑도(黑道).
살아남는 걸 최선으로 삼는 자다.
그러기 위해 수단과 방법 따윈 중요치 않았다.
“그건 살아남았을 때, 이야기겠지.”
“개수작 부리지 마라, 이년의 목에 입이 하나 더 생기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느낌이 좋지 않았는지 구화마검은 제갈혜원을 내세워 겁박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
이백을 신경 쓰느냐, 자신을 향한 검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구화마검은 제갈혜원을 방패로 삼으려고 그 검을 향해 그녈 내세웠다.
서걱!
“큭!”
허나 검이 더 빨랐는지, 구화마검의 어깨가 베이며 피가 솟구쳤다.
구속이 약해진 틈을 타 제갈혜원은 그를 밀치고 벗어났다.
뒤늦게 그걸 깨달은 구화마검은 어떡하든 그녈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썅! 놓아줄… 커억!”
“내 조카를 위협하다니, 네놈이 곱게 죽고 싶지 않았나 보구나.”
“으윽…! 네… 놈은 호연…….”
서걱!
말을 마치지 못한 구화마검의 머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선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제갈현호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호연대는 상관세가 형제들을 도와 적을 제압해라.”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