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 목우신승() (6)
- 소림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독안 신니 .
본 법명은 유광이었다.
그녀는 아미파의 전대 장로로 현 아미를 대표해서 장로원과 동심맹의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는 여승이었다.
그녀는 스승인 무연 사태의 제자들 중 대사제였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아미파의 장문인이 되었어야 할 여승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독선적이고 편협함을 아는 무연 사태는 둘째인 유연 신니에게 장문인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것이 결국 그녀의 한이 되었고, 사매에 대한 원한으로 번지고 말았다. 결국 혈궁대전 중에 사매인 유연 사태와 그녀의 직전 제자를 암습으로 죽인 후 자신의 제자를 아미의 장문인으로 만들어 놓은 여자였다.
당시 독안 신니의 독선에 제동을 걸고 나왔던 유정 신니는 그녀와 일대 혈투를 벌이게 되었고, 결국 그녀는 눈 하나를, 그리고 유정 신니는 팔 하나를 잃고, 각각 독안과 독비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독비 신니는 칩거하여 오로지 무공에만 전념을 하게 되었고, 독안은 아미의 사실상 지배자가 되었다. 독안은 이후에도 자신의 힘에 대항하는 직전 제자들을 가혹한 체벌로 다스려 그 악명을 이어 갔다.
그녀의 손에 무공을 전폐 당했거나 남모르게 죽어 간 아미의 제자가 이십을 넘은 지 오래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여승으로서 동남의 애인을 셋이나 거느리고 있는 여자이기도 했다.
특히 사매이자, 전대 아미의 장문인이었던 유연 신니의 살아남은 제자 중 한 명인 고화 사태가 자신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에게 음약을 먹여 극락원으로 끌고 간 것은 동심맹의 장로들 사이에 유명한 일화 중 하나였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그 독안 신니가 지금 이를 바드득 갈아 붙이고 있었다.
갑자기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침상 아래로 내팽개쳐진 그녀는 놀라서 눈을 떴다. 그녀의 앞에는 권왕 아운과 흑칠랑 그리고 야한이 함께 나란히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원독에 찬 시선으로 세 사람을 보고 있었지만, 내심 당혹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우선 내공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고 마혈이 점혈되어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독안 신니의 발악에 가까운 말에 아운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시오. 우린 당신처럼 사매를 죽이고, 사매의 제자에게 음약을 먹이는 짓거리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오,"
독안 신니의 얼굴이 파르르 떨린다.
"그게 무슨 허튼소리냐! "
아문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한. 설명해 줘라!"
야한은 그돔안 북궁세가에서 모아 놓았던 자료에, 호연세가에서 탈취한 문서들, 그리고 서문정을 처리하고 그녀의 침실에서 흠쳐 온 자료들을 종합해 정리한 후독안 신니의 죄목을 읽기 시작했다.
그 분량은 상당해서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이 들 정도인데, 특히 그녀의 음란함에 대해서 조사해 놓은 것을 보면 세 명의 동남도 모자라 소림의 십팔나한선승 중 한 명인 목경대사와 통정 중이기도 했다.
특히 그녀가 데리고 있는 동남들이 모두 십대의 꽃미남들이라, 그녀의 독특한 취미는 야한과 흑칠람의 가십거리가 되었었다
독안 신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마 아운이 이렇게까지 자세히 자신에 대해서 조사를 해놓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아운은 남들이 조사해 놓은 것들을 훔치거나 중간에 가로채서 모은 것이지만, 그녀가 그것을 알 순 없었다.
"네 네놈들이 헛소리를 하는구나! 누구를 모함하려 하는것이냐! "
아운은 독안 신니의 하나뿐인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가득한 독기는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동심맹의 장로들과는 또 달랐다.
'역시 여자의 독함은 남자보다 더한 것인가? 어지간해서는 내 뜻대로 되기 어려운 상대구나. 설혹 지금 내 말을 듣는 척해도 결국 돌아설 여자다. '
상대가 어떤 자인 것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 아운에게 있어서 독안 신니가 어떤 여자인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용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면 그만인 것이다. 그 나름대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
"야한 "
"예. 말씀 하십시오. "
"내가 이 계집의 아혈을 점한 후 팔다리를 저며서 금룡각의 지하에 가두어 버려라! 힘들게 협박할 필요도 없고, 괜히 잘못해서 골치가 아플 필요도 없다. 차후에 모든 죄의 증거를 전부 찾아내서 사거리에 발가벗겨 거꾸로 매달아 놓겠다. 심판은 강호의 무인들이 대신할 것이다 "
독안 신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운의 손이 섬전처럼 움직여 그녀의 아혈을 점했고, 이어서 그녀의 단전을 파괴해 버렸다.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자살을 할 결심으로 혀를 물려고 했던 독안 신니는 절망하고 말았다 야한과 흑칠랑은 모두 의아한 시선으로 아운을 바라본다.
그들로서는 아운의 처사가 조금 뜻밖이었던 것이다.
"이 계집은 독기가 머리꼭지까지 올라간 종자다. 어차피 협박도 통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계집도 아니다. 설혹 지금 우리말을 따르는 척해도 어느 순간 목숨을 걸고 돌아설 독한 계집이다 그렇다고 그냥 죽이자니 그동안 저질러 놓은 잘못에 비하면 너무 편안하게 죽이는게 된다 그래서 나름대로 단죄를 하려는 것이다. "
흑칠랑과 야한은 아운의 말을 알아들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그동안 해 온 짓거리에 대한 벌을 충분히 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
"굳이 협상하려 들 필요 없다. 괜히 귀찮고. 나중에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계집이다. "
그 말을 남기고 아운은 돌아섰다.
야한은 도끼 자루를 들고 독안 신니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내가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서 통계를 내 보니, 네년이 죽이거나 네년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죽은 무고한 사람이 백이십 명 , 고아가 된 아이가 삼십오 명, 중상을 입은 자가 스물아홉 명, 완전히 거지가 되어 파산한 가족이 백오십 가구. "
독안 신니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야한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빈대 심장의 일 할만큼도 없어 보였다
"보기 싫군, "
야한은 도끼 자루로 독안 신니의 눈을 내리찍어 버렸다
퍽!
"끄르르‥‥ !"
묘한 신음을 내면서 독안 신니의 하나 남은 눈동자가 터져 버렸다.
'진짜다. '
그 고통 속에서 독안 신니는 아운의 말이 장난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야한은 독안 신니를 보고 말을 이었다.
"네 년은 아미의 속가 문파 중 하나인 천주문이 전대 장문인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조사하려 하자, 제자들을 시켜 하루아침에 멸문시켰다. 그리고 지금 데리고 있는 동남 중 한 명을 강제로 납치해 온 후 혹시라도 뒤탈이 있을까 제자들을 시켜 그 집안 식구들을 전부 죽였지 , 이건 목원 그놈과 좀 비슷한 죄목이군."
야한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발로 독안 신니를 엎어 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절반은 죽은 시신이 되어 금룡단의 지하감옥으로 옮겨졌다
아주 은밀 하게 .
자리에서 눈을 뜬 서문정의 얼굴이 조금씩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허공에 검 한 자루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는데, 아주 가는 하얀 실에 달려 있는 검 끝이 당장이라도 자신의 머리로 떨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놀란 그녀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다시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녀의 침상 옆에 닭 한 마리가 목이 잘린 채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침상은 닭이 흘린 피로 인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서문정은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알몸인 상태였다
비명을 지르려던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았다.
지금 비명을 지르면 회주와 무상이 달려올 테고 자신의 민망한 모습을 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걱우 일어나서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손발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무상과 회주가 내 양옆의 방에 자고 있었다. 그들의 이목을 완전히 속이고 이 정도로 해놓았다는 것은 언제든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상대는 나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 후 생각해 보았다.
누구일까?
지금 자신을 이렇게 협박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자신의 침상 아래를 들추어 보았다.
없었다.
그 안에 그동안 모아 놓았던 그녀의 정보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서문정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상대가 누구인 지 알 수 있었다.
'그랬구나. 전에 그냥 참고 있었던 울분을 이런 식으로 터트린 것인가? 하지만, 이렇게 해도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
그녀가 이런저런 판단을 하며 놀라고 두려웠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였다.
"문상, 이제 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
서문정은 화들짝 놀라서 소리가 들린 문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 을 삼켰다.
"대사님,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부터 서둘러도 조금 늦었습니다 "
서문정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내가 뭘 할 수 있는 시간조차 다 빼앗아 갔다 내가 이 시간에 일어나게 그가 조치를 한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
서문정은 판단이 서자 마음이 급해졌다
"대사님, 빨리 서둘러 주십시오. 저는 곧 나가겠습니다. "
"알았습니다. 문상 "
서문정은 방 안의 사건을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말을 해도 소용없었기 때문이었다
설혹 말을 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 달려가서 아문과 싸울 수도 없었고, 권왕이 그랬다고 말할 증거도 없었다.
서문정은 이것이 아운의 마지막 발악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방법으로도 대세를 뒤집을 순 없다. 만약 나와 같은 방법으로 동심맹을 협박했다고 해도 그들은 구파일방 오대세가가 중추인 자들이다. 그 누구도 권왕이 맹주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협박을 당해도 그때 뿐. 결국 그들은 우리를 도울 수밖에 없다. '
서문정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동심맹은 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을 도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정회의 문상인 서문정과 회주인 목우 대사 그리고 무상이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는 무림맹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무사들이 모여 있었다.
경계를 서야 할 자들을 제외하고 무림맹의 외성과 내성의 무사들을 전부 합해 무려 이만이 넘는 무인들이 집결을 한것이다. 이는 무림맹 무사들의 팔 할에 해당하는 숫자였으며 이전 무림맹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 무사들이 사방을 에워싼 중앙에는 무림맹의 맹주를 선출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강호 명숙들 백여 명이 모여 있었다
대정회의 군사이자 이번 행사의 주관자인 서문정이 들어서자 사방에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침착하게 자신의 자리에 착석한 후 사방을 둘러보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동심맹 측의 무인들 모습이 그야말로 가관이었던 것이다.
그들 중 약 사십여 명은 얼굴이 부르트고 눈 근처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부는 수전증에 걸린 것처럼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번 행사에 나타나지 않은 선은들도 다섯 명이나 되었다
특히 아미파의 독안 신니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뜻밖이었다. 이미 모여든 무인들은 동심맹 측의 몰골들을 보고 여기저기서 수군대고 있었다.
참으로 민망스런 모습들이라 할 수 있었다.
서문정은 다시 한 번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짐작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아운은 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하늘만 보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목원 대사를 보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대사님, 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목원 대사는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만약 서문정이 쓸데없는 욕심을 가지고 자신들을 충동질하지만 않았으면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서문정에게 이가 갈렸다
어디 그뿐이랴, 지금 동심맹의 모든 무인들 마음이 그와 같았다.
그들은 아운과 야한 그리고 흑칠랑에게 당한 한을 풀 수 있는 곳이 필요했고, 그 대상은 당연히 서문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목우 대사를 상대로 성토하기엔 상대가 너무 강했다.
목원은 속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겨우 참아 가며 말했다.
"별일 아니니 빨리 행사나 진행하시오."
목원의 차가운 말투에 서문정은 적잖게 당황했지만, 지금은 이미 기호지세()라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잠시 좌중을 둘러본 후 말했다.
"먼저 새로운 무림맹 창설과 맹주를 뽑기 이전에 제가 여러분께 소개 할 분이 계십니다. "
모두들 그녀 를 바라본다
그러나 선은들 중 대부분은 모두 알고 있다는 표정들이었다.
서문정은 자신의 뒤에 있는 두 명의 복면인 중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 주시기 위해 소림의 목우 성승께서 오랜 은거를 깨고 참석해 주셨습니다. "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이만 명의 무사들이 동시에 입을 다문 것이다
소개를 받은 복면인은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와 복면을 벗었다
소탈한 모습의 승려가 나타났다. 그는 조용히 합장을 한채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승은 조용히 뒤에서 무림맹을 도우려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소개를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미타불."
그의 말이 끝나자 와아! 하는 참성이 울려 퍼지면서 이만의 무사들이 일제히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목우의 등장은 일만의 새로운 무사가 도우러 온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흘분되게 만드는 일이었다.
서문정은 흡족한 미소를 지은 후 말을 이었다.
"그럼 시간상 식순은 생략하고 바로 새로운 맹주님을 선줄할까 합니다. 먼저 여러 선배님들께서 후보를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추천을 받은 분들 중 이십인 이상의 지지를 받은 분들을 후보로 하고, 여기 모인 백 명의 고수 분들이 다시 투표를 하여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분을 맹주님 으로 선출할 생각합니다. "
그녀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무당의 광진자가 일어서며 말했다
"이 늙은 도사는 목우 성승 선배님을 맹주 후보로 추천합니다. "
간단한 추천이었지만 좌중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고, 순식간에 이십 명이 지지를 하였다
그래서 목우 성승은 제일 먼저 맹주후보에 선출되었다.
"먼저 목우 성승님께서 맹주 후보가 되셨습니다 그럼 또 추천하실 분이 있으십니까?"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화산의 한수영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푸르죽죽하게 죽어 있었고, 손은 학질 걸린 사람처럼 달달 떨리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군사! 이것은 처음부터 잘못되었소."
서문정이 놀라서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정파인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있소이다. 참으로 부끄러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기에 내 한마디 하고자 하는데, 들어보시겠소?"
서문정은 마른침을 삼킨 후 말했다.
"경청하겠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
한수영은 가볍게 숨을 몰아 쉰 후 말했다.
"세상 그 누구도 몰랐을 때, 맹주부의 음모를 알고 그들을 견제한 사람이 누구요?"
서문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도 그녀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바로 권왕 하 대협 아니었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무당의 현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지 . 사실 지금까지 그들과 싸우면서 우리를 이곳까지 무사히 이끌고 온 분도 권왕 하 대협이셨소."
그의 말에 이어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숨겨져 있던 권왕의 공적들이 동심맹 장로들의 입을 통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미 세상에 유야무야되던 일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공식적으로 동심맹 장로들의 입을 통해서 아운이 용호대전을 기회로 맹주부와 겨루었던 이야기들이 세상에 퍼지게 되었고, 그 말을 들을 적마다 이만의 무사들은 경탄을 하고 환호를 하였다.
서문정으로서는 말릴 수도 없었고, 끼어들 수도 없었다.
끼어들기엔 동심맹의 선은들이 너무 많았고, 그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무인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서문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제야 상황을 깨우친 것이다.
'당했다‥‥‥ 이렇게 될 줄이야, '
허탈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게 시작일 줄은 몰랐다.
광룡창 언충행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서문정을 보고 말했다.
"그렇게 공을 세운 하 대협은 당연히 맹주가 되셨어야 할 상황이었소. 사실 우리가 먼저 맹주로 추대를 했어야 하는데, 왜 지금 와서 하 대협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고 새롭게 맹주를 뽑으려 하는 것이오?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이는 서문 군사가 하 대협의 공적을 중간에서 가로채려는 것 아니오? 그렇지 않소?"
그 말을 들은 서문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공격할 거란 생각은 해 보지도 못했다.
서문정이 변명을 하려고 할 때였다.
"쯧쯧! 어린 계집이 공명심에 눈이 멀어 목숨 걸고 지킨 남의 공을 가로채려 하다니, 서문세가가 무너진 이유를 알것도 같구나! "
청성의 청허자의 말은 내공이 실려 있어서 이만의 군중이 충분히 듣고도 남았다.
순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게 된 이만 무사들은 일제히 서문정을 향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은 아운을 영웅으로 받들고 있던 무사들인지라, 서문정의 간악한 음모에 대해서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데 주저가 없었다.
대정회의 장로들조차 자신들이 한 짓을 알기에 얼굴을 붉히고 말을 하지 못했으며, 목우 성승은 강한 기세가 자신을 옭아매어 도저히 나설 수 없었다.
그를 기로 묶어 놓은 것은 바로 아운이었다
목우는 자신이 아운의 기세에 밀려 도저히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아운의 무공이 자신을 이미 넘어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결국 세상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란 것이 있었구나.
나 또한 작은 욕심에 큰 세상을 보지 못했으니 ‥‥‥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
목우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가슴에 조금 남았던 욕심을 버리고 나자, 그의 마음이 더없이 홀가분해진다.
서문정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사방에서 야유와 욕설이 날아들고 있는데 도저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믿었던 목우 성승과 무상마저 아운과 검왕의 기세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참으로 무자비하게 난타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너무 분한 서문정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때 아운의 전음이 그녀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 우는가? 너는 울 자격도 없다
아운의 차가운 말에 서문정은 한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거의 행사에 대한 진행을 포기하고 있을 때, 우리한이 얼른 일어섰다.
'어차피 권왕이 맹주가 될 것이라면 지금 열심히 지지해서 그의 눈도장을 받아 놓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왕 할거면 확실하게 하자! '
우리한은 그 상황에서도 머리를 굴렸던 것이다.
"자자, 여러분. 그럴 것이 아니라 우선 하던 일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권왕 하 대협을 맹주 후보로 추천하겠습니다. "
그의 말이 떨어지자 삽시간에 육십여 명의 선은들이 지지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그것으로 투표를 하나마나 한 상황이 되 고 말았다.
백여 명 중에 육십 명이 넘는 무인들이 지지를 했는데 무슨 투표가 필요하겠는가? 사방에서 권왕을 연호하는데, 그 함성에 무림맹이 떠나갈 것 같았다.
그때 목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들 조용해진다.
"아미타불 이 목우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러분의 의견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들을 상대로 이겨 온 권왕 하 대협을 두고 누가 감히 맹주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목우는 맹주 후보에서 물러나겠습니다. "
"와아 ! "
고함이 터져 나왔고, 동심맹의 장로들은 앞 다투어 아운을 맹주로 추대하였다 두어 번 거절하던 아운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맹주직을 허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운은 무림맹의 맹주가 되었다 드디어 권왕 천하가 도래한 것이다. 천하를 두 주먹 아래 놓겠다는 그의 결심대로, 아운은 이제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서문정은 멍하니 그런 아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그녀를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권왕무적 16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