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첫 실전
쩌억!!
마지막 장작이 쪼개졌다.
[일일 퀘스트: ‘100일간 장작 패기’ (100/100)]
[일일 퀘스트: ‘100일간 장작 패기’를 완수하셨습니다.]
[보상: 근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보상: 체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보상: 인내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보상: ‘베기’에 대한 이해가 소폭 상승합니다.]
“후우… 벌써 100일이나 되었네.”
이백에게 처음으로 발생한 임무는 바로 ‘100일간 장작 패기’였다.
그 임무는 오늘로써 완수했다.
이는 즉, 자신이 이곳에 온 지 벌써 100일이나 되었단 뜻이기도 했다.
이백은 쪼갠 장작을 바라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정도는 너끈히 해치울 수 있게 된 게 왠지 뿌듯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이백의 눈에 작은 동물들이 보였다.
‘오늘도 모여들 있네?’
언제부터인지 그가 나무하러 산에 올라오면 작은 동물들이 나타났다.
이백이 백수조련술을 펼친 것도 아니다.
그에게 동물들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작은 동물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이젠 이백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젠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기 싫다.”
매일 일에 찌들어 살던 예전과 달리 자연과 벗 삼은 삶.
분명 불편한 점도 있었다. 많았다.
그럼에도 오히려 마음에 편했다.
사람들이 괜히 귀촌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의 삶에 빠져들고 있었다.
“100일간 장작 패기 일일 퀘스트도 끝냈으니, 오늘은 기필코 청랑보 7성에 오르고 만다!”
청랑보의 성취가 6성에 오른 지 열흘이 지났다.
그럼에도 7성에 오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물론 6성의 청랑보만으로도 대설산의 그 어떤 맹수보다 빨랐다.
설군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모를 것이다. 청랑왕이 그의 성장 속도를 봤다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지 모른다는 것을.
“그럼 열렙(?)을 해보실까!”
이백이 호기롭게 열의를 불태우려는 순간, 누군가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걸 ‘기척’이라고 하는데, 아직 이백은 그러한 사실까진 알지 못했다.
당령의 산뜻한 느낌이나 장씨의 진중한 느낌이 아니었다.
날카로우면서 불쾌한 기분이 들어 이백은 본능적으로 숨었다.
그걸 느낀 게 이백만이 아닌지, 모였던 동물들 역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백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얼굴에 긴 상흔이 역력한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연신검(浩然神劍)… 빠드득… 청랑왕의 유산만 찾는다면… 네놈부터 죽여 주마!”
그는 얼굴에 난 상흔을 만지며 분노를 터트렸다.
그 상흔을 만든 자가 호연신검이라고 불리는 존재인 듯싶었다.
중년 사내의 분노에 숨어 있던 이백은 움찔했다.
‘청랑왕의 유산? 설마 정말 [영웅]의…….’
이백은 중년 사내가 언급한 말을 듣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허나 그의 생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여기 쥐새끼가 숨어 있었군.”
“저, 저, 저는…….”
이백은 숨는다고 숨었는데, 중년 사내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를 바라보는 중년 사내의 눈빛은 섬뜩하기만 했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죽이면 그만이니까.”
“사, 살려…….”
이백의 사정이 끝나기도 전에 중년 사내가 칼을 휘둘렀다.
그 빠름이 대설산의 늑대들보다 더했다.
웬만한 무림인이라도 피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후웅!
허나 중년 사내의 칼은 허공만 베었다.
도파(刀把: 칼손잡이)에 전해지는 느낌이 없었다. 즉, 벤 게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피했다? 버러진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란 말이지?”
“이, 이러지 마십시오! 왜, 왜 이러십니까! 마, 말로! 말로 해도 될 일을 왜…….”
이백의 말이 끝나기 전에 중년 사내의 칼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조금 전도 분명 빨랐다. 허나 이번에는 그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분뢰도법(分雷刀法).
그를 절정도객으로 만들어준 도법이다.
비록 전력을 다하지 않았으나 4성의 분뢰도법이라면 일류고수라도 피하기 어렵다.
후욱!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부터 달랐다.
허나 여전히 도파에 전해지는 느낌이 없었다.
이쯤 되니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방열은 살짝 눈이 뒤집혔다.
“이놈! 어중이떠중인가 했더니! 고수였구나! 허나 이 방열을 우습게 본 걸 후회하게 해주마!”
“제가 언제 우습게 봤다고…….”
그 순간 분뢰도(分雷刀) 방열의 칼이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도기(刀氣)였다.
분뢰도법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도법이 아니다. 그 위력 역시 강력하다.
스치기만 해도 그 부위가 작살이 날 정도이기에 상대하기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났다.
이백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느꼈다.
“죽, 어라!!”
섬뜩한 살기가 이백의 심장을 옥죄었다.
그러는 사이 강렬한 도기를 뿜어내는 방열의 칼이 이백의 목을 향했다.
머리로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반응하지 못했다.
실전을 통해 체득한 고수의 살기를 이겨내기엔 이백의 심기가 아직 부족한 탓이다.
‘사,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 마음속 깊숙이에서부터 치솟았다.
방열의 칼이 지척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이백은 본능적으로 청랑보를 펼쳤다.
뒤로 물러났어야 했는데, 웬걸?
오히려 이백은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백의 주먹이 방열의 복부를 가격했다.
퍽! 퍼퍽! 퍼퍼퍽!
일격, 이격, 삼격…….
수십의 권격이 그의 복부에 꽂혔다.
[‘극의 ― 풍운뇌우’ 1성에 올랐습니다.]
놀랍게도 그건 풍운뇌우(風雲雷雨)였다.
예상치 못한 이백의 반격에 방열은 무방비하게 당하고 말았다. 그 결과 볼썽사납게 나가떨어졌다.
풍운팔식을 완성하면서 깨달은 극의지만, 사실 풍운뇌우는 원형인 풍운도법의 극의다.
풍운도법이 파락호도 익히지 않는 삼류 취급받는 이유는 극의를 잃은 탓이다.
허나 반대로 말하면 극의를 깨우친다면 풍운도법이야말로 절세도법이 된다.
풍운도법의 원주인인 풍운신군(風雲神君)이 그랬듯이.
이백은 그런 풍운뇌우를 깨우쳤다.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풍우뇌우의 성취가 낮고, 내공을 담지 않았기에 본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방열에게 충격을 줄 수 있었다.
방열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쿨럭… 개, 같은… 새…끼! 어리숙… 우웩!”
그는 결국 피를 토하고 말았다.
하수가 고수를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물며 방열은 무려 절정도객이다.
아무리 이백이 청랑왕의 유산을 얻었다고 한들, 체득하지 못한 상황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결과가 나온 건, 천운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다시 싸운다면 백이면 백.
이백은 그의 칼에 목이 달아날 것이다.
“괜찮으세…….”
“죽, 어라!”
후웅~!
피를 토하는 방열을 보며 이백은 어쩔 줄 몰랐다.
비록 제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나, 현대의 가치관을 가진 이백으로서는 무림인의 냉혹함을 가지지 못한 탓이다.
허나 방열은 다르다.
오로지 분노만으로 칼을 휘둘렀다.
허나 그 움직임이 이전만 못 했다.
이백을 베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후웅~!
방열은 다시 한번 칼질을 했으나 여전히 허공만 벨 뿐이었다.
이미 이백을 베기에 그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허나 이백 역시 방열을 어찌하지 못했다.
이백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하다기보다는 아무리 자신을 해하려 한 방열이라지만, 그를 해할 정도로 이백의 심기가 굳지 못한 탓이다.
아니, 그의 심기가 굳지 못하다기보단 오히려 그게 정상이다.
사람 목숨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무림이 비정상이지 않을까.
문제는 이곳이 이백이 살았던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 같은… 새…끼.’
방열의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는 떨리는 손을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방열은 자신의 손에 잡힌 무언가를 느끼곤 입가에 차가운 조소를 지었다.
그는 이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죽어라, 이 새끼… 으악!”
“후~ 큰일 날 뻔했소, 소협.”
방열은 자신의 손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에는 한 자루의 비수가 꽂혀 있었다.
이백은 비수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사내들이 서 있었다.
‘뭐 이렇게 잘생긴 놈이 다 있어.’
배우를 했다면 국민 남친 소릴 들을 법한 20대 중반의 청년과 3,40대 정도로 보이는 사내들이었다. 하나같이 검을 쥐고 있는 모습에 그들이 무림인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이백은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해 눈만 끔뻑였다.
청년은 그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입을 열었다.
“소협은 눈치채지 못했나 보오. 저자는 방금 소협에게 암기를 쏘려고 했소. 형태를 보니 아마 망혼비(亡魂悲)일 게요. 원래 사천당가의 암기인데, 몇 개가 분실되었단 소문이 있소. 분뢰도가 대단한 고수이긴 하지만, 사천당가를 상대로 절도했을 리 없으니… 흑시(黑市)에서 구입했겠지요.”
“…….”
청년은 아는 게 뭐가 그리도 많은지, 눈앞의 모든 걸 알아차리고 설명했다.
방열이 자신의 손에 꽂힌 비수를 뽑자, 중년 사내들이 자연스럽게 청년을 포위하듯 가로막았다.
청년의 지위가 상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젠장! 제갈가 새끼들! 호연신검! 대범한 척하더니, 내가 청랑왕의 유산을 얻을까 두려워… 뒤쫓아왔구나!”
“오해요, 방 대협. 우린 그저, 조부님께서 고우(故友)이신 청랑왕 님의 유산이 더럽혀지는 걸 두고 볼 수 없기에 왔을 뿐입니다.”
그들은 바로 제갈세가에서 온 고수들이었다.
구파일방과 함께 정파무림을 이끄는 오대세가.
독(毒), 검(劍), 도(刀), 권(拳), 지(知)를 대표하는 오대세가 중 지를 대표하는 가문이 바로 제갈세가다.
“닥쳐! 닥쳐! 닥쳐!!”
“후… 금검(金劍) 숙부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청년의 말에 한 중년 사내가 움직였다.
중년 사내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으나 금검이라고 불린 사내는 그중에서도 특별해 보였다.
방열은 그를 보며 이를 갈았다.
“제갈가의 개, 금검…….”
“방 대협. 본가의 우가(友家)인 당가의 보물을 훔쳐 악행하려 하다니, 도를 넘으셨소. 귀하를 당가로 인계하겠소.”
“미, 미친 무슨 개, 소리야!!”
방열은 금검의 말에 기겁했다.
당가의 보물. 금검이 지칭한 것이 망혼비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망혼비가 보물이라 칭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부정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금검. 정확히는 제갈세가가 자신을 제거할 명분으로 망혼비를 지목했다.
게다가 사천당가까지 언급했다.
은원이 확실한 곳이 바로 사천당가다.
사파보다 더 악랄하기로 유명한 그들과 척을 지는 건 절대 금물이다.
그렇기에 망혼비를 은밀하게 손에 넣은 후에도 가급적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눈이 뒤집힐 정도로 흥분하지 않았다면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문답무용(問答無用)!”
“이런 개… 컥!”
방열은 칼을 휘둘러 저항하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상상도 못 한 애송이(이백)에게 내상을 입은 상황이다.
하물며 금검은 제갈세가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다.
방열이 몸이 성하다고 한들, 이길 수 없는 강자이기 때문이다.
제갈세가는 선천적으로 오성이 뛰어나다.
천문, 군략, 기관토목, 기문진 등 다양한 학문에 두각을 보였다.
대신 무재(武才)의 한계를 보였다.
그렇기에 제갈세가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고아를 어릴 때부터 키워, 제갈세가의 검으로 양성했다.
그게 바로 금검이다.
그렇기에 청랑왕의 유산 회수라는 막중한 임무에 소수만 파견할 수 있던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금검 숙부님.”
“아니오, 대공자.”
분뢰도(分雷刀) 방열.
정상적인 상황이면 꽤나 귀찮게 했을 자였다.
비록 금검만 못해도 방열의 도법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으니 말이다.
허나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방열을 제압하고 돌아온 금검이 청년을 향해 대공자라고 칭했다.
옥면기협(玉面奇俠) 제갈천기.
별호에 옥면이라 붙을 정도로 잘생겨 뭇 여인들을 설레게 했고, 제갈세가의 핏줄답게 재주가 많은 인물이었다.
그런 제갈천기의 눈이 빛났다.
“방 대협과 망혼비를 사천당가로 보내주세요. 뒤는 그들에게 맡기죠.”
“황오, 양수. 다녀와라.”
“존명!”
금검의 지시에 두 사내가 포권을 취했다.
제갈세가 최정예라는 금검대 소속인 만큼 제압된 방열을 호송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했다.
제갈천기도 동의하는지, 아니면 금검의 권위에 손상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호송에 관여하지 않았다.
“금검대는 대공자를 호위하며 청랑동으로 이동…….”
“아니… 괜찮습니다. 이젠…….”
가문과 악연을 맺고 있는 방열 때문에 관여했지만, 더 이상 지체해서 좋을 게 없다.
그런데 제갈천기는 금검이 이동 명령을 내리려는 걸 막았다.
“대공자, 그게 무슨 뜻이오?”
“말 그대로입니다. 금검 숙부님. 이미… 찾았습니다.”
제갈천기는 이백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백은 그의 미소에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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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