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 무극신공(無極神功)(2)
서문정은 이를 악물었다.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죽으면 안 되는데, 바보 같은 자식.'
그녀뿐 아니라 무림맹의 대부분 선은들은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아운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지금 무림맹에서 그의 비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깨우친 무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그들은 아운을 도울 능력도 시간도 없었다.
실제 아운과 조진양이 삼초를 져룬 시간은 보통 사람이 숨 한 번 들이쉬는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않다.
어떻게 도와줄 틈조차 없이 허무하게 승부가 나 버린 것이다.
그들과는 반대로 몽고의 전사들은 표정이 밝았다.
조진양의 승리를 자신했던 것이다.
마뇌 역시 이제는 하는 마음으로 자신감을 가졌다. 그런데 아운의 표정을 살피던 마뇌는 아운의 눈을 보고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전혀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그 안에 깊숙이 숨어 있는 어떤 자신감.
그 순간 마뇌는 머리를 스치는 섬전과 함께 깨우치는 것이 있었다.
'함정이다.'
마뇌가 무엇인가를 깨우치는 순간 은영단의 단주인 은형귀검 동추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기세가 다르다.'
아주 일순간이지만, 두 개의 기운이 충돌하려는 그 순간 아운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 안에 있던 무인들은 무공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동추만은 그의 무공 특성상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무표정했던 얼굴이 굳어졌다.
"퍽 "
두 가닥의 기운이 충돌 한 후, 갑자기 두 사람의 동작이 멈추었다. 모든 시선이 아운과 조진양에게 모아졌을 때, 조진양의 신형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동시에 동추의 신형이 번개처럼 날아와 그를 부축하였다.
조진양의 눈꺼풀이 잔 떨림을 멈추지 못한다.
동추는 조진양의 상태가 위중한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속된 말로 대라신선이 살아서 돌아온다고 해도 살아 날 수 없는 상태였다. 태양무극섬으로 인해 그의 전신혈도가 전부 타버린 것이다. 조진양은 겨우 한 가닥의 생명줄을 끌어안은 채 동추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졌군, 그렇지 않은가? 동추."
"칸."
조진양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자,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모든 욕심을 버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그는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괜찮네. 참으로 많은 세월을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을 막을 순 없었던 모양일세, 허허 아직 죽기는 싫은데, 여기까지가 내 운인 모양일세, 사실 아들과 손자가 죽었는데,
나 혼자 살아 있는 것도 우습지."
동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어가는 주군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에게도 삶의 한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잠시만 부축해주게, 죽을 때 죽더라도 쓰러져 죽기는 싫군."
"예, 주군."
동추가 조진양을 일으켜 그의 겨드랑이 사이에 자신의 어깨를 받친다. 그 상태에서 조진양은 아운을 바라보았다.
무림맹이나 몽고의 전사들이나 모두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들도 역시 큰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무림맹 측에선 정말 아운이 일대일로 조진양을 이길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어떤 묘수가 있으리란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정면 대결로 이긴 것이다.
이는 아운의 무공이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의미였고. 서문정을 비롯한 대정회나 동심맹에게 있어선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충격은 마뇌를 비롯한 몽고의 전사들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최소한 일대일로는 중원에서 상대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세 명의 칸 중 한 명이 죽었다.
수석 광전사이자, 광전사들 중 가장 강한 조진양이 졌다.
는 말은 이제 광전사들 중에서는 아운과 일대일로 겨루어 이길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말과 같았다.
조진양은 힘겹게 버티면서 아운을 바라보았다.
"숨기고 있었던 것인가?"
"다는 아니고 조금은 그랬소."
"허허. 내가 당했던 것인가? 근래에 무공에 깨우침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숨겼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니오, 단지 마뇌 야율초를 죽이려 했을 때 딱 이 합의 힘을 숨겼을 뿐이오, 그리고 요 이틀간 약간의 깨우침이 있었고. 마침 익힌 무공 중에 스스로 기운을 숨기는 무공이 있어서 그 덕을 보았소."
"하하하. 좋아 좋구나, 내 스스로 가진 자만이 나를 죽이는구나, 네가 이겼다. 아운,"
조진양의 약간은 허탈한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그제서야 무림맹의 무사들과 몽고의 전사들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 수 있었다.
마뇌만이 마지막 순간 아운의 흉계를 알아챘을 뿐, 어느 누구도 아운이 어떻게 조진양을 이겼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외에 아운의 기세가 변하는 것을 알아 낸 동추도 있긴 했다.
모두들 아운의 강해진 무공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문정은 아운이 마뇌 야율초를 습격할 당시 없었기에 아운과 조진양의 말을 들으며 이제야 상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 아비규한의 전쟁 속에서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었단 말인가? 그리고 깨우침이라니 그럼 요 이틀 사이에 권왕의 무공이 더 강해졌딘 말인가? 그래서 이틀 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구나, 그럼 대채 얼마나 더 강해진 거란 말인가?'
서문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운이 두려워지고 있었다.
조진양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그래도 무인답게 죽으니 그것으로 위안이 되는구나, 허허,"
조진양은 그렇게 작은 웃음을 남기고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사십년이 넘게 은인자중하며 강호 무림을 도모하던 거인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다.
"대사형."
마뇌가 비통한 심정을 토해내면서 겨우 울음을 참고 있었다.
그의 뒤에 있던 광전사들과 몽고의 전사들이 모두 숨죽여 오열을 한다.
동추는 조진양의 시신을 조용히 땅에 내려놓은 다음 아운을 바라보았다.
아운 역시 그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는다.
"은영단을 맡고 있는 동추입니다."
"무림맹의 신임 맹주인 아운이오,"
"우리 은영단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칸의 호위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호위해야 할 분이 없어졌으니 우리 또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운은 그 심정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주군께서는 우리에게 대초원으로 돌아가 다시는 강호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와 은영단은 그 분의 마지막 명령을 지킬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안에서 다시 제이 제삼의 은영단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증원을 공격하게 만들 것입니다."
아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것이다.
이때 아운의 뒤쪽에 있던 동심맹의 우일한이 화가 난 듯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흥 지금 그게 할 말인가? 맹주, 저들을 그냥 보낼 것이 아니라 아주 씨 몰살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일한의 말에 서문정 역시 어느 정도 동조를 하였다. 그러나 아운이 돌아서서 우일한을 보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전투는 여기서 끝입니다."
우일한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동심맹의 장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같은 호기를 그냥 흘리고 이들을 그냥 보낸다는 것은 사자를 우리 밖으로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은영단의 진실한 실력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운은 지금 이들과 격돌을 하게 되면 그 피해가 얼마나 클지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이 한 번의 결전으로 무림맹이 좌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비 호연각의 독도 거의 다 써서 더 이상 맹주부의 진을 이용해 이들을 막을 수도 없었고, 독을 뿌려 살생할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과 겨룬다면 무림맹이 지고 가야 할 희생으로 인해 무림맹은 와해 지경까지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아운은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은영단이 정면 공격을 포기 하고
오로지 암수만으로 싸우기 시작한다면 지금 상태의 아운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그만!"
아운의 호통에 동요를 하던 무림맹의 고수들이 움찔하였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냉정하게 말한 아운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반발을 하려던 무림맹의 선은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하면서 말문을 닫고 말았다.
무림맹의 반발을 호통 한 번으로 막아 넨 아운의 시선이 다시 동추에게 향했다.
"삼년 후에 은영단의 도전을 받아 주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은영단의 단주인 동추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우린 삼년 동안 주군을 추모하며 그 분을 지키지 못한 죄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벌을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삼년 후엔 우리도 은영단이란 이름을 버리고 그저
무인으로서 권왕에게 도전을 하겠습니다. 삼년 동안 반드시 살아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대초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 은영단만입니다. 그 외에 남은 전사들은 이미 중원으로 향하신 대전사님과 함께 다시 중원을 도모할 것입니다."
아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드디어 대전사인가? 기대하겠소."
동추는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다.
말을 해 놓고 보니 권왕 아운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대전사와 광풍전사단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우리 차례가 돌아오지 못하겠구나, 결국 나의 손으로 주군의 복수는 불가능한 것인가?'
동추는 아운을 바라보았다.
꼭 주군의 복수가 아니라도 한 번은 겨루어 보고 싶은 상대였다.
아운은 그의 시선에서 느끼는 것이 있었기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마시오, 삼년 후에 약속 반드시 지키리다. 하지만 그땐 나도 혼자가 아닐 것이오,"
동추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은영단도 한 명이 아니니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을 말리진 않겠소."
"중원에는 전설로 전해오는 살문들이 있고, 그 후예들이 지금 모두 모여 있으니 멋진 대결이 될 수 있을 것이오,"
"더욱 기대가 되는군요, 그럼 삼년 후까지 권왕이란 이름이 중원에 살아 있다면. 그때 다시 한 번 연락드리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소."
아운의 대답을 들은 후 동추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주군의 시신을 수습하라! 우리는 지금 대전사님에게 들렀다가 초원으로 떠난다."
동추의 명령을 들은 은영단의 은전사들이 앞으로 나와 조진양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을 때, 혹칠랑과 야한 그리고 한상아는 상기된 표정으로 은영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를 의식했음인가? 은영단의 몇몇 은전사들이 그들을 바라본다. 서로의 시선이 블꽃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그들은 서로가 같은 동류의 무공을 익힌 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흑칠랑은 두 손을 가볍게 쥐었다 펴며 말했다.
"우리랑 함께란 말이지, 흐흐 역시 권왕은 나의 실력을 알고 있는 것이야, 암 내가 아니면 누가 감히 권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저들을 상대 하겠는가?"
"선배 나와 형수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권왕은 우리 삼대 살수를 함께 이야기했소. 흐흐 이제야 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때가 오고 있는 것이오,"
"놈 네 차지까지 갈 인간들도 없다."
"무슨 말, 그때쯤이면 내가 선배보다 더 강해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흑칠랑의 눈이 스산해졌다.
"이런 개뼉다귀 같은 자식이, 그 동안 오냐오냐 해 주었더니 이제 다시 기어오르네. 너 오늘 여기서 한 번 죽어 볼래?"
흑칠랑이 다짜고짜 폭력적으로 나오자, 야한은 찔끔하며 말했다.
"뭐 그렇게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오, 선배,"
'에잇 개자식 곧 죽어도 권왕님의 상대라고 성격도 비슷하게 닮아가네. 서러워서 무공 연습을 더 해야지 , 어디 열 받아서 살겠나,'
야한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시선은 흑칠랑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때리는 것은 좋아도 맞는 것은 정말 싫은 야한이었다.
물론 요증 들어 가끔 맞는 것도 짜릿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뇌가 아운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은 원한과 비통함으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의 뒤로는 살아남은 광전사들이 숙연한 표정으로 은영단에 의해서 옮겨지고 있는 조진양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권왕, 이 한번을 이겼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아라!"
아운이 코웃음을 쳤다.
"자만? 진 자들답게 조용히 물러서라! 우리를 자꾸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다."
마뇌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가지만 등천은 참지 않을 것이다. 곧 그들이 이곳으로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아운은 피식 웃었다.
"쉽지 않을 텐데, 지금쯤 그들도 악전고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이기긴 하겠지만, 적지 않은 타격은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마뇌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다시 불안해진 것이다.
***
호연세가의 안가,
호연란은 이를 악물었다.
모든 일이 아운의 바람대로 되어가는 것이 분했지만,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흥 네 놈은 나를 풀어 놓은 것이 실수다.'
호연란의 눈에 독기가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분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운과 싸울 시기가 아니었다.
우선은 안가의 안에 있는 가신들을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무림맹을 나서자마자, 밤이슬을 맞으며 움직였다.
그리고 약속 장소에서 사람을 만난 후 바로 안가로 달려왔다.
안가를 둘러싸고 있는 숲엔 아직 어스름조차 걷히지 않은 새벽이었다 그녀가 아운을 저주하고 있을 때, 사량이 어디선가 돌아와서 말했다.
"소가주님, 안가의 진안에 독이 풀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호연란의 안색이 변했다.
"독?"
"그렇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몇 명의 제자가 바로 진안에 및는 독에 당해서 죽었습니다."
"독이라니? 혹시 설군사가 등천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진안에 장음지독을 펼친것인가?"
"설군사가 장음지독을 펼쳤다면 등천이 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안가 밖으로는 등천잠룡대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가를 둘러싼 진안으로 상당수의 무사들이 침입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럼 등천 잠룡대가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독을 풀었다는 말인가요? 대체 누가? 왜?"
"그건 저도 모릅니다."
호연란의 안색이 조금씩 변해 갔다.
"좌상, 으드득, 이 배신자 놈,"
호연란의 말을 들은 사량도 이제야 눈치를 채고 이를 갈았다.
그렇지만 좌상과 그의 수하들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