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악연(惡緣) (4)
“…삼재시(三災矢)!”
세 발의 화살이 동시에 암도에게 향했다.
암도는 하찮다는 듯 다시 칼을 휘둘렀다.
허나 삼재시는 암도의 발을 묶기 위해 쏜 이전의 화살과는 다르다.
세 발의 화살이 서로 공명하더니 강렬한 기파를 뿜어냈다.
“헉!”
콰쾅! 쾅! 쾅!
암도를 중심으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천장이 강하게 흔들리고 흙먼지가 일어났다.
자칫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깟… 화살로, 날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더냐!!”
“헉!”
흙먼지를 가르며 암도가 뛰쳐나왔다.
삼재시(三災矢). 그 위력은 충분히 강하지만, 암도를 상대로는 조금 부족했던 것이다.
그의 칼이 엽사에게 향했다.
피하기엔 늦었다.
서걱!
“큭!”
“뒈져라!”
흑혈도에 베인 건 철시(鐵矢) 뭉치였다.
철시 다섯 개가 너무도 쉽게 베였고, 엽사의 가슴까지 베었다.
다행인 점은 철시로 인해 위력이 감소해 가슴의 상처가 옅다는 점이다.
허나 이어질 도격까지 막는 건 무리다.
“쌍두랑(雙頭狼)!”
이번에는 이백이 구해줄 차례였다.
그의 손이 백랑이 되어 암도를 노렸다.
은밀하게 접근한 이백이건만, 암도는 눈치채고 엽사에게 향하던 칼을 다시 비틀었다.
쿠~아앙!
퍽!
“컥! 쿨럭… 미, 친…….”
“똑같은 수법을 반복할 리 없지…….”
암도는 흑혈도로 이백의 손을 막아냈다.
허나 흑혈도에 의해 막힌 건 왼손뿐이었다.
오른손은 그의 왼쪽 옆구리를 뜯어버렸다.
갈비뼈마저 손상이 갈 정도였으니,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청랑아보다는 위력이 떨어지지만, 양손을 각각 움직이기에 쌍두랑이라 불린다.
[내공이 미량 감소했습니다.]
이번 역시 내공이 줄었다.
이 와중에 암도가 사술을 펼친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흑혈도로 향했다.
“그 칼, 마물(魔物)인 건가.”
“닥쳐… 우웩!”
이백의 말에 분개한 암도가 호통을 치려다가 피를 토했다.
옆구리의 상처는 외상만이 아니라 내상으로 이어진 듯싶었다.
이대로라면 상처도 상처지만, 출혈 과다로 죽을 상황이다.
“이대로 죽을…….”
“잠시만요!”
이백은 암도를 향해 손을 뻗다가 여인의 외침에 멈췄다.
그를 멈추게 만든 여인은 삼검향이었다.
그녀의 품에는 몰골이 엉망이 된 하연주가 안겨 있었다.
삼검향이 말을 이었다.
“그에게 알아낼 정보가 있습니다. 봉공님.”
“…알겠습니다.”
삼검향의 말에 이백은 물러났다.
애초 이백은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지난 5년간 수련 덕분에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살인은 별개의 문제다.
암도에게 치명상을 입히긴 했으나 그의 목숨을 거두기엔 이백의 독심이 조금 부족했다.
그렇기에 암도를 제압해 지혈해주려고 했으나 누구도 그걸 깨닫지 못했다.
그러니 이백은 순순히 물러났다.
삼검향은 상처 입은 금수처럼 날이 선 암도에게 말했다.
“항복하고 협조한다면 치료해주겠지.”
“닥쳐!”
암도는 고수다. 그렇기에 현재 제 몸 상태를 너무도 잘 알았다.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치료를 늦게 받으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날이 선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죽고…….”
“닥쳐! 암…귀께선 배신…자를 용서…치 않…는다고.”
악명이 자자한 암도가 두려워했다.
암도가 언급한 암귀(暗鬼)는 흑천회주의 직속 암살자들을 통칭하는 게 아니다.
정확히는 그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존재.
흑천회주의 분신이라 불리며, 암귀들을 양성한 자.
십병귀(十兵鬼) 혹은 십병암귀(十兵暗鬼)라고 불리는 괴물이다.
“큭! 지…옥에서 기…다리…….”
“이런!”
암귀의 두려움에 암도는 심맥을 끊고 자결해버렸다.
그 모습에 좌중은 흠칫 놀랐다.
흑혈도를 쥔 암도도 강했는데, 그런 그가 자결할 정도로 두려워하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경각심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암귀… 하… 아직도 많이 부족하구나.’
* * *
“제수씨는 어떠시냐.”
“칠사저께서 치료해주셔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 같아요. 다만 회복까지는 오래 걸리실 거라더군요.”
하연주를 구하고 며칠이 지났다.
검모궁 의각주의 제자인 칠검향의 의술은 검술보다 뛰어났다.
그녀의 의술 덕분에 하연주의 부상이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검모궁에 전서응을 보낸 상황이다.
육선자가 당도한다면 치료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아… 다행이구나. 제수씨가 회복할 때까지 내 집에 지내거라.”
“감사합니다. 허나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설하의 어미를 위함이지만, 그녀는 결정권이 없었다.
검모궁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던 건, 자유로움 속에 엄격한 규율이 유지된 덕분이다.
허나 삼검향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신세를 지겠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삼사저.”
“당장 이곳을 떠나기에 하 부인의 상태가 좋지 못하시네. 어느 정도 회복하실 때까지는 이곳에 남을 수밖에 없네. 다만, 오래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설하에게 말하던 삼검향의 시선이 윤겸에게 향했다.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윤겸도 눈치가 있어 흉수가 속한 집단이 존재하고, 그 집단이 움직일 수 있단 걸 모를 수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하연주의 몸 상태는 하루 이틀로 회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부인에게 연락해두겠네.”
“감사합니다. 헌데, 저희 때문에 곤란하신 거 아닙니까?”
흑천회만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안찰사의 허락을 받았다지만, 일이 생각보다 커졌다.
관리인 윤겸 입장에선 곤란해지지 않을 리가 없다.
삼검향의 말에 윤겸은 고갤 저었다.
“다행히 비밀 장부 덕분에 지부 대인이라도 빠져나갈 수 없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부사(副司) 대인께서도 별말 못하시더이다.”
“다행이군요.”
비밀 장부에 적힌 뇌물과 흑천회를 연결할 수 없지만, 지부의 파직은 가능할 거 같았다.
게다가 부사도 약간 받아먹은 게 있는지, 자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물고 늘어지면 부사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으나 파직시킬 정도의 금액이 아닌 탓에 안찰사도 모른 척했다.
관리 중 뒷돈 한 푼 안 받은 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니까.
“그보다 이 일을 벌인 자들이 누군가.”
* * *
콰직!
의자의 팔걸이가 부서졌다.
“암도가 당할 정도로 잡년들이 강하단 말인가.”
흑천회주는 담담하게 말했으나 그의 분노가 느껴질 정도였다.
암권이 당했을 때도 화가 났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암도는 암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흑천회 예하에 많은 고수들이 있으나 암도보다 강자는 몇 없었다.
그런 암도가 당했다는 건, 흑천회의 전력이 약해졌다는 뜻이니 회주가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웬 노인이 회주이 곁에 나타났다.
“주군,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아니, 되었다. 암귀. 이번 일로 눈이 몰렸을 게야.”
회주의 곁을 허락받은 유일한 인물.
흑천회주의 분신이라고 불리는 십병암귀였다.
고작 검모궁 일개 고수들 몇 때문에 암귀를 움직이는 건, 견문발검(見蚊拔劍)이었다.
그건 그대로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흑천회주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잡년들이야 언젠가 대가를 지불하게 하면 돼. 그보다 새로운 암도를 준비해야겠지.”
“흑혈을 회수하겠습니다.”
암귀 한 명을 양성하는 건 쉽지 않다.
그렇기에 그 수가 한정된 것이다.
5년 전, 죽은 암권은 새로운 인물로 채웠다.
암도 역시 새로운 인물로 대체해야 한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소모될 것이다.
그걸 단축할 방법이 있다.
흑혈도(黑血刀). 그저 좋은 칼이기만 한 게 아니다.
흡혈(吸血)을 통해 주인의 내공을 증진시켜 준다.
암도가 암귀 중 두 번째로 강할 수 있는 이유이며, 이백이 밀린 이유였다.
다만 흑혈도의 흡혈로 얻을 수 있는 내공이 극히 적다.
비효율적인 방법인 셈이다.
허나 대량의 제물이 있다면 말이 다르다.
게다가 흑혈도는 지속적으로 피를 먹이지 않으면, 오히려 주인을 잡아먹는 마물이다.
그러한 이유로 흑혈도로 다수의 고수를 양성할 수 없다.
자칫 꼬리를 밟히면 귀찮아지니까.
“박쥐 놈에게 연락해.”
“존명!”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알려진 보물들이 거래되는 흑시(黑市).
그런 흑시에 공급되는 보물의 1할은 편복당의 솜씨라는 소문이다.
공공신투(空空神偸), 야래향(夜來香)과 함께 삼대 신투로 불리는 비천편복(飛天蝙蝠).
그가 바로 편복당주다.
‘젠장, 존야(尊爺)의 명만 아니었어도 잡년들을 가만두지 않을 텐데!’
* * *
“육선자께서 수고해주세요.”
검모의 요청에 따라 선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사로 간 삼검향의 서신 때문이다.
“수고라니요. 걱정 마십시오.”
“한 분 더 수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웬만해선 선자(仙子)가 둘이나 움직이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이 검모궁 핵심인원이자 중직을 맡고 있는 탓이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지금은 천문산장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있으니, 선자들이 여럿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설마 흑천회의 암도였을 줄은…….”
“그 암도가 당한 이상…….”
하연주를 치료하기 위해 의각주인 육선자가 움직이는 건 당연했다.
허나 이번 일에 흑천회. 그것도 초절정고수도 피한다는 암도가 끼었다.
그 암도를 죽인 것도 믿기지 않으나 이번 일로 그 이상의 고수가 움직일 게 불 보듯 뻔하다.
검모궁에서도 그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고 궁주인 검모(劍母)가 직접 움직일 수는 없는 일.
“일선자께선 어려우시나요.”
“한월검진의 수련 일정 때문에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검모님.”
검모궁 유일한 무력단은 바로 한월검단(寒月劍團)이다.
검모궁의 제자는 누구나 호신을 위해 기본공을 배운다.
허나 모두가 무공에 뜻을 두고 재능이 있는 게 아니다.
의술에 뜻은 둔 제자도 있고, 금전 감각이 뛰어난 제자도 있다.
그 외에 서고(書庫), 주방(廚房), 정보 등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곳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무공에 재능이 있고, 뜻이 있는 제자들만 추려 만든 집단이 바로 한월검단이다.
허나 검향으로 선별된 제자들 이외에는 명문(名門)에 비해 자질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게 바로 검진(劍陣)이다.
한월검진의 수련 때문에 일선자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유는 충분했다.
“그럼 이선자께선…….”
“동정상단의 부재를 채우려면…….”
선자들 모두 고수라 할 수 있지만, 그 차이가 존재했다.
손이 빈다고 아무나 보낼 순 없다.
흑천회의 수뇌급이 움직일 수 있으니까.
일선자에 이어 이선자까지 난색을 표했다.
그때였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오셨습니까, 삼선자.”
삼선자는 이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의 제자 팔검향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에 사부인 삼선자가 자리를 비울 수 없던 탓이다.
그런 그녀가 늦게나마 회의에 나타난 것도 의외였지만, 자진해서 움직이겠다니 놀라웠다.
“제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삼선자께서 다녀와 주신다면 기쁘나, 팔검향은…….”
삼선자의 정확한 무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허나 팔선자 중 최강은 일선자가 아닌 그녀라고 모두 인정했다.
그런 삼선자라면 흑천회의 수뇌급이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행히 진전이 있었습니다.”
“축하할 일이군요, 삼선자.”
“축하합니다, 삼선자.”
“…축하드려요.”
진전이 있다.
칭찬에 인색한 삼선자의 입에서 진전이 있다는 말이 나왔다는 건 팔검향이 벽을 넘었다는 뜻이다.
즉, 그녀가 절정고수가 되었단 걸 의미했다.
그게 보면 검모궁의 경사고, 작게는 뛰어난 제자를 둔 사부의 복이다.
그렇기에 검모와 선자들은 그녈 축하해주었다.
“감사합니다. 다만 경험이 일천해 이번에 실전 경험을 익히게 하려 합니다.”
“그렇군요. 좋습니다. 뜻대로 하세요.”
그렇게 삼선자와 팔검향이 무림으로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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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