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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55화 (55/200)

55화. 인연(因緣) (2)

“음? 말도둑? 말도둑이 어디에…….”

여인의 목소리에 이백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허나 그의 시선에 말도둑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씩씩거리며 달려오더니, 이백을 향해 삿대질해댔다.

“이 말도둑 놈아! 어디서 모른 척이야!”

“나? 지금 본인에게 하는 말이시오, 소저.”

그제야 이백은 여인이 말도둑이라고 부른 자가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백을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을 훔쳐놓고, 아니란 말이야!”

“당신 말? 설마 야군이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삿대질에 반말까지 하니 이백이라고 예의를 갖출 생각이 사라졌다.

허나 이백의 말에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구운? 훔친 말에 이름까지 붙여? 어디 이런 뻔뻔한 놈이 다 있어!”

“다 큰 처자가 입이 거칠군. 게다가 아까부터 말을 함부로 하는데, 야군이가 당신의 말이란 증거가 있나. 안장은커녕 재갈조차 물리지 않았거늘.”

이백의 말에 여인은 얼굴이 굳어졌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주인이 있는 말(馬)이라고 주장하기에 야군은 아무런 장비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여인은 빽 소리를 질렀다.

“저 망할 놈의 말이 울타리를 넘어 도망쳤으니 그러지!”

“그랬다는 증거는?”

애초 오추마 정도의 명마가 주인도 없이 야생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어렵다.

그럼에도 이백은 여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백의 심기를 건드렸고, 무엇보다 계약까지 맺은 상황이다.

야군을 돌려주려고 한다고, 돌려줄 수 없다.

“이, 이 뻔뻔한 자식이!!”

“히이잉!!”

얼굴이 시뻘개진 여인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자 이백의 곁에 있던 야군은 앞다리를 들어 여인을 위협했다.

야군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여인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워~ 워~ 나는 괜찮으니, 진정하거라. 야군아.”

“푸득~ 푸득~”

흥분했던 야군은 이백의 말에 투레질을 하며 진정해갔다.

배신감을 느꼈는지, 여인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너, 너가 어떻게… 내게…….”

마장의 사육사들보다 야군을 더 돌봐준 사람이 자신인데, 딴 사람을 위해 자신을 위협한 행동이 몹시 서운한 것이다.

결국 고인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모습에 이백은 움찔했다.

‘이거 곤란하네.’

다른 때라면 사과하며 말을 돌려줬을 것이다.

허나 야군과 맺은 계약은 문서로 통해 이루어진 게 아니다.

그렇기에 난감해할 때, 다수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가씨! 어디에 계십니까!”

“혜원 아가씨! 위험합니다!”

그들은 눈앞의 여인을 찾으러 온 자들인 듯싶었다.

말괄량이 같은 행동과 편한 복장에 가려졌으나 귀티가 났다.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앗! 아가씨에게 떨어져라!”

“아가씨를 구해라!”

두 사내가 단숨에 여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뒤로 몇몇 사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있는 집안의 여인인 듯 호위무사들이 하나 같이 태양혈이 불룩 솟아 있었다.

그들은 이백을 향해 칼을 겨누며 여인에게 물었다.

“아가씨, 괜찮으십… 네 이놈!”

“이보시오, 어떤 상황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혜원이라는 여인이 눈물 흘리는 모습은 오해 사기에 충분했다.

이성을 잃은 호위무사가 이백의 말을 끊고, 다짜고짜 칼을 휘둘렀다.

“문답무용!”

“어이가 없군.”

후욱!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으로, 그 위력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백은 자신을 향한 칼을 보며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 모습에 아차 했는지, 또 다른 호위무사가 소리쳤다.

“강아! 안 되네!!”

“끄응!”

동료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호위무사는 급히 칼을 거두려 했으나 휘두르는 것보다 거두는 게 수배 어려운 법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 정도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자신들이 모시는 아가씨에게 무례를 저지른 자라도, 피를 보는 건 다른 일이다.

허나 피는 이백의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대단한 가문이기에 칼부터 휘두르는 거지.”

“크윽!”

이백의 차가운 목소리에 호위무사들은 물론 혜원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무사들은 움찔했다.

게다가 이백을 찌르려던 칼날은 그의 손가락에 잡혀 있었고, 도파를 쥐고 있던 호위무사의 손이 피로 물들어져 있었다.

공수탈백인(空手奪白刃)의 수법이었다.

그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고차원의 수법.

그제야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수를 건드렸다는 걸 깨달았다.

또 다른 호위무사가 조심스럽게 포권을 취했다.

“고인께 사과드리겠습니다.”

“해할 수 없으니, 이제야 예를 갖춘다라…. 더욱 궁금하군. 어느 가문의 법도가 이러한지.”

이백의 눈빛에 경멸이 어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이 아니었다면?

범부이거나 무공이 약한 자였다면 조금 전의 일도(一刀)에 죽거나 혹은 살았어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

참으로 비겁한 대처였다.

호위무사는 이를 악물고, 화를 막았다.

자신들만이 아니라 지켜야 할 존재가 곁에 있기에 경거망동한 행동으로 그녈 위험에 빠트려선 안 되기 때문이다.

허나 무사들에게 보호받고 있던 혜원은 그러하지 못하고 발끈했다.

“무공 좀 세다고, 지금 본가를 모욕하는 거야!”

“이제 뻔뻔하기까지? 좋다, 가문의 이름을 팔아봐라.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리도 방자한지 들어나 보자꾸나!”

이백의 말에 여인은 더욱 발끈했다.

무사들이라고 화가 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상대를 더 자극할 수 없었다.

공수탈백인의 수법은 상대보다 두 수 위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기예였다.

그들 중 수위를 차지한 호위무사보다 한두 수 위라면 자신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이익!!”

“왜? 이제야 좀 부끄럽나?”

이백의 도발에 혜원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 상황에서 정말 가문의 이름을 드러내면, 가문만 믿고 방자하게 구는 게 되기 때문이다.

분을 참지 못한 혜원은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럼에도 분한지, 눈물을 꾸욱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허나 이젠 이백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도 많이 화가 난 상황이었다.

“훌쩍… 말을 포기할 테니, 그만…해. 훌쩍…….”

“어이없군. 내가 야군이 때문에 핍박한다는 뜻인가?”

“훌쩍… 그럼, 아니란 말이야!”

분해 훌쩍이던 혜원은 소릴 빽 질렀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이백은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호위무사가 다짜고짜 칼을 휘두른 것 때문에 화가 나긴 했지만, 자신이 야군과 계약을 맺은 게 시초였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백이 입을 열려고 할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고정하십시오, 이 공자님. 저는 무영 27호라고 합니다.

-…혹시 아버님의…….

이백은 은밀하게 전음을 보낸 자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혜원을 보호하고 있는 무사 중 한 명이었다.

허나 평범한 무사가 아니라 제갈세가주의 비선인 무영대의 일원임을 깨닫자 머리가 차가워졌다.

한때 무영대 사이에 이백의 초상화가 돌았기에 그를 알아본 것이다.

-예, 맞습니다. 그리고 혜원 아가씨께선 가주님의 종질녀이십니다.

-……!!

무영 27호의 말에 이백의 눈이 커졌다.

제갈윤호의 종질녀라면 의형의 육촌누이란 뜻이기도 하다.

다르게 말하면 비아냥거렸던 가문이 제갈세가라는 의미였다.

마냥 믿어도 되나 싶으나 자신을 알아봤다는 것만 봐도 무영대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는 은밀하게 그녈 보호하고 있던 것이다.

이백으로서는 곤란해졌다.

그는 확인하고자 입을 열었다.

“소저…. 방명이 제갈…혜원이오.”

“알고 있었어…. 알면서 나를… 본가를 기만한 거구나!”

그녀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자 이백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제갈세가의 이름에 겁을 먹었다 생각했는지, 제갈혜원은 화가 났다.

제 가문의 이름에 겁을 먹을 거면서 그리도 자신을 핍박했나 싶었던 것이다.

“하아… 제갈세가를 모욕한 건, 아버님과 형님께는 따로 사과드리겠소. …미안하오.”

“아버님과 형님이 누군데 사과한다는 말이야!”

이백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말에 제갈혜원은 의아했으나 평소와 달리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왠지 이백에겐 울컥하는 마음이 든 탓이다.

“가주님과 천기 형님을 말하는 게요.”

“가주…님? 천기… 형님?”

제갈혜원은 뭔가 잘못되었단 느낌을 받았다.

천기.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본인은 이백이라 하오. 옥면기협이라고 불리는 제갈천기. 그분이 내 의형이외다.”

“거, 거짓말…. 처, 천기 오라버니께 의제가 있단 말은…….”

제갈혜원은 부정하려 했으나 말문이 막혔다.

비록 자신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행동했지만, 혜화(慧花)라고 불리는 그녀다.

수년 전, 제갈천기가 누군가 의제로 삼았다는 말을 들은 게 떠오른 것이다.

“…….”

“…….”

그 순간 그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어느 한 명 득이 될 상황이 아니기에 입을 열 수 없었다.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이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군을 돌려드려야 마땅 하나, 이미 본인을 따르고 있어… 차마 그럴 수 없소. 대신 셈을 치르리다.”

“…….”

이백의 수중에 금 이백여 냥이 있었다.

독안귀의 일로 형주유가에서 합의금(?)으로 받은 백냥과 그간 월봉을 거의 쓰지 않은 덕분이다.

말(馬)이 비싸다고 해도 몇 마리를 사고도 남을 만한 큰돈이다.

허나 그건 평범한 말의 경우다.

오추마와 같은 특별한 혈통의 명마는 부르는 게 값이다.

금 이백 냥으로는 턱도 없다는 걸 이백은 몰랐다.

제갈혜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 당신이 정말 오라버니의 의제라는 증거…. 증거가 있…나요.”

“…이거면 되겠습니까.”

제갈혜원은 차마 반말을 하지 못하고 말을 올렸다.

이백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철조각이었다.

특이한 점은 한쪽 면에는 용이 엎드린 모습이 새겨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와룡’이라고 적혀 있었다.

허나 그걸 본 제갈혜원은 물론 무사들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제, 제갈혜원이 와…룡패를 뵙습니다.”

“속하들이 와룡패를 영접하나이다!”

무사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제갈천기를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내어준 일종의 보은패였으며, 그 실상은 제갈세가주의 영부(令符)인 와룡패(臥龍牌)였다.

가주의 권위가 담긴 만큼 제갈세가의 일원으로서 예를 갖추는 게 당연했다.

“사과로 부족하다면 와룡패를 돌려드리겠소. 아버님… 아니, 가주께서 어떤 요구도 들어주신다 하셨으니…. 야군을 대신 받고 싶소.”

“말씀 거둬주십시오. 소녀가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말은… 야군은…. 데려가셔도 됩니다.”

그와 제갈윤호 사이에 어떤 약조가 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허나 와룡패까지 내어준 자다.

아무리 오추마가 귀하다고 한들, 금전을 요구할 수 없다.

이백은 야군을 갑질로 빼앗은 거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제갈혜원은 더 이상 말싸움을 할 상대가 아닌 탓이다.

와룡패를 거둔 이백이 나직하게 말했다.

“다시 한번 사과하겠소. 미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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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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