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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42화 (42/200)

42화. 흔적(痕迹)

주변을 살피던 장한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흔적이… 옅어졌군요.”

“그리… 말씀하셔도…. 신성한 곳을 더럽힌 채로 둘 수 없으니…….”

장한보다 서너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사내는 난처한지 안절부절못했다.

서나 살 정도는 차이가 큰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두 사람의 위치가 달랐다.

형산파 이대제자로 어디 가서 무시당한 위치는 아니지만, 장한은 무려 무림맹 소속이다.

그것도 군사부 소속의 소군사(小軍師)로, 총군사의 명을 수행 중이다.

그것만도 위축하게 만드는데, 소군사를 호위하기 위해 무려 무림맹의 호법까지 움직였다.

형산파 제자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

장한의 정체는 바로 옥면기협(玉面奇俠) 제갈천기였다.

안내역을 맡은 형산의 제자로서는 여러모로 불편한 입장이었다.

“하아… 이해합니다. 귀파의 입장에선 축융봉이 괴한들로 인해 더럽혀진 채 놔둘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갈천기라고 마냥 형산파의 대처를 책할 수는 없었다.

축융봉은 천제께 제(祭)를 드리는 신성한 곳이다.

그런 중한 곳에 괴한들의 시체와 피를 그대로 둔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문제는 그 과정에서 싸움의 흔적까지 옅어졌다는 점이다.

뒤늦게 무림맹 총군사의 협조 요청을 받았으나 그땐 이미 정리가 끝난 후였다.

형산파로서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오악검파라도 총군사의 심기를 건드리고 무사하긴 어려우니까.

물론 이 일로 형산파를 책망할 그가 아니었다.

제갈천기의 곁에 있던 초로의 사내는 무언가를 보며 히죽거렸다.

“호법님,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꽤 재미있는 흔적을 발견했다.”

그의 말에 제갈천기는 관심을 보였다.

발가락과 발 앞꿈치 윗부분의 자국으로 보였다.

희미하다지만, 보법의 흔적이란 걸 모르지 않았다.

떠오르는 게 있는지 제갈천기의 눈이 커졌다.

“……!!”

“허, 재미있는 보법이야. 이런 보법은 무림에서 흔치 않지.”

소요자가 흥미를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대부분의 보법은 발 앞꿈치 전체를 사용한다.

앞꿈치 밑에 위치한 용천혈(湧泉穴)이 보법의 위력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헌데 그런 이점을 포기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보법은 무림에서도 흔치 않았기에 두 사람 모두 희미한 흔적으로도, 떠오르는 보법이 있었다.

제갈천기는 다급히 형산파 제자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이곳에! 검각… 이외의 사람이 있었습니까! 정확히는 사내가…. 대충 이십 대 중반은 넘기지 않은 사내 말입니다!”

“예? 어, 그게…….”

제갈천기의 격한 반응에 형산파 제자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는 당황하는 와중에도 제갈천기가 말한 조건에 부합한 사내가 있었나, 골똘히 생각했다.

소검후의 백전비무행을 구경하기 위해 따라다니는 자만 수십여 명이었다.

그중에 이십 대 중반의 사내가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기억하는 것도 무리였다.

제갈천기는 초조한지 대답을 재촉했다.

“없었습니까? 분명 있었을 텐데…….”

“워낙 많은 분들이 오셔서…. 아, 그러고 보니 검각 분들께서 보증하신 분이 그쯤 되셨습니다. 성함이… 백수(百獸)! 백수라는 소협이셨습니다. 특이한 이름이라 기억이 납니다! 혹시 그분을 찾으십니까?”

형산파 제자의 대답에 제갈천기는 움찔했다.

그가 기대했던 이름이 아닌 탓이다.

제갈천기는 재차 물었다.

“백…수입니까? 정말입니까?”

“예, 틀림없습니다.”

확신에 찬 그의 얼굴에 제갈천기는 맥이 풀렸다.

그는 마음을 억지로 다잡았다.

이름이야 얼마든지 바꿔 말할 수 있다.

“그 백수라는 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 글쎄요… 저는 잘…. 검각 분들은 아실지 모르지만, 그분들 역시 본파를 떠나셔서…….”

유일한 단서마저 끊겼다.

그래서인지 제갈천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백 아우, 무사한 겐가…….’

지난 5년간, 제갈천기는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5년 전, 그날 이백을 찾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난 걸 후회했다.

제갈세가의 일개 대공자로서는 무영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후회만 할 수 없었다.

소가주 시험을 위해 무림맹 군사부의 소군사가 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군사부는 무림맹의 내부만이 아니라 무림 전체를 살피며, 혹시 모를 문제에 대비 및 대처하는 부서다.

당연히 휘하에 있는 정보부서 비각(秘閣)의 정보도 살필 수 있다.

비각은 자체 정보수집은 물론 개방의 정보까지 제공받는다.

제갈천기는 소군사로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비각 정보를 통해 이백의 흔적을 찾았다.

이백의 정보가 아닌 비각의 방대한 정보를 통해 그의 흔적을 찾는 게 쉬울 리가 없다.

그렇기에 5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이백의 흔적일지 모르는 단서를 얻었다.

그마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제갈천기는 힘이 빠지는 게 당연했다.

그때 형산파의 제자가 손뼉을 쳤다.

짝!

“맞다, 검각 분들께서 호북으로 가신다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괴한(마교)들로 인해 백전비무행이 잠시 중단되기는 했으나 잠정적이었다.

다시 백전비무행을 이어갔고, 다음 경로를 호북으로 삼은 것이다.

어차피 제갈천기 역시 호북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무당파 장문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명분이지만, 실제로 무당검선에게 제갈중경의 서신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예? 예… 그리, 들었습니다.”

“호법님, 호북으로 가죠.”

제갈천기의 충동적인 결정에 소요자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아는 제갈천기는 매우 이성적인 사내이기 때문이다.

소요자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총군사님의 명을 어길 생각인가?”

“그래서입니다. 이곳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테니, 직접 검을 맞댄 검각 분들을 통해 단서를 찾으려는 겁니다.”

딴에 틀린 말도 아니었다.

흔적이 훼손된 상황이니, 단서를 찾아내는 게 어려운 게 사실이다.

허나 소요자의 눈에는 그가 딴 목적을 품고 있다는 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소요자는 피식거렸다.

“좋네, 그리 하세나.”

소요자도 굳이 반대하지는 않았다.

제갈천기의 이런 반응이 저 묘한 보법 때문이란 걸 모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보법의 주인이 그를 이리 만들었다.

소요자 역시 보법의 주인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던 차이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백 아우, 자네이길 바라네.’

*  *  *

“상회주님, 상행이라니요. 좀 이른 거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호법님?”

당황한 연자광은 이백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상회주가 상행(商行)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상단에게 상행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형주상회는 말 그대로 상회다. 상단으로 발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행을 거론하는 건 너무도 성급하다.

다르게 말하면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천생 무인이라지만, 연자광 역시 상회 밥을 먹은 게 한두 해가 아니다.

상행이라니, 그가 보기에도 성급한 결정으로 보였다.

이백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저 역시 단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허나 백매상단과 줄을 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긴 어렵습니다.”

그제야 두 사람은 상회주가 상행을 서두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백매상단(白梅商團)은 섬서 상계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대형 상단이다.

게다가 화산파라는 든든한 뒷배까지 두고 있다.

매년 막대한 재물을 기부하고 한 세대마다 직계 한 명씩 화산파 속가제자로 키웠다.

화산파는 지속적인 기부금을, 백매상단은 그들을 등에 업으니 공생관계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런 백매상단과 거래를 틀 수 있다면 형주상회는 섬서 상계에 든든한 끈이 생기는 셈이다.

모험할 가치는 충분하다.

애초 이 기회를 얻기 위해 현유와 형주상회가 밤낮으로 고생했다.

그들의 고생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없다.

이백은 현유에게 물었다.

“이미 결정하신 듯하니, 왈가왈부해봐야 의미는 없을 테고…. 상행은 언제입니까?”

“보름 후라 보시면 됩니다.”

현유의 말에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놀랐다.

상행을 위해 준비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보름이라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아직 상행의 경험이 일천한 형주상회로서는 실수가 생기지 않을 리 없는 상황이다.

연자광은 당연히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너무 촉 박합니다. 아무리 백매상단에 줄을 댈 기회라 하지만… 착오라도 생기면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집니다.”

“알고 있네, 호위단장. 상행이 이제 막 결정되었으나 준비는 진즉부터 했네.”

보름이라는 촉박한 시간을 앞두고도 자신한 이유였다.

상단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상행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왔고, 그 결과물이 나왔다.

두 사람은 현유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다.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상행에 호위단의 인원을 차출해야 하니,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자넬 부른 것일세. 수레 15대 정도이니, 무사 스물과 짐꾼 스물 정도만 추리면 될 걸세.”

수레 15대 분량의 물자라면 절대로 적은 양은 아니다. 어떤 물자를 싣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성공만 한다면 상당한 이문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 상행이라 할 정도는 아니다.

거대상단의 경우는 이에 서너 배를 동원하니까.

반대로 형주상회에겐 수레 15대 분량도 쉽지 않다.

연자광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적지 않습니까? 그 인원이라면 유사시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맞네.”

의외로 연자광은 상행 규모에 대한 호위병력 규모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라고 놀고 있던 게 아니었다.

부관인 양진에게 상행에 대해 듣고 나름의 공부를 했던 게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인원을 늘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신 형운표국이 함께 가기로 했네.”

그제야 상회주가 병력을 줄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비록 대형 표국은 아니지만, 형주에서 3대째 이어온 표국이다.

상행이 처음인 형주상회에겐 좋은 조력자가 될 것이다.

형주상회의 호위단장으로서는 아쉽지만, 연자광이라고 상회주의 결정이 옳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으음… 알겠습니다. …제가 자릴 비우는 동안 상회주님과 상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호법님.”

“걱정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니까요.”

호위단 스무 명이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다.

이를 위해 새로 무사들을 모집한 것이고, 무엇보다 그들 모두 합친 것보다 강한 이백이 있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오히려 첫 상행을 떠나는 이들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백 호법님.”

“예, 상회주님.”

“유씨상단이 너무 잠잠한 게 걸립니다. 연 단장을 대신해서 신경을 써주시겠습니까.”

물자를 준비하고 점검하는 건 상인들의 몫이지만, 상행에 투입될 인원을 차출하고 대비하는 건 호위단장인 연자광의 몫이다.

그럼 결국 상회 경비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과연 늙은 생강이 맵다고, 유씨상단이 그냥 잠잠한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미 엄백과 원굉을 만남을 통해 배후에 유씨상단. 나아가 형주유가가 있음을 알고 있는 이백으로서는 고갤 끄덕였다.

“이미 조치를 취해 놨습니다.”

“역시… 감사합니다.”

형주유가의 불온한 움직임을 느꼈을 때, 이백은 짐승들을 통해 감시망을 촘촘히 강화했다.

그의 능력을 모르는 한, 결코 눈을 피할 수 없다.

그런 대비에 걸려드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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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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