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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23화 (23/200)

23화. 비천편복(飛天蝙蝠)

후욱!

날카로운 무언가가 허공을 갈랐다.

이백은 청랑보를 펼쳐 피했다.

허나 상대는 그것을 예측했는지, 연이어 채찍을 휘둘렀다.

휘이익~ 차악!

이백은 전력을 다해 청랑보를 펼쳤다.

잔영이 생길 정도 빨랐으나 적의 신묘한 편술은 이백을 뜻대로 두지 않았다.

“큭!”

결국 채찍이 이백의 가슴을 후려쳤다.

신음을 흘린 그는 순간적으로 아찔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상대는 날카로운 무기를 휘둘렀다.

얼마나 강력한지, 허공을 찢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백은 이를 악물고 청랑조법을 펼쳤다.

“청랑… 큭!”

바위조차 으깬다는 청랑조법을 펼쳤음에도 밀려난 건 이백이었다.

상대는 너무도 강했다.

허나 이백은 포기하지 않았다.

얼얼한 오른손을 대신 왼손으로 다시 청랑조법을 펼쳤다. 아니, 펼치려는 순간 이백의 목에 날카로운 발톱이 닿았다.

“젠장! 졌다, 졌어! 네가 이겼다고, 설군아!”

크아앙!!

설군은 그걸 이제야 알았냐는 듯 호기롭게 울부짖었다.

결국 이백은 패배를 인정했다.

그를 패배시킨 존재는 놀랍게도 무림 고수가 아니었다.

작고 새하얀 고양이. 아니, 호랑이였다.

지난 5년간 이백은 천문산장의 식구들에게 단련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허나 그에게 가장 도움을 준 존재는 의외로 설군이었다.

설군과 장가계를 뛰어다니다 보니 저절로 청랑보의 성취가 높아졌다.

웃픈 건 청랑보의 성취가 높아졌지만, 설군은 그보다 더 빠른 움직임으로 이백에게 자괴감을 주었다.

게다가 제 몸보다 수십 배 큰 맹수를 발톱으로 베어 죽였다.

그 움직임이 흡사 무림 고수의 조법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백은 설군을 관찰하고 궁리하는 과정에서 청랑조법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 난 언제 널 이겨보냐.”

이백의 말에 설군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짐승이 맞나 싶었다.

설군은 어슬렁거리더니 언제나처럼 사라졌다.

설군이 휘두른 발톱은 조법의 대가보다 강력했고, 설군의 꼬리는 편술(鞭術)의 고수도 이 정도는 아닐 거란 생각을 들게 했다.

이백에게 설군은 가장 소중한 가족인 동시에 벽이었다.

“두고 보라고. 언젠가 네 인정을 받을 테니까.”

그런 날이 올지 모르지만, 그날을 꿈꾸며 이백은 수련을 놓지 않았다.

*  *  *

검은 그림자가 어느 장원에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누구도 그림자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고작 이딴 일 때문에 날 협박해? 언젠가 네놈들의 비고(祕庫)를 다 털어주고 말겠어.’

그림자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럼에도 그는 거부하지 못한 채 그들의 뜻대로 움직였다.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흑혈을 애송이가 보관하고 있으렷다?’

그가 노린 것은 흑천회의 암도(暗刀)가 소지했던 흑혈도다.

흑혈도(黑血刀)는 현재 이백이 소지하고 있다.

오철로 제련한 보도(寶刀)는 도법을 익히지 않은 이백도 탐을 낼 만하다.

허나 이백이 흑혈도를 보관하고 있는 건, 탐이 나서가 아니다. 오히려 흑혈도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보도일지 모르지만, 상대의 내공을 빼앗는 마물이라는 점에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가 소지하고 있는 건, 교수(巧手)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명공(名工)인 교수라면 흑혈도를 멀쩡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오철은 쉬이 구할 수 없는 희귀한 금속이다.

멀쩡하게 못 만든다면 녹여서 천문산장 식구들이 사용한 새 무기를 만들면 그만이다.

이백은 그런 생각으로 흑혈도를 회수한 것이다.

‘귀신 놈들도 다 됐군. 애송이에게 흑혈을 빼앗기고, 회수조차 못 하니 말이야.’

흑혈을 빼앗겼다는 건, 이백이 암도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사내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애초 그는 암도도 두렵지 않았으니, 이백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저기군. 빨리 끝내자.’

도행(盜行)을 나서기 전에 정보 수집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는 이미 장원의 구조, 배치 등의 정보를 파악해두었다.

이백의 거처 역시 파악되었으니,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단숨에 이백의 거처로 향했다. 그럼에도 작은 소리조차 발생하지 않았다.

야조비천(夜鳥飛天).

밤새가 하늘을 날 듯 소리 없이 움직인다는 무음(無音)의 경공이다.

일개 도둑이 펼치기에는 과한 상승 경공이었다.

허나 그는 일개 도둑이라 칭하긴 어렵다.

신투(神偸)라 불리는 비천편복이니까.

‘저거군.’

비천편복은 창을 통해 벽에 세워져 있는 흑혈도를 확인했다.

그는 잠이 든 이백이 눈치채지 못하게 칼을 회수할 수 있으나 신투답게 철저하게 진행했다.

비천편복은 창을 통해 무언가를 흘렸다.

미세한 가루였다.

[‘미혼약’을 흡입했습니다.]

[의식이 흐려집니다.]

“으음…….”

잠을 자고 있던 이백은 신음과 함께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비천편복은 반다경(半茶頃: 7분)을 더 기다리며 이백의 반응을 살폈다.

그가 확실하게 미혼약에 의식을 잃은 걸 확인한 후에서야 창을 넘었다.

비천편복은 미동도 없는 이백을 향해 히죽거리곤 흑혈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별거 아니잖아? 암도가 당했다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말이야.”

그제야 그는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혼약은 독과 다르다. 방심한다면 고수라도 의식을 잃게 만들 수 있다.

하물며 잠이 든 상황이라면 피하기 매우 어렵다.

흑천회 암귀 중에서도 두 번째로 강하다는 암도가 당했다.

아닌 척했지만, 내심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비천편복은 흑혈도를 이백의 목에 겨누었다.

“지금이라면 쉽게 거둘 수 있는데… 놈들 좋으라고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이백의 목에 겨누었던 흑혈도를 거두려 할 때, 허공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서걱!

흑혈도를 쥔 비천편복의 손목이 땅으로 뚝 떨어졌다.

베어진 손목에서 피가 치솟으며 비산했다.

비천편복은 그제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흑! 으아악!”

크르릉~ 카아앙!

비천편목은 본능적으로 달렸다. 이대로라면 죽을 수 있다고 깨달은 것이다.

이미 흑혈도의 회수 따윈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비천신법(飛天身法)은 지금까지 그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만큼 그는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허나 그를 노린 존재는 10성의 청랑보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설군이다.

평소 이백과 함께 달리던 건 장난이라는 듯 설군의 잔상은 금세 사라졌다.

극쾌의 속도를 자랑하는 초상승 경공 이형환위(移形換位)를 연상케 했다.

정체불명의 가루에 의해 의식을 잃었던 이백은 설군의 울부짖음을 듣고 의식이 돌아왔다.

“으…으… 후우… 젠장 방심했어.”

“무슨 일인가!”

옆방에 거했던 엽사도 설군의 울부짖음을 들었는지, 황급히 들어왔다.

그런 그를 보며 이백이 쓴 미소를 지었다.

“밤손님이 왔었나 봅니다.”

“흑혈도와 자넬 노렸다면… 흑천회?”

밤손님이라는 말에 엽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곤 흥건한 피와 누군가의 손목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잠이 들었다 해도 궁객답게 기감이 예민하고 넓은 엽사이건만 괴한이 접근한 걸 깨닫지 못한 사실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이건 자네가?”

엽사는 흥건한 피와 누군가의 손목을 가리켰다.

이백은 고갤 저었다.

“설군인 거 같습니다. 저는, 미혼약에 당해서…….”

“이런! 큰일 날 뻔했군. 호법을 서줄 테니, 운기행공으로 배출하게.”

거절할 여유가 없는지, 이백은 그대로 가부좌를 틀었다.

엽사는 호법을 서며 창을 향한 혈흔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놈들의 반응이 빠른데…….’

*  *  *

“젠장!!”

비천편복은 단숨에 장원만이 아니라 마을을 벗어났다.

조금만 지체해도 죽을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 탓에 전심전력을 다해 비천신법을 펼친 것이다.

그렇게 마을을 벗어나서야 도행을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개했다.

“암상(暗商), 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새끼! 그런 괴물이 있단 이야긴 왜 숨긴 거야!”

비천편복은 한순간에 당한 탓에 제 손목을 벤 존재를 보지 못했다.

그는 암상을 통해 흑천회주의 의뢰와 함께 정보 역시 받았다.

물론 비천편복은 편복당의 정보망을 통해 정보를 한 번 더 검증한 후 움직였다.

하지만 제 손목을 벤 괴물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암상, 아니, 흑천회도 설군의 정체를 알지 못한 탓이다.

“내 뒤통수를 쳐? 이 빚은 톡톡히 받아야 할 게야!”

그는 흑천회가 일부러 정보를 숨겼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흑천회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걸 눈치채고 경고한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흑천회를 향한 그의 적의가 더욱 커졌다.

허나 아무리 비천편복이라도 흑천회와 맞설 힘은 없었다.

그렇다고 복수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만금전장을 털고, 세외로 도망쳐?”

비천편목의 눈빛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만금전장(萬金錢場)은 주로 강남(안휘, 강소, 절강, 강서, 호북, 호남)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중원 전역에 뻗고 있는 삼대전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강남 일대에선 제법 성세를 자랑했다.

허나 그런 만금전장의 뒤에 흑천회가 있단 사실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만금전장의 한 곳만 털어도 흑천회에게 제법 타격을 줄 수 있다.

“아니, 그럼 내가 벌인 게 티가 나잖아.”

만금전장은 흑천회에게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많은 고수로 지키고 있다.

그런 만금전장이 털린다면 비천편복을 떠올리지 않을 리 없다.

흑천회주의 집요함을 생각했을 땐 세외로 도망쳐도 안심할 수 없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흑천회에 한 방 먹일 방도가 필요하다.

고민하던 비천편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강소 병조참의가 병부상서에게 의천검을 바치고, 그 자리를 얻었다지…….”

병부상서 조량은 자신이 위무제(조조)의 후손이라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위무제와 관련된 물건에 환장했다.

이를 아는 당시 소주(蘇州)의 지주(知州)가 우연히 장물로 나온 의천검을 천금 주고 구입해 바쳤다.

이에 병부상서는 크게 기뻐하며 그를 강소 병조참의로 밀어주었다.

참정(參政)은 종3품에 해당하는 고관직이기에 황제의 윤허가 필요하다.

허나 종4품의 참의(參議)를 세우는 일 정도는 실세 중의 실세인 병부상서의 입김이 충분히 닿는다.

그 이후 관리들이 흑시를 기웃거렸다는 후문이 있다.

“허나 모르겠지, 의천검이 가짜라는걸…….”

흑천회의 비밀 상단은 이후 강소 병조에 무기 군납해 막대한 이득을 봤다.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다.

흑천회의 암상이 고대의 검을 입수한 후, 고서의 자료를 토대로 위조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당시 소주의 지주의 손에 들어갈 수 있게 했다.

병조참의가 된 그에게 의천검이 사실 위조품임을 밝혀 군납할 수 있게 협박했다.

의천검이 위조품이란 사실이 병부상서에 귀에 들어간다면, 이를 바친 강소 병조참의만이 아니라 뒤에서 조장한 흑천회 역시 곤욕을 치를 게 뻔하다.

농락당하고 그냥 넘어갈 병부상서가 아니니까.

“강서 남창 지부(知府)에게 애첩을 소개한 것도…….”

흑천회는 관리들이 원하는 걸 쥐여주고, 대신 원하는 걸 취했다.

흑도의 사업체를 운영하기 위해선 관리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때론 뇌물을, 때론 협박을 통해 사업을 확장했다.

지금의 흑천회는 그렇게 키운 것이다.

그 일부는 편복당을 통해 조달했으니 비천편복이 모를 수가 없었다.

“킥킥… 날 엿 먹인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라고…….”

비천편복의 눈에서 광기가 번들거렸다.

허나 그는 몰랐다.

자신이 삼도천의 앞까지 갔다 왔다는 것을 말이다.

비천편복을 노리던 설군이 사라졌다.

*  *  *

“남창의 애월루가 왜!”

애월루는 남창제일루로 유명하다.

남창을 넘어 강서의 관리와 거부들이 자주 찾을 정도다.

그런 애월루가 벌어들이는 금액은 소항(소주, 항주)의 기루를 무색하게 했다.

그런 애월루에 이상이 생겼다.

“포양상단에서 남창의 물자를 막았다고 합니다!”

“그놈들이 왜 그런 미친 짓을 해!”

애월루쯤 된다면 아무 술을 팔 수 없다. 당연히 내로라하는 미주(美酒)와 진귀한 요리를 내놓는다.

이를 공급하는 곳이 강서제일상단이라는 포양상단이다.

애월루만이 아니라 남창에 유통되는 물자의 상당 부분이 포양상단을 거친다.

남창의 물자를 막는다면 그들 역시 피해가 막심하다.

그런데도 그런 짓을 벌였다니 짜증이 났다.

“남창 지부의 안주인인 장 부인께서 포양상단주의 누이인데… 지부가 월아(月娥)를 통해 애를 낳은 게… 들통났다고 합니다.”

“이, 이 병신 같은 새끼들!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남창의 지부 대인은 처가인 포양상단의 막대한 지원 하에 지금의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부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처가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는가.

그런 지부 대인의 자존심을 어루만져준 게 애월루주였다.

장 부인 역시 남편이 애월루를 자주 찾는 건 알지만, 그 정도는 묵인해주었다.

허나 밖에서 애까지 낳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그러한 사실이 그녀의 귀에 들어가면서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죄, 죄송… 컥!”

“이게 죄송하다는 걸로 끝날 일이야! 상부에 알려지면 우린 죽은 목숨이라고! 죽은 목숨!!”

흑천회의 명령으로, 남창 일대의 사업을 관리하는 지부장은 사색이 되었다.

애월루는 흑천회 상부에서 특별히 관리를 명령받은 곳인데, 문제가 생겼으니 당연하다.

흑천회는 그냥 말로 경고하는 곳이 아니다.

“젠장! 젠장! 대체 어떤 머저리가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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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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