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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28화 (28/200)

28화. 백전비무행(百戰比武行) (2)

이백 일행은 어둠이 지고 달이 떠서야 형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는 중년 사내가 있었다.

“검모궁의 분들이십니까, 소검후 님의 부탁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예라 합니다.”

“천주검(天柱劍)이셨군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천주검 반예의 인사에 화답한 건 이백이었다.

반예는 형산일검의 사제로, 형산파를 대표하는 고수 중 한 명이다.

검모궁 일행을 안내하기 위해 그 정도 인물을 보냈다는 건, 소검후에 대한 예의는 물론 검모궁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작 반예는 검모궁의 여협들이 사내와 동행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허나 경거망동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길이 험하니 조심하십시오.”

“배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반예가 움직였다. 그 뒤를 일남이녀(一男二女)가 따랐다.

형산파의 고수답게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일남이녀도 전혀 뒤처짐 없이 그 뒤를 따랐다.

반예는 그들이 잘 따라오는 걸 느끼며 내심 감탄했다.

‘과연 검모궁인가. 젊은 처자조차 저 정도라니.’

이백도 이백이지만, 교정정의 경공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실제 나이는 이십 대 중반이지만, 겉으로는 방년(芳年)으로 보였다.

그러니 교정정의 성취가 더욱 놀라워 보인 것이다.

‘그럼 속도를 조금 더 높여볼까.’

반예는 교정정을 배려해 속도로 조절했으나 그녀가 곧잘 따라오니 속도를 높였다.

그녈 시험하기 위함이 아니다.

소검후가 부탁했던 장소는 형산파의 본파가 아니다.

남악(南岳) 형산은 오악의 하나답게 상당히 넓다.

당연히 목적지 역시 가깝다 말할 수 없다.

지체하지 않기 위해선 속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정정은 무리 없이 따라왔다.

검모궁은 형산보다 높고 험한 장가계의 모처에 위치했다.

그녀들은 검만큼이나 경공 역시 뛰어날 수밖에 없다.

칠금행(七錦行).

움직임이 비단처럼 부드럽고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검모궁의 독문 경공이다.

칠금행은 7단계로 이루어졌는데, 7단계에 오른 자는 역대 통틀어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만큼 뛰어난 경공이다.

실제로 칠금행은 무림 십대경공에 꼽힌다.

어느 봉우리에 도달하자, 달리던 반예가 멈추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

반예의 말에 교정정은 당황했다.

그녀의 반응은 예상했는지, 반예는 나직하게 말했다.

“제가 부탁한 건, 검모궁 분들을 축융봉에 안내해달라는 것인지라…. 이 뒤로는 여러분들만 오르시는 게 좋을 거 생각합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반 대협.”

이백이 반예를 향해 포권을 쥐었다.

그 역시 포권을 쥔 후 돌아갔다.

반예가 떠나자, 이백 등은 축융봉으로 향했다.

‘이 위에 소검후와… 그게 있단 말이지.’

*  *  *

“아미타불… 오랜만에 뵙는군요. 우 선자(仙子).”

축융봉에는 여섯 여인이 이백 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섯 여인 중 한 명을 제외하곤 전부 비구니였다.

그중에서도 지천명은 훌쩍 지났을 법한 중년 비구니가 삼선자를 향해 합장했다.

“검후께서 백전비무행을 나오셨을 때니, 한 삼십 년쯤 되는 거 같군요. 정원사태.”

“벌써 그리되었군요.”

삼선자와 정원사태는 안면이 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당대 검후 역시 소검후 시절에 백전비무행을 위해 중원 무림의 명사들과 검을 나누었다.

당시 그녀가 지목한 검모궁의 고수가 바로 검향 시절의 삼선자였다.

정원사태는 당시 소검후를 보필하기 위해 동행한 그녀의 사매였다.

허나 시간을 흘러 두 사람은 검모궁과 검각의 대표 고수가 되었고, 양측의 비무자를 보호하는 입장이 되었다.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나자, 유일하게 삭발하지 않은 여인이 합장했다.

“검모궁의 우 선배님께, 검각의 제자 이옥환이 인사드립니다.”

“검각의 제자, 원원이 인사드립니다.”

“검각의 제자, 원영이…….”

“아미타불 검각의 제자…….”

소검후 이옥환을 시작으로 검각의 제자들이 인사를 했다.

비구니인 검각의 제자들과 달리 소검후는 민머리가 아니었다.

그들의 인사에 교정정과 이백 역시 예를 갖추었다.

“검모궁의 제자 교정정이, 정원사태님과 검각의 제자분들께 인사드립니다.”

“백수(百獸)라 합니다.”

예상치 못한 사내의 존재에 검각의 비구니들은 움찔했다.

검모궁이 검각과 마찬가지로 금남(禁男)의 집단임을 알기 때문이다.

정원사태는 굳이 타파의 사정을 들쳐 좋을 게 없음을 알기에 화제를 바꾸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비무를 진행하는 게 어떠십니까.”

“같은 생각입니다.”

정원사태와 삼선자가 서로 동의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

교정정과 이옥환만 남고 나머지는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두 여인은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검모궁의 교정정입니다. 소검후께 가르침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가르침이라니요. 무(武)를 나눔(比)으로써 서로 배움을 얻는 것이지요.”

두 사람의 대화는 결코 가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들은 진심이었다.

상대를 이겨 사문의 이름을 알리겠단 의미로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다.

아직 자신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해 공부를 쌓는 중이다.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자리를 빌어 얼마나 더 많은 걸 얻느냐가 중요하다.

다음 대 검후(劍后)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검모(劍母)가 되기 위해서.

두 사람은 각자의 검을 쥐었다.

“그럼 시작하시지요.”

“갑니다!”

이옥환은 선수(先手)를 양보했다.

교정정 역시 거절치 않았다.

그녀의 검이 번쩍이는 순간 이미 허공을 갈랐다.

쾌검술을 펼친 게 아님에도 빨랐다.

허나 일검(一劍)에 승패가 갈릴 정도로 소검후의 이름이 가볍지 않다.

챙! 스~으윽!

두 자루의 검을 충돌하는 동시에 이옥환의 검이 교정정의 검신(劍身)을 타고 올랐다.

교정정 역시 쉽게 잡혀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검을 흔들어 이옥환의 검을 튕겨냈다.

허나 이옥환 역시 그 반동을 역 이용해서 다시 교정정을 노렸다.

가벼운 수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의 검은 끊임없이 얽히고설켰다.

이를 지켜보던 이백은 감탄했다.

‘역시 대단하구나, 소검후라고 불릴 만해.’

이백은 그간 천문산장 고수들과 비무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그들이 하나같이 대단한 고수이지만, 한정적인 무학만 접할 수밖에 없었다.

이옥환의 검학은 이백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검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은 교정정의 검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5년이란 시간이 그녀에게도 충실한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채~앵~!

얽히고설켰던 두 사람의 검이 어느새 멀어졌다.

이제 탐색이 끝났다는 듯 그녀들의 검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월고혼(寒月孤魂)!”

은은한 백청광이 허공을 갈랐다.

검모궁의 한월검법이다. 월광심법과 함께 익힌다면 능히 고수로 성장할 수 있어서 검모궁 제자들이 가장 많이 익힌 검법이다.

절정에 오른 교정정이 펼친 한월검법은 상승검법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허나 이옥환도 만만치 않았다.

백황광(白黃光)이 번쩍였다.

불광검법(佛光劍法). 널리 알려진 검각의 검법으로, 상승검학이라 칭할 수는 없으나 불문다운 자애로운 검이다.

챙! 챙! 채챙!

검모궁과 검각의 여러 검법들이 펼쳐졌다.

그녀들은 수십 합을 나누었으나 쉬이 틈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첫 합을 나눌 때보다 수십 합이 더 지난 지금, 더욱 완숙해져 있던 탓이다.

‘퀘스트의 보상인가.’

백전비무행을 통해 소검후는 물론 비무 상대 역시 능력치나 깨달음이 임의로 상승하게 된다.

그 수치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많은 것을 얻는 사람도, 거의 못 얻는 사람도 있다.

교정정은 전자인 듯싶다.

그녀만이 아니다. 이옥환의 검 역시 정교해졌다.

두 사람 모두 흥이 오를 대로 올랐는지, 절학을 꺼내놨다.

“한천…….”

“수미관음…….”

삼선자를 한천검랑으로 불리게 만든 한천검결(恨天劍訣)과 검후의 이대검학 중 하나인 수미관음검(須彌觀音劍).

두 사람 모두 흉내밖에 내지 못하는 절세검학들이다. 그렇기에 아직 진정한 위력을 드러낼 수 없다.

그럼에도 흥에 취한 자신이 익힌 최강의 검을 꺼냈다.

그게 서로에 대한 최고의 예우라 생각한 듯싶었다.

그녀들의 마음에 반응하듯 검에 어린 빛은 더욱 강렬해져 갔다.

빛이 절정에 도달한 순간, 두 자루의 검이 움직였다.

콰콰쾅!!

빛이 번쩍이는 순간, 폭음이 축융봉을 뒤흔들었다.

그로 인해 축융봉과 제법 떨어진 형산파의 본파에 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소검후의 또 다른 백전비무행이 벌어지고 있단 사실을 형산파 제자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상황이니, 다들 헐레벌떡 일어난 것이다.

“쿨럭…….”

“헉… 헉… 헉…….”

마지막 충돌의 여파로 교정정에서 마른기침을 했다. 내상을 입었는지, 기침에 피가 섞여 있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다스리지 않는다면 내상이 깊어질 수 있다.

그에 비해 소검후 이옥환은 호흡이 거칠고 땀에 옷이 젖은 게 상당히 지친 듯싶으나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두 사람 모두 훌륭했지만, 교정정은 아직 이옥환의 아래임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수고 많았다. 호법을 서줄 테니, 몸을 추슬… 봉공?”

삼선자가 두 사람을 격려하던 중 이백이 돌발행동을 하고 말았다.

언제 움직였는지, 어느새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이옥환과 교정정의 곁에 다가간 것이다.

이를 본 보타암 제자들은 움찔하곤 본능적으로 검파에 손을 대었다. 이옥환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허나 교정정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이백을 믿는다는 의미였다.

이백은 그런 그녀들의 반응은 무시한 채, 이옥환과 교정정의 앞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숲을 향해 언제든 출수(出手)한 준비를 했다.

그제야 보타암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오해했음에 머슥한 동시에 숲을 향해 경계심을 보였다.

허나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백이 착각한 거라 생각하던 찰나에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확인만 하려 했는데…….”

“너흰 누구냐.”

이백은 누군지 예상하고 있으나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이 그들을 알고 있음에 일행이 의문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은 복면에 검은 야행복을 입은 수상한 자들이었다.

그 수가 고작 열도 되지 않아 보이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하나 같이 만만치 않았다.

그때 침묵하고 있던 정원사태의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미타불…. 본니의 불심이 자극되는 걸 보니, 천산에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무림에선 검각으로 더 알려져 검법이 유명하지만, 그 근본은 불문의 보타암.

그들의 신공은 불문에 기반을 둔 항마공(降魔功)이다.

상극인 마기에 예민한 건 당연하다.

정원사태의 신공이 격하게 반응할 정도라면 보통 마공일 리가 없다.

천산(天山). 다른 말로는 십만대산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마도 종주라고 불리는 마교의 성지.

마교의 고수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복면인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역시 검후의 검각(劍閣)인가. 귀찮아도 어쩔 수 없군. …모두 죽여라.”

“존명!”

수장의 명이 떨어지자 복면인들이 움직였다.

기세에 어울리는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정원사태가 외쳤다.

“마의 종자들은 본니가 상대할 테니, 본각의 제자들은 소검후를 보호하라!”

“사고(師姑)! 본녀도 싸울 수 있습…….”

“제자들이 장로님의 명을 받습니다!”

정원사태의 말에 이옥환은 반발하려 했으나 동행한 사저, 사매들이 그녈 포위했다.

이옥환은 차기 검후로 내정된 소검후다.

보타암을 수호할 막중한 임무를 계승한 존재다.

이 자리에서 꺾여선 아니 되기에 검각의 제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만은 지킬 요량이었다.

그 강한 의지에 이옥환은 이를 악물 뿐, 거부할 수 없다.

서걱!

검이 번쩍이는 순간, 마교 고수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봉공, 정정이를 부탁하겠소.”

“팔검향님은 걱정 마십시오.”

“저, 저는…….”

삼선자 역시 참전했다.

상대가 마교의 고수라면 손 놓고 두고만 볼 수 없다.

삼선자는 제자를 이백에게 맡겼다.

검각과 달리 제잘 지킬 인원이 단 한 명이지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이백의 무위는 그녀가 직접 겪어봤으니 걱정할 이유가 없다.

애초 제자가 위험한 상황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삼선자는 검파(劍把)를 꽉 쥐며 차갑게 읊조렸다.

“중원을 침범한 걸 후회하게 해주마.”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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