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북천표국(北川鏢局) (2)
당령이 북천표국에 도착한 시각, 이백은 섬서를 지나고 있었다.
섬서성은 13개의 왕조가 도읍을 정한 땅이다.
자연스럽게 문화, 역사, 경제 등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구파일방의 화산과 종남파가 자리 잡고 있어서 치안 역시 안정된 편이었다.
허나 섬서의 모든 지역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성도 서안(西安)과 화산, 종남파와 거리적으로 멀어질수록 많은 면에서 부족했다.
석천현이 그러했다.
“정말 함께 가지 않아도 되겠는가?”
“저는 괜찮으니 두 분이서 다녀오십시오.”
석천현의 지현(知縣)은 범죄가 끊이질 않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돈도, 배경도 없는 그로서는 석천현을 벗어나는 건 요원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제갈세가의 대공자가 석천현에 하루 묵는다는 것을 말이다.
무림세가이지만, 지자의 가문답게 제갈세가는 와룡학관을 운영했다.
이 와룡학관에서 배출한 관리가 수없이 많았다.
석천현의 지현 역시 와룡학관에서 수학한 자였다.
이곳을 벗어날 기회라 여긴 그는 제갈천기를 초대한 것이다.
그가 촌구석 지현과 직접적인 접전은 없으나 와룡학관 출신이라 하니, 마냥 거절하긴 어려워 응하고 말았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쉬고 있게.”
“예, 형님.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결국 제갈천기는 금검만 대동한 채 객잔 별채에서 나갔다.
석천현의 사정을 알겠듯 대부분의 객잔은 허름했다.
그나마 별채가 있는 객잔이 없지 않아 하루 통째로 빌려, 제갈세가 일행만 조용히 쉴 수 있었다.
이백은 별채 마당에 나와 잠시 사색을 잠겼다.
푸득~! 푸드득~!
새가 날개짓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백의 기운이 끌렸는지, 많은 새가 별채 주변에 날아들었다.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두려워할 만도 한데, 새들은 이백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백 역시 별로 개의치 않았다.
푸득~! 푸드득~!
별채 주변에 모여들었던 새들이 갑자기 날아가 버렸다.
새들이 본능적으로 천적의 등장을 알아차린 것이다.
스~으~ 스~으~
“뭐 때문에…….”
고갤 돌린 이백은 움찔했다.
뱀 한 마리가 그를 향해 혀를 나름 거리고 있었다.
새들에 이어 이번에는 뱀까지 나타나고 말았다.
뱀의 눈과 마주친 이백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청랑안’에 입문했습니다.]
[‘청랑안’이 ‘백수안’으로 진화했습니다.]
[백수안(百獸眼)]
짐승을 일시적으로 속박할 수 있다.
단, 대상자의 정신 방어력이 높은 경우 속박이 무효될 수 있다.
맹수인 늑대는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다고 판단하면 달려든다.
그런 늑대를 조련하기 위해선 먼저 기를 꺾을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 창안된 공부가 바로 청랑안(靑狼眼)이다.
대설산에서 백수조련술의 성취도 낮은데, 청랑안마저 발동하지 않았으니 늑대를 조련할 수 있을 리가 없던 것이다.
늑대에 한정된 청랑안이, 모든 짐승들을 일시적으로 속박할 수 있는 백수안으로 진화했다.
[‘백수안’이 뱀을 일시적으로 속박했습니다.]
이백은 안도했다.
다행히 뱀에게도 통한 듯싶었다.
“숲도 아니고, 웬 뱀이 있는 거야?”
작은 현이라고 해도 수만 명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뱀이 쉽게 나타날 거라 생각하긴 어려웠다.
“뱀도 조련할 수 있을까?”
이백은 늑대의 조련을 실패한 이후 백수조련술을 익히지 않았다.
그때와 같이 폭주해 되려 반격당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백수조련술은 분명 쓰임이 많은 힘이다.
마음을 강하게 먹은 이백은 백수안에 의해 속박된 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뱀에게 백수조련술을 펼치려고 할 때였다.
“젠장, 언제 열린 거야? 손님을 물기라도 하면 난 끝장이야!”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그는 한 자루의 칼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이백은 당황하지 않았다.
사내가 쥔 칼이 식도(食刀)였기 때문이다.
“헛! 위, 위험합니다! 손님!”
그는 사색이 되었다. 뱀이 객잔의 손님을 위협(?)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탓이다.
별채를 통째로 빌린 부잣집 도련님이 식자재 창고에서 탈출한 뱀에 물린다면 자신은 끝장이다.
주방장의 고성에 놀란 뱀이 속박에서 풀려나고 말았다.
백수안의 성취가 높지 않기에 외부의 자극에 의해 풀린 것이다.
주방장의 고성에 반응한 건 뱀만이 아니었다.
서걱!
빛이 번쩍이는 순간, 뱀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괜찮으십니까! 이 공자님!”
“괜찮습니다. 무사님.”
별채 내에서 쉬고 있던 금검대 고수였다.
위협적인 외형만이 아니라 검을 다루는 솜씨 역시 ‘나 고수요’ 하는 거 같았다.
그를 본 주방장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바짝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저, 저녁에 내올 뱀이 도망쳐서… 저,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겨우 뱀에 다치겠습니까?”
주방장의 잘못이 있긴 하지만 자신에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오히려 금검대 고수를 납득시켰다.
사실 놀라 손을 쓰긴 했지만, 금검대 고수 역시 이백의 무공 수준이 보통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특히 보법은 금검대 고수 중에서도 따를 자가 없을 정도였으니, 한낱 뱀에 다칠 리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는 검을 거두며 말했다.
“이 공자님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이번 일은 넘어가겠소. 허나 두 번은 아니 될 것이오.”
“무, 물론입니다! 요,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약한 자를 만났다면 칼부림이 나거나 과한 보상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을 겪어본 적이 있기에 주방장은 이백의 배려가 너무도 감사했다.
주방으로 돌아간 주방장은 보답하겠다는 듯 저녁상을 거하게 차렸다.
덕분에 금검대 고수들은 예정보다 더 상다리 휘어지게 먹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긴장이 풀리고 말았다.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 채.
* * *
쾅! 콰쾅!
빛이 충돌할 때마다 굉음과 함께 강한 충격이 발생했다.
자연의 기운을 내공심법으로 가공해 만들어낸 내공(內功)의 힘이다.
물론 내공심법을 익혔다고 해서 모두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저들이 발휘하고 있는 힘은 기(氣)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강기(罡氣)였다.
무림 백대고수. 즉, 초절정고수만이 발휘할 수 있다는 파괴적인 힘이다.
북천표국의 표사들은 물론, 북천현의 무림인들은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역시 국주님!”
“과연 북천검, 사천십이대 고수다워.”
높은 명성답게 북천검은 강했다.
허나 그의 상대 역시 만만치 않았다.
흑야(黑夜). 밤의 전설답게 그의 공격은 매서웠다.
일검 일검, 어느 하나 쉬이 볼 수 없을 정도로 사혈만 노리는 섬뜩한 살초였다.
허나 그의 진정한 강함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암살할 때다.
결코 그의 아래라고 할 수 없는 북천검을 상대로 정면 승부라니.
살수로서 실격이다.
허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흑야의 실력은 대단했다.
후~욱!
흑야가 몸을 빠르게 회전하며 검을 휘두르자, 흡사 검은 폭풍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북천검은 동요하지 않고 양손으로 검을 쥐었다.
“단(斷)!”
북천검은 단호하게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검은 폭풍이 반으로 갈리며 폭발이 일어났다.
콰쾅!!
그 충격으로 북천검은 반장(半丈: 1.5m) 밀려났고, 흑야는 튕겨 나갔다.
팽팽했던 접전과 달리 허무한 결과였다.
“이런!”
수세를 점했던 북천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반장이나 밀려났기 때문이 아니다.
흑야는 그냥 튕겨 나간 게 아니다. 오히려 목표물에게 행하기 위해 북천검의 반격을 이용한 것이다.
바로 당령을 향해 말이다.
만약을 대비해 그녀의 곁에 대표두와 표사들을 배치했으나 달려가는 흑야의 검에는 검강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절정고수인 대표두라도 검강을 막아낼 순 없다.
그가 일전에 흑야의 암습을 막아낼 수 있던 건, 당시에는 검강을 발휘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허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그 뒤를 달려가는 북천검의 얼굴에 절박함이 어렸으나 흑야의 검이 더 빨랐다.
“죽어라!”
“젠장!”
슉! 슉! 슉! 슈슉!
그 순간 흑야에게 암기가 쏟아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흑야는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쏟아지는 암기들을 온몸으로 맞아내야 했다.
푹! 푸푹! 푹! 푸푹! 푹!
흑야는 암기들로 인해 반쯤 걸레가 되었다.
그에게 암기를 쏜 자는 예상치 못하게도 장철우였다.
만약을 대비해 암비가 그에게 주었던 암기였다.
본인 역시 이 정도 위력은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개… 같은… 컥!”
서걱!
흑야는 둘로 쪼개졌다. 뒤늦게 달려온 북천검이 벤 것이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흑야는 그렇게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북천검은 장철우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어찌 된 일인지 듣고 싶소. 장 협사.”
* * *
“…단주님과 선배님들이 괴한들에게 죽어가는 동안 저는… 저는…….”
장철우는 십여 년 전의 비사를 적무산에게 밝혔다.
절정고수인 철표는 물론, 단원들 대부분이 일류고수로 구성된 철위단이다.
웬만한 중소문파에 버금갈 정도다.
철위단의 실력은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철위단이 손도 쓰지 못하고 전멸이라니, 단순한 사건으로 치부할 일은 아닌 듯했다.
“장 협사의 잘못이 아니오. 오히려 령이를 이리 살리지 않았소? 그런데 궁금한 게 있소. 왜 진즉에 당가나 본 표국에 연락하지 않았소? 그럼 도움을 주었을 텐데…….”
“적 부인께서 제게 령이를 맡기며 부탁하셨습니다. …무림과는 무관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만약 당가에 발각되지 않았다면 계속 적 부인의 부탁을 들어드렸을 겁니다.”
장철우의 대답에 적무산은 신음을 흘렸다.
무림과 무관한 삶.
적소희는 당령이 사천당가로 간다면 불행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제 어찌할 생각이오?”
“가야겠지요. 당가에… 령이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몰라도… 드러난 이상 그들이 포기할 리 없지 않습니까.”
사천당가의 독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찾아낼 사람이 바로 사천당가 족속들이다.
게다가 반대로 당령을 노리는 존재가 있다.
사천당가라는 그늘 속에 숨는 게 당령의 안위를 위해 나을 수 있다.
“그런 이유라면, 이곳에 있으시오. 내가 두 사람을 보호하겠소.”
“국주님, 상대는 사천당가입니다!”
장철우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가 흥분한 것도 당연하다.
북천표국이 사천 북부를 대표한다고 한들, 사천당가와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적무산이라고 흥분해 아무 생각 없이 내린 결정이 아니다.
“난 령이의 외숙이요. 당가라고 한들 내게서 령이를 무작정 데려갈 수 없소.”
“그렇긴 하나…….”
적무산의 말이 틀린 게 아니다.
사천당가가 당령의 친가라면, 북천표국은 그녀의 외가이니까.
허나 세상일이 말처럼만 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억지를 쓴다면 상대해줄 용의도 있소.”
“…….”
적무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명문정파인 사천당가가 당령의 외가인 북천표국으로부터 힘으로 그녈 빼앗아가려고 한다면 세간의 공분을 살 수 있다.
그럼 수백 년간 쌓은 사천당가의 명성과 명예를 잃게 되니 그들로서도 행보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설사 그조차 감당하겠다면, 적무산도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낯짝이 두꺼운 사천당가라도 독선이 직접 움직일 리가 없다.
그만 아니라면 상대 못 할 것도 없다.
지금부터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말이다.
“장 협사의 말대로라면 흑야에게 청부한 자는 백만 냥이라는 재력이 있고, 사천당가라는 후환이 두렵지 않다는 말이오. 과연 그런 집단이 흔하겠소?”
“국주님의 말씀은…….”
적무산의 말에 장철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말뜻을 대충 알아차린 것이다.
적무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당가… 청부자는 그들과 연관이 있소.”
“그, 그런!”
설마 했던 장철우의 눈이 커졌다.
적무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호굴에 들어갈 뻔한 상황 아니겠는가.
적무산이 나직하게 말했다.
“뒤는 내가 맡을 테니, 장 협사는 령이가 놀라지 않게. 곁에 있어 주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장철우로서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그가 가장 원하는 건 바로 당령의 안위와 행복이었으니까.
장철우를 돌려보낸 적무산은 이를 악물었다.
“소희의 죽음에 너희가 관여되었다면… 결코 용서치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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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