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무당(武當) (5)
“제자가 어리석어, 사부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혜검(慧劍) 송현.
단지 무당 장문인으로서 태극혜검을 익혔기에 붙여진 별호가 아니다.
그의 지혜로움을 대변했다.
그런 그가 검선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송현아, 네가 이 무당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니라. 그러니 자책하지 말거라.”
“제자가… 부족해 일어난 일이옵니다. 이 못난 제자를 벌하여주십시오.”
송현진인은 검선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청했다.
어린 시절 무당산에 올라 일갑자 넘게 살아온 집이다.
그렇기에 무당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고, 모두 같은 마음이길 바랬다.
그런 무당의 제자 중에 그렇지 않은 자가 있음이 괴로워 외면하려 했던 것이다.
괴로워하는 제자를 뒤로한 채, 검선이 항거할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대제자 일성. 이리 오너라.”
“소손 일성이, 검선 사백조님을 뵙습니다.”
흑백쌍괴가 죽은 이상 더 이상 꺼릴 게 없었으니, 일성도장은 당당할 수 있었다.
허나 검선의 눈을 피하긴 어려웠다.
“어찌 된 것이냐.”
“노괴들이 복마동에서 탈주해…….”
일성도장은 모든 죄를 흑백쌍괴에게 넘기려 했지만, 일갑자 반의 세월을 살아온 검선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죽은 제자들 중에 검상(劍傷)이 있더구나. 어찌 된 것이냐. 쌍괴는 분명 검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 그게… 저자입니다! 저자가 일허, 일암을 해치면서 시작된 일입니다!”
일성도장의 손가락에 젊은 사내. 이백에게 향했다.
그 순간, 모든 시선에 그에게 향했다.
그럼에도 이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사실인가.”
“아닙니다. 귀파의 제자들을 해한 건 그입니다.”
상반된 주장이 나왔다.
그로 인해 주변은 웅성거렸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면 다들 이백을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저자가 사제들을 해하고 노괴들을 구하려 했던 거 같습니다!”
이백을 향한 눈초리가 의심에서 적개심으로 바뀌어 갔다.
허나 모두가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
“저분은 오히려 저희를 구해주셨습니다. 오해가 있는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저희 구해주신 분이 저분인데…….”
흑괴의 흑염장으로부터 목숨을 건진 팔인(八人)의 도사들은 이백의 편을 들어주었다.
허나 무당칠자인 일성도장을 의심하긴 어려웠다.
그때였다.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진인.”
일성도장의 주장을 전면 부정하는 말이 나왔다.
이백이 아니었다.
그는 검선을 향해 예를 갖춰 인사했다.
“제갈세가를 맡고 있는 제갈윤호가, 무당의 전설을 뵙습니다.”
“반갑소, 제갈가주. 말이 안 되는 이율 알려주시겠소?”
검선을 필두로 무당의 고수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외인이 나서는 건 결례였다.
그걸 알면서도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윤호는 나섰다.
“그가 흑백쌍괴를 구하려 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흑백쌍괴를 제압한 자가 바로… 그이니 말입니다.”
“농이 지나치십니다, 제갈 가주님.”
일성도장은 이백이 제갈윤호의 일행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갈윤호가 무리수를 둔 거라 생각해, 오히려 잘 되었다 생각했다.
그의 허언 덕분에 이백에게 뒤집어씌우는 게 더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허나 제갈윤호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농이라니, 일성도장께선 본인이 무당의 진인들 앞에서 농을 할 사람으로 보이시오?”
“그게 아니라면 저 젊은 도우가 노물들을 제압했다는 말을 할 수 있소이까?”
무당파 제자들은 일성도장의 말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검선과 무당삼도가 있는 만큼 경망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할 뿐이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위축될 법도 한데, 제갈윤호는 왜 그가 제갈세가의 주인인지 알려주듯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이대로 그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생각했는지, 침묵하고 있던 이백이 입을 열었다.
“증명하라 하시면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저들이 이미 죽었으니까요.”
“저들이 죽었다고 말을 함부로…….”
일성도장인 이 기세를 몰아가겠다는 듯 이백을 질책했다. 정확히는 질책하다 말을 멈추었다.
이백의 손에서 유형화된 기운을 본 탓에 말을 이을 수 없던 것이다.
놀란 건 일성도장만이 아니었다.
“서, 설마 강기(罡氣)?”
“그럼 정말 저 젊은 도우가 초절정고수란 말이야!”
강기야 말로 초절정지경의 상징이다.
이를 본 무당파 제자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정파무림의 양대산맥이라는 무당파조차 고작 다섯만이 이룬 경지다.
이백의 강기가 밝고 선명한 것이, 무당칠자의 수좌인 일원도장보다 성취가 높다는 걸 알려주었다.
무당의 이대제자 뻘의 젊은 청년이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거, 거짓말! 진짜 강기일 리 없어! 사술(邪術)… 그래, 사술이구나!”
“무례하구려. 그는 본 가주의 의자(義子)외다. 그를 더 이상 폄하한다면 본가를 무시하는 걸로 생각하겠소!”
제갈윤호의 말에 주변은 다시 한번 놀랐다.
범상치 않은 자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제갈세가주의 의자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당황한 일성도장은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실언을 하고 말았다.
“이제 보니, 너희가 본파를 기만하려 하는구나! 사조님, 저들을 두고 보시면…….”
“그분은 본각의 은공이시기도 합니다. 그 이상의 무례는 관망하지 않겠습니다.”
이백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인들의 무리였다.
그녀들은 한 명을 제외하곤 비구니였다.
비구니의 문파로 유명한 곳은 사천의 아미파, 산서의 항산파가 있으나 둘 다 아니었다.
그녀들의 기운을 알아본 검선이 나직하게 물었다.
“무량수불… 소검후, 그 말이 참이오?”
“그렇습니다. 진인. 저희가 형산에서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저흴 구해주신 분이 바로 은공이십니다.”
제갈세가주의 의자에 이어 검각의 은공.
그 배경이 범상치 않음을 넘어 무당칠자의 이름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무당의 이름을 빌려 압박하려 했다.
“그렇다고 한들, 저자가 사제들을 해친 게…….”
“아, 닙니다. 저흴… 공격한… 건…. 일성, 저… 쿨럭…….”
“……!!”
죽은 줄 알았던 일암이 살아 있었다.
그대로 절명한 일허와 달리 일성도장의 검에 심장이 완전히 찢겨지지 않은 덕분에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허나 그 역시 회생은 어려워 보였다.
일암의 고발까지 이어지자 일성도장은 사색이 되었다.
“사, 사제 정신 차리게. 이, 일암이 충격이 커 헛소리를 하는…….”
“갈(喝)!”
일성도장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자 검선이 호통을 쳤다.
그의 분노가 담긴 탓에 무당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내 이미 알고 있었느니라. 그렇기에 네게 죄를 시인할 기회를 준 것이거늘…. 끝까지 죄를 시인하지 않고 기만하려 하는구나!”
“으, 아아악!!”
두려움에 이성이 날아간 일성도장은 비명을 지르며 달렸다.
구름 사이를 노다닌다는 무당의 자랑, 제운종(梯雲從)답게 한순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에 장문인은 차마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제운종을 익힌 자는 그만이 아니다.
언제 움직였는지, 일원도장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성 사제, 이제 그만 정신 차리게!”
“다, 닥쳐!!”
일성도장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일원도장을 밀쳐내고 도망치려 했다.
일원도장은 이를 악물고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이 휘날리는 듯하더니, 어느새 일성도장에게 향했다.
무당의 또 다른 절기 태청산수(太淸散手)였다.
이를 알아본 일성도장이 기겁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가 펼친 건 무당 사대검학의 하나인 삼절황검법(三絶荒劍法)이었으나 그 기세가 날카롭다 못해 섬뜩할 정도였다.
검이 담긴 기운은 무당의 것과는 달랐다.
이를 본 일원도장은 태청산수를 거두고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허나 일성도장은 오히려 조소를 지었다.
“고작 태극권 따위로 내 검을 막아… 큭!”
퍽~!
일원도장의 손등이 일성도장의 검을 흘려서 검로(劍路)를 빗겨낸 후 복부에 일격을 가했다.
그 충격에 일성도장은 나가떨어졌다.
그야말로 이유제강(以柔制剛)의 표본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허나 일원도장도 쉽지 않았다는 듯 그의 손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선은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만이 아니라 삿된 걸 품고 있었구나. 무량수불…. 이 늙은 도사가 도우에게 부끄럽네.”
“아닙니다. 무당의 잘못이 아닌 그의 잘못이니, 진인께서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진정한 무당의 제자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량수불…….”
이백의 말에 검선은 도호를 읊었고, 장문인은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본 무당의 제자들은 눈을 질끈 감으며 속으로 도호를 읊었다.
한 명의 일탈로 남존무당의 이름이 먹칠했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하아…, 괜한 짓을 한 건… 아니겠지.’
혈겁으로 이어질지 모를 사건은 막은 것이나, 이백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이 일로 오히려 무당과 껄끄러워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 탓이다.
이백은 스스로를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불행을 자신이 해결해줄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돕고 싶을 뿐이다.
그때 이백의 귓가에 검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우, 내일 시간을 내주시겠는가.
* * *
“흐읍… 하아…….”
가부좌를 튼 채 기이한 호흡을 하던 장한의 눈이 떠졌다.
그런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 게 원하는 걸 얻은 듯싶었다.
“이게… 절정…인가.”
경지를 넘어설 때마다 보이는 게 다른 법.
일류와 절정에서 보이는 것 역시 확연하게 다르다.
괜히 일류와 절정이 나뉘어 분류된 게 아니다.
장한의 나이는 대략 이립 안팎밖에 안 되어 보였다.
이와 같은 재능은 무림신성(武林新星)이라고 불리는 구룡삼봉에 견줄 정도다.
정확히는 약간 손색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무림세가라도 무력보다 지력으로 유명한 제갈세가의 혈족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그는 검선의 검무를 보고 깨달음을 얻은 제갈천기였다.
“진인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진인!”
작은 도관(道觀) 밖을 나오자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검선이 보였다.
제갈천기는 그를 보고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얻은 게 있어 보여 다행이구나.”
“감사합니다. 진인의 가르침 덕분에 과분한 걸 깨달았습니다.”
그의 말에 검선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내 덕분이 아닐세. 자네가 얻을 때가 되었으니 얻은 것이니까.”
“아닙니다. 진인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후에나 얻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갈천기는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검선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 생각한다니 고맙네. 깨달음을 수습하느냐 피곤할 텐데, 그만 돌아가서 쉬게나.”
“예? 예…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진인.”
검선의 갑작스런 축객령에 제갈천기는 어리둥절했으나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곤 무당파 본파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오느냐, 수고 많았네.”
검선이 제갈천기를 서둘러 돌려보낸 건, 또 다른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검선이 그를 맞이하는 사이, 제갈천기는 무당파 본파에 당도했다.
* * *
“누구냐! 아, 제갈 도우셨군요? 어디 가셨다가 오신 겁니까?”
“그게… 답답히 바람을 쐬러…. 헌데 무슨 일입니까?”
무당파 본파로 돌아온 제갈천기는 왠지 모르게 예민한 무당파 제자들을 보며 당혹스러웠다.
동시에 자신이 자릴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물음에 무당파 제자는 대답하긴 주저했다.
허나 숨을 깊게 내쉬며 대답해주었다.
“하… 곧 아실 일이니 알려드리겠습니다. 장문인께서 물러나신다… 합니다. 무량수불…….”
“소, 송현진인께서 말입니까! 어찌…….”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장문직에 물러나는 게 이상할 일이 아니다.
수년 내로 물러날 거라고 다들 예상하고 있으니까.
허나 장문인의 생일축하연을 연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발표를 한단 말인가.
작은 중소문파의 수장이 바뀌어도 큰일인데, 정파무림에서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무당의 장문이 바뀐다.
이 일이 중원무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으나 작다 생각할 수 없다.
일성도장의 변절은 송현진인과 무당에 그만큼 상처를 준 것이다.
허나 지난 밤 무아지경 속에서 깨달음을 수습한 제갈천기는 그러한 사실까지는 알지 못해 당혹스럽기만 했다.
‘대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