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수상한 부녀 (2)
“으차!”
쩌억!!
도끼가 허공을 가르자 나무가 반으로 쪼개졌다.
그의 곁에는 사용하기 좋게 쪼개진 장작이 쌓여 있었다.
[일일 퀘스트: ‘100일간 장작 패기’ (10/100)]
“후… 여기까지 할까?”
장작이 쌓일 정도로 팼음에도 이백은 지쳐 보이지 않았다.
“하… 설마, 이곳이 한국이 아닐 줄이야.”
어처구니없게도 이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이곳은 감숙성 대설산(大雪山)의 밑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었다. 그리고 이백은 그들 부녀가 산골 마을에서도 홀로 떨어진 이곳에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숙성 대설산은 중국에 속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저들 부녀와 무리 없이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처음에는 저들이 한국말을 배웠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중국어를 배운 것도 아니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명나라라니… 도대체 몇백 년 전이야?’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은 비행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이며, 무엇보다 한반도 역시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아니다.
이백으로서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 어차피 돌아가도 반겨줄 사람도 없지만…….’
부모님은 수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친척들은 왕래가 없어서 남보다 못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이들도 마땅치 않았고, 그저 회사 동료들이 그의 인맥의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기를 쓰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선은 현실에 순응해볼 생각이었다.
‘이젠 혼자도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은근슬쩍 오두막에 남기로 했다.
그때 반투명한 창이 생성되며 일일 퀘스트를 제시했다.
마침 밥값도 해야겠단 생각에 장작을 패기 시작했고, 끝나자 숫자가 하나 올라갔다.
그리고 오늘로써 그 숫자가 10이 되었다.
장씨 부녀와 지난 지, 열흘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생각에 잠겼을 때,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백이 삼촌!”
“아… 령아, 위험하게 왜 올라왔어?”
그는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너무도 귀여운 조카였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삼촌이 보고 싶어서…….”
“삼촌이 아니라 설군이가 보고 싶은 거겠지.”
“헤헤…….”
장령은 혀를 내밀며 배실배실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그때 장작더미 위에 있던 새하얀 고양이가 장령의 품에 안겼다.
“설군아~! 누나 안 보고 싶었어? 누나는 우리 설군이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장령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너무도 좋아했다.
설군은 바로 이백의 고양이 이름이다.
고양이라고 부르지만 말고, 이름을 붙여주자는 장령의 제안이었다.
설군(雪君).
새하얀 게 마치 눈과 같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동시에 이곳의 명칭과 연관이 있었다.
“령아, 그만 내려가자.”
“예!”
이백은 지게에 쪼갠 장작을 얹히곤, 장령과 산을 내려갔다.
“…한잔하겠는가.”
밤이 되자 장령은 설군을 안고 잠들었다.
장씨는 밖으로 나와 달빛 아래서 싸구려 화주를 꺼내 이백에게 권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평소 마셨던 소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 독주였지만, 이백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화주를 한 모금 마신 후 술병을 다시 장씨에게 건넸다.
그 역시 한 모금 마셨다.
“앞으로… 어쩔 생각인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장씨의 묵인 아래 열흘째 이곳에 지내고 있었다.
원래라면 돌아갔어야 했지만, 이곳은 한국은커녕 수백 년 전 시대로 추정되니 돌아갈 수도, 돌아갈 곳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장씨가 떠나라고 하면 이백으로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그저 눈치만 보며 밥값이나 하겠다는 심정으로 장작이나 패며 지내고 있던 것이다.
“그간 자네를 관찰해왔네. …나쁜 사람 같지 않더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령이도 자넬 좋아하고… 앞으로도 함께 지내도 좋네.”
“가, 감사합니다!”
이젠 합법(?)적으로 이곳에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백으로서는 다행히 아닐 수 없었다.
기뻐하는 그를 보며 장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 물건을 본 이백은 움찔했다.
“받게.”
“그, 그건…….”
비수(匕首)였다.
이백은 그가 자신에게 이 비수를 주는 의도를 알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그런 그를 향해 장씨가 입을 열었다.
“자네도 겪어봐서 알겠지만, 이곳은 언제 목숨이 위험해질지 모르는 곳이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걸게.”
“감…사합니다. 그런데 비수 값은…….”
누가 봐도 날카로운 무기였다. 현대를 살아온 이백에겐 이 비수에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백은 이 비수를 받기로 했다. 이곳은 무림이다.
자신이 살아온 대한민국이 아니기에 자신의 몸을 건사할 도구쯤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철이 귀한 시대다.
게다가 칼을 기계로 찍어낼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대장장이가 직접 제련하는 걸 생각하면 저렴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아직 이 시대의 물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장씨의 형편을 생각하면 부담을 줄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자네가 준 늑대 가죽 값을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 그런 소리 말게. 그리고 내일부터 간단히 칼 쓰는 방법을 알려주겠네.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커험…….”
그의 말처럼 대단한 기술은 아닐 것이다.
촌구석 사냥꾼이 알려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허나 그렇다고 해도 안 배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백은 민망해하는 장씨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허나 그가 더 민망하지 않게 웃음을 참았다.
‘보기보다 더 순박한 사람이구나.’
이백은 그를 겪어보면서 많은 것에 놀랐다.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정이 많다는 점.
불혹(不惑: 40세)은 넘어 보이는데 어이없게도 이립(而立: 30세)을 갓 넘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즉, 원래 이백의 나이보다 한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백은 반대로 십여 살이나 어려진 상황이다.
사실을 설명하고 친구 먹기도 어렵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 * *
[‘풍운팔식’에 입문하셨습니다.]
[‘풍운팔식’ 1성에 올랐습니다.]
[‘풍운팔식’ 2성에 올랐습니다.]
[‘풍운팔식’ 3성에 올랐습니다.]
장씨는 이백에게 비수를 다루는 방법을 몇 번 보여주었다.
비수를 돌려받은 이백은 그가 한 대로 따라 했다.
틀리지 않은 듯 반투명 창에선 성취가 올랐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제대로 한지 모르… 음? 트, 틀렸나요?”
“자, 자네… 대체 누군가!”
이백을 바라보는 장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반응에 이백은 당황하고 말았다.
“예? 저는 이백인데요?”
“그게 아니라! 하… 아닐세…….”
이백의 너무도 순진한 반응에 장씨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장씨가 가르친 풍운팔식(風雲八式)은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삼재검법, 육합권법과 함께 무림에서 가장 흔하다는 풍운도법을 변형시킨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한들 몇 번 보여주었을 뿐인데, 이렇게 완벽하게 따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처음 익히고 이만큼 펼쳤다는 건 대단한 무재(武才)를 타고났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청랑왕의 유산으로 이룬 만수통령지체 덕분이다.
‘더 가르쳐봐?’
장씨는 이백의 재능에 반해 버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무술을 더 가르쳐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허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무술이라고 해봤자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그의 재능을 생각하면 어설픈 걸 배우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풍운팔식은 어차피 풍운도법에서 변형된 기본 중의 기본.
해가 될 게 없다.
‘나이가 많은 게 흠이지만, 좋은 스승만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아까워.’
무공은 어린 나이에 익힐수록 좋다.
내공도 그렇지만, 근골이 굳기 전에 기초를 쌓아야 상승의 길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백의 재능이라면 그 정도 장애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어디서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들에게… 미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일개 사냥꾼에 불과하지만, 이백에게 엄청난 연을 이어줄 수 있다.
허나 그게 그에게 불행을 안겨줄 수 있음을 알기에 장씨는 생각을 접었다.
장씨는 몰랐다.
이백은 이미 그 어떤 기연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연을 얻었다는 것을 말이다.
장씨의 표정이 좋지 않자, 이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닐세. 난 다녀올 곳이 있으니, 자넨 열심히 연습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장씨가 떠나자 이백은 그의 조언대로 풍운팔식을 수련했다.
풍운팔식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덟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동작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간단했다.
허나 의외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상승 무리가 담겨 있지 않아서 무시당하지만,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전승되며 지금까지 현존할 수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풍운팔식은 무한 반복하다 보니 점점 성취가 올라갔다.
그리고 두세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풍운팔식’ 9성에 올랐습니다.]
[‘풍운팔식’ 10성에 올랐습니다.]
[‘풍운팔식’을 완성했습니다.]
[보상: ‘극의 ― 풍운뇌우’를 습득하셨습니다.]
“…풍운뇌우(風雲雷雨)?”
반투명 창에 적힌 풍운뇌우를 언급하는 순간, 그의 몸이 반응했다.
특히 비수를 쥔 팔이 거침없이 허공을 베었다.
그 순간 검우(劍雨)가 쏟아지며 허공을 갈기갈기 찢었다.
만약 허공이 아닌 사람이었다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백은 소름이 돋아 쥐고 있던 비수를 놓아 버렸다.
“뭐, 뭐야? 이, 이게 뭐야!”
평화로운 현대에서 살아온 그에게,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 하는 무림인의 가치관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풍운뇌우는 꺼림칙했다.
동시에 살기 위해선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청랑보! 내게 청랑보가 있었지!”
자신에게는 청랑보(靑狼步)라는 도망치는 방법(?)이 있었다.
차라리 청랑보를 열심히 익혀서 유사시 도망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이백은 청랑보를 익히기 위해 수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거더라? 이렇겐가? 아니 이렇게던가?”
문제는 청랑보를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청랑보를 익혔는지 모르니 답답했다.
허나 이백은 만수통령지체.
청랑보는 그의 육신에 각인되어 있기에 끌어내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청랑보’ 1성에 올랐습니다.]
“좋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다행히 이백은 청랑보를 알아냈다.
그때부터 그는 미친 듯이 청랑보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청랑보’ 2성에 올랐습니다.]
수련량이 늘수록 성취가 높아져 갔다.
성취가 높아질수록 청랑보가 능숙해지고 빨라지는 건 당연했다.
청랑보는 펼치는 이백은 한 마리의 늑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청랑보’ 3성에 올랐습니다.]
“헉… 헉…….”
그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아 완성한 풍운팔식과 달리, 청랑보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수련했음에도 고작 3성의 성취에 불과했다.
‘고작’ 3성? 아니, 3성‘씩’이나다.
청랑보는 풍운팔식과 격이 다른 무공이다.
무려 청랑왕의 보법이니, 당연하다.
애초 청랑왕의 원정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만수통령신공과 만수통령지체가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허나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백으로서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오히려 몇 시간 만에 청랑보 3성에 올랐다는 걸 다른 무림인이 들었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후우… 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겠네.”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