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만수조종이 되었습니다
1화. 서장(序章)
“야옹아, 맛있니? 많이 먹어.”
늦은 밤, 가로등 불빛 아래 한 사내가 무언가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새하얀 무언가가 있었다.
작고 귀여운 고양이였다.
눈송이처럼 새하얀 고양이는 캔 안에 든 사료를 먹고 있었다.
“후우…….”
고양이가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사내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만으로도 사내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알 수 있었다.
사내는 캔 사료를 먹는 고양이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충전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잠이나 잘까? 후우… 내일도 지옥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는 매일 야근을 밥 먹듯 하며,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다.
그럼에도 당장 때려치우지 못하는 건, 그가 다니는 게임 회사의 연봉이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사표를 내고 다른 게임 회사로 간다고 한들, 지금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사표를 못 내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차피 상황이 다르지 않다면 돈이라도 많이 주는 곳에서 야근하는 게 더 나으니까.
그러한 이유로 그는 물론, 동료들 모두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 그의 유일한 안식처는 바로 이곳이다.
우연히 보게 된 새끼 고양이.
마음 같아선 집에 데려가 키우고 싶었으나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
자신도 매일 야근으로 제 몸도 건사 못하는데,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욕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매일 고양이에게 캔 사료를 사주는 걸로 사내는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었다.
“하아… 내일 팀장님이 스토리 보완 도와달라는 게 에피소드3 청랑왕의…….”
이제 그만 쉴 생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머리는 쉬지 못했다.
원래 자신이 담당하지 않는 에피소드 건만, 팀장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같이 머리를 싸매야 할 판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도 내일 할 일을 고민해야만 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면 되건만, 사내는 무리한 걸 후회해야만 했다.
내일 업무를 생각하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면 피할 수 있는 불행을 직면하지 않았을 테니까.
끼익~!
빠르게 달려오던 무언가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으나 그땐 이미 늦고 말았다.
“어? 어? 어!”
사내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그게 해결될 리가 없다.
그 순간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번쩍!
퍼억~!
그 직후 강한 충격이 차체에 전달되었다.
“크윽! 뭐, 뭐야! 아, 아니야! 아, 아닐 거야!”
핸들을 잡고 있던 중년 사내는 횡설수설했다.
그는 당황한 듯 운전석에서 쉬이 나오지 못했다.
심호흡한 후에야 안전벨트를 풀고 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누, 누구 있습니…까. 거기 누구…있어요?”
중년 사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사람을 쳤을지 모른다는 최악의 생각과 달리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안도했다.
“내가 착각한 거야. 그렇지. 내가 사람을 쳤을 리가… 헉!”
허나 그의 안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차의 앞 범퍼가 사정없이 구겨져 있었다.
황소만 한 멧돼지라도 달려들었다면 생길 법한 흔적이었다.
즉, 자신이 무언가를 치긴 쳤다는 뜻이다.
다만 핏자국은 안 보였다.
대신 무언가가 그의 눈에 보였다.
[대리 이백]
중년 사내는 누군가의 사원증을 보곤 자괴감에 빠졌다.
그리곤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119]
“제, 제가 사람을 친… 거… 같아…요.”
* * *
“흐…으…….”
이백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차에 치인 것과 달리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닫혔던 눈꺼풀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끄응… 추워…….”
이백은 바닥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백은 곧 당황하고 말았다.
자신이 누워 있던 곳은 어느 동굴이었다.
“여, 여긴… 도대체… 어, 디야?”
그는 이곳이 어디며,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그러다 의식을 잃기 직전의 기억이 돌아왔다.
“헉! 자, 잠깐! 나… 차에… 치였는데… 지…옥인가?”
살면서 죄를 많이 지으면서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도저히 이곳이 천국처럼 보이지는 않았기에 지옥을 떠올린 것이다.
이백은 자신이 죽었다는 생각에 의욕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정신이 멍해졌다.
그때 그의 손등이 간지러워졌다.
이백은 본능적으로 손등을 바라봤다.
작고 흰 고양이가 자신의 손등을 핥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옹이? …너도, 죽은 거구나. 나쁜 놈…….”
교통사고로 자신만이 아니라 불쌍한 새끼 고양이까지 죽었다는 생각에 이백은 차주(車主)를 욕하고 원망했다.
그는 두 손으로 새끼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미안해, 야옹아. 인간들이 다 나쁜 건 아닌데… 미안해.”
이백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자신들을 죽인(?) 차주를 대신해 사과했다.
그의 진심 어린 사과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양이가 이백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그때였다.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의 호감을 얻으셨습니다.]
[‘’이 당신을 인정했습니다.]
[‘’이 계약을 맺길 원합니다.]
[가(可)/부(否)]
“뭐, 뭐야!”
이백은 당황했다.
자신이 헛것을 보았다는 생각에 눈을 비볐으나 반투명한 창과 그 안의 문구는 여전히 존재했다.
“내, 내가 미친 건가? 무슨 게임도 아니고…….”
당혹스러운 건 여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문구만 봤을 땐 호의적인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게임 회사의 스토리 작가답게 거부하면 후회할지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可)? 허, 허락합니다.”
[‘’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칭호 ‘의 계약자’가 추가되었습니다.]
그 순간 강렬한 빛이 이백을 감쌌다.
잠시 후 빛이 사라졌을 때, 눈앞에 있던 반투명한 창 역시 보이지 않았다.
이백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으…으! …그런데, 이 뭐지?”
척 봐도 수상하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될 부분이 아니었다.
이백은 고양이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응…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도 아니고… 내가 죽은 거 같지 않은데… 하아… 우선 여기서 나가자.”
이상한 것투성이지만, 자신이 죽은 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하지 않는가.
이백은 동굴 밖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런 이백의 눈에 누군가 보였다.
웬 노인이 동굴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는 것이다.
이백은 사람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반가움과 동시에 걱정스러움이 밀려왔다.
“저… 어르신, 괜찮으세요?”
혹시 몸이 안 좋나 싶어 이백은 노인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노인은 무슨 중국 무협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노숙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이백은 더욱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르신, 이런 곳에 오래 계시면 몸이 축날 수 있으니… 어? 어어!!”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동굴 안이다.
나이 많은 노인이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다.
잠이 들었다면 깨우는 게 낫다는 생각에 노인의 몸에 손을 댄 순간.
노인은 형체를 잃고 가루가 되어 버렸고, 그 가루는 그대로 이백을 덮쳤다.
“으아악!!”
상상도 못 한 결과에 이백은 기겁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로서는 선의로 한 행동이지만, 평범한 이백의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었다.
너무도 큰 충격이었을까.
이백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 새로운 반투명 창이 생겨난 것도 모른 채.
[청랑왕의 원정을 흡수하셨습니다.]
[획득 조건: ‘영물의 사랑을 받는 자’.]
[영물보다 상위 존재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보상: ‘청랑신공’을 습득하셨습니다.]
[칭호 ‘의 계약자’로 인해 보상이 ‘청랑신공’에서 ‘만수통령신공’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백은 알지 못했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기연.
그 기연을 자신이 갖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경고! ‘만수통령신공’을 익히기에 육신이 부적합합니다.]
[경고! ‘만수통령신공’을 익히기에 육신이 부적합…….]
[경고! ‘만수통령신공’을 익히기에…….]
[경고! ‘만수통령신공’을…….]
불길한 느낌의 문구가 거듭 나타났다.
자칫 문제가 발생할 거 같았다.
그때 이백의 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정확히는 그가 안고 있는 작은 새끼 고양이에게서였다.
[칭호 ‘의 계약자’의 권능이 발휘되었습니다.]
[칭호 ‘의 계약자’의 권능으로 ‘만수통령지체’로 육신을 재구성합니다.]
우득! 우드득!
이백의 육신에서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찢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의식을 잃었다고 한들,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면 고통에 의해 깨어날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이백이 깨어난 건,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으…으…윽!”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식을 잃었던 이백은 눈을 떴다.
“여, 여긴…….”
이제 잠에서 깨어났나 싶었으나 여전히 동굴 안이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이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쓰러졌던 게 맞았나 싶을 정도로 몸이 개운했다.
허나 이상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원…래 이리 잘 보였나?”
희미한 빛 덕분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건 아니었지만, 컴컴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도 어둡기는 하지만 주변이 훤히 보였다.
“눈이 어둠에 적응해서인가?”
어두운 곳에 있다 보면 눈이 어둠에 어느 정도 적응된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잘 보일 리가 없었지만, 이백에게는 그것까지 생각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 어르신!”
자신 때문에 가루가 된 노인.
안타깝게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로 인해 이백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때 따스하면서도 부드러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 고양아.”
자신을 위로하려는 듯 새끼 고양이가 자신의 손을 핥고 있었다.
이백은 고양이를 향해 미소 지으며 쓰다듬어주었다.
“후… 나가자. 우선 밖으로 나가보자…….”
이백은 더 이상 동굴 안에 있기 싫은지,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 그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말았다.
그것을 느낀 이백 본인이 당황할 정도였다.
그 순간 새로운 반투명한 창이 떠올렸다.
[‘청랑보’에 입문하셨습니다.]
“청…랑보? 파란 늑대의 걸음… 이란 뜻인가? 어디서 들어본 명칭인데…….”
청랑보(靑狼步)라는 명칭이 왜 귀에 익었다.
그 이유를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청랑보? 청랑왕의 청랑보? 하, 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청랑왕은 그가 다니던 게임 회사에서 개발 중인 [영웅 : 무림전설]에 등장하는 NPC다.
정확히는 [영웅 : 무림전설]의 세계관에 존재했다는 전대 절대고수다.
게다가 청랑왕을 메인으로 삼은 에피소드3 ‘청랑왕의 유산’에 그가 스토리 작가로 참여할 예정이었기에 귀에 익은 게 당연했다.
“하… 몰라몰라. 나한테 해가 되는 거 같지 않으니 그냥 넘어가자.”
머리가 너무 복잡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이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느새 동굴 입구에 당도했다.
평소와 다른 너무도 상쾌한 공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허나 곧 당황하고 말았다.
“어라? 산…이네? 대체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숲이 우거진 게 누가 봐도 산이었다.
이백은 자신에 왜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어 한숨만 나왔다.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주변에 약수터가 있나? 물이나 마셔야겠다.”
답답한 마음에 갈증이 생겼는지, 이백은 목이 말랐다.
‘산이니 약수터가 있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기에 동굴에 적혀 있는 문장을 보지 못했다.
[靑狼洞]
청랑동.
무림의 전설, 청랑왕(靑狼王).
그가 거한다고 알려진 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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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