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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34화 (34/200)

34화. 상회(商會)의 호법(護法)

“현유? 내가 아는 그 현유 맞소?”

유 총관은 가볍게 말했지만, 받아들이는 혈당랑은 달랐다.

그의 눈이 커졌다.

그런 반응에도 유 총관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현유의 목을 노리는 이유를 아는지, 혈당랑이 나직하게 물었다.

“형주상회가 상단을 준비한다 들었는데, 그 때문이오?”

“남의 밥그릇을 뺏으려 할 때, 제 목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 총관의 나직한 목소리에 혈당랑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등골이 오싹했다.

혈당랑 역시 담담한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흑도 인물답게 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맞는 말이오. 헌데…. 형주상회주의 목이 고작 금 백냥이라니…. 셈이 부족한 거 같소만?”

“물론 형주 흑도의 대형이라 불리는 분께 어찌 금 백냥으로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현유가 죽었다는 게 확인되면 이백 냥 더 준비하겠습니다.”

은 한냥이면 4인 가족이 보름 먹을 수 있다.

금 한냥이 은 스무냥이니, 민가 한 가구가 근 1년 끼니 걱정하지 않게 된다.

금 삼백냥이라면 작은 마을 전체를 근 1년간 책임질 수 있으니, 얼마나 큰 돈이겠는가.

물론 평소 목에 기름칠하기 어려운 민가의 기준이니, 돈을 흥청망청 쓰는 혈당랑의 기준에선 침 넘어가긴 하지만 눈이 뒤집힐 정도는 아니다.

“형주상회주가 사람이 좋아서 친구가 많다 하던데…. 나중에 귀찮아질 수 있는데…….”

“…백냥 더. 총 사백냥이라면 귀찮음을 감수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독안귀의 솜씨라면 귀찮은 상황을 만들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한 번 더 튕긴 걸로 무려 백냥이 늘어났다.

형주상회가 상단으로 발돋움한다면, 유씨상단이 입은 피해는 고작 몇백 냥이 아니다.

그러니 필히 저지해야 한다.

그걸 아는 혈당랑은 조금 더 튕겨보려고 했다.

“그렇긴 한데…….”

“부담이 되신다면 다른 사람을 알아보겠습니다. 금 사백 냥이면, 일급살수도 고용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혈당랑의 수작에 놀아날 유 총관이 아니었다.

그는 내밀었던 금 백냥의 전표를 회수하려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자 혈당랑이 전표를 낚아챘다.

“허허 급하시오. 누가 안 하겠단 했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가 하루이틀 보는 사이도 아니고, 당연히 처리해드려야 않겠소.”

“이런 제가 오해할 뻔했습니다. 깔끔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만 믿으시오! 하하하!”

그렇게 거래가 성사되었다.

유 총관은 새 술상을 내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유지하고 있던 부드러운 표정이 차갑게 바뀌었다.

“천박한 백정 놈이 감히 누구에게 반말이야?”

흑도가 상인을 돈주머니로 본다면, 상인은 흑도를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백정 정도로 생각했다.

하물며 그는 형주의 터줏대감인 유씨상단의 이인자다.

혈당랑 따위가 반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이참에 싹 정리해주마.”

금 사백 냥. 일급살수도 고용할 수 있는 거금이다.

일급살수를 고용하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데, 유 총관은 일부러 혈당랑에게 의뢰했다.

형주상회주가 죽으면 유가족에게 혈당랑의 소행임을 흘릴 예정이다.

상회주가 죽는다면 그 재산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또 다른 흑도를 고용하던, 낭인을 고용하던, 아니면 살수를 고용하던 그들끼리 치고받고 제 살을 깎아 먹을 것이다.

둘 다 사라지면 좋고, 아니라도 그땐 힘이 빠진 이빨 빠진 상태일 테니 쉽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혈당랑에게 의뢰한 것이다.

유 총관은 비열한 표정을 지었다.

“다… 뒈져라.”

*  *  *

“저깁니다. 백 공자님.”

중년 무사는 어느 거대한 장원을 가리켰다.

입구에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적힌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荊州商會]

그곳은 바로 이백의 목적지인 형주상회였다.

이백은 품에서 전낭(錢囊)을 꺼내 잔금을 치렀다.

헤어지기 전, 삼선자에게 받은 전낭이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왕 보표님.”

“아닙니다. 그리 힘든 의뢰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은 틀린 게 아니다.

의뢰를 수행하다 보며 별의별 군상들을 다 겪어봤다.

그중에는 진상도 적지 않았다.

그들에 비하면 이백과의 동행은 너무도 편한 의뢰였다.

이는 이백도 다르지 않았다.

보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백은 왕 보표에게 많은 걸 배웠다.

길을 찾는 방법, 노숙하는 방법, 물을 찾는 방법 등.

천문산장의 식구인 엽사에게 배운 것과 일맥상통하면서도 방식의 차이가 있었다.

별거 아닌 잡기로 치부할 수 있지만, 유사시 매우 효용이 있는 것들이다.

물론 왕 보표가 직접 가르쳐준 건 아니다.

같이 지내며 그가 하는 여러 행동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것이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하하 다음 의뢰를 찾아봐야겠지요.”

보표는 어딘가 적(籍)을 둔 건 아니지만, 의뢰를 연결해주는 거간꾼이 존재한다.

그러니 다음 일거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그와 같은 실력 있는 보표라면 말이다.

“혹시 정착하실 생각이시면 연락 주십시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왕 보표와 같은 실력 좋은 인물이라면 가까이 두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허나 이백 역시 형주상회의 객으로 지낼 상황이니, 누굴 마음대로 고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제안을 하고 싶을 정도로 왕 보표는 인재였다.

하지만 왕 보표는 거절을 뜻을 밝혔다.

어딘가 얽매이기 싫은 듯싶었다.

“그렇군요. 조심히 가십시오.”

“연이 된다면 또 뵙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왕 보표는 그렇게 돌아갔다.

그가 사라지자 이백 역시 몸을 돌렸다.

“새 보금자리인가.”

*  *  *

야행복을 입은 자가 은밀하게 장원의 담을 넘었다.

장원을 지키는 무사들이 있음에도 누구도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하아… 형주에서 마지막이니…….’

복면 너머로 눈꺼풀의 칼자국이 얼핏 보였다.

그는 혈당랑의 오른팔이라는 독안귀였다.

흑도 조직에서 더러운 짓을 맡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혈당랑의 지시를 따르는 이유는, 죽어갈 때 자신을 구해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목숨 빚은 그 어떤 것보다 무거운 법.

양심의 가책보다 목숨 빚을 갚는 게 먼저였다.

형주상회주는 그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선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렇게 목숨을 거둬야 할 악인은 아니다.

게다가 그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이 많다고 알려졌으니, 현유를 죽이는 게 내키지 않았다.

‘내 목숨 빚을 청산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지.’

독안귀는 현유의 목을 거두는 걸로 남은 빚을 청산하는 걸로, 혈당랑과 단판을 지었다.

혈당랑은 그의 솜씨가 아쉬웠지만, 어차피 고분고분하지 않은 독안귀를 오래 곁에 둘 수는 없다. 그러니 이참에 관계를 청산하는 걸 찬성한 것이다.

‘피를 보는 건, 상회주 한 명이면 충분해.’

경비무사들의 눈을 피해 장원 심처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허나 상회주의 침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구를 지키는 두 무사를 정리해야 한다.

그들은 경비무사들과 달리, 일류급의 고수들이었다.

설사 기감을 속인다 한들, 상회주의 목을 취하는 과정에서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침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저들부터 정리하는 게 낫다.

다만 살인은 피하고 싶었다.

저들 역시 돈 때문에 고용된 자들일 테니까.

독안귀는 소매에서 두 자루의 비수를 꺼냈다.

‘한 번에 간다.’

독안귀는 한 번에 두 자루의 비수를 던졌다.

아무리 비수를 빨리 던진다고 해도 파공음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헌데 독안귀가 던진 비수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무음비도술(無音飛刀術).

일개 흑도인이 익힐만한 수법이 아니다.

일류고수의 청력을 속여도 기감까지 속이긴 어렵다.

푹!

“이…건…….”

“말도… 안…….”

비수에 찔린 두 사람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비록 비수에 찔렸다고 한들, 절명할 정도로 치명적이진 못했다.

그럼에도 의식을 잃은 건 비수에 발라져 있던 미혼약이 그들의 혈액을 타고 빠르게 퍼진 탓이다.

일류고수가 비수에 찔린 후에야 눈치챘다는 건, 독안귀의 비도술은 대가의 수준이라는 뜻이다. 또한 그가 익힌 비도술이 절학이란 걸 의미했다.

어떠한 비밀이 있기에 이러한 절학을 익히고 있는 것일까.

“하아…….”

독안귀는 의식을 잃은 일류고수들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이제 형주상회주의 목을 취할 시간이다.

침소 안으로 들어가자, 잠을 자고 있는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독안귀는 먼저 노파의 혼혈을 짚었다.

형주상회주의 목을 취하는 과정에서 노파가 깨어나면, 그녀마저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잠이든 노파의 혼혈을 짚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독안귀는 비수를 역수로 쥔 채, 형주상회주의 목을 향해 강하게 찔렀다.

고통을 느끼기 전에 단숨에 숨통을 끊는 게 그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라 여겼다.

허나 비수는 형주상회주의 목에 닿지 못했다.

비수를 쥔 독안귀의 손목을 누군가 붙잡은 탓이다.

“죄송한 줄 안다면 하지 말았어야지.”

“헉!”

형주상회주 부부를 제외하고 침소 안에 누구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기감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손목까지 잡아챘다.

보통 고수가 아니란 뜻이었다.

기겁한 독안귀는 잡히지 않은 손을 휘둘렀다.

본능적인 반응이었으나 그 역시 위협적이었다.

“어림없지.”

“큭!”

허나 상대를 잘못 만났다.

또 다른 손마저 잡혔을 뿐만 아니라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양 손목이 으스러진 것이다.

힘을 타고난 광우라도 단련된 독안귀의 손목을 단숨에 으스러트리기 어렵다.

내공이 심후하거나 특수한 무공을 익혔다면 말이 다르다.

고통스러운 와중에 독안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청…년이라고?’

하다못해 불혹이 넘은 중년의 고수라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양손을 부러트린 자는 놀랍게도 약관이나 지났을 법한 어린 청년이었다.

믿기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대로 붙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

독안귀의 두 다리는 아직 무사했다.

그는 자신을 붙잡은 청년을 향해 무릎을 휘둘렀다.

자신의 양손을 붙잡은 게 청년에게 독이 된 상황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면 말이다.

“크윽!”

“날 너무 무르게 보나 봐.”

독안귀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청년 역시 제 무릎을 휘둘렀다.

무릎과 무릎이 충돌한 순간, 독안귀의 무릎이 으스러졌다.

겉보기와 달리 외문기공의 달인이란 말인가?

고통스러워하는 독안귀에 귓가에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선 기절해 있으라고, 판단은 상회주께서 내리실 테니까.”

“그럴 수…….”

독안귀가 반항을 하기도 전에 청년이 손이 그의 몇몇 혈(穴)을 눌렀다.

그로 인해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소란에 숙면을 취할 리 없는지 형주상회주 현유가 입을 열었다.

“백 대협께서 오신 첫날부터 신세를 지었구려.”

“이걸 위해 제가 온 것이니까요. 상회주님.”

독안귀를 제압한 청년은 오늘부터 형주상회의 객(客)이 된 이백이었다.

형주상회주는 이백을 이 대협이 아닌 백 대협이라 칭했다.

이는 그가 자신을 백수(百獸)라 칭했기 때문이다.

초절정지경에 오른 이백이니, 독안귀라도 힘을 쓰지 못하고 제압되는 게 당연하다.

현유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노인답지 않게, 이 상황에서도 놀라기보다 침착한 기색을 보여주었다.

백오십 년의 역사를 가진 형주상회의 당대 수장다웠다.

그는 찬찬히 이백을 바라봤다.

‘과연 검모(劍母)께서 추천한 분답군.’

그는 이백의 정확한 정체를 알지 못했다.

협력관계이지만, 검모궁의 어용상회는 아니기에 천문산장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천문산장의 봉공이란 신분까지 밝히기 어려웠다.

애초 그러한 관계이니, 상계에서 충분한 기량을 가진 형주상회 대신 동정상회를 상단으로 키웠던 것이다.

허나 그런 동정상단이 사라졌기에 차선책으로, 협력관계인 형주상회를 선택하게 되었다.

무(無)에서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니까.

‘하아… 첫날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그렇게 이백은 형주상회에 오자마자 신고식을 치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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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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