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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47화 (47/200)

47화. 융중혈사(隆中血史) (3)

“너, 너… 설마!”

장한은 자신보다 예닐곱쯤 어려 보이는 청년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당황했다.

삿대질에도 청년은 불쾌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장한이 자신을 보고 당황한 이율 알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의 성난 호통이 들려왔다.

“네놈! 네놈은 누구냐! 누군데 노부의 흑염장(黑炎掌)을 막아낸단 말이더냐!”

“워어~ 진정하게, 흑괴. …환동(還童)의 기인이신 듯한데, 어찌 속세의 일에 관여하려 하시오? 이제라도 물러나시면, 더 이상 속세의 일에 얽히지 않으실 것이오.”

이립도 채 되어 보이지 않은 청년이 강기를 감당할 수 없다.

오히려 반로환동의 기인이거나 나이를 먹지 않은 괴공을 익혔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

실제로 흑백쌍괴는 그러한 괴물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눈앞의 사내를 그 괴물과 동류라 생각했다.

허나 사내는 그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히려 장한에게 말했다.

“5년… 거의 6년만이군요. 형님.”

“저, 정말… 백 아우. 자네인가. 정말 자네란 말인가.”

제갈천기는 흑백쌍괴라는 노물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임을 잊고, 오직 이백만 바라봤다.

그런 그는 반가움과 미안함이 교차해, 이백의 눈을 피하고 말았다.

그 의미를 눈치챈 이백이 나직하게 말했다.

“형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형님의 가문이 어딘지 알면서 찾아뵙지 못한 우제(愚弟)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런… 말, 말게…. 우형이… 우형이…….”

제갈천기는 차마 말을 마무리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감정에 빠져버렸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흑백쌍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들이 무시당한 것도 어이없는데, 예상과 달리 기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청년임을 깨달은 것이다.

중원무림의 미래라는 삼신룡(三神龍)도 이 정도 괴물은 아니다.

대체 이 괴물은 뭐란 말인가.

“네놈이 괴물이라도 지옥의 불꽃(地獄黑炎)은 어림도 없지!”

지옥의 불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탐욕스러운 거대한 검은 불꽃은 모든 걸 불태워 버릴 기세였다.

그 지옥흑염이 자신을 향해 날아옴에도 이백은 두려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제갈천기를 자신의 몸으로 가렸다.

그때 이백의 눈동자가 황금빛을 냈다.

[혜안이 발동합니다.]

[‘지옥흑염’의 근원을 파헤칩니다.]

[‘지옥흑염’은 (불완전한) 신의 불꽃의 하위 속성입니다.]

[혜안이 ‘지옥흑염’을 제어합니다.]

“날 해할 수 있는 불꽃은 없다.”

모든 걸 먹어 치울 듯한 탐욕스러운 거대한 불꽃을 향해 이백은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본 흑괴는 조소를 지웠다.

어떤 짓을 하던 절대 지옥흑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나 세상에 절대(絕對)란 건 존재하지 않다.

다만 여태 천적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탐욕스러운 지옥흑염은 이백의 손에 닿은 순간 소멸되었다.

정확히는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지옥흑염을 흡수했습니다.]

[혜안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미, 미친! 마, 말도 안 돼!”

“…….”

경악하는 흑괴와 말을 잃은 백괴.

혜안의 근원은 불완전한 신의 불꽃(神火). 세상의 모든 불을 지배한다.

오직 ‘완전한’ 신의 불꽃만이 ‘불완전한’ 신의 불꽃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백이 흑괴보다 높은 경지에 오른 게 아님에도 천적이 될 수 있는 이유다.

허나 경악한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이를 지켜본 제갈천기 역시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던 것이냐.”

이백은 그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없었다.

그전에 백괴가 움직인 탓이다.

“흑괴, 정신 차려! 어떤 사술인지 모르나, 우리의 합공을 감당할 리 없다!”

“죽여, 버리겠어!”

흑괴의 눈빛에서 광기가 번들거렸다.

지옥흑염은 그의 자존심이다.

허무하게 소멸되었으니, 흑괴의 높은 자존심이 구겨졌다.

광기를 드러낼 정도로 화가 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백괴의 외침에 정신이 번뜩 차린 흑괴가 그의 뒤를 따랐다.

흑백쌍괴. 그들이 중원무림을 휘저을 수 있던 건, 개개인의 강함보다 합공을 통해 증폭된 가공한 힘 덕분이다.

하물며 이백은 그들 개개인보다 높은 경지에 오른 게 아니다.

불의 지배력 덕분에 흑괴의 천적이 될 수 있던 것뿐이다.

백괴와의 합공은 이백 홀로 감당할 수 없다.

이백 이전에 그들을 상대했던 것으로 추정된 초로의 사내는 부상이 깊어 보였으니 도움을 받기 어렵다.

그렇다고 제갈천기의 도움 역시 바랄 수 없다.

“영혼까지 얼려주마!”

백괴의 새하얀 손이 이백에게 쇄도했다.

그의 성명절학인 빙혼수(氷魂手)였다.

천마신교의 소수(素手), 북해빙궁의 빙백신장(氷白神掌) 외에는 적수가 없다는 절세빙공이다.

이백은 흑괴의 흑염장 때와 달리 뒤로 물러나며 그의 공격을 피했다.

백괴는 경험 많은 노련한 고수답게 이 일수(一手)만으로 이백이 흑염장과 달리 자신의 빙혼수에는 취약하다는 걸 간파했다.

이를 놓치지 않게 연이어 공격했다.

“빙혼환환수(氷魂幻幻手)!”

백괴의 손이 십여 개로 늘어났다.

빙혼수의 영향으로 생겨난 결빙을 통해 상대의 눈을 속이는 수법이다.

백괴의 경지가 높은 덕분에 고수라도 구분이 어렵다.

[혜안이 발동합니다.]

[‘빙혼환환수’의 근원을 파헤칩니다.]

신의 불꽃이 불(火)에 한해서 지배력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혜안의 통찰력이 화기(火氣)에만 통하는 게 아니다.

덕분에 이백은 쉽게 실초만 피해냈다.

너무도 쉽게 빙혼환환수를 피한 걸 보며 백괴는 당황했다.

“어떻게…….”

“비켜! 흑염난무(黑炎亂舞)!”

이어 흑괴가 흑염장을 난사했다.

쇄도하는 흑염난무를 본 이백의 눈동자가 황금빛을 냈다.

[혜안이 ‘흑염’을 제어합니다.]

[‘흑염’을 흡수했습니다.]

[혜안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혜안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혜안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백괴의 빙혼수와 달리 흑괴의 흑염장은 이백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혜안의 숙련도만 높여줄 뿐이었다.

또다시 자신의 힘이 맥없이 사라지는 걸 보며 흑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썅!”

“흑괴! 흑백합일로 가세!”

“젠장!”

짜증을 냈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반대할 수 없었다.

한 번이라면 우연일 수 있으나 두세 번 일어나면 우연이 아니다.

무력한 존재로 전락할 바에는 자존심 상하지만, 최후의 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흑괴의 검은 불꽃과 백괴의 새하얀 얼음이 그들 사이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상극의 기운이 만나면 반발하기 마련이다.

파지직! 파지직!

두 기운이 맞닿는 순간, 수십 수백의 미세한 불똥이 터져 나왔다.

반발하는 듯싶지만, 어느새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두 기운이 어우러질수록 기운을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다.

흑백합일(黑白合一) 태극(太極).

그들의 힘이 태극을 이룰 때,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크아앙!!”

군림자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리자 이제 태극의 형태로 나아가려던 흑백합일이 흔들려 버렸다.

그 충격으로 흑괴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큭!”

―버, 텨!

운기행공 중에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치명적이듯 흑백합일을 이루는 중에 방해를 받으면 안 되는 단점이 존재했다.

이를 대비해 여차하면 호신강기를 일으키는데, 음공(音功)은 예상치 못한 탓에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그때 하얀 섬광이 백괴에게 쇄도했다.

백괴는 이를 악물고 호신강기를 일으켜, 이어질 공격에 대비했다.

허나 무의미한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했다.

서걱!

“커억!”

“으악!”

백괴의 호신강기는 쉽게 베이며 소멸하고 말았다.

그 충격에 백괴의 기운이 날뛰기 시작했고, 균형을 이루고 있던 흑괴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말았다.

결국 흑백합일은 강제로 파훼되면서 두 사람 모두 깊은 내상을 입고 말았다.

이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건 이백이 아니었다.

설군이 해낸 것이다.

“크르릉, 크르릉, 크아아앙!!”

설군의 포효에 흑백쌍괴의 기혈이 진탕되더니 결국 의식의 끈을 놓고 말았다.

허나 두 사람 이외에는 누구도 쓰러진 자가 없다.

형주상회의 짐꾼과 형운표국의 쟁자수조차 두려움에 떨 뿐이었다.

이는 설군이 흑백쌍괴에게만 영향을 준 덕분이다.

제 역할을 마친 설군은 도도하게 걷더니 폴짝 뛰어 이백의 품에 안겼다.

“쩝, 시커먼 노인은 놔두지.”

어차피 흑괴의 힘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혜안의 숙련도를 높일 기회였다.

이백의 중얼거림에 불쾌했는지, 설군이 으르렁거렸다.

“크르응…….”

“노, 농담이야. 잘했어. 우리 설군이 멋져!”

찔끔한 이백은 쌍 엄지척을 했다.

그제야 기분이 풀렸는지 설군은 하품을 늘어지게 하더니 눈을 감았다.

간신히 설군의 기분을 풀리자 이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형님.”

*  *  *

“역시… 그날, 흑천회와 엮인 게 자네였군.”

보강에 당도한 이백은 상행 중인 형주상회와 헤어졌다.

약조한 장소이기도 했고, 제압되었다고 하지만 흑백쌍괴에 함께 있다는 게 그들에게 곤욕이었기에 객잔에서 잠만 자고 바로 떠났다.

그에 비해 이백 일행은 아직 보강을 떠나지 않았다.

내상이 깊은 소요자의 치료 때문이다.

대신 제갈세가로 서신을 보내, 무당 장문인의 선물을 보내오길 기다렸다.

“당시만 해도 몰랐습니다.”

“운이 좋았네. 흑천회가 비록 흑도이지만, 그 힘은 대문파를 능가하네. 그런 흑천회의 고수를 만나고 살아남은 것도, 자넬 구해준 은공을 만난 것도 어느 하나 운이 좋지 않은 게 아닐세.”

이백은 제갈천기와 6년 전의 일을 나누었다.

허나 모든 걸 밝힐 수는 없었다.

그간의 일들을 모두 밝히려면 천문산장은 물론 검모궁까지 설명해야 하는 탓이다.

결국 검모궁의 육선자를 이를 모를 기인으로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수년간 수련을 했고, 몇 달 전부터 형주상회에서 호법을 맡아 지내고 있습니다.”

“형주상회라면… 현유 상회주께서 계신 그 형주상회를 말하는 겐가?”

형주상회가 중원상계에서 미비한 존재일 뿐인데, 제갈천기는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융중과 형주가 가깝다 할 수 없지만, 제갈세가의 정보력은 만만하지 않다.

같은 호북의 일정 영향력이 있는 유지라면 파악하고 있는 게 당연했다.

제갈천기는 그런 제갈세가의 대공자이니 알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맞습니다. 운 좋게 상회주님과 연이 닿아서 말입니다.”

“그렇군. …그럼 앞으로 어쩔 생각인가. 평생 형주상회의 호법으로만 지낼 생각인가?”

6년 전, 이백의 가치는 청랑왕의 후신이었다.

허나 지금은 흑백쌍괴를 쓰러트린 괴물이다.

실제로는 설군의 역할이 컸지만, 애초 설군은 이백의 애호(愛虎)였다.

결국 이백이 흑백쌍괴를 쓰러트렸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일개 상회의 호법으로 남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물론 평생은 아닙니다. 다만 당분간은 형주상회를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알겠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게. 우형이 아직 대공자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힘이 없는 건 아니니 말일세.”

비록 소가주 시험 중이나 가장 유력한 인물이 제갈천기다.

정통성은 물론 능력, 인망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 이변이 없는 이상 소가주의 자리는 그의 것이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허세가 아니다.

“예, 도움이 필요하면… 음, 고수?”

“고수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이백의 입에서 고수라는 말이 나오자 제갈천기는 긴장했다.

지난 한 달간, 정체 모를 세력에 의해 몇 번이나 기습을 당했다.

게다가 흑백쌍괴까지…….

제갈천기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적은 아닌 거 같습니다. 형님과 기운이 비슷해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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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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