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 종남정화(綜南淨化)
안으로 들어온 전령은 약간 격한 목소리로 보고를 하였다.
"종남을 치러 갔던 전사들이 전멸하였다고 합니다."
사마정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다.
야율초 역시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찌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 보아라!"
"권왕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권왕에게 명환 광전사님께서 돌아가시고, 그와 힘을 합한 종남파의 공격에 의해 남은 전사들이 전멸했다고 합니다."
뒤이어 전령은 전서구로 전해져 온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사마정은 손을 불끈 쥐었다.
야율초의 입술이 실룩거린다.
'역시 예상대로 권왕이 직접 움직였다. 내 예상대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실전이다. 그는 실전으로 자신의 무공을 더욱 높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명환 사형이 단 주먹에 쓰러지다니 권왕은 그 사이에 더 강해겼구나.'
야율초는 자신의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자, 더욱 마음이 급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특히 아운의 무공이 눈에 보이게 발전해 가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아운에게 날아간 한쪽 귀가 욱신거리고 있었다.
'명환 사형 죄송합니다. 권왕이 나타날 것이라 예상을 했으면서도 사형을 그 곳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형의 희생으로 사부님이 움직일 것입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사형의 무덤앞에서 자진하여 그 죄를 갚겠습니다.'
야율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만큼 야율초는 절박했다.
그의 두뇌에 계속해서 위험신호가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덴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결정적인 일엔 단 한 명의 힘으로 인해 모든 것이 정해진다.
야율초가 본 권왕이 바로 그런 인간이었다.
그는 혼자의 힘만으로 능히 대초원의 전사들을 무너트릴 수있는 그런 자였던 것이다.
'하늘이 사부님을 내고, 권왕을 내린 것은 뜻이 있을 것이다.
둘은 천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부님의 기는 쇠하고 권왕의 기는 흥할 것이다. 권왕은 시기를 아는 자, 그 또한 이 이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힘이 충분해질 때까지 사부닝께 도전 하지 않을 것이다. 급한 것은 우리다. 그가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이제 권왕을 처리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야율초의 눈에 어린 기광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사형!"
"말하게!"
"사형이 이 사실을 사부님께 전해 주십시오."
"자네가 직접 처리하는 것이 아니고 말인가?"
"전 잠시 다녀울 곳이 있습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말인가?"
"한 시가 급 한 일입니다. 아무래도 개봉 쪽에 응원군을 급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마정은 야율초를 바라보았다.
종남에서 개봉은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섬서에서 산서성으로 돌아 개봉으로 향한 전사들의 일차 목표는 개방이었다. 개방을 공격하려 한 것은 그 곳이 무림맹의 정보를 담당하는 중추이기 때문이었다.
야율초는 무림맹의 정보조직이 성공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개방과 하오문이 있다는 것도 능히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개방을 공격하는 이면에는 무림맹을 정면으로 공격할 것을 염두에 둔 점도 있었다
"응원군을 보내야 할 정도인가? 그들 중 상당수는 광풍전사단 중 일부일세."
"응원군은 그들을 도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차피 이곳에서 개봉으로 가려면 섬서성을 가로질러 가야 합니다."
"아운이 안다면 필히 가로막겠군."
"그렇습니다. 일단 개봉에 거의 도착한 전사들이야 어차피 무림맹의 고수들이 상대해야 하겠지만, 응원군이 간다면 이미 섬서의 종남에 와 있는 권왕 아운이 그들을 막아설 것입니다."
"자네는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그 지원군에 사부님이 일반 전사로 변장한 후 함께 간다면 아운을 힘 들이 지 않고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좋은 방법이지만."
"이제 사부님을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자네가 가는 것이 좋지 않은가?"
"저의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 명환사형이 돌아가셨습니다. 무슨 면목으로 사부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이번 일은 사형이 좀 맡아 주십시오."
사마정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율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자책하지 말게. 전쟁일세.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럼 내가 사부님께 가보겠네."
"부탁드립니다."
"알았네."
사마정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야율초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사부님이 가장 아끼는 제자 중 한 명인 명환 사형을 사지로 몰아넣고 어찌 사부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야율초는 사부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대전사의 무겁게 가라앉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사마정은 차분하게 대전사를 보면서 말했다.
"단 두 초식이었다고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대전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양을 상대할 때보다 더 강해졌군."
"제가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입니다."
"무공이 어느 경지에 오를 때엔 그렇게 발전할 때가 있는 법일세. 야율은 어디에 갔는가?"
"지원군을 보내려고 준비 중입니다."
"지원군?"
"개봉쪽으로 보낼 생각인 것 같습니다. 권왕이 섬서성에 와 있다면 그로 인해 개방으로 보낸 전사들의 뒤가 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전사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이제 내가 나설 때가 된 것인가?"
"사부님, 더 이상 권왕을 풀어두면 그로 인해 더 많은 광전사들이 죽을 것입니다. 그를 상대할 수 있는 광풍전사단이 있지만, 그는 중원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다수가 아니라 일대일로 당당하게 싸워서 꺾어야 할 존재입니다. 그래야 중원의 사기를 일시에 꺾어 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현재 사부님 이외엔 일대일로 권왕을 이길 수 있는 고수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긴 사제도 있기는 하지만 황궁에 박혀 나설 수 없으니 그 말도 옳구나, 참으로 아쉽구나. 조금만 더 크면 아주 좋은 상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때쯤은 광전사들의 씨가 말라 있을 것입니다."
대전사 철적심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럴 순 없지. 더 이상의 희생은 안 된다."
사마정의 얼굴이 밝아졌다.
"당연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는 강하고 지혜롭다고 했다. 지금 힘이 모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나를 피할 것이다. 야율은 방법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번 지원군을 이용하려는 것 같습니다."
철적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준비가 되었다."
"야율 사제에게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사마정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율초는 엄호와 그의 뒤에 서 있는 광풍전사단원들을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믿음직스러웠다.
지원군의 편성을 끝낸 후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걷다보니 이곳까지 오게 된 야율초였다. 어차피 한 번은 찾아와야 할 곳이기도 했다.
"여전히 엄 사형과 광풍전사단은 믿음직스럽습니다."
"자네가 이 곳엔 어인일인가?"
"명환 사형이 돌아가셨습니다."
"들었네."
"사형께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권왕에게 신경을 써 주십시오.
권왕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제일 적입니다."
"알았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하지만 내가 아는 권왕이라면 결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일세.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생기지 않는 한 그는 광풍전사단과 싸우려들지 않을 것일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대전사이신 사부님께서 나설 것입니다."
엄호가 조금 놀란 듯 야율초를 바라보았다.
"사부님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명환이 당했다고 하더니 역시 그 영향인가?"
"그 영향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사부님도 자신이 나서지 않는 한 아군의 피해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란 사실을 깨우치신 것입니다."
"다행이군, 하지만 나는 아쉽네, 꼭 권왕과 겨루어보고 싶었는데."
"사부님이 나섰지만, 그를 몰이하는 것은 역시 광풍전사단이 있어야 합니다. 대전사님과 광풍전사단 중 어느 누가 먼저 권왕을 상대할지는 하늘만이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기대가 되는군, 여기 광풍전사단은 개봉으로 향한 일부를 제외하면 정확히 삼백삼십삼 명일세, 광풍전사단은 이 숫자가 되었을 때 가장 강하다는 것을 사제는 잘 알고 있겠지."
"제가 그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권왕이 우리에게 걸리면 그의 불행이 될 것일세, 진정한 광풍멸사진의 위력을 느끼면서 죽어갈 것이니 말일세."
야율초는 엄호의 말에 얼굴이 상기되었다.
엄호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삼백삼십삼 인의 광풍전사들이 펼치는 광풍멸사진은 사부인 대전사라 해도 당 할 수 없는 무적의 절진인 것이다.
아쉽다면 이번 지원군에 이들을 함께 보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광풍전사단의 기세가 너무 강해 아운이 바로 알아차리고 대비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은영단이 있었다면 그들을 변복시켜 지원군에 포함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중원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칸의 혈맥이 끊어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초원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에게 내린 벌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전사들을 길러내는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야율초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말했다.
"사형 지원군이 떠난 후 무림맹을 공격해 주십시오. 현재 무림맹은 사천성을 향해 지원군을 보냈을 것이고, 개봉으로도 지원군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맹주인 권왕도 없습니다.
그들의 인원이 아무리 많다 해도 사형과 삼백삼십삼 명의 광풍전사단이라면 무림맹을 완전히 휘저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짐작은 했네, 결국 사천성으로 떠난 전사들은 무림맹의 고수들을 분산시키기 위한 술책인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천성으로 스며들 듯 보였다가 흩어져서 다시 개봉으로 향해 갈 것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개봉의 지원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작전이군. 알았네. 그렇지 않아도 완벽한 광풍전사단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보고 싶었던 참일세."
엄호의 자신감에 야율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언제 보아도 그는 믿음직스러웠다.
편일학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
"부탁하네."
아운의 표정도 밝지는 못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고맙네.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면 먼저 맞는 것이 좋겠지. 그리고 이번 일이 무림맹의 정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옥석은 어떻게 가릴 것입니까? 그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에게 생각이 있네, 그들 중 용서할 수 있는 자들은 용서 할 생각일세. 그렇지 않은 자들은 과감히 처단할 생각일세."
"산화벽력검(山花霹靂劒) 백순은 물론이고 그와 함께 동심맹에 가담한 선은들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편일학의 안면이 부르르 떨렸다.
종남파의 전대 장문인이자, 현 태상장로인 백순은 그의 사숙이었다. 백순의 바로 아래 사제인 분광검제(分光劒帝) 여형순이 편일학의 사부였다.
"그 분은 나중 일세 우선 종남 본산을 완전히 정화 한 다음 무림맹에 있는 사숙님들에 대해서 고민할 생각일세."
아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생각해둔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일단 사숙을 만나 뵈어야 할 것이네."
"사숙?"
"풍화분검(風花分劒) 소자한 사숙을 만나 뵐 생각일세."
"종남의 풍운아라 불리었던 소자한 선배님이라면 저도 알고 있는 이름입니다. 그 분은 어디계신 것입니까?"
"소사숙께서는 종남산의 지하 감옥에 갇혀 계시네."
아운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편일학을 바라보았다.
종남의 최고 고수 중 한명이었고, 종남에서 가장 협심이 강하다는 소자한이었다.
아운이 조사한 결과에도 종남의 선은들 중 동심맹이나 대정회와 관련이 없는 유일한 전대 장로 중 한 명이었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죄를 지었다는 말인데, 아운이 알고 있는 소자한은 감옥에 있어야 할 무인이 아니 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들은 상황에 대해서 짐작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까마귀들 틈에 홀로 있는 백조가 어찌 온전할 수 있겠는가?
짐작은 가도 안 물을 순 없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나도 모르네, 내가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도단 사제를 통해서 일세. 일단 몰래 그 분을 만나 보아야 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네."
철검수(鐵劒秀) 또는 묵철검(墨鐵劒)이라 불리는 도단은 금룡단원인 정명호의 사부이자, 편일학의 사제였다.
종남에서 편일학과 가장 친한 장로라 할 수 있었다.
아운은 편일학을 보면서 말했다.
"빠를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지."
편일학의 얼굴은 무거웠다.
어찌 보면 반란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편일학은 더 이상 종남이 썩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미 무림맹에서부터 동심맹이 어떤 곳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 곳에 있는 사숙들조차 외면하고 피해 다니지 않았던가? 한데 종남에 돌아온 편일학은 종남이 동심맹의 그늘에 묻혀 정기를 잃어가고 있는 모습들을 보았다.
특히 그 동안 종남에 남아 있던 도단의 말을 듣고 잠깐 조사한 내용만으로도 그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종남의 장문인인 분광검(分光劒) 역자기와 장로들이 아편을 하면서 속가의 여 제자들과 뒤엉켜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분노한 편일학은 검을 뽑아 종남을 정화하기로 다짐을 한 후 아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서문정이 속한 무링맹의 지원군은 빠른 속도로 개봉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 금룡단원들이 사열로 선채 말을 타고 달리는 중이었는데, 그들의 선두엔 북궁명과 흑칠랑 그리고 야한이 함께 하고 있었다.
흑칠랑과 야한은 금룡단의 교관으로서 이번 전투에 참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결전으로 인해 흑칠랑과 야한의 이름이 무림을 떨어 울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직까진 아운 한 명뿐이었다. 아운만이 그들의 진정한 실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문정은 긍룡단원들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번 결전에서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특히 대정회의 호법이었던 몇몇 금룡단의 대원들은 그냥 둘수가 없었다. 언제인가는 배신에 대한 대가를 치루 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던 서문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