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무당(武當) (4)
챙! 채챙! 챙!
사방팔방에서 검이 쇄도했다.
꾸준히 호흡을 맞춘 무당파 제자들답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칠성검진(七星劍陣)을 운용했다.
고수라고 한들, 무당파 제자들의 칠성검진을 버텨내긴 어려울 것이다.
허나 이백은 보통 고수가 아니다.
“미친! 이게 말이 돼!”
“치, 칠자(七子) 사형들이라도 이 정도는 아닌데…….”
개개인은 무당칠자만 못하지만, 다들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며 몇몇은 절정지경에 올랐다.
그런 그들이 펼치는 칠성검진은 무당칠자라도 상대할 수 있다.
헌데 이백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흡사 벽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 일성도장은 마음만 조급해져 갔다.
혈백환을 복용한 흑백쌍괴가 나오기 전에 피하지 않으면 자칫 휘말릴 수 있기에 당연했다.
“정신들 차리지 못…….”
“흐흐흐… 잡스러운 애송이들이 앵앵거리고 있나.”
원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자리를 피하기 전에 흑백쌍괴가 먼저 내공을 회복해 복마동을 빠져나온 것이다.
그들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일성도장은 소름이 돋았다.
단전이 봉한 상황에서야 건방지게 말했지만, 내공을 회복한 그들의 기세는 일성도장이 까불 수준이 아니었다.
“뭐, 뭐야! 복마동에 가둔 자가 있었던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당파 제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흑백쌍괴의 존재는 무당삼도와 무당칠자를 포함해 극소수만 알고 있는 상황인 탓이다.
흑괴는 일성도장을 보곤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까 건방 떨더니, 꼬라지가 재밌구나.”
“무, 무슨 소린가!”
사제, 사질들이 있는 상황이다.
자신이 내통하고 있음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
그런 그의 반응에 흑괴는 히죽거렸다.
“지랄하지 마라, 어차피 저놈들 모두 죽여줄 테니까.”
“본파를 무시하… 컥!”
흑괴의 일수(一手)에 무당파 제자의 가슴이 뚫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형제를 잃은 이대제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직 젊은 만큼 실전경험이 부족한 탓에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흥분한 무당파 이대제자들이 흑백쌍괴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놈~! 청각의 복수를 해주마!”
“그래, 모두 죽여 주마!”
흑괴의 손에서 검은 불꽃이 일렁거렸다.
그 어떤 것도 태워버릴 거 같은 탐욕스러운 불꽃이었다.
흑괴의 흑염장이 달려드는 무당파 제자들에게 방출되었다.
닿기도 전이건만, 살갗이 뜨거울 지경이었다.
그제야 무당파 제자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거마들이라는 걸.
[흑염을 흡수했습니다.]
[혜안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늦을 뻔했네.”
“네…놈은!”
간발의 차로 무당파 제자들은 흑염장에 전소되는 걸 면했다.
이백이 흑염장을 제어해 흡수한 덕분이다.
무당파 제자들은 자신들을 구해준 자가 조금 전까지 상대했던 괴한임을 깨닫고 당혹스러웠다.
허나 그들보다 더 감정이 격해진 자는 흑백쌍괴였다.
“흥분하지 마라, 흑괴. 시간이 없어. 저놈은 내게 맡기고, 자넬 말코들이나 정리해.”
“쳇!”
마음 같아선 직접 이백을 찢어 죽이고 싶지만, 자신의 무공과 상성이 좋지 않은지 그에게 통하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흑괴는 이백을 백괴에게 맡기는 걸 동의하고, 무당파 제자들을 맡기로 했다.
‘초절정 완숙의 고수라…. 쉽지 않겠어. 아직은…….’
그들은 초절정 완숙에 달한 고수들이다.
비록 혜안 덕분에 흑괴에게 이득을 봤지만, 아직 이백이 홀로 감당하기 어렵다.
긴장하는 이백을 보며 백괴가 이죽거렸다.
“그 괴물은 어디 갔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죽여주마!”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덮쳐왔다.
백괴의 성명절학 빙혼수다.
이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 모습에 백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흐흐 쥐새끼처럼 도망…….”
“크아앙!!”
그때 어디선가 맹수의 포효가 들려왔다.
백괴는 그 순간 움찔했다.
서걱!
베이는 소리와 함께 빙혼수의 극빙지기가 소멸되었다.
백괴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마리의 새하얀 고양이를 향해 얼굴을 구겼다.
“제, 젠장! 이 괴물이!”
백호(白虎) 설군이었다.
이미 한 번 크게 데인 적이 있는 백괴이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허나 한낱 미물에게 두려움을 느꼈다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 괴물아! 열려주마!”
* * *
“크아악!!”
“괴, 괴물…….”
무당의 자랑스러운 제자들이지만, 흑괴의 절대적인 강함에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전멸하게 될 것이다.
“흐흐… 그렇지. 이게 바로 나 흑괴지! 모두 죽어라!!”
십여 명이나 되었던 무당의 제자들은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었다.
나머지 역시 절망적이었다.
이미 탐욕스러운 검은 불길이 그들을 덮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르륵~
당장이라고 무당의 제자들을 잿더미로 만들 것 같던 흑염장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무당의 제자들은 맥이 풀렸는지, 주저앉고 말았다.
“사, 살았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그에 반해 흑괴는 미간을 찌푸렸다.
“음?”
[혜안이 흑염을 제어합니다.]
[흑염을 흡수했습니다.]
[혜안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후우… 조금, 늦었나.”
모습을 드러낸 이백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덟 명의 도사는 구했으나 이미 일곱이나 잿더미가 된 걸 깨달은 것이다.
그를 발견한 흑괴는 움찔했다.
“네…놈이 어떻게…. 백괴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자는 내 친구와 놀고 있지.”
흑괴는 흑백합일(黑白合一) 태극(太極)을 파훼한 하얀 괴물, 설군을 떠올렸는지 얼굴이 굳어졌다.
이백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틈을 엿봤다.
그의 이상한(?) 수법에 몇 번이나 속수무책으로 당한 흑괴는 긴장했다.
그때 이백이 난데없이 한 걸음 물러났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때 노인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무량수불…. 빈도에게 양보해줄 수 있겠는가.”
“그러시지요. 진인.”
낡은 도의를 입은 노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그의 존재를 눈치챈 이백은 당연하다는 듯 양보했다.
노진인의 정체를 눈치챈 건, 이백만이 아니었다.
“미…친, 말코 놈이구나.”
흑괴의 반응을 무시한 채, 노진인은 무당의 제자들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흑괴는 빈도가 상대할 테니, 본파의 제자들은 물러나 있거라.”
“제, 제자들이 사, 사조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노진인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다.
허나 무당의 어른임을 짐작했는지 공손히 물러났다.
그럼에도 흑괴는 손을 쓰지 못한 채, 노진인만 경계했다.
무당의 제자들이 충분히 벗어나자, 노진인이 흑괴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일세, 흑괴.”
“젠장, 검선 말코만은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노진인의 정체는 바로 무당의 살아 있는 전설, 검선(劍仙)이었다.
그의 손에 검이 쥐여 있지 않을 깨닫고, 흑괴는 자존심이 상했다.
“검도 없이 상대하겠다? 오만한 놈.”
“허허… 마음이 바로 선다면 그게 검과 다를 게 무엇 있겠는가.”
“……!!”
검선의 말에 흑괴의 눈이 커졌다.
그의 말이 심즉검(心卽劍)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서, 설마 심검(心劍)!”
“허허… 우매한 빈도가 논하기엔 아직 먼 이야기일세. 그저 검에 구애받지 않음을 말하는 것일세.”
심검은 마음의 공부.
마음의 공부를 논하는 경지는 현경에 올라야 가능하다.
무림십왕은 물론 우내오존조차 화경의 끝자락에 있을 뿐 현경을 넘었다는 말이 없었다.
그러니 흑백쌍괴가 놀란 것인데, 우려와 달리 검선은 아직 심검의 경지에 오른 건 아니었다.
“무검(無劍)의 경지라고?”
“칫! 더 강해졌구나, 말코.”
무검(無劍). 말 그대로 무기에 구애되지 않는 경지다.
그것을 증명하듯 검을 쥐지 않았음에도 허공에 태극이 형성되었다.
무당의 전설, 태극혜검(太極慧劍)이었다.
“자네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려줘야겠네.”
* * *
“우웩!”
흑괴는 내상을 입고 피를 흘렸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흑괴가 강하다고 한들, 검선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흑백합일 태극이라면 약간 비벼볼 만하지만, 백괴는 설군에게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아니, 설사 흑백합일 태극이라도 장담할 수 없다.
검선(劍仙). 그가 중원무림의 전설인 이유다.
“순순히 협조한다면 목숨까지 취하진 않겠네.”
“지랄…….”
너무도 극명하게 결과가 나왔다.
흑괴 역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했다.
허나 순순히 따르기에 자존심이 상했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배후가 두려웠다.
배신자는 결코 살려두지 않는다.
그들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누군가. 자네들의 뒤에 있는 자가. 그리고 무얼 노리는 겐가.”
“…….”
검선의 물음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입을 여는 순간, 당장은 검선의 손은 피할지라도 더 두려운 공포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검선은 흑괴의 얼굴에서 공포를 감지하며 놀랐다.
흑괴만이 아니라 백괴와 함께라도 한들 자신을 당해내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이리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들이 이처럼 두려워한다는 건, 배후에 정말 어마어마한 존재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대체 누가 있기에 쌍괴, 자네들이 그리 두려워한단 말인가.”
“…네놈은 모른다. 그 괴물을…. 존… 크윽!”
두려워하던 흑괴가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았다.
급격히 얼굴색이 하얗게 질리는 게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검선으로서는 당혹스러웠다.
흑괴에게 들어야 할 게 있기에 마지막 순간 오픈의 힘을 거두었다.
내상은 몰라도 목숨이 위험한 정도는 아니다.
“손속에 사정을 두었거늘…….”
“네, 네놈… 우, 릴 속였구나. 두 시진이…라 하더…니…….”
흑괴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중얼거렸다.
검선은 그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그 너머로 향한 걸 깨닫고 고갤 돌렸다.
그곳에는 무당의 제자들이 있었다.
“설마… 본파에 내통자가?”
“일…성… 개…새…….”
뒤통수 맞고 죽는 게 억울했는지, 흑괴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일성도장을 언급했다.
그의 죽음은 내상 때문이 아니었다.
일성도장이 건네준 혈백환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혈백환의 지속시간은 두 시진이 아니었다.
고작 반 시진에 불과했다.
애초 그들은 제거 명령이 떨어졌다.
살수를 동원했다가 흔적을 남길 수 있기에 흑백쌍괴가 자멸하게 만든 계책이었던 것이다.
“백괴도?”
피를 토하며 죽은 건 흑괴만이 아니었다.
백괴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를 상대한 설군은 어느새 이백의 어깨에 올라타 있었다.
검선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제자 송현이 사부님을 뵙습니다.”
“제자들이 검선 사조님을 뵙습니다!”
이 난리가 났으니 아무리 무당파가 넓다고 한들, 모를 수가 없었다.
축하연의 주역인 장문인마저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검선은 나직하게 허나 위엄을 담아 말했다.
“무량수불… 애석하게도 본파에 다른 뜻을 품은 자가 있구나.”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