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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39화 (39/200)

39화. 상단호위단(商團護衛團) (2)

“으라차차!!”

거구의 사내가 도끼를 휘둘렀다.

컁~!

도끼는 강괴(鋼塊)에 흠집 하나 새기지 못하고 튕겼다.

“으윽!”

“수고하셨소.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함께 일합시다.”

불합격 통보였다.

도끼를 쥔 사내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는지 씩씩거렸다.

그도 그런 게 강괴는 거푸집에 부어서 굳힌 강철 덩어리를 말한다.

형주상회는 이번 시험을 위해 수십 개의 철괴를 녹여 큼지막한 강괴를 만들어 시험 과제로 내놓은 것이다.

“아니 이게 가능한 일이야! 강괴야, 강괴! 못 부수는 게 당연하지!”

“부수라 하지 않았소.”

나직하게 말한 연자광이 검을 뽑았다.

이를 본 도끼를 쥔 사내는 움찔했다.

그 순간 연자광의 검이 허공을 베었다.

서걱!

강괴에 반치(半寸:1.5cm) 정도의 검흔이 생겼다.

“이 정도는 해야 함께 일할 수 있소. 양해 부탁하오.”

“아, 알겠습니다. 물론이지요.”

연자광의 말에 불같이 화를 내던 사내가 순한 양이 되었다.

검으로, 그것도 검기를 싣지 않은 상태로 강괴에 검흔을 남겼다.

도끼로도 아무런 흠집을 내지 못했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시험은 검력을 실을 수 있는 이류무사인지를 판별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검력을 실을 수 없다고 해도 강괴에 흠집을 낼 수 있다면 이류무사 대접을 해줄 생각이었다.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중이떠중이를 여럿 고용해봤자 유사시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단장님.”

연자광은 사내에게 불합격 통보를 했지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고수를 받긴 어렵다.

이류 수준에서 괜찮은 인재를 골라야 한다.

허나 이대로라면 정원도 채우지 못할 수 있으니, 연자광이 이 시험에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직 지원자가 많으니, 호법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연자광은 절정을 바라보는 무인이기에 자신보다 훨씬 위를 바라보고 있는 이백을 존중했다.

강자존(强者尊)의 법칙은 사마(邪魔)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그런 두 사람의 곁에서 초로의 사내가 묵묵히 앉아 있었다.

‘부단장에 걸맞은 자가 없네.’

이백과 연자광이 지원자의 실력을 본다면 무사장(武士長)은 그들의 지원서를 살폈다.

아직 합격자가 몇몇 없었지만, 그중에는 낭인으로 활약을 한 자도 있었고 호위무사의 경력이 있는 자도 있었으며 표사 경력이 있는 자까지도 있었다.

허나 형주상단의 호위부단장을 맡을 만한 경력의 소유자는 없었다.

서걱!

그때 강괴를 벤 자가 있었다.

그것도 무려 연자광의 검흔보다 무려 네 배나 깊은 두치(二寸:6cm)의 도흔이었다.

그럼 연자광보다 뛰어난 고수냐? 그건 아니다.

도객의 칼이 빛나는 것이 도기를 실어 강괴를 베었기 때문이다.

연자광이 검기를 담았다면 그 이상의 검흔을 남겼을 것이다.

허나 중요한 건, 이번 시험자가 최소 일류도객이란 점이다.

“합격, 표두 경력은 5년이나 되다니…. 앞으로 잘 부탁하오.”

“단장님이라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류도객에 표두 경력까지.

지금까지 합격자보다 훨씬 나은 인물이며, 무엇보다 부단장의 요건에 맞았다.

그렇기 때문인지 연자광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

허나 무사장의 얼굴은 상당히 굳어져 있었다.

시험자 역시 그런 그의 반응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임시 숙소를 내어줄 테니, 쉬고 계시오.”

“감사합니다. 단장님.”

두 사람이 안면이 있음을 눈치챈 이백은, 그가 사라지자 무사장에게 물었다.

“아는 자입니까?”

“아, 예… 예전에 조금…….”

무사장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백은 지원서를 살폈다.

형문파(荊門派) 출신에 표사와 표두의 경력까지 적혀 있었다.

비록 대문파는 아니지만, 상승무공을 보유한 형문파 출신이라면 일류도객이란 게 이상할 건 아니었다.

“무한표국이라면 무사장님께서 계셨던 곳 아닙니까? 그자의 실력과 성품이 어떻습니까?”

“실력은 보시는 것처럼 좋고, 윗사람에게 잘하는 친굽니다.”

얼핏 듣기로 좋은 평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아랫사람에 대한 평가를 피한 건 결국, 윗사람의 비위만 잘 맞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걸리는 점이 있었다.

“표사, 표두 경력이 이십 년을 안 넘는데, 몸담았던 표국만 넷이나 되는군요?”

“그를 못 본 지 십여 년이 된 지라…….”

무한표국에서만 칠 년이 되었을 뿐, 나머지 표국에선 삼 년을 넘지 못했다.

현대에선 이직을 통해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이 시대는 다르다.

표국을 자주 옮겼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연자광이 끼어들었다.

“혹시 문제가 있는 잡니까?”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무사장은 결국 대답을 회피했다.

그럴수록 의심스럽기만 했다.

허나 합격을 여부를 바꾸지는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퇴출시키기엔 실력과 경력이 아쉬웠던 탓이다.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  *  *

“양진, 어디로 도망쳤나 했더니 이런 촌구석이 있었군.”

강괴에 두치의 흔적을 남긴 사내, 엄백은 자신을 보고 얼어붙은 초로의 사내를 떠올리며 조소를 지었다.

형주상회의 무사장 양진.

두 사람은 무한표국에 몸담았던 시기만 겹치는 게 아니다.

그들 사이에 잊을 수 없는 악연이 있었다.

“당장 죽여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엄백의 눈에서 살기가 번들거렸다.

두 사람 사이의 악연이 생각 이상으로 깊은 탓이다.

그는 원한을 푸는 것도 미룰 정도로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입단 시험을 치렀다.

결코 좋은 목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잃은 내공을 되찾았을 리는 없고… 심사를 볼 정도면 제법 자리를 잡았다는 말인데…. 개소리를 하진 않겠지?”

원한을 가진 건 엄백만이 아니다.

양진 역시 그에게 큰 원한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한다면 앞으로 일에 귀찮아질 수 있다.

“그땐 네놈이라도 죽이고 돌아갈 수밖에…….”

빈손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도 억울하니 말이다.

허나 그렇다고 쉽게 손을 뗄 생각은 없었다.

이번 일은 그에게도 무척 중요한 탓이다.

“이번 일만 해결하면 무한표국의 표두 자리 따윈 잊을 수 있어.”

무한표국의 수석표사였던 그는 표두가 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이후 무한표국의 수석표사였단 이력을 이용해 중견급 표국에서 표두 자리를 맡았다.

허나 매번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옮겨 다녀야 했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났다.

절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엄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되겠어. 일이 틀어지기 전에 놈의 입을 막아야겠어.”

양진을 손보는 건 일이 끝난 후에도 상관없지만, 자칫 형주상회에 남지 못할 수 있다.

그럼 시도도 하지 못한 채 끝나게 된다.

다르게 말하면 보상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였기에 엄백은 조바심이 생겨났다.

그런 그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다른 일에 정신을 쏟고 있기 때문인지, 그는 자신을 지켜보는 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좋은 목적을 가진 자는 아니군.’

엄백을 염탐하는 자는 독안귀였다.

부상을 완벽하게 나은 건 아니지만, 운신에 지장이 가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이백의 요청에 따라 엄백을 감시했다.

헛수고가 아니라는 듯 수상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목적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 괴물을 간과한다면 후회하게 될 거다. 나처럼…….’

엄백이 밖으로 나가자, 그 역시 방에서 사라졌다.

*  *  *

“열다섯이라니, 내일이면 정원을 채울 수 있겠습니다.”

연자광은 한숨 돌렸다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합격자가 적었던 처음과 달리 서너 시간쯤 지나자 괜찮은 지원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일백이 넘는 지원자 중 열다섯만 뽑혔으니 쉽게 선별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정원을 채우는 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첫날 일백이나 되는 많은 지원자가 몰린 건, 형주상회가 인심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니 정식 상단으로 발족하기 전임에도 이리 사람이 몰릴 수 있던 것이다.

이백은 양진을 향해 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무사장님이 보시기에 부단장 감이 있습니까?”

“의창상단 출신의 범양, 복룡표국 출신의 유기, …무한표국 출신의 엄백이라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다만…….”

이백의 물음에 양진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세 사람 모두 상행 혹은 표행 경험이 충분해 보였고, 무려 일류급 고수들이었다.

이류무사들만으로 정원을 채우려던 예상과 달리 상당한 성과였다.

허나 양진은 뒷말을 흘리며 여운을 남겼다.

“계속 말씀하십시오.”

“…경력과 능력을 봤을 때, 꽤 좋은 인재들입니다.”

“그럼 좋은 거 아닙니까.”

“그런 인재가 한 번에 셋이나 나타난 게 우연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의 기우일 겝니다. 하하.”

양진은 기우일 거라 넘겼지만, 조용히 듣고 있던 연자광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그의 말에 왠지 모르게 와닿은 탓이다.

이백은 이미 의심하고 있었음에도 모른 척했다.

어차피 상단호위단장은 연자광이다.

그러니 자신은 그에게 상황만 인지시키면 되는 것이기에 이 상황만 유도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 역할이고…….’

결정은 그에게 건넸다.

상단호위단장으로서 연자광의 능력을 볼 때다.

“오늘은 이쯤하고 이만 쉬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이백의 제안에 세 사람은 해산해 각자의 거처로 향했다.

형주상회에는 경비무사들을 위한 숙소가 있다.

다만 가족이 있는 이들이 많아 대부분 외부에 거처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숙소를 사용하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허나 그의 방에는 이미 누군가 차지하고 있었다.

“음? 주인도 없는 방에… 하… 됐다. 무슨 일이지, 엄백.”

“놀랄 줄 알았는데, 의외군.”

반갑지 않은 아니, 만나고 싶지 않은 자였다.

양진과 악연인 엄백이었다.

그는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으나 눈빛만은 심상치 않았다.

“내게 할 말이 있으면 하고 빨리 돌아가라.”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딱딱한데? 그래도 옛정이라는 게 있는데…….”

옛정을 운운하는 엄백을 본 양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두 사람 사이에 옛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 오직 악의뿐.

그런데도 뻔뻔하게 옛정을 운운하니, 양진은 울컥했다.

허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감정을 추스르는 능력이 너무 뛰어났다.

“말해, 용건이 뭔지.”

“이곳에 자리를 잡았나 봐? 입단 시험관을 맡고.”

허나 아무리 감정 조절이 능해도 한계가 있는 법.

엄백의 뻔뻔한 태도는 아무리 양진이라도 참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언성이 높이고 말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용건이 뭐냐니까!”

“너야말로 쓸데없는 소릴 하지 않았겠지.”

엄백의 표정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허나 그렇다고 두려워할 양진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소리? 무한표국에서 표두가 되기 위해 수작질 부린 거? 아니면 쟁자수들에게 표사로 밀어주겠다는 거짓말로 돈을 갈취한 거? 그게 아니면…….”

“닥쳐!”

정곡을 찔렀는지 엄백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섬뜩한 살기를 뿜어냈다.

일류고수의 살기는 범부(凡夫)의 심장도 멈추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꾸준히 몸을 단련하고 있다지만, 내공이 없는 양진에게 이 정도 살기가 견뎌내기 버겁다.

결국 그의 입에선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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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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