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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13화 (13/200)

13화. 신비지문(神祕之門) (3)

“끄응…….”

거대한 항아리 안에 누군가 머리만 뺀 채 들어 있었다.

항아리 안은 검은 액체로 가득 차 있었고, 그는 괴로운 듯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이백이었다.

설군이 선천진기를 공명(共命)해준 덕분에 흑살기로부터 목숨만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여인이 있었다.

“육사숙님, 어떤가요?”

“소문대로 지독하구나.”

중년 여인의 대답에 묘령의 여인은 얼굴이 굳었다.

그녀라면 청년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기대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여인의 생각을 읽었는지, 육사숙이라 불린 중년 여인이 피식거렸다.

“왜? 이 사숙이, 저 청년을 치료하지 못할까 싶어 그러느냐?”

“그, 그게 아니라…….”

속내를 들킨 게 당혹스러운지, 묘령의 여인은 말을 더듬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육사숙은 나직하게 말했다.

“흑살기가 지독하다는 거지, 내가 치료 못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무, 물론이죠. 본궁 제일의 의원이시자 무림에서 약선자(藥仙子)로 불리시는 육사숙이신데요.”

중년 여인 역시 검모궁의 제자였다.

그것도 일개 제자가 아니라 칠선자(七仙子)의 한 명이다.

십이검향(十二劍香)이 검모궁의 신진이라면, 칠선자는 중진이라고 할 수 있다.

중년 여인은 칠선자 중 여섯째인 육선자로, 무림에선 독선자(毒仙子)로 불린다.

다만 그녀는 그 별호를 싫어하기에 스스로 약선자로 칭했다.

육선자는 본초학(本草學)에 능해, 검모궁에서 사용되는 금창약이나 내상약 등 제조를 담당하고 있었다.

애초 약과 독은 빛과 그림자와 같다.

자연스럽게 독의 고수가 된 것이다.

“그보다 어쩔 생각이었어? 내가 우연히 이곳에 왔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 그러게 말이에요. 호호호…….”

육선자를 만난 건 정말 운이었다.

섬서 남부에 그녀가 찾는 약초가 있단 정보를 입수하고 왔다가 팔검향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정을 듣게 된 육선자는 흔쾌히 도움을 주기로 했다.

사내라면 경멸한다고 알려진 검모궁이다.

헌데, 사내와 대동했을 뿐만 아니라 선뜻 치료해주는 걸 무림인이 알았다면 놀랄 것이다.

“아쉽네. 자령초(紫靈草)라면 신단(神丹)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육선자는 정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신단은 검모궁에 중요하게 사용될 물건이다.

그렇기에 육선자이자 의각주인 그녀가 직접 자령초를 손에 넣으러 온 것이다.

육선자는 몰랐다.

자령초를 선점한 존재가 그녀의 지척에 있었다는 것을.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육선자는 이백을 지그시 바라봤다.

자령초를 찾으러 왔다가 발견한 청년.

어쩌면 그를 살리라는 하늘의 뜻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초의맥(草醫脈)의 총아를 보여주마!”

육선자는 기필코 흑살기를 물리치고 이백을 살리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육선자는 분명 검모궁의 제자다.

허나 그녀가 잇고 있는 초의맥은 처음부터 검모궁에서 시작된 의맥은 아니다.

백여 년 전, 부평초의(浮萍草醫)라는 기인이 존재했다.

별호에서 알 수 있듯 중원을 떠돌아다니는 강호낭중(江湖郎中)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그의 의술은 이름난 명의를 뛰어넘을 정도였고, 무엇보다 값비싼 약재가 아닌 흔한 풀로 환자를 치료한 탓에 비용 역시 매우 저렴했다.

그런 탓에 오히려 다른 의원들 사이에서 배척당했고, 그것으로 부족해 그의 의술을 사술이란 오명까지 씌었다.

급기야 목숨까지 위협받게 되었고, 그런 부평초의를 구해준 게 당시 검모궁의 고수였다.

그 인연으로 부평초의는 검모궁에 거하며, 검모궁 제자들을 치료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의술이 검모궁에 전승되게 되었다.

극히 일부이지만, 검모궁이 사내와 연을 맺게 된 건 바로 부평초의라는 좋은 선례 덕분이다.

“으…으윽!”

“조금, 괴롭겠지만 참으시게나.”

이백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참는다고 참았지만,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며 육선자는 품에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것을 본 팔검향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육사숙, 그건…….”

평범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상자의 뚜껑을 열자 차가운 한기가 불었다.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허나 진짜 범상치 않은 거, 이런 기물에 보관한 물건이다.

“맞다. 염마독(炎魔毒).”

“그런 극독을 어찌……!”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걸 확인한 팔검향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녀가 기겁하는 것도 당연하다.

염마독은 염라대왕(閻羅大王)의 독(毒)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지독한 화기를 품은 극독이다.

한 방울만 복용해도 온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강력하다.

허나 만물에는 그 쓰임이 있는 법.

염마독은 단순히 누군가를 살생하기 위함으로 만들어진 독물이 아니다.

마도(魔道)에 전승되는 어느 비술을 위해 필요하다.

그런 염마독이 우연히 검모궁에 흘러들어왔으나 폐기할 방도가 없기에 이중으로 봉해 의각주인 육선자의 품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다.

“흑살기는 매우 음험한 기운이다. 양강의 기운으로 중화시켜주어야 하는데,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밖에 계신 홍 봉공의 내공 특성도 그렇고… 다른 방법이 있더냐?”

“그건…….”

육선자의 물음에 팔검향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검모궁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팔검향이 기녀 노릇까지 하며 암권에게 접근한 이유는 그가 고수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흑살기 때문이다.

검모궁이라도 흑살기를 무시할 수 있는 고수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에 불과했다.

“해… 주십…시오. 끄응!”

“소협!”

“그리, 하지요.”

흑살기로 인해 고통스러운 것이지, 의식을 잃은 게 아니기에 이백은 두 여인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대화만으로도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위험한 독을 언급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역시 이해했다.

이백이 수락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육사숙!”

“그만! 본인이 수락한 일이다. 나가라. 치료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어서!”

“…예.”

단호한 육선자의 명에 팔검향은 입술을 깨물었다.

허나 그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사적으로는 사숙이지만, 공적으로는 육선자. 즉, 그녀의 상관이다.

항명이 통할 정도로 검모궁은 무른 집단이 아니다.

그랬다면 수백 년의 역사가 지속될 리가 없다.

오히려 그 어떤 집단보다 단호한 곳이 바로 검모궁이다.

밖으로 나가는 팔검향은 이백을 힐끔거리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겨내세요. 소협…….’

*  *  *

“죽여, 주십시오… 가주님.”

쿵! 쿵! 쿵!

넝마가 된 초로의 사내가 부복한 채 머리를 바닥에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그의 이마가 피로 물들었다.

허나 내려치는 이도, 이를 내려보는 이도 개의치 않았다.

잔혹하지만 누구도 그리 생각하지 못했다.

그를 내려보던 노인이 나직하게 말했다.

“혼아… 두 번째구나. 본좌를 실망시킨 게…….”

“…….”

노인의 나직한 목소리가 사내의 귓가에는 천둥처럼 들려왔다.

그 어떤 임무도 완벽하게 수행해왔던 사내도 딱 두 번의 임무만은 실패하고 말았다.

한 번은 이번 임무고, 또 다른 임무는 십여 년 전 노인의 아들 부부를 구해오는 것이었다.

허나 사내가 당도했을 때, 그들 부부는 이미 피살된 후였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두 임무를 실패했다.

부복했던 사내는 몸을 일으켰다.

“가주님, 그간의 은혜… 소가주님의 곁을 지키며 갚겠…….”

“갈(喝)!”

사내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주먹으로 본인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그가 소가주라 칭한 자는 오래전에 죽은, 노인의 아들이다. 즉, 자결을 시도한 것이다.

허나 사내는 자신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칠 수 없다.

노인의 입에서 일갈이 터져 나온 순간, 미증유의 거력이 사내의 몸을 옭아맨 탓이다.

“임무는 실패했으나 본좌의 손녀는 살아 있다! 그럼 네가 살아서 완수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어찌, 죽음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하느냐! 혼아, 이 녀석아!”

“애…기씨가 살아… 계신단 말입니까! 진정, 살아 계신단 말입니까!”

사내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넝마가 된 외팔이 사내는 바로 암비(暗秘) 당혼이었다.

흑야회주 흑야(黑夜)의 발목을 잡은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정확히는 죽을 뻔했으나 비술로 목숨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적무산의 곁에 있다.”

“제때… 도착했군요. 다행입니다.”

사실 도박이었다.

북천표국이 있는 북천현까지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기에 그전에 흑야에게 잡힐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건 도박인데, 다행히 성공한 듯했다.

“허나 그가 령이를 놓아주지 않는다는구나.”

“아…….”

적무산은 사적으로 당령의 외숙이다. 게다가 당령의 어미인 그의 누이가 사천당가로 향하던 도중에 죽었다.

배후가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의 입장에선 사천당가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게다가 조카인 당령마저 사천당가로 가는 도중에 피습을 당했다.

순순히 내어주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당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적 대협을 설득해보겠습니다.”

“아니, 되었다. 은, 묵과 함께 령이의 곁으로 가 있게. 그 정도는 적 국주도 거부하지 못할 걸세.”

당혼, 당은, 당묵.

이들 셋을 통틀어 당외삼비(唐外三秘)라 부른다.

당 가주는 자신의 수족 셋을 전부 보내려 한다. 그만큼 당령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남다르다는 게 드러낸 셈이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당가 혈족의 마음속에 불을 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당 가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어딘가를 쳐다봤다.

‘너희가 어찌하는지 내 지켜봐 주마.’

*  *  *

설군에게서 새하얀 빛이 은은하게 빛났다.

우~웅!

그 빛에 공명(共鳴)하듯 이백 역시 새하얀 빛을 냈다.

[‘흑살기’가 소멸되었습니다.]

[‘탁기’가 소멸되었습니다.]

반투명 창이 생성되는 순간, 새하얀 빛이 사라졌다.

이로서 이백을 괴롭히던 흑살기가 소멸된 것이다.

육선자가 특별히 배합한 약탕의 약기가 효과를 봤다.

그것으로 부족해 그의 체내에 쌓여 있던 탁기마저 소멸했다.

흑살기가 체외로 배출된 게 아니라 태워지며 소멸한 건, 약탕에 섞인 염마독의 효용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도박에 가까웠다. 아니, 도박이었다.

육선자가 심혈을 기울여 배합했으나 염마독의 화기는 그녀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지독했다.

실제로 흑살기를 소멸시키긴 했으나 이백의 혈맥은 물론 내장기관과 근육에 손상을 주었다.

그때 설군이 그에게 기운을 나눠주지 않았다면, 이 도박은 실패로 돌아갔을지 모른다.

설군은 보통 짐승이 아니다.

신묘한 기운을 품고 있는 특별한 짐승이다.

설군이 간혹 한 번씩 사라지는 건, 힘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서 자라고 있는 영초나 독초 등이 오랜 시간 축적한 자연지기를 흡수했다.

육선자가 자령초를 찾아내지 못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설군이 흡수한 자령초의 기운은 공명(共命)을 통해 이백에게 전해졌다.

아니었다면 흑살기를 소멸시키기 전에 그가 먼저 무너졌을 것이다.

과도한 기력을 소모한 탓인지, 설군은 눈을 감고 그대로 깊은 잠에 들었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 앞뒤와 같다고 했던가.

[‘만수통령신공’ 4성에 올랐습니다.]

[‘만수통령신공’ 5성에 올랐습니다.]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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