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수상한 부녀 (1)
“계곡물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
아무리 찾아봐도 약수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계곡이 보였다.
눈앞의 계곡물은 무척이나 시원하고 깨끗해 보였다.
“먹는 건 그렇고… 세수는 괜찮겠지.”
아무래 깨끗해 보여도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한 기생충이나 병균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마셨다가는 큰일 날 수 있다.
허나 더위를 식히는 건 가능하다.
이백은 간단히 손과 얼굴을 씻기 위해 계곡에 다가갔다.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백은 물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곤 당황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너무 어렸다.
30세를 앞둔 자신의 얼굴이 고작 18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백은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아! …꿈은 아닌데…….”
혹시 꿈인가 싶었으나 볼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꿈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육신이 만수통령지체(萬獸統領肢體)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어려진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당황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백이 당혹스러워할 때, 그의 품에서 고양이가 뛰쳐나왔다.
그리곤 계곡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 목이 말랐구나. 널 신경 쓰지 못해서 미안해.”
충분히 목을 축인 고양이는 다시 그의 품에 안겼다.
이백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돌아가자. 집에… 돌아가서 생각하자.”
이백은 집에 돌아가서 씻고 한숨 자고 일어난 후에 차분히 생각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제법 깊은 산인지, 한참을 내려왔음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후… 멀리도 왔다. 근데? 내가 이렇게 체력이 좋았나?”
매일 의자에 앉아 게임 스토리만 짜다 보니 저질 체력이었던 자신이다.
그런데 몇 시간째 산을 내려오고 있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 익숙해졌는지 산을 내려가는 속도로 제법 빨라졌다.
자신에게 등산가의 재능이 있었던가?
그때 그의 귓가에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왔다.
“음? 뭔지? 누가 다쳤나?”
이백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은 아니지만, 측은지심을 외면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신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거기 누구 계세요? 들리시면 대답을 하시겠어요?”
이백의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허나 그는 착각한 게 아니었다.
제법 먼 거리에 누군가 쩔뚝거리는 게 보인 것이다.
“헐? 저곳의 소리를 들은 거야? 나?”
이백은 자신이 흡사 슈퍼맨 혹은 소머즈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우선 다친 사람을 돕는 게 우선이었다.
이백은 가까워질수록 당혹스러웠다.
털 조끼를 입고 있고, 손에는 활을 쥐고 있는 모습이 흡사 사극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산적 혹은 사냥꾼의 모습이었던 탓이다.
“저… 아저씨, 괜찮으세요?”
“누, 누구냐!”
중년 사내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백의 등장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급기야 활을 겨누기까지 하니 두려움마저 들었다.
이백은 양손을 바싹 들고는 적의(敵意)가 없음을 밝혔다.
“지, 지나가던 사, 사람이에요. 시, 신음이 들려서 왔어요. 사, 살려주세요.”
“아…….”
제법 건강한 청년이었으나 순박해 보이는 외모와 두려워하는 반응. 그리고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점이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게 했다.
중년 사내는 그제야 활을 거두었다.
허나 시위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만약 수작을 부리면 언제든 다시 겨누겠단 뜻이었다.
“저어… 다치신 거 같은데… 부축해 드릴까요?”
“아니, 괜찮다. 그만 돌아가라.”
그는 이백을 완전히 믿을 수 없는지 떠나길 종용했다.
그런 중년 사내의 태도에 이백도 살짝 불쾌해졌다.
자신이 호구도 아니고, 선의를 보였을 뿐이다.
이러한 대우를 받고도 도와야 할 의무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돌아가세요. 저는 이만 돌아…이익!”
슈~웅!
기분이 상한 이백이 가볍게 인사를 한 후 돌아가려고 할 때, 중년 사내가 활을 쏘았다.
그가 쏜 화살이 이백을 향해 날아갔다.
정확히는 이백이 아닌 그의 너머에 있는 늑대였다.
푹!
컁!
“헉!!”
“물러나게!!”
중년 사내가 쏜 화살에 늑대는 즉사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늑대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그 뒤로 나타난 늑대들이 족히 세 마리는 되는 듯 보였다.
이백은 기겁하며 중년 사내의 곁으로 왔다.
그는 저 늑대들을 상대하다 다친 듯했다.
늑대들은 쉬이 달려들지 않고 두 사람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사냥 꽤 해본 모습이었다.
중년 사내는 다시 시위를 당겼으나 그가 동시에 달려드는 다섯 마리의 늑대들을 해치울 수 있을 거라 믿긴 어려웠다.
늑대들은 으르렁거리며 위압감을 조성했다.
그때 늑대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어림없다!”
중년 사내가 화살을 쏘았다. 동시에 새로운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허나 늑대도 이번에는 당하지 않고 그의 화살을 피했다.
동시에 또 다른 늑대들이 달려들었다.
중년 사내에게 두 마리가, 이백에게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제, 젠장!!”
“시, 싫어! 저, 저리 가!”
중년 사내는 자신에게 향해 달려드는 두 마리의 늑대 중 한 마리를 화살로 쏜 후, 나머지를 활대로 쳐냈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늑대가 이백을 덮치려던 순간, 멈칫했다.
[‘백수조련술’에 입문하셨습니다.]
[‘백수조련술’의 성취가 낮아 대상자를 조련시키는 데 실패하셨습니다.]
“어? 뭐…지?”
늑대가 다가오지 않자 이백은 안도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멈칫했던 늑대가 다시 움직이려고 했다.
“저, 저리 가! 저리 가! 저리 가!”
[‘백수조련술’의 성취가 낮아 대상자를 조련시키는 데 실패하셨습니다.]
[‘백수조련술’의 성취가 낮아 대상자를 조련시키는 데…….]
[‘백수조련술’의 성취가 낮아 대상자를…….]
[‘백수조련술’의 연이은 실패로 대상자가 폭주하게 되었습니다.]
“제, 젠장!!”
늑대의 눈동자가 붉게 물든 게 경고 문구가 아니라도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늑대가 이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다.
폭주한 늑대는 이백을 물지도, 할퀴지도 못했다.
자리에 있어야 할 이백이 사라진 탓이다.
“어? 어떻게…….”
살자는 의지로 본능적으로 청랑보를 펼친 것이다.
허나 늑대는 뒤늦게 이백의 위치는 깨닫고 다시 달려들었다.
“제, 젠장! 어, 어떻게 한 거더라!”
이백은 조금 전 도망친 방법을 펼쳐야 한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다시 청랑보를 펼치려는 순간, 그의 품에 있던 새하얀 새끼 고양이가 이백의 품에서 뛰쳐나갔다.
새끼 고양이는 포효하며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캬아아앙!
“아, 안 돼! 고양아! 안 돼!!”
이백은 고양이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려고 한다는 생각에 절규했다.
하지만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늑대에게 물려 죽을 거라 생각했던 새끼 고양이가 오히려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늑대를 물어뜯은 것이다.
그것도 한숨에 동맥을 끊어버렸는지, 늑대는 저항도 못 한 채 바들바들 떨더니 죽어버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고양이는 나머지 늑대들도 차례차례 사냥해버렸다.
“…….”
이백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늑대들을 모두 해치운 고양이는 별일 없었다는 듯 고고히 걸어와 다시 이백의 품에 안겼다.
그는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늑대들을 해치운 괴물 고양이가 자신의 품에 안겼는데, 두렵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허나 해맑은 고양이의 얼굴을 보자 고갤 저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날 구해준 우리 고양이를 무서워하면 안 되지.’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백은 고양이의 털에 묻은 늑대를 피를 조심스럽게 털어주었다.
그런 두 인묘(?)를 보는 중년 사내의 얼굴은 굳어졌다.
‘영물과 주인이라… 대체 누구냐… 넌.’
* * *
“정말… 다 필요 없는가?”
사냥꾼 장씨는 믿을 수 없었다.
늑대 가죽은 호랑이 가죽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고가로 거래된다.
게다가 깔끔하게 죽여서 가죽 상태 역시 무척이나 양호하니,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늑대가 네 마리나 된다.
그런데 눈앞의 청년은 필요 없다고 하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 정말 필요 없어요. 아저씨께서 필요하시면 다 가지셔도 돼요.”
“…그럼 사양하지 않겠네.”
결국 늑대 네 마리는 장씨의 몫이 되었다.
오히려 이백은 장씨가 이해되지 않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게 뭐가 필요하다고 저러시지? 부자들이 비싸게 사나? 하긴 졸부들이 호피를 자랑삼아 수집한다고 하던데… 늑대 가죽을 사는 자들도 있을지 모르지.’
그렇다고 한들, 이백은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은 수렵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니, 괜히 이번 일로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저,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날도 어두워졌는데… 하룻밤만 신세를 질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게. 조금만 내려가면 우리 집이니 함께 가세.”
“감사합니다!”
늦더라도 집에 가서 쉬는 게 제일 편하지만, 생각해 보니 전화나 지갑 등 소지품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었다.
“우선 필요한 것만 챙길 테니, 기다리게.”
“알겠… 으…….”
장씨는 늑대 네 마리를 온전히 가져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이백에게 충격적이었다.
잔혹하다기보다는 아직 이백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든 장면이었던 것이다.
장씨는 늑대의 가죽 이외에도 필요한 부위를 능숙하게 해체했다.
그는 전부 챙기지 못하는 게 아쉬운 눈치였으나 그렇다고 미련을 떨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남은 고깃덩이들은 짐승들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가세나.”
* * *
‘설마 했는데… 진짜 자연인이었나?’
별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조악한 수준의 작은 오두막이었다
허나 하룻밤 신세를 지는 입장에서 이것저것 따질 수 없었다.
“운치 있는 집이네요.”
“…잠시만 기다리게. 령아.”
장씨의 말에 오두막의 문이 열렸다.
문 사이에 어린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씨의 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여쁜 소녀였다.
“아빠…! 누, 누구…세요?”
장씨를 보고 뛰쳐나오려던 소녀는 이백을 보고 주춤거렸다.
장씨도 이백을 보고 경계를 하더니, 정말 부전녀전(父傳女傳)이었다.
그는 소녀에게 이백을 소개해주었다.
“산에서 아비를 도와준 친구란다. …내 딸인 령이다.”
“안녕. 아저씨는 이백이라고 해.”
“안…녕하세요. 장령이에요.”
인사를 마친 장령은 장씨의 뒤에 숨었다.
여전히 낯선 이백이 두려운 듯싶었다.
허나 그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 아, 아저씨 그게, 뭐에요?”
“아… 아저씨 친구. 고양이야.”
이백의 품에 있던 고양이를 본 것이다.
어린 소녀답게 작고 귀여운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장씨는 고양이의 정체가 늑대조차 죽인 영물임을 알기에 다급하게 막으려 했으나 장령이 더 빨랐다.
“령아, 안…….”
“히히… 예? 아빠?”
어느새 고양이는 장령의 품에 안겨 있었다.
장령의 뺨을 비비며 재롱을 떠는 고양이의 모습에 장씨는 입을 다물었다.
‘상관…없으려나?’
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