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호연신검(浩然神劍)
“끄응…….”
제갈혜원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탕약의 약기가 손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간단치 않은 듯싶었다.
뜨거운 탕약에 손을 넣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매일 같이 손가락이 부르트고 찢어지니, 고통이 더 컸다.
상관벽은 만류했으나 식힌 탕약보다 열기가 있는 상태가 흡수율이 높기 때문에 고집을 부린 탁이다.
“하아…. 괴롭긴 하지만, 효과는 좋네.”
인내심에 한계가 왔는지, 제갈혜원은 약탕에서 손을 뺐다.
그럼에도 그녀의 손에는 아직도 열감이 남아 있었다.
제갈혜원이 사용하고 있는 탕약은 철심탕이 아니다.
이백은 철심탕을 얘기했지만, 상계에 이름이 높을 정도로 돈이 많은 상관세가의 상관벽은 여기에 새로운 약재를 더했다.
약재를 조금 바꿔 약효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피부 회복력을 높여주는 적설초(積雪草)를 섞어 탄지신통을 익히기에 적합한 손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약효가 아직 남았다 생각한 제갈혜원은 약탕에 다시 손을 넣었다.
“하아… 다시…….”
“가성(價性)은 떨어지지만, 확실히 효과적인 방법이구나.”
중후하면서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고갤 돌려본 제갈혜원은 약탕에서 급히 손을 뺀 후 고갤 숙였다.
“제갈혜원이 수석장로님을 뵙습니다.”
“되었다. 그리 어려워하지 말고, 당숙이라 불러라.”
제갈세가의 수석장로는 신산의 장남이자 현 가주의 친형, 호연신검(浩然神劍) 제갈현호다.
대총관의 여식으로서 가문의 어른들께 예쁨받는 그녀가 어려워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예, 당숙님.”
“진호에게 이야기 들었다. 몸은 괜찮으냐.”
어려워하지 말라 했으나 제갈혜원은 그럴 수 없었다.
전대 가주의 장남임에도 가주위를 잇지 못했다.
반대로 차남임에도 가주위를 이은 제갈윤호의 심복이 바로 그녀의 아비다.
제갈세가라는 이름으로 묶였으나 마음 편하기 어려운 관계일 수밖에 없다.
“걱정해주신 덕분에 멀쩡합니다.”
“허허, 이 당숙이 해준 게 뭐 있다고…. 탄지신통을 수련하는 게냐?”
제갈혜원은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가 급히 고갤 숙였다.
신산의 무(武)를 이었다는 제갈현호답게 상처만으로도 어떤 절기를 익히고 있는지 알아봤다.
당황하는 제갈혜원을 향해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손가락이 상할 정도로 열심히 수련하다니 보기 좋구나. 게다가 철심탕에 적설초라….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좋구나. 허허…. 꾸준히 한다면 분명 도움이 되겠지.”
“가, 감사합니다!”
제갈현호는 약향만으로 탕약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알려진 것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었다.
제갈세가가 아닌 다른 무림세가였다면 가주위를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관 장로께서 알려주신 비법이더냐?”
“그게…….”
제갈혜원은 그의 의도를 알지 못해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그녈 보며 제갈현호는 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너무 어려워하는 게 보여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괜찮다. 어렵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친우가 알려주었습니다.”
제갈현호는 의아했다.
제갈세가조차 생각지 못한 비법을 보유할 정도라면 범상치 않은 가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세가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은 자신도 제갈혜원에게 친우가 있단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친우? 어느 가문의 영애이기에 이런 비법을 아는 게냐?”
“영애가 아니오라…. 대공… 아니, 천기 오라버니의 의제이옵니다.”
제갈현호의 눈이 커졌다.
그 역시 제갈천기의 의제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흥미가 있던 차였다.
“이백이라는 사내더냐? 안 그래도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 당숙에게 그를 소개해줄 수 없느냐?”
“예? 그게…. 익일 언질해두겠습니다.”
당숙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은 가문의 일개 여식일 뿐이고, 상대는 비록 가주위를 양보했다고 한들 입김이 그 못지않은 수석장로이니까.
“쌍괴를 물린 친구라니… 기대가 되는구나. 허허…….”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흑백쌍괴의 일은 입단속 시켜 알려지지 않아서 제갈혜원이 알지 못했다.
허나 아무리 단속했다고 한들, 제갈현호의 귀까지 막지는 못한 듯싶다.
“아니다. 그리고 무리하지 말거라. 과한 건 언제나 탈이 나는 법이니.”
“감사합니다, 당숙님.”
제갈현호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곤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제갈혜원은 긴장이 풀렸다.
“소문만큼 무서운 분은 아닌 거 같으나…….”
잠깐 대면했을 뿐이지만, 제갈혜원은 제법 심력을 소모한 듯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제갈현호는 겉으로 엄함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다.
허나 마음이 단단한 자로, 대면하는 이로 하여금 무의식 중에 위축하게 만든다.
이런 이들은 대부분 군림자에 이른다.
제갈윤호만 아니라면 제갈세가의 가주에 손색이 없단 뜻이다.
“백이에게 해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 * *
“이야기 많이 들었소, 이 대협. 제갈가의 현호라 하오.”
강자를 존중하는 무림인답게 제갈현호는 아들보다 어린 이백에게도 예를 갖췄다.
단순히 전해 들은 것 때문만이 아니다.
초절정고수답게 이백의 경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분이… 그 호연신검이시구나.’
기운이 맑으면서도 깊은 게, 앞서 만난 제갈윤호나 금검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였다.
초면이긴 하지만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무림 백대고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세상에 와 가장 처음 들은 별호인 탓이다.
그러다 보니 호연신검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혜원이만이 아니라 천기 형님의 의제입니다.”
“허허, 어찌 그럴 수 있겠소. 이 대협이라면 존중받아 마땅하외다.”
제갈윤호 때와 달리 그는 쉬이 말을 내리지 않았다.
이백의 무위를 인정하는 동시에 친인(親姻)으로는 아직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대협께서 그게 편하시다면 그리하셔도 됩니다.”
“이해해주어 고맙소.”
혈족도 아니고, 세가의 가솔도 아니다.
쉬이 마음을 열지 못한다고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백은 그 배경이 알려지지 않은 고수다.
이백이야 특별한 의도를 가진 건 아니지만, 오대세가의 제갈세가다.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이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제갈현호가 선을 긋는 것이 당연했다.
“절 만나고 싶으시다 들었습니다. 혹시 하명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하명이라니, 당치 않소. 그저… 본인의 검이 좀처럼 나아가지 않아 이 대협의 고견을 듣고 싶어 찾아뵌 것이오.”
초절정지경에 오른 지 십 년.
아비인 신산보다 빠른 성취였다. 허나 정작 그다음을 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오성과 무재가 뛰어나 빠른 성취를 보였다.
너무 쉽게 경지에 오른 탓인가.
높고 두터운 벽을 넘지 못하고 십 년이나 정체했다.
오히려 퇴보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사실 제갈현호는 가주의 자리에 미련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벽을 뛰어넘는 것뿐이다.
지난 십 년간, 갖은 노력을 해왔으나 벽을 넘지 못했다.
“원하시는 게 비무입니까?”
“허락해주시겠소?”
알아주는 이백을 보며 제갈현호는 살짝 몸이 달아올랐다.
높고 두터운 벽을 느끼며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목숨은 건 생사결이었다.
초절정고수인 그가 목숨의 위협을 느낄만한 존재라면 결국 초절정고수란 뜻이다.
허나 초절정고수란 흔한 것이 아니며, 하나같이 커다란 배경을 둔 탓에 자칫 세가에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던 차에 이백에 대해 알게 되었다.
원래 이곳에 오는 건 금검이었다.
헌데 자청해 그가 직접 온 건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좋습니다. 허나 이곳은 적합하지 않으니 자리를 옮기시지요.”
“그건 상관없소.”
형주상회는 형주의 시가지에 위치했다.
초절정고수가 충돌하면 형주상회만이 아니라 주변에 큰 민폐를 끼치게 된다.
제갈현호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겼다.
챙! 채챙! 챙!
검과 손이 충돌했으나 마찰음이 들려왔다.
기(氣)로 보호된 손은 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제갈현호는 검을 거두며 말했다.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제대로 가겠소.”
앞서 나눈 이십여 합도 매서웠지만, 두 사람에겐 그야말로 인사에 불과했다.
그걸 증명하듯 제갈현호의 검이 은은하게 빛났다.
대천성신공(大天星神功)의 기운이었다.
제갈세가의 직계나 공로를 인정받은 일부만 전수받을 수 있는 신공이다.
대천성신공에 가장 어울리는 검법은 바로 대천성검법(大天星劍法)이다.
천문(天文)의 일가견이 있는 제길세가답게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깨달음을 얻은 신공과 검법이라 할 수 있다.
휘이익~! 휘이익~!
제갈현호의 검로(劍路)는 밤하늘의 별처럼 현묘하고 아름다웠다.
화려한 듯싶으나 환검과는 거리가 있었다.
강(强)을 담고 있는 우우(愚牛), 유(柔)에 산(散)을 담은 교후(巧猴) 역시 적합한 선택은 아니다.
“외로운 늑대(孤狼)는 사냥감을 동정하지 않지요.”
이백은 자신에게 쇄도하는 대천성검법을 향해 할퀴었다.
만수군림은 금나수(교후), 권(우우), 수(만악) 등을 담았지만, 그 중심은 청랑조법이다.
그저 상대를 상처 입히지 않고 제압하기 위해 고랑을 자제하고 있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제갈현호가 검에 담은 기운이 베였다.
서걱!
“크윽! …아직, 다 보여준 게 아니다!”
타의로 인해 내공이 소멸되어 버리면서 기가 역류되면서 내부가 진탕되었다.
수세 몰린 제갈현호는 더 이상 예를 차릴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허나 그의 말대로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듯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검에 기운을 담았음에도 조금 전보다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이백은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천지호연검법(天地浩然劍法)입니까.”
제갈현호를 호연신검이라고 불리게 만들어준 검법이다.
제갈세가의 검법 대부분이 천문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면, 천지호연검은 자연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연성한 자도 두 손 두 발에 꼽힐 정도로 적다.
도경(道經)보다 난해한데, 이를 마음(心)에 담아 검(劍)으로 표현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문무겸전의 기재만이 가능하다.
물론 성취를 보인 자가 없지 않다.
그저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을 뿐이다.
제갈현호는 그중 한 명이다.
그럼에도 이백은 두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차분해 의아할 정도였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더니 숨을 크게 마셨다.
“크아아앙!!”
“크윽… 컥!”
포효하는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울부짖은 건 설군이 아니다.
[‘포호’을 창안했습니다.]
[칭호 ‘(예비)종사’(2/5)가 되었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내공이 소폭 상승합니다.]
[오성이 소폭 상승합니다.]
[위엄이 소폭 상승…….]
[음공의 이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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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많은 원숭이(巧猴)에 이어 두 번째로 창안한 무공이다.
포효하는 호랑이(咆虎)는 적이 많든, 강하든 상관치 않고 그 기세를 꺾어 버리는 설군을 보며 깨달은 일종의 음공(音功)이다.
제갈현호와 이백의 경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런 그가 혼신을 담은 천지호연검법이다.
금나수로 제압하려고 한다는 건 오만이다.
되려 둘 중 한 명이 크게 다칠 수 있고, 재수 없으면 목숨도 위험할 수 있다.
“후우… 괜찮으십니까.”
“쿨럭… 과연…….”
내상을 입었는지, 제갈현호의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구화마검을 상대하기 위해 온 그이건만,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허나 정작 제갈현호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앉기도 힘든지, 벌러덩 누워버리곤 눈을 감았다.
단순히 지쳤기에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다음에는 쉽지 않겠는데…….’
제갈현호는 좌공(坐功) 대신 와공(臥功)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이백과의 격전에서 깨달은 바가 있던 것이다.
십 년의 정체(停滯)를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때 가까워지는 기척이 있었다.
허나 이백은 경계하지 않았다.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명.
그들은 이백의 수하가 아니다.
호연대(浩然隊).
제갈세가의 무력대라기보다는 제갈현호를 따르는 친위대에 가까운 이들이다.
그 수는 삼십여 명에 불과하지만, 어느 한 명 초일류검객이 아닌 자가 없었다.
그렇기에 금검대에 비견된다.
제갈현호를 그들에게 맡긴 이백은 형주상회로 돌아갔다.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