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상단호위단(商團護衛團) (1)
“반보(半步) 정도 줄여보시오. …장 무사는 세 치만 더 깊게. 오 무사, 지난번과 똑같은 실수를 하는데 노력하지 않으면 더 이상 수련을 봐주지 않겠소.”
이백은 돌아다니며 상회무사들의 수련을 봐주었다.
상회주가 외출을 할 때 이외에는 상회에서 나갈 일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했던 일이 지금은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상회무사. 정확히는 경비무사들은 상회와 고용계약을 통해 맺어진 관계다.
그러다 보니 주어진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 이삼류무사들로 고수에 대한 열망보다는 현실에 안주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근무 시간 이외에는 술을 마시는 등 휴식을 취했다.
허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경비무사 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한 자들, 약간이나마 재능이 있는 자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수련을 했다.
운 좋을 때는 상회주의 호위무사들이 조언을 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백은 그들보다 더 정확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조언을 해주니, 시간이 흐를수록 수련에 참가하는 무사들이 늘어갔다.
“아이고! 백 호법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가 게으른 게 아니라 몸뚱이가 늙어서 그런 겁니다.”
“무사장님 앞에서 나이 이야깁니까?”
경비무사들 대부분이 삼사십대였고, 일부만 오십 줄에 있었다.
오 무사가 오십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이가 좀 있는 편이었다.
허나 이미 오십을 훌쩍 넘긴 무사장(武士長)에 비하면 젊다고 할 수 있다.
“어찌 저와 양 형님을 비교하십니까? 양 형님은 무한표국 수석표사 출신… 아, 죄송합니다. 형님.”
“아닐세. 이미 십 년도 더 된 일인데, 자네가 미안할 게 뭐 있나.”
창을 휘두르고 있던 무사장은 땀을 닦으며, 담담히 말했다.
무한표국은 호북의 성도 무한에 위치한 대형표국이다.
무려 중원십대표국에 꼽힐 정도로 신용과 세(勢)를 갖추어 웬만한 무림방파보다 큰 영향력을 가졌다.
그런 무한표국의 수석표사는 아무나 맡을 수 없다.
표사 경력 최하 10년의 경험과 일류급의 무위를 갖추어야 자격이 생긴다.
수석표사는 대부분 10년 내외로 표두가 되었다.
즉, 이렇다고 할 배경 없이 나름 탄탄한 길을 걸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는 현재 무한표국의 표두가 아닌 형주상회의 무사장이 되어 있다.
“호법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십시오. 무사장님.”
수련을 마친 아니, 중단한 무사장이 먼저 돌아갔다.
오 무사가 제 입을 손으로 때렸다.
“요놈의 주둥아리! 요놈의!”
“자자, 그만 쉬고 다시 수련하시오. 오 무사.”
이백의 말에 오 무사는 다시 검을 들었다.
다시 검을 휘두르는 오 무사를 뒤로한 채, 무사장이 떠난 방향을 바라봤다.
‘아까운 분이야. 부상만 아니었다면 형주상회에서도 중히 쓰이실 분인데…….’
상회는 미곡이나 비단, 차 등의 특정 물자를 일정 지역 내에 공급과 유통만 잘 이루어져도 운영에 지장이 없다.
허나 상단은 다르다.
다수의 물자를 보다 넓은 지역까지 공급, 유통해야 한다.
이를 상행(商行)이라 하는데, 상행 간의 물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표국에 의뢰를 하거나 자체 호위단을 조성해야 한다.
무사장은 그 호위단장에 적합한 인재다.
내공을 잃은 탓에 배제되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잃은 내공을 회복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
무림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는 곳이다.
찾아본다면 잃은 내공을 회복할 방법이 없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게 쉬웠다면 무사장이 포기했을 리 없다.
아까운 인재라 이백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눈에 익은 하인이 다가왔다.
“호법님, 상회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알겠네.”
이백은 상회주의 부름에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무사들을 말입니까.”
이백의 되물음에 형주상회주 현유는 고갤 끄덕였다.
“유씨상단의 도움 아니, 묵과해준 덕분에 몇몇 상회와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식 상단으로 창단하기 전에 상행을 호위한 무사단을 꾸리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당장은 표국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요.”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허면 얼마나 뽑으실 예정이십니까?”
이백이 당랑파나 독안귀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 현유는 상단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해, 필요한 곳에 괜찮은 이윤을 붙어 판매하는 게 상인의 일이다.
차익이 클수록 상인의 능력이 입증되는 것이다.
허나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상거래는 한계가 있는 법.
그렇기에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좁게는 인근 지역을 넓게는 성(省)을 오가며 차익 시세를 통해 거래하는 집단이 바로 상단이다.
같은 물자도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법.
가령, 넓은 평야를 보유한 지역에선 식량이 풍족하기에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다.
허나 광산 지역이나 바닷가 마을에는 식량이 비교적 비싸다.
그럼 평야의 지역에서 식량을 사서 광산 지역에 팔고, 광석을 매입해 또 다른 지역에 판매하는 게 바로 상단의 방식이다.
상회에 비해 상단의 차이가 큰 게 당연하다.
허나 장거리 상행이 필수적이기에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호위단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스무 명 정도면 어떨까 싶습니다.”
“적지 않군요.”
호위단을 만들기에 스무 명은 많다고 할 수 없다.
허나 기존 상회무사는 마흔이 넘지 않는다.
그 중 상회주 및 그의 가족을 호위하는 무사가 일곱이다.
경비무사는 서른 정도뿐이란 뜻이다.
거기에 스무 명이나 더 추가해 오십여 명이 된다는 의미이니, 지금의 형주상회로서는 과한 인원이 아닐 수 없다.
“예, 적지 않지요. 허나 앞으로 상단이 커질 걸 생각하면 그조차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그렇겠지요. 그럼 호위단장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나 앉혔다가는 잡음만 생길 수 있습니다.”
새로 고용한 무사는 기존 경비무사들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문제는 신구 세력의 인원 차이가 크지 않아 자칫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고, 하나로 묶을 수장이 필요하다.
“질서(姪壻:조카사위)에게 부탁했습니다.”
“연자광 무사님 말이군요.”
절영검객(絶影劍客) 연자광.
호위무사들은 대부분 무당파, 무한검문 등 호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연자광만이 유일하게 타성 출신이다.
오악검파의 하나인 형산파의 속가제자였다.
동시에 호위무사 중 가장 뛰어난 고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현유의 조카사위였다.
호남 출신인 그가 형주상회의 호위무사가 된 이유였다.
‘내공을 잃은 무사장님보다는 낫겠지.’
여전히 이백은 무사장이 아까웠다.
창술만 본다면 경비무사나 호위무사와 겨룰만하다.
허나 내공이 실리지 않은 창술은 반쪽짜리조차 못 된다.
하다못해 이류무사만 되어도 검력(劍力)을 실을 수 있다는데, 무사장은 오로지 근력으로만 창술을 펼치니 경비무사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기존 경비무사들은 무사장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그의 중재가 통한다.
하지만 기 싸움을 하려는 신규 무사들의 통제는 어려울 테니 이백으로서는 그를 추천할 수 없었다.
“백 호법께서 질서와 함께 심사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저와 같은 장사치보다는 무사들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실 테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다고도 할 수 없다.
현유는 일개 장사치라 불릴 만한 인물이 아니다.
전쟁터와 같은 상계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그라면 무공고수를 가릴 능력까진 몰라도 옥석을 가릴 안목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그는 이백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한발 물러났다.
물론 이백의 무위라면 굳이 현유가 힘을 실어줄 필요가 없다.
허나 호법이라도 해도 이백은 객의 입장이다.
겉돌지 않게 만들기 위한 현유의 배려이기도 했다.
이백은 그의 배려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보다… 상단호위단의 목적이 물자의 보호지, 외압의 격퇴가 아니지 않습니까. 적당히 중재할 수 있는 인물을 부단장으로 임명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피를 보게 되면 원한이 생기고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 땐, 오히려 좋지 않을 테니까요. 적당한 분이 있습니까?”
이백의 제안에 현유는 동의했다.
표국이 표행을 다닐 때, 통행세를 요구하는 산적 무리와 매번 싸우는 게 아니다.
적당한 통행세를 통해 완만한 협의를 이끌어낸다.
싸우게 되면 누가 이기든 피해를 입게 되고, 원한이 맺게 된다.
그럼 다음 표행에서는 더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그러니 적당한 통행세로 원만한 협의를 해야 하는데, 이를 맡는 게 경험 많은 표두다.
상행 역시 다르지 않다.
허나 연자광을 포함한 상회무사들에게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백은 이를 위한 부단장의 임명을 제안한 것이고, 현유는 그가 그만한 인물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사장님이 어떻습니까?”
“으음… 확실히 무사장님이라면 가능하겠군요. 다만 내공을 잃었다 들었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어차피 전투는 단장께서 맡으실 테니, 안 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질서와 논의해보겠습니다.”
연자광에게 상단호위단을 맡길 예정이기에 그에 관한 권한 역시 맡길 생각인 듯싶었다.
힘을 실어주려면 확실하게 밀어주는 게 낫다.
그렇기에 독단적인 결정보다는 단장을 통해 결정을 내리는 게 좋다고 판단 내린 듯싶다.
이백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형주상회, 나아가 형주상단을 이끄는 건 자신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 간의 이해관계 역시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을 강요해서 될 게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지…….’
* * *
“거절하겠습니다.”
연자광은 부단장의 임명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무사장을 찾아갔다.
허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무사장이 상단호위단의 부단장직을 거절한 탓이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부단장의 대우는 무사장의 자리보다 몇 배나 낫소.”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능력밖에 없고요.”
무사장이라는 지위는 특별할 게 없다.
혹시 모를 상회무사들의 분란을 중재하고 조율하기 위한 감투에 불과하다.
실제로 월봉 역시 타 무사들에 비해 은자 몇 냥이 더 많을 뿐이다.
그에 비해 상단호위단의 부단장은 월봉이 금자다.
그 외에 독채가 주어지는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대우는 부단장의 역할이 매우 중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본인이 싫다는데 강요하지 않겠소. 허나 대신 부단장이 될 자를 뽑는 일을 도와주었으면 하오.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겠소?”
“…부족한 능력이라 거절해야 마땅하나, 형주상회에서 녹을 먹는 입장이니 노력해보겠습니다.”
연자광은 딱히 그에게 미련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부단장의 역할은 충분히 공감했다.
검만 휘두를 줄 아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무사장 역시 십 년을 신세 지고 있는 입장에서 마냥 거절할 수 없었기에 부단장 선출을 돕기로 했다.
‘그래, 이 정도가 내게 맞아. 이 정도가…….’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