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무당(武當) (2)
무당산은 예로부터 많은 도인들이 수행을 쌓던 명산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기운이 청명한 덕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로 도가의 성지로 추앙받고 있었다.
그건 바로 무당파의 존재 때문이다.
북숭소림 남존무당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무당은 소림과 함께 정파무림의 양대산맥이다.
무당파를 찾는 이들은 언제나 많았는데, 오늘 유난히 더 많았다.
오늘이 무당 장문인의 생일 때문이다.
다들 선물을 한 보따리씩 준비해 오르고 있었다.
헌데 반대로 내려오는 자들이 있었다.
“헉! 저분들은! 무당칠자 아니신가!”
“어디! 어디! 정말이네!”
칠인(七人)의 중년 도장들을 보며 다들 놀랐다.
당연한 반응이다.
무당파 일대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칠인.
그게 바로 무당칠자(武堂七子)다.
특히 그 수좌이자 장문제자는 무당신검(武堂神劍)이라고 불리는 초절정고수다.
그런 그가 사제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하니 다들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반대로 한 무리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 제갈세가다!”
“무당칠자께서 어디 가시나 싶더니…….”
대문파의 장문인보다 더한 대우를 받는 무당신검과 그의 사제들이다.
헌데 제갈세가를 맞이하기 위해 산문 밖을 나온 것이다.
다들 질투 어린 시선으로 제갈세가를 바라봤다.
예상대로 무당칠자는 제갈세가 무리 앞에 멈췄다.
“무량수불… 오시느냐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부님의 명을 받고 모시러 왔습니다.”
“…일원도장, 오랜만이오.”
마차의 문이 열리며 초로의 사내가 일원도장의 인사에 대답했다.
그는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윤호였다.
무당산을 오르던 사람들 중 그의 얼굴을 알아본 자들은, 그제야 무당칠자가 움직인 이유를 납득했다.
제갈세가의 일개 대표도 아니고, 가주가 직접 움직였으니 무당칠자가 움직인 게 당연했다.
“예, 가주님.”
“짐이 좀 있는데, 마차를 끌고 가도 되겠소?”
제갈윤호는 짐이라 표현했지만, 일원도장은 그 의미를 깨달았는지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곤 뒷마차를 힐끔거렸다.
일원도장은 도호를 중얼거렸다.
“무량수불…. 사부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소. 금검대를 제외하곤 모두 산 아래서 대기하라.”
“존명!”
천성당 고수 일부는 보강에 잔류해, 금검과 소요자를 호위하고 있었다.
그 이외에는 전원 동행했으니 수십이나 되었다.
가뜩이나 붐비는 무당파 내에 그들까지 모두 대동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근접 호위를 맡을 금검대만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제갈윤호가 다시 마차에 타자, 일원도장을 위시한 무당칠자가 앞장을 섰다.
허나 그들의 기감은 뒷마차로 향했다.
그게 바로 그들이 산문 밖에 나온 이유라는 듯이.
* * *
“오느냐 수고 많으셨소, 가주. 장문 사형께서 바쁘셔서 이 늙은이들이 대신 나왔소. 섭섭하다 생각 마시구려.”
무당의 산문을 지난 제갈세가의 무리는 어디론가로 향했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고희쯤 될 법한 노도사들이었다.
제갈윤호는 그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섭섭하다니요? 오히려 더 뵙기 힘든 송암진인과 송광진인을 뵈었으니, 제가 오늘 운이 좋은 거 같습니다.”
“하하! 빈말인지 알지만, 이리 기쁘니. 빈도도 많이 멀었구려.”
십단금의 계승자 송암, 태청강기를 대성했다는 송광.
무당 장문인과 함께 무당삼도(武堂三道)라고 불리는 노진인들이다.
그 중 둘이나 나타났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다.
“쉬파, 어린 것들이 더럽게 말이 많네.”
“무량수불…….”
마차 안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내공이 느껴지지 않으나 목소리에서 악의가 느껴졌다.
마차의 문이 열리며 흑의흑발(黑衣黑髮), 백의백발(白衣白髮)의 노인들이 밖으로 나왔다.
“노부들이 왔는데, 혜검(慧劍). 그놈은 나와보지도 않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송광진인의 말에 흑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는 백괴도 다르지 않았다.
“네놈, 검선(劍仙) 그 말코와 함께 있었던 그놈이구나!”
“삼십 년 전인데, 알아보시겠습니까.”
송광진인의 말에 두 사람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흑백쌍괴가 무림에서 사라지게 된 계기가 무당검선 때문이다.
당시 그를 수행한 자 중 한 명이 바로 송광이었다.
“말코는 뒈졌나 보군. 보이질 않는 걸 보니.”
“무량수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숙께선 정정하십니다.”
그의 말에 흑백쌍괴는 움찔했다.
살짝 떠본 말인데, 가장 원치 않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송광진인 역시 흑괴의 의도를 알고 대답한 것이다.
무당파 내부. 게다가 검선의 건재.
내공을 회복한다고 한들,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애송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후회라시면…….”
“너 말고!”
흑괴는 송광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의 너머에 있는 어린 청년. 이백에게 한 말이었다.
허나 이백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시치미를 떼었다.
흑괴 역시 쪽팔린 지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대놓고 이립도 안 된 애송이에게 당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의외로 흑백쌍괴는 순순히 노진인들의 인도를 받았다.
그게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이제 별일 없겠지.’
무당삼도의 두 사람에게 인계했는데,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제야 이백도 안도할 수 있었다.
일원도장이 제갈세가 무리에게 말했다.
“쉴 곳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 *
“왜 이리 찝찝하지?”
이백은 홀로 무당에서 내어준 처소에 있었다.
금검 대신 왔다지만, 무당 내에서 제갈윤호를 해하려는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싫어하는 이백을 위해 그는 금검대 고수 몇몇만 이끌고 연회장으로 갔다.
그 직후 제갈천기 역시 용무가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물론 떠나면 이번에는 절대 어딜 가면 안 된다는 신신당부까지 했다.
“무당파 내에서 무슨 일이 있으려고?”
이백은 애써 찜찜함을 외면했다.
그렇다고 뭔가를 하기도 뭐 했다.
다른 곳도 아닌 무당.
괜히 오해를 받아 좋을 게 없다.
“안 되겠어. 확인만 하자. 확인만.”
찜찜한 이유를 확인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백이 직접 움직일 이유는 없다.
그에겐 자신의 눈과 귀를 대신할 방법이 있으니까.
이백이 백수통령술을 발휘하려고 할 때였다.
그의 품에 있던 설군이 폴짝 뛰었다.
“왜? 네가 다녀올래?”
이백의 물음에 설군이 고갤 끄덕였다.
설군이 직접 움직여주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설군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별일… 없겠지?”
그 시각, 제갈천기는 밀명을 수행하고 있었다.
* * *
“으음…. 무량수불…….”
서신을 읽은 노도사는 도호를 중얼거렸다.
낡은 하얀 도의(道衣)를 입고 있으나 노도사는 전혀 추레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저절로 경외감을 일어났다.
제갈천기는 그에게 방해가 될 때, 숨조차 조심스럽게 쉴 정도였다.
‘이분이 오존(五尊)에 가장 가깝다는… 검선이시구나.’
무림을 대표하는 존재는 무림십왕이지만, 그들보다 강한 존재가 없는 게 아니다.
그들은 바로 우내오존(宇內五尊).
화경의 끝자락에 달했으며, 현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절대자들.
허나 그들은 오래 외부활동을 하지 않아, 살아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그나마 사천당가의 독선(毒仙)이 건재함을 보이기에 우내오존이 허구가 아님을 알려줄 뿐이었다.
검선은 그런 우내오존에 가장 근접한 절대고수다.
괜히 무림십왕 중 수위를 차지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검선도 우내오존처럼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제법 오래되었다.
허나 제갈천기는 그가 아직 생존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느냐 수고가 많았다 들었네.”
“수고라니요. 총군사님의 명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수고는 엄청 했다.
흑백쌍괴에게 죽을 뻔했으니까.
허나 감히 검선에게 수고했다 말할 수는 없었다.
검선은 알겠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상자였다.
제갈천기는 검선에게 건네받은 작은 상자의 뚜껑을 열자 하나의 환단이 보였다.
“마음 같아선 태청단을 주고 싶으나 이를 대신하겠네.”
“서, 설마 소청단!”
무당파에는 두 개의 영약이 존재했다.
하나는 태청단(太淸丹)이고, 다른 하나는 소청단(小淸丹)이다.
소림에 대환단이 있다면 무당에는 태청단이 있다.
물론 대환단에 비해 약간 손색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결코 가볍지 않다.
제갈천기가 받은 소청단만 해도 소림의 소환단과 동급 취급을 받고 있는 영단이자 보물이다.
이조차 외부에 반출된 경우가 거의 없다.
외부는커녕 내부에서도 쉬이 주어지지 않는다.
삼신룡의 한 명인 무당신룡 정도나 복용했다 알려질 정도다.
그런 소청단이라니, 제갈천기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소청단이라면 막힌 벽을 뚫어질 것이네.”
“말…씀, 감사하나. 돌려드리겠습니다.”
제갈천기는 이를 악물고, 소청단이 든 상자를 내밀었다.
그라고 소청단이 탐나지 않은 게 아니다.
검선의 말처럼 절정을 눈앞에 두고 도달하지 못했다.
허나 소청단의 영험함이라면, 절정지경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양해야 했다.
“어찌 사양하는가.”
“저는 총군사님의 명을 수행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청단과 같은 보물을 받게 되면 오히려 그분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제갈천기의 말에 검선은 미소를 지었다.
“허허… 신산, 그가 손자를 제법 잘 키웠구나. 무량수불… 부끄럽네.”
“아, 아닙니다.”
검선의 말에 제갈천기는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그가 부끄럽게 말한 건 다른 이유였다.
“아닐세. 내 사손은 같은 상황에서 소청단을 거절하지 않았네. 그러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검선이 사손이라 칭한 자는 일원도장이 아니다.
일원도장의 제자이자 무당신룡이라고 불리는 청풍이었다.
그가 삼신룡이 될 수 있던 건, 소청단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욕할 게 아니다.
소림의 태룡과 남궁세가의 천룡 역시 그 못지않은 영약을 복용했고, 각파의 후기지수들 역시 차이가 있을 뿐 그만한 혜택을 받았다.
제갈천기라고 예외는 아니다. 소청단만 못하지만, 영역을 복용한 적이 있다.
그러니 이립의 나이로 절정의 눈앞에 둘 수 있는 것이다.
“민망할 따름입니다.”
“허… 어쩐다. 자넬 그냥 돌려보낼 수 없으니,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
검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손을 뻗자 나뭇가지 하나가 빨려들어 가듯 날아왔다.
허공섭물의 극치였다.
그렇게 나뭇가지를 쥔 검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강한 힘이 실리지도 않은 움직임이었다.
그저 자연스러움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제갈천기는 눈을 뗄 수 없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중 어느 순간, 제갈천기의 눈에 태극이 들어왔다.
태극(太極). 무당의 시작이자 끝.
검선이 휘두르던 나뭇가지가 멈췄음에도 제갈천기는 여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지금, 무언가를 얻었다.
단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고 있었다.
‘허허… 좋은 재목이로다. …그보다.’
깨달음을 수습하고 있는 제갈천기를 보며 흐뭇해하던 검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곤 연기처럼 그곳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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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