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章 : 무림맹주(武林盟主)
서문정은 아운이 맹주가 될 것이 확실해지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미 상황은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태로 진입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나설 수 있는 명분조차 잃어 버렸다.
권왕 아운이 맹주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은 둘째 치고 잘못 나섰다가 자신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서문세가 마저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가문의 부활은커녕 숨 한 번 못 쉬고 무림맹에서 퇴출 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있자니 아운이 맹주가 된 다음 벌어질 일이 너무 두려웠다.
이미 아운의 성격을 잘 아는 그녀였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아운이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할 것이고, 그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서문정 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 건드렸다. 그러나 아직 나에겐 대정회가 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지만, 어차피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정통성은 대정회가 이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동심맹의 장로들 역시 권왕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협조를 하고 있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
그들 역시 권왕과는 한 하늘 아래 살수 없는 사이고. 그들의 뿌리가 구파일방 오대세가를 비롯한 명문정파들이지 않은가?
'기다리자. 지금은 기다릴 때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지 맹주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권왕의 견제 세력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일단 동심맹의 장로들도 권왕이 너무 많은 힘을 가지는 것은 반대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서문정은 판단을 내리자, 조용히 한쪽으로 물러서서 아운이 맹주가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젠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순 없었다.
마도의 종주라는 초비향마저 아운을 지지하고 보니 권왕 아운은 무림맹 역사상 정사가 동시에 추대한 유일한 맹주가 되고 말았다.
이만에 가까운 무림맹의 무사들이 질러대는 환성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귀가 터져 나갈 것 같았지만. 그 함성이 서문정의 귀에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듣기 싫어서 귀를 닫아 놓았는지도 모른다
아운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 조용해진다.
"소생은 아직 나이가 어려 무림맹의 맹주직을 수락하기에는 많은 부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여기서 누가 맹주를 하느냐 하는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기엔 너무 촉박한 상황이고, 지금까지 저들과 정면으로 싸워 본 유일한 무인이 저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잘 무탁드립니다. "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맹주직을 수락하였지만, 그것을 가지고 시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아운의 뻔뻔함을 속으로 욕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환호와 아쉬움, 그리고 많은 기대 속에 아운이 맹주직에 오르자, 목원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서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맹주의 권한에 대해서 의논을 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목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일한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나서기로 한 것, 이번 기회에 맹주인 아운에게 단단히 도장을 찍어 놓자고 결심한 우일한은 거칠 것이 없었다.
불과 이삼일 전 자신이 아운에게 당했던 개망신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이야.
"지금은 비상 전시 상황입니다 이럴 때, 수뇌부의 명령 권한이 여럿으로 갈라지면 일반 무사들은 우왕좌왕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맹주직의 권한은 강하면 강할수록 좋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
우일한의 말에 동심맹의 장로들은 속으로 욕을 퍼무었다.
'저 늙은이가 미쳤구나, 여기서 권왕의 권한을 강하게 만들면 나중 일을 어찌 감당하라고.'
화가 난 현진자는 어떻게든지 아운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리 협박을 당하고 있다 해도 약간의 여지는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때 흑칠랑의 전음이 현진자의 귀에 천둥처럼 들려왔다.
- 늙은이 우리가 실수를 했는데, 독에 중독된 인간들에 비해 해약이 조금 부족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몇 명은 그냥 희생시키기로 했다. 뭐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현진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가 일어서자 수많은 시선이 그를 향해 모아졌다. 특히 대정회의 선은들과 동심맹의 장로들은 한껏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독에 중독되어도 적당한 말로 둘러 댄 후 맹주의 권한을 축소할 수 있는 방법은 많기 때문이었다.
"험, 무당의 현진자입니다 우선 우일한 장로의 발언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전시입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맹주의 권한이 강해야만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맹주의 권한에 그의 명령에 불복하는 무림맹 무사들의 생사여탈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무림맹 무사란 저를 포함한 모든 선은들도 포함해서입니다. 그래야 그 누구도 맹주의 권위를 무시하지 못하고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 몽고의 전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심맹의 장로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이는 우일한조차 예상하지 못한 수위인지라 모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현진자도 얼결에 말은 해 놓고 속으로 몹시 후회하고 있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전쟁 시 맹주의 그런 권한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림의 역사가 시작 된 이후 지금까지 아무리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무림맹의 맹주라 해도 그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예가 아직은 없었다. 각 문파간의 견제가 심해서
맹주에게 주는 권한은 항상 최소화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전에 조진양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메 차라리 자신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에 장로원에 힘을 주어 그들이 권력의 맛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흐르자, 지켜보던 대정회의 여건이 자리 에서 일어섰다.
화산에서 가장 존경 받는 선은이자, 무림맹 섬서지단의 단주인 그가 일어서자 이제는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현진자 역시 그가 반대 의견을 내 주길 바라는 중이었다.
"섬서 지단의 여건입니다. 일단 지금이 전시인지라, 두 분께서 하신 말씀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합니다. 하지만 아직 권왕의 나이는 이제 약관을 벗어났습니다. 많은 선은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세상일이란 반드시 세월의 힘이 필요한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경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림의 원로분들 중 몇 분을 무상이나 태상호법의 자리에 올리고 그 분들과 맹주가 의논하여 ......"
여건이 일어난 순간 아운의 뒤쪽에 앉아 있던 측칠랑과 야한, 그리고 한상아의 전음이 동심맹의 장로들에게 화살처럼 바쁘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 효과는 아주 탁월했다.
점창의 사일신검 연운벽이 탁상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연운벽은 야한의 전음을 듣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자신이 죽을 자의 자리에 끼는 것은 절대 반대였다. 무림맹의 장로가 아니라도 점창에서 황제와 같은 권한을
그대로 두고 죽기 에는 너무 억울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아운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못했기에 자칫하면 자신에게 해약이 안 돌아 올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그는 앞뒤 안 가리고 자리에서 일어 섰다.
"이보시오 여건 선배, 말조심하시오, 우리가 뽑은 맹주를 우리가 우대하지는 못 할망정 나이를 가지고 맹주를 깎아 내리다니 전쟁이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끼리 싸우잔 말이오, 그리고 지금 여건 선배가 한 말은 자칫하면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한 마디로 허수아비 맹주를 뽑아놓고 무림의 노인 몇 명이 섭정을 하자는 뜻 아니오, 그렇게 오해를 하면 어쩔 것이오?"
여건의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뒤질세라 남궁세가의 남궁학이 끼어들었다.
"연 장로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권왕의 나이가 어려 그의 경험이 미천하다면 어디 여 지단주는 말해 보시오. 나이 어린 후배가 맹주부의 음모를 알아채고 지금 여기까지 끌고 오면서 많은 악전고투를 하는
동안 나이 많은 선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
여건은 할 말이 없었다.
뒤를 이어 앞 다투어 일어서서 성토하는 동심맹의 선은들은 수십 명에 달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을 할 때 얼굴을 길게 빼고 어떻게 하든지 아운에게 눈도장을 찍으려고 아등바등한다.
그 모습을 보고 흑칠랑은 기가 막혀서 나오던 콧물까지 멈추는 것 같았다.
"제기랄 저것들이 무림의 최고 기인들이라니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구파일방 오대세가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군, "
야한도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 세상을 살면서 저렇게 염치없고, 자존심 없는 인간들은 정말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배 어떻게 저런 자들이 각 문파의 최고 어른이 되어 지금까지 왕처럼 군림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나도 모르겠다. 뭐 생각해 보니 저들에게 빌붙어서 부귀영화를 탐하는 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지 . "
"한 마디로 이전의 명문정파는 다 죽었단 말이군요."
흑칠랑은 대답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서문정은 초조해졌다.
대세가 너무 일방적으로 흘러가는지라 더 이상은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잠시만 진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것은 실수였다.
그녀보다 대 선배인 여건조차 감당을 못하고 입을 다물었는데, 그녀가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서문정이 한 마디 하고 나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우일한이 안색을찌푸리며 말했다.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네 설마 지금도 자신이 무림맹의 군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남궁학이 고개를 흔들며 우일한의 말을 거들었다.
"여보시게. 어른들이 말하는 데 함부로 끼어드는 것은 실례란 것을 모르는가? 보아하니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지 못한 것 같은데, 서문소저는 스스로 여기서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남궁학의 냉정한 말에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더 이상 서 있으면 어떤 험한 말이 튀어 나올지 몰랐던 것이다.
동심맹의 장로들은 이미 서문정의 협박을 당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만큼 그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또한 그녀가 대정회의 문사란 것도 알고 있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대정회가 자신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단체란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서문정과 대정회를 공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라도 격돌을 할 바에는
확실하게 눌러 놓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 동심맹의 장로들이었다. 이는 아운이 그들의 협박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고 약속을 한 것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라도 동심 맹은
아운에게 힘 을 몰아주어야만 했다. 힘 있는 맹주라야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서로 많은 의견이 오고 갔고, 결국 맹주인 아운은 무림맹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대정회에서 아무리 의견 개진을 해도 절대 다수인 동심맹과 북궁세가의 힘 앞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
다고 이만의 무인들 앞에서 다수결로 확정된 안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그 방법을 제시한 것 자체가 대정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라고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을 예측이나 했겠는가? 누구라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파 무림의 맹주를 뽑는 대회에서 선거인들에게 독상을 입히고 그것을 빌미로 협박해서 맹주에 오르려는 자가 있으리라 짐작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목우를 앞세운 대정회가 겨우 자신들의 뜻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겨우 한 가지 뿐이었다. 권왕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직권남용을 했다는 것이 확실할 경우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 외에 아운은 자신의 임의대로 무림맹의 조직을 다시
정비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짐으로써 진정한 무림맹의 맹주가 될 수 있었다. 무림맹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맹주의 탄생이었다.
천하를 자신의 주먹아래 놓겠다고 선언한 후, 이년도 안되는 시간에 자신의 뜻을 반 이상 이룬 아운이었다. 이제 몽고 전사들과의 결전에서 승리한다면 그의 뜻대로 천하를 자신의 주먹아래 놓게 되는 것이다.
후에 무림의 사가들은 이번 사건을 일컬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무림맹의 맹주에 권왕이 오르면서 한 행위는 마교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가 그렇게 해서 맹주에 오르지 않았다면 강호 무림은 몽고의 전사들이 차지했을 것이다.
사가들은 결론만 내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잘했다 잘못했다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맹주위에 오르고 최고의 권한마저 손에 쥔 아운은 조용히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시선을 의식한 듯 가볍게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무림맹의 조직을 개편하려 합니다 제 생각은 아주 간단합니다. 지금부
터 많은 조직을 만들면 서로 손발을 맞추기도 힘들고 알력으로 인해 오히려 힘이 약화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림맹의 조직을 아주 간단하게 몇 개로 나누려 합니다
먼저 목우가 찬성을 하였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
"우선 목우성승님과 초비향 선배님, 그리고 검왕 북궁손우 어르신을 삼대 무상으로 검혼과 우칠을 무림맹의 좌우호법으로 임명합니다. 세 분 무상의 경우 오로지 맹주의 지시만 따르며,
어디에 있던 맹주를 대신해서 무림맹의 무력 집단들을 지휘할 수 있습니다. 유사시 이 세분이 공동맹주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 외 전투 시 맹주의 명령 이외에는 이분들의 명령이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좌우 호법 역시 맹주의 명령만을 우선적으로 따르며 맹주의 명령을 받았을 시 그 명령을 집행하는 권한을 가집니다. 아을러 맹주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자에 대해서 엄벌할 수 있는 권함을 가집니다. "
그 외에 아운이 말한 무림맹의 조직은 간단했다. 일단 무림맹의 제 일단은 북궁세가를 중심으로 북궁세가를 따르는 문파나 그 고수들의 연합체로 형성되며 그들의 단주는 북궁세가의 현 가주인 북궁단이었고 부단주는 북궁연이 되었다.
또한 무림맹의 제 이단은 초비향을 비롯한 혈궁의 고수들로 이루어졌으며, 제 삼단의 단주는 목운대사가 맡았고, 동심맹의 장로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로 한정을 지었다. 무림맹의
제 사단은 대정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단주는 현 대정회의 무상이 맡되, 부단주는 서문정이 맡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제 오단은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고수들 중 동심맹도 아니고 대정회도 아닌 자들을 중싱으로 하되 그 외 수 많은 방파들의 고수들을 전부 이 안에 포함시켰다.
포함된 무사의 수로 계산하면 가장 명수가 많은 무력집단이라 할 수 있었다. 제오단의 단주는 무당의 무진자가 맡기로 하였다. 그 외에 각 단의 조직은 단주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하였다.
조금 뜻밖인 것은 서문정이 무림맹의 군사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우선 목우성승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지만, 현재로 그녀를 대신할 만한 군사감이 없다는 점도 작용을 하였다.
목우성승이
"소승은 무림맹의 군사로 서문낭자를 추천합니다. 그녀가 비록 잘못한 것은 있지만, 병법에 능하고 진법에도 따를 자가 없어 무림맹의 군사로는 그녀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맹주님은 조금 더 넓게 생각하시어
인재를 범재로 쓰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좋습니다. 그녀를 군사로 하겠습니다. "
의외로 아운은 그녀를 순순히 군사로 임명하여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아운은 사실 그녀 이외에 누구를 군사로 올리든 그게 그거였기에 별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다루기 편하다고 생각하는 아운이었다. 그렇게 무림맹이 조직되고 맹주가 선출 된 날은 정신없이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
"툭"
검혼은 발로 바닥에 있는 돌을 가볍게 걷어찼다.
작은 돌은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서 이장 앞에 떨어진 다음 또르르 굴러갔다.
"후후 저놈이 굴러가는 모습은 꼭 지금의 내 모습 같구나, 내 마음은 옥룡에게 차이고 육체는 권왕의 수하가 되어 차이고,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무림맹의 호법이 되었지만 그 직책이란 것이 결국 맹주의 수하이니 아운의 수하가 된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몽혼지약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자신의 뜻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이 또한 누가 한방향으로만 날아갈 수밖에 없는 작은 조약돌의 운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검혼은 갑자기 갑갑함을 느꼈다. 검을 뽑아들고 한바탕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호선을 그리고 돌아가는 검 끝을 보니 가슴이 조금 후련해진다. 땀이 흐르고 그 땀이 흥건해질 때까지 검무를 추었다. 이각이나 지났을까? 검을 거두고 호흡을 정리할 때였다.
"정말 멋진 검무였습니다. "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검혼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마치 한 폭의 선녀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옥룡 장무린은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쿵쿵, '
가슴 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어쩐 일이십니까?"
옥룡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검혼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웃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검혼이 보기엔 울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검혼은 그녀의 심정을 자신의
가슴을 통해 보고 있었기에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그녀의 서러움이 불쌍해서 답답했고, 자신의 처지가 답답해서 가슴이 시려온다.
"잠시 산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
"답답하신가 봅니다 "
옥룡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하루 이틀 사이면 다시 피를 머금고 싸워야 할 텐데, 답답할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사치겠지요,"
"그 따위 자식들‥‥‥‥"
말을 하던 검혼은 불현듯이 말문을 닫았고, 옥룡은 가볍게 웃는다. 검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정말 싫은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다시 권왕의 말투를 흉내 내고 말았다. '
검혼은 고개를 흔든 후 옥룡을 보고 물었다.
"왜 웃으셨습니까?"
"검혼님 답지 않은 말투라서요,"
"후후 저도 모르게 권왕의 말투를 흉내 내고 말았습니다. "
검혼의 말을 들은 옥룡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가끔 권왕 아운님과 말을 섞은 사람들을 보면 모두 그의 말투와 비슷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놀랍게도 그 사람들은 자신의 말투가 아운님의 말투와 같아진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더욱 놀랐었습니다. "
옥룡의 말에 검혼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 점은 자신도 느끼고 있던 점이었다. 특히 아운과 대화를 나눌 땐 더더욱 그런 점이 도드라져 보였었다. 자신 스스로도 시간이 자나고서야 그것을 깨우쳤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분위기에 말린 것이다. 이미 말을 섞을 때부터 그는 자신의 분위기로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힘을 지닌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힘이 있기 때문일까? 과연 그것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
검혼의 의문을 풀어 준 것은 옥룡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더니, 그것은 힘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더군요, "
검혼이 궁금한 표정으로 옥룡을 보았다.
"기백이더군요, 아운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분의 기백과 힘에 말려서 자신도 모르게 그 분의 말투와 행동을 쫓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
검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 소저, 당신도 그의 기백에 말려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
그는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의 입속을 맴돌다 사라진다.
'권왕 아운, '
싫어도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검혼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맹주가 되기까지 푹풍처럼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해가는 아운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모습에 고정되어 있는
옥룡의 시선은 그에게 예리한 비수가 되어 날아왔었다. 결코 그 누구라도 쉽게 처리할 수 없는 난제들을 그는 언제나 쉽게 해결하는 것 같았다. 참으로 부러운 능력이었다.
'권왕을 넘고 싶다. '
검혼은 순수한 야망과 경쟁심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권왕을 넘고 옥룡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었다. 검혼은 자신의 마음속에 옥룡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더 이상 숨기려 들지 않았다.
단지 그것을 옥룡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그녀가 부담을 느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면 지금처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작은 행복마저 뺐길까봐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