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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7화 (7/200)

7화. 자전도군(紫電刀君)

“흐흐… 하하하!! 드디어 내가 찾아냈다!”

중년 사내가 파안대소했다.

그가 한때 무림 금역이라고 불린 곳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금역일지 모르지만, 이젠 자신에게 기연을 줄 장소였다.

동굴 입구에는 청랑동(靑狼洞)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대설산을 뒤지고 있는 무림인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이젠 나도 천하 고수가 될 수…….”

“병신, 어디서 그런 헛된 꿈을 꾸느냐?”

안타깝게도 청랑동을 발견한 건 그만이 아니었다.

간발의 차였으나 또 다른 무림인 역시 청랑동을 발견했다.

“난…파검(難破劍)……!”

“알면 주제를 알아야지.”

난파검이라면 제법 알려진 절정검객이었다.

싸운다면 십 중 십, 자신이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허나 눈앞에 기연이 있다.

그런데 포기하려니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애송아.”

“미, 미친! 음살부골괴(陰殺腐骨怪)… 컥!”

삐쩍 곯은 노인의 손에 난파검의 목이 붙잡혔다.

난파검도 절정검객이지만, 노인에겐 별 의미 없는 존재였다.

부드득.

그 순간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난파검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음살부골괴가 난파검의 목뼈를 부순 것이다.

“청랑왕의 무공은 노부가 갖겠다. 불만이 있는 것들은… 모두 죽여주마.”

“…….”

눈에 보이지 않으나 주변에는 많은 무림인들이 숨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허나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음살부골괴는 그들과 격이 다른 고수였다.

무림 백대고수. 다르게 말하면 초절정고수였다.

십왕(十王)이 가진 위력을 보여주듯 엉덩이 무거운 초절정고수마저 움직이게 만들었다.

초절정고수는 오직 초절정고수만이 상대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의 상징인 강기 때문이다.

절정고수라도 강기를 감당할 수 없다.

그게 무림 정설이며,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나서지 못한 채 눈치만 볼 뿐이었다.

“흐흐흐… 그럼 노부가…….”

“그건 안 되겠소만.”

“어떤 새끼가……!”

기분 좋게 청랑동에 향하던 음살부골괴는 누군가의 반박에 짜증이 났다.

고갤 홱 돌렸다.

허나 그는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누가 감히 초절정고수인 음살부골괴에게 시비를 걸 수 있겠나.

허나 같은 초절정고수라면 말이 다르다.

“신창(神槍)… 이런 썅!”

“굳이 피를 보겠다면 피하지 않겠소. 부골괴.”

창은 무서운 무기다.

다루기 쉬우면서도 상당히 위력적이다.

그럼에도 무림에서는 저급하다 평하며, 군문에서나 익히는 무기라 여긴다.

휴대가 불편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일정 수준까지만 쉽고 그 이상 오기 어려운 탓이다.

그러다 보니 도검에 비해 창을 익힌 무림인의 수는 극히 적을 수밖에 없고, 초절정의 창수는 손에 꼽힐 수밖에 없다.

신창(神槍) 양철승.

오대세가를 제외한 무림세가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는 신창양가의 가주다.

신창양가는 무림에서도 그 위치가 대단하지만, 군문에선 더 대단하다.

전현직 장수들 중 양가 출신이 셀 수 없으며, 고위급 역시 적지 않다.

그런 양철승이 기마대까지 끌고 왔다.

음살부골괴가 아니라 웬만한 무림방파가 나서도 상대가 어렵다는 뜻이다.

“후회하게… 될 것이다. 신창.”

“후회, 그건 본 가주가 감당할 일이니. 부골괴께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오.”

음살부골괴는 신창을 한참 노려보다가 물러났다.

신창 한 명만이라면 음살부골괴도 해볼 만했다.

신창양가의 배경이 신경 쓰이지만, 청랑왕의 유산만 손에 넣는다면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으니까.

허나 양가 최강이라는 신창기마대까지 대동한 상황이다.

음살부골괴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설사 저들을 물리친다고 한들, 무사하긴 불가능하다.

그땐 기회만 엿보던 승냥이들이 움직일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결국 음살부골괴로서는 득이 될 게 없는 상황인 셈이다.

양철승은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양가의 가주 양모외다. 불필요한 피를 봐서 뭐 하겠소?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불편한 일은 없을 것이오. 다시 말하겠소. 이 양모로 하여금, 잔혹한 결정을 내리게 하지 말게 해주시오.”

“젠장!”

“있는 것들이 더 한다니까!”

내공이 담긴 양철승의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주변에 은신하고 있던 무림인들은 강압적인 권고에 하나둘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양철승 한 명만이라면 기횔 엿보겠지만, 그의 곁에 신창기마대까지 있는 이상 불가능한 탓이다.

사파와 달리 웃으며 협박하는 게 정파의 특성이다.

대신 거부하면 가차 없이 손을 쓸 게 뻔하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신창 양철승, 신창양가의 위세가 대단했다.

허나 신창양가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해도 천하제일은 아니다.

정파무림만 해도 견주거나 그보다 더한 무림세가가 열은 되고, 게다가 구파일방도 있다.

무엇보다 무림에는 정파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싫은데 어쩌나?”

“네놈은…….”

*  *  *

“역시 청랑왕답네. 신창양가에 이어 패왕성이라니…….”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나 청랑왕의 유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감숙성에선 빠질 수 없는 주제였고, 객잔에선 이보다 좋은 술안주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청랑왕의 유산을 얻었다고 하던가?”

청랑동을 앞두고 두 세력이 충돌했다.

신창양가가 오대세가에 근접한 무림세가의 하나라지만, 상대는 사파무림의 패왕성이다.

패왕성의 성주는 무려 십왕의 패황(霸皇).

그런 패황의 왼팔이라고 불리는 사자도패(獅子刀覇)가 나섰다.

“아무도 못 얻었다고 하더군.”

“음? 그게 무슨 말인가? 양패구상했단 말인가?”

신창이 이끄는 신창기마대가 뛰어나다고 해도, 사자도패와 휘하 도객들 역시 만만치 않다.

그들이 충돌한 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그럼에도 아무도 차지 못했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게 아니라 청랑동 안이 텅텅 비었다고 하더군.”

“에~에! 그럼 누가 먼저 차지했단 말인가!”

“그럴 수도 있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안 남겼을 수도 있고… 그걸 누가 알겠나?”

적지 않은 유혈 사태를 일으켰음에도 승자가 없는 웃픈 상황이었다.

오히려 패왕성과 신창양가만 원수가 되었다.

객잔 안에는 신창양가와 패왕성 소식에 발길을 돌린 많은 무림인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제갈천기 일행과 동행 중인 이백도 있었다.

‘역시 그렇겠지. 원정은 내가 얻었으니까.’

이백은 청랑왕의 원정을 노린 게 아니다. 그저 측은지심에 잠든 노인을 깨우려고 했을 분이다.

헌데 잠든 줄 알았던 노인이 죽은 청랑왕이었고, 그를 깨우려는 순간 가루로 변하더니 원정이 흡수될 줄은 이백이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모두 혈안이 된 청랑왕의 유산(원정)의 주인은 이백이 된 것이다.

동굴 안을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으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동반자라는 청랑(靑狼)조차 말이다.

그러니 누가 승자가 되었든 청랑동에서 그의 유산을 손에 넣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말은 즉슨, 정말 게임 속이라고 한들 자신도 모르게 스토리가 바뀐 것도 아니란 뜻이다.

‘형님의 말처럼 들통나면 곤란해질 수 있으니 조용히 있자.’

대설산에서 한참 벗어난 난주에서도 이런 소식이 들릴 정도다.

괜히 알려지면 자신에게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백은 홀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의 곁에는 가만히 있어도 주목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있었다.

“이게 누구신가? 제갈세가의 옥협(玉俠) 아닌가?”

“…제갈세가의 천기가, 자전도군(紫電刀君)을 뵙습니다.”

옥면기협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외모를 가진 제갈천기가 원치 않게 주의를 끌고 말았다.

그것도 평범한 인물이 아닌 듯 제갈천기가 초로의 도사를 향해 먼저 포권을 취했다.

그는 공동파를 상징하는 검은 도복을 입고 있었다.

공동파는 실전적인 검술로 유명한 문파다.

중원의 변방인 감숙에 위치한 공동파이기에 마교나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오면서 자연스럽게 검술이 실전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도가(道家)의 맥을 잇고 있으나 속가(俗家)의 색이 강해진 이유다.

허나 말석이라도 구파일방의 하나답게 검술 이외에는 방대한 무학을 보유했다.

그중 하나인 자전도법(紫電刀法)을 익힌 공동파 최연소 장로가 바로 그다.

“금검께서도 계셨구려?”

“오랜만에 뵙습니다.”

너희가 이곳에 왜 있냐는 듯한 경계 어린 물음에 두 사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같은 정파라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서로 견제 아닌 견제를 해왔다.

말 하나 잘못하면 골치가 아파질 수 있기에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아시겠지만 조부님과 청랑왕께선 오랜 친우셨습니다. 그분의 소식을 듣고 왔는데…….”

“그러셨소? 청랑왕은 늑대 이외에 정을 나누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의외군.”

제갈세가의 전대 가주와 청랑왕이 연이 있다는 게 어느 정도 알려졌으나 자전도군은 모른 척했다.

불쾌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제갈천기는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모르셨군요. 제법 유명한 일화라… 장로님께서도 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모르실 수도 있지요.”

“그런가? 그래서 원하는 걸 얻었소?”

“아쉽게도…….”

제갈천기는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얻은 게 아니니 거짓은 아니었다.

자전도군 역시 들은 게 있으니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때 그의 눈에 어울리지 않은 자가 보였다.

“그런데 저 소협은 누군가?”

“아, 백이 말이십니까? 제 의제입니다.”

제갈세가의 대공자인 내 의제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했다.

그걸 깨달은 자전도군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차기 가주로 유력한 옥면기협이 아무나 의제로 삼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복식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옥협의 의제라… 반갑네. 공동의 자전도군이라 하네. 자넨 어느 가문 아니, 어느 문하에 있는 후밴가?”

“저는… 조…….”

그 순간, 이백은 당황했다.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없었기에 조선이라고 둘러대려고 했다.

설마 조선까지 가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때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게 되었다.

“장로님! 장문 사백님께서 조속히 복귀하라 하십니다!”

“무슨 일이더냐!”

예상치 못한 방해를 받은 자전도군은 공동파 제자를 향해 짜증을 냈다.

공동파 제자는 움찔했으나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신창양가의 분들이 본파에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해서…….”

“알겠다. …소협, 뭐라고 했소?”

무슨 영문인지, 자전도군은 꼭 알아야겠다는 듯 이백에게 다시 출신에 대해 물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백을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걸 느낀 것이다.

허나 공동파 제자는 제 임무에 너무 충실했다.

“자, 장로님. 장문 사백님께서 조속히…….”

“알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자전도군의 호통에 공동파 제자는 움찔했다.

그는 자전도군의 짜증스러워하는 눈빛에 겁먹고는 그제야 물러났다.

이백 역시 어설픈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소협,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저는…….”

자전도군의 차가운 목소리와 눈빛.

결코 호의적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제갈천기와 금검이 슬쩍 자전도군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로님, 제 의제가 무슨 실례라도 범했습니까?”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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