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구화마검(九禍魔劍)의 최후(最後) (1)
암기가 쏟아져나왔다.
아무리 무공에 자신이 있는 고수라도 해도 비처럼 쏟아 내리는 암기 속에서 무사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챙! 채챙! 챙! 챙!
허나 그런 우려와 달리 여인은 차분히 암기를 쳐냈다.
자신의 암기들이 족족 막히자 중년 사내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과연 소검후외다! 이번에도 막아낸다면 본인의 패배를 인정하겠소!”
중년 사내의 암기를 쳐낸 여고수는 사천으로 향한 소검후 이옥환이었다.
사천은 중원에서도 드세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매운 걸 즐기는 식성도 한몫하지만, 서장이나 신강의 마교가 중원에 침입했을 때 가장 격렬히 싸우는 격전지가 바로 이곳 사천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뛰어난 고수가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소검후가 난데없이 허공을 베었다.
채~앵!
중년 사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암기를 던지는 기색이 없었으나 실제로는 이미 쏘아냈다.
그걸 소검후가 놀랍게도 막아낸 것이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당 대협.”
“아직!”
스스로 뱉은 말이 있음에도 중년 사내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변명하려 했다.
허나 누군가의 따끔한 일갈에 고갤 들 수 없었다.
“갈(喝)!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거늘, 본가의 이름을 먹칠할 셈이더냐!”
“아, 아닙니다. 자명 형님.”
중년 사내는 검저유혼(劍低遊魂)이라 불리는 당자운이다.
당가주의 조카로, 다음 대 장로로 내정된 그인 만큼 가내의 영향력이 크다.
그런 그에게 호통을 칠 수 있는 인물은 사천당가에서도 손꼽힌다.
참관 중인 당가인들은 호통을 친 사내에게 예를 갖췄다.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그는 사천당가의 소가주 암천혈우(暗天血雨) 당자명이었다.
소검후와 보타암 제자들 역시 포권을 취했다.
“보타암의 제자 이옥환이, 암절(暗絶)께 인사드립니다.”
“보타암의 제자…….”
암천혈우라는 별호는 살기가 짙어, 정파인들은 그를 암절이라고 대신 부르고 있었다.
비록 독선이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아 소가주의 자리에 남아 있을 뿐 가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자명과 같은 항렬 중 그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의 고수가 없으니 말이다.
“본가가 소검후에게 못난 모습을 보였군.”
“아닙니다. 후배가 많은 걸 배웠습니다.”
동문서답과 같았으나 최선의 대답이기도 했다.
당자운의 편을 들어줄 수도, 당자명의 말에 맞장구를 칠 수 없으니까.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속세와 거리를 둔 불문의 제자답지 않은 노련한 대처였다.
“그럼 다행이군. 다음은 어디로 갈 생각인가.”
“확정한 건 아니오나…….”
당자명의 물음에 대답하던 이옥환은 멈칫했다.
그녀의 귓가에 항거할 수 없는 거인의 목소리가 들린 탓이다.
―북천(北川)으로 가보게. 흥미로운 이를 만날 게다.
“…북천으로 가볼까 합니다.”
생각지 못한 대답에 보타암 제자들은 물론 당가인들 역시 의아해했다.
당자명은 그녀의 대답이 바뀌었단 걸 눈치챘으나 되물을 수는 없었다.
“북천이라… 사천 십이대고수인 북천검(北天劍)이라면, 소검후가 관심을 보일만 하지.”
“…….”
이옥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리 생각했지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옥환은 당자명과 당가인들을 향해 합장했다.
“아미타불… 많이 배우고 돌아갑니다. 부처님께 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아미타불…….”
이옥환의 말에 보타암 제자들 역시 합장하며 불호를 읊었다.
용무를 마친 그녀들이 가내를 빠져나가자 당자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버님… 자꾸 소자를 모질게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는 알았다.
이옥환의 다음 행선지를 바꾸게 만든 게 독선이라는 것을.
* * *
“이거 곤란하게 되었어.”
상관벽의 중얼거림에 이백은 움찔했다.
혼자만의 중얼거림인 동시에 그에 대한 질책 아닌 질책이었던 탓이다.
전날 사라진 제갈현호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탓이다.
상관벽 역시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십 년이나 가로막던 벽에 의한 조바심. 그라고 모르겠는가.
허나 제갈현호가 이곳에 온 건, 구화마검 때문이다.
이백과 격돌한 이후 돌아오지 않으나 조바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대신 책임을 져줘야 하지 않을까 싶구려.”
상관벽의 말에 이백은 억울했다.
허나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이백이 응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로서는 억울하면서도 변명하기 어려운 웃픈 상황이었다.
“그건…….”
뭐라 해명하려던 이백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 타이밍, 누가 보면 짠 줄 알겠네.”
“타…이밍? 그게 뭔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상관벽은 어리둥절했다.
허나 이백은 그의 의문을 해소해주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을 풀었다.
“소개하지 않은 손(客)들이 오는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상관벽은 흠칫 놀라 기감을 넓혔다.
허나 그의 기감에 잡히는 건 없었다.
기감을 거두려고 할 때, 상관벽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 명이 아니군요, 초절정고수가…….”
“……!!”
불청객의 존재는 느꼈으나 초절정고수가 한 명이 아니란 말에 상관벽은 경악했다.
그는 내공을 담아 외쳤다.
“광풍십팔도객(狂風十八刀客)과 도혼단(刀魂團)은 불청객에 대비하라!!”
상관벽의 명을 들었는지 무관(武館) 내 흩어져 있던 상관세가의 고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백은 상관벽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먼저 나가 청하지 않은 자들을 맞이하지요.”
* * *
“체, 눈치챘군.”
소란스러워진 무관을 보며 구화마검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기습의 묘를 살릴 기회를 놓친 탓이다.
허나 아쉬워 보일 뿐 걱정스러운 눈치는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번에 투입된 인원은 구화당의 고수만이 아니다.
“놈들을 확실하게 처리해주시오.”
“걱정 말라고, 헌데 후아주의 위치는 언제 알려줄 거지?”
누더기를 입고 있는 노인의 말에 곁에 있던 사내들은 흠칫했다.
동시에 그가 이번 일에 개입한 이유를 깨달았다.
구화마검은 걱정 말라는 듯 달랬다.
“호연신검의 모가지를 건네주면 바로 알려줄 테니, 걱정 마시오. 취개.”
“그래야 할 거야. 날 속인 거라면 따이는 건 제갈 놈의 목만이 아닐 테니까.”
취개를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환한 미소였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게 만들었다.
허나 구화마검 역시 초절정에 오른 고수다.
위축되지 않았다.
“낭인막의 대금을 떼어먹을 미친놈은 없소, 취개.”
“흥! 두고 보면 알겠지.”
낭인막에게 계약은 최고의 가치다.
계약을 완수했음에도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낭인막은 처절한 보복을 행한다.
반대로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낭인 역시 낭인막에서 혹독한 처벌한다.
무(武)를 돈으로 판다는 낭인을 비웃으면서도 낭인막을 찾는 이들이 많은 이유였다.
그러는 사이, 구화당과 낭인들이 무관에 당도했다.
그들을 본 상관벽이 호통쳤다.
“얼마 전에도 노부의 종손녀를 노리더니, 뻔뻔하게 또 왔구나!”
“시작은 제갈세가와 너희가 먼저였거늘, 누굴 뻔뻔하다 하느냐!”
구화마검은 강하게 반박했다.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허나 그걸 인정할 상관벽이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리는…….”
“말싸움은 니들끼리 하고, 제갈 애송이는 어딨느냐? 빨리 모가지 베고 받을 걸 받아야겠다.”
나직한 목소리지만, 모두의 귓가에 들려왔다.
고수라고 어깨에 힘주는 자들도 감히 흉내를 낼 수 없는 수법이었다.
상관벽은 그제야 취개를 바라봤다.
“개방이 아니면서 이런 능력을 가졌다면… 낭인막의 취개인가.”
“알았으면 제갈 놈을 데려오너라.”
그제야 이백이 말한 초절정고수가 한 명이 아닌 이유를 깨달았다.
상관벽의 시선이 이백에게 향했다.
그러자 취개의 시선 역시 그에게 향하자,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파지직!
눈빛이 맞부딪친 순간, 불꽃이 튀겼다.
기(氣)와 기(氣)가 충돌한 것이다.
“이거… 재미있는데…. 이봐, 구화마검. 제갈 놈 대신 이 핏덩이 목은 안 되나?”
“…될 거라 생각하오?”
취개를 의뢰한 건, 만약을 대비한 것이지만 동시 제갈세가와의 악연에 그를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이렇게 그를 써먹을 수는 없었다.
“아쉬운데… 제갈 놈은 어딨어! 빨리 데려오라고~!”
상관벽은 안도했다.
다르게 말하면 취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취개 이외에도 낭인막의 천랑들까지 보여, 전력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그까지 나선다면 곤란한 건 상관세가였다.
그렇기에 속전속결로 고수의 수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꽈직!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뇌수가 터져 나왔다.
“계속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겠지?”
“미, 미친!”
언제 움직였는지 이백이 구화당 고수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그것도 일개 고수가 아닌 당주의 의제 도치(賭痴)였다.
단단한 두개골도 만악(慢鰐)의 악력을 버텨낼 수 없던 것이다.
경악한 도부(屠夫)가 이백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도신은 짧지만 폭이 넓은 도축도(屠畜刀)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는 섬뜩했다.
허나 그의 칼보다 이백의 손이 더 빨랐다.
채~애앵~!
퍽!
“개…같은…….”
“빌어먹을, 그걸 쳐내다니!”
도부는 자신의 가슴에 관통한 이백의 손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뜬 채 절명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 자는 도부만이 아니었다.
한 명밖에 남지 않은 의제를 미끼로 이백을 노린 자가 있었다.
바로 구화마검이다.
허나 이백은 도부를 죽이는 동시에 나머지 손으로 구화마검의 검면을 쳐냈다.
그 충격에 구화마검의 검로가 비겨나가 버린다.
완벽한 기습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애꿎은 의제만 죽게 된 셈이다.
“이런 썅! 죽여! 보고만 있지 말고 죽이라고!!”
“조, 존명!”
구화마검의 고함에 구화당 고수들과 낭인막의 천랑들이 움직였다.
물론 취개는 귓구멍을 후비며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그에 맞춰 상관벽 역시 세가의 고수들을 움직였다.
“본가의 칼이 얼마나 매서운지 모두에게 보여주어라!!”
“충!”
그렇게 양측의 일백여 고수가 충돌했다.
마구 달려드는 구화당, 낭인막 고수들과 달리 상관세가의 고수들은 몇 명씩 모여 대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상관세가는 상관벽을 제외하곤 광풍삼도(狂風三刀) 이외에 절정고수가 없었다.
광풍십팔도객 중 절정고수는 상위 셋뿐이고, 그 이하는 절정에 근접한 초일류고수였다.
게다가 도혼단은 그에도 미치지 못하다.
각처에서 고수들을 끌어모은 구화당에 비해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상관세가의 독문진법인 도혼진을 펼쳤다.
“큭!”
“커억!”
“무너지지 마라!”
전력은 열세였지만, 간신히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상관세가 최대 전력 상관벽이 천랑의 셋에 발이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지만, 나머지 천랑 둘역시 광풍십팔도객의 넷에 발이 묶인 탓이다.
허나 도혼진을 펼친 도혼단이 구화당을 상대로 버텨내지 못한다면, 이 균형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
헌데 의외로 균형이 먼저 무너진 쪽은 광풍십팔도객을 상대하고 있는 천랑 쪽이었다.
“질긴 놈들, 그만 뒤져라!”
이십일낭숙의 한 명이자 이도류(二刀流)를 익힌 일양월음도(日陽月陰刀)의 두 자루 칼이 허공을 갈랐다.
길이가 다른 두 자루의 칼 일양도와 월음도를 다루는 방식은 중원과는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양월음도는 왜구와 전쟁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긴 일양도는 공격, 짧은 월음도는 수비를 담당하지만 언제든 그 역할이 바뀔 수 있기에 흡사 둘을 상대하는 기분이 든다.
광풍십팔도의 하위 삼인을 농락하듯 상대할 수 있는 이유였다.
더 이상 놀아주지 않겠다는 듯 그의 월음도가 광풍십삼도의 목을 향했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광풍십삼도는 사색이 되었다.
서걱~!
“크윽! 아아악!!”
광풍십삼도의 목을 노리던 월음도가 허공을 날아갔다.
월음도의 도파에는 손이 쥐어져 있었다. 그의 손목 채로 베인 것이다.
일양월음도를 함께 상대하고 있던 광풍칠도, 십육도의 솜씨가 아니었다.
하얀 사신(死神)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크아앙~~!”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