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 극마지경 () (2)
-전쟁터에도 사랑은 있다
아운의 호통에 호신강기를 풀려던 강호의 노무사들은 경
각심을 가지고 더욱 빠르게 동문을 빠져 나갔다.
선은들과 각파의 노고수들이 한꺼번에 밀려나오면서 우칠
과 소달극마저 그들에게 앞으로 밀려가면서 공격을 하였고
그들을 저지하던 탐우라 등도 어쩔 수 없이 다시 밀리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이백여 명의 몽
고 전사들은 덩달아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제 아운과 검왕 북궁손우 그리고 초비향을 비롯한 다섯
명의 절정 고수를 제외한 모든 무인들이 동문 밖으로 밀고
나간 상황이었다.
검은 연기가 흩어지자, 무림맹의 고수들은 다시 아운 일
행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뛰쳐나가면
서 무더기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장음지독이 발동된 것이다.
조진양과 능유환 등은 대경실색해서 호신강기를 이용해
독 기운과 대항을 하였고, 함부로 아운 일행에게 덤비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모두 남문 밖으로 피하라! 피할 시간이 없는 자들은 함
부로 움직이지 말고 호신강기를 펼쳐라! "
조진양이 고함을 질렀지만, 일반 무사들에게 호신강기는
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갑자기 많은 고수들이 남문
으로 밀려들자, 복잡해지면서 뒤 쪽에 있던 전사들은 피할
시간이 없었다.
마뇌 야율초 역시 얼른 남문을 통해 뒤로 물러서면서 입
가에 미묘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아운을 보고 이를 갈았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권왕이 호연각을 자극한 것은 이것이었구나. 저자는 호
연각이 이런 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는 정파이길 바라는 호연각이 이 극독을
함부로 쓰지 못할 거란 것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일 테
고. 결국 권왕은 호연각을 자극하여 독을 쓰게 하였고,
그 틈에 자신은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구나 '
알았지만, 이미 사건은 터지고 난 다음이었다.
새삼 아운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사로서
아운의 계략에 놀아난 것이 너무 분하고 원통했다. 하지만
호연각이 이런 극독을 지니고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으
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반드시 권왕을 죽여야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전부 살려도 권왕만은 반드시 죽인다. 그래야만 한다. '
마뇌 야율초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각오를 새롭게 다
졌다.
아운을 살려 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새삼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뒤 쪽에 서 있는 한 명의 무사를 보고 말했
다.
"이호, 단장에게 말해서 은영단을 모두 불러 올 수 있겠
는가? 아무래도 은영단 전부가 나서야 할 것 같네,"
뒤에서 묵묵히 서 있던 무사가 마뇌 야율초의 말에 무표
정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저희는 칸의 명령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그리고 저희들
이 할 일은 칸의 호위가 우선입니다. "
"알고 있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권왕을 암살하기 위해
투입된 인원들이 공격 한 번 못해보고 물러선 상황일세
권왕을 이대로 보낼 텐가?"
은영이호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도 할 말이 없었다.
이번 결투에 투입된 열두 명의 은영단이 할 일은 모두 세
가지 였다. 우선 칸인 조진양을 호위하는 일이 하나였고,
둘째가 은밀하게 몽고의 전사들을 돕는 일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일이 권왕 아운을 죽이는 일이었다.
단 열둘이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은영단이었다.
이는 아군 측의 전력이 권왕 측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강
할 것이란 판단 하에서였다. 그런데 공격 선봉에 서야 할
등천잠룡대가 발이 묶였다. 아운이 자신들의 존재를 완벽
하게 파악하고 있어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했고 그로인해
아운에게는 제대로 공격조차 해 보지 못했다.
은영단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운을 죽이는 일은 조진양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
까진 신중하게 해야 할 일 중 하나였기에 뒤늦게 움직인
탓도 있었다.
조진양은 아운과 신주오기 같은 고수들은 될 수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겨루어서 실력으로 처리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몽고 전사들의 사기를 올리고 강호 무림의 기
를 제압하려 했었다.
"알겠습니다. 칸에게 허락을 얻어 주십시오,"
"알겠네. "
마뇌는 상황을 정리해서 얼른 조진양에게 전음을 보냈다.
독기를 막느라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던 조진양도 마뇌의
말에 찬성을 하고 이호에게 은영단의 출격을 명령하였다.
이호가 조진양의 명령을 받고 사라지자, 마뇌는 자신과
함께 남문을 빠져 나온 고수들 중 일부를 다시 동문 쪽으
로 보냈다.
아운과 강호의 노무사들이 제일연회장을 빠져 나가지 못
하게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곳이 좁은 길목이란
것을 알기에 많은 수를 보내진 않았다.
자칫하면 이곳이 역습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은영단이 올 시간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어서 마뇌 야율초는 또 한 명의 무사에게 명령을 내렸
다.
"귀문 지하에 숨어 있는 육백명의 광풍사에게 줄동을 명
령하게. 오늘 여기서 모든 승부를 볼 생각일세."
"명 ."
무사가 사라지자, 마뇌는 문 안쪽을 보면서 상황을 정리
하려 하였다.
'이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전부 끌어 모
았다. 그들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지금 상황이라면 아운도 정면 승부를 보려 할 수
도 있다. 제발 그렇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 '
마뇌 야율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운이 정면 승부 쪽
으로 생각을 가져 주길 바라고 있었다. 얼핏 생각해 보면
아운 측이 전력을 다 기울이면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착각
이 들 정도로 서로 큰 실력차이가 나지 않는 지금의 상태
였던 것이다.
호연각이 터트린 독 기운은 빠르게 제일연회장 안을 휩쓸
면서 남문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한 몽고의 전사들을 쓰러
트리고 있었다 무려 백여 명의 전사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호연각은 무더기로 쓰러지고 있는 맹주부와 몽고의 전사
들을 보고 통쾌한 표정을 지으며 알약 하나를 입안에 넣고
꿀꺽 삼켰다.
일단 해약을 먹은 호연각은 그대로 조진양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며 말했다
"어떠냐? 조진양. 이제 너희들이 한 짓에 대한 대가를 치
뤄야 할 것이다. 네 놈들이 내 손녀에게 한 짓을 죽어서도
후회하게 해주마, "
호연각은 미친 듯이 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조진양은
호신강기로 자신을 보호하면서 호연각의 공격에 맞섰다.
독과 호연각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조진양은 답답함
을 느꼈지만, 호연각을 맞아 밀리지 않고 대항할 수 있었
다.
아운은 검왐 북궁손우와 초비향을 보고 말했다.
"두 분은 모두 밖으로 나가서 무리를 막고 있는 자들을
빨리 처리해 주십시오, 시급하게 맹주부를 벗어나야 합니
다. 일단 이 곳은 제가 막겠습니다. "
검왕이 놀라서 아문을 바라보았다.
"자네 혼자서 말인가? 그리고 지금 상황이면 그렇게 서두
르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저들이 크게 타격을 받은 것
같은데, 이 기회에 차라리 공격을 함은 어떤가?"
검왕의 의문에 대해서 아운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안 됩니다. 남은 은영단이나, 등천잠룡대가 들이 닥치면
우리는 여기서 몰살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일단 맹주부를
빠져 나가기만 하면 이들을 이 안에 가두어 놓고 각개격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빨리 먼저 나가십시오."
아운의 말에 북궁손우와 초비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번 일의 중심엔 아운이 있었다
그만큼 지금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이고, 일단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검왕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자네 말에 따르겠네 하지만 혼자서 괜찮겠는가?"
"평소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합니다
나는 저 독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검왕과 초비향이 새삼 놀라서 아운을 바라보았다.
조진양과 같은 고수도 호신강기를 펼치고 겨우 버티는 중
이 아닌가?
"제 무공이 높아서가 아니라 제가 익힌 특수한 무공 때문
입니다. 빨리 나가서 길을 뚫고 제 이연회장 까지 가야 합
니다. 그곳에서 강호의 무인들을 전부 모아서 맹주부를 벗
어나야 합니다 일단 문 밖에 나가면 호연각의 해약을 가
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뒷일은 그들과 의논하십시오."
아운의 다급한 말에 검왕과 초비향이 문 밖으로 뛰쳐나갔
고, 아운 혼자서 문 가운데 버티고 선채 연회장 안의 몽고
전사들을 바라본다
빠져 나가지 못한 자들 중 무공이 약한 자들은 거의 다
죽어가는 중이었고, 조진양은 호연각과 치열하게 겨루는
중이라 아운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진양으로선 호신강기로 독기를 대항하며 호연각을 상대
한다는 것은 절대 강자 두 명과 싸우는 것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그였기에 지금까지 호연각과 호각지세로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송문과 능유환은 독기 때문에 감히 아운에게 달려들지 못
하고 서서히 다가만 오는 중이었다.
그들 역시 호신강기를 사용해서 장음지독을 상대하고 있
었지만, 그 상태에서 아운을 상대하기란 여간 껄끄러운 것
이 아니었기에 함부로 덤비진 못하고 있었다.
그들도 무색무취의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부 독에 중독되었던 은영단의 고수가
셋이나 죽으면서 그들은 더욱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
다.
사실 은영단의 고수들은 자신들과 무공에서 큰 차이가 없
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운은 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
는 것 같자,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아운은 아쉬웠다.
'지금이면 저들 중 몇 명을 죽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은영단이 걸린다. '
아운은 아직 살아남은 여덟 명의 은영단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했고, 능유환과 상정, 송문 등은 독 때문에 아운
일행에게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자칫해서 조금만 내공이 흩어져도 독에 죽을 판이기 때문
이었다.
이때였다.
"쿠어어"
괴성이 울려 퍼졌다.
서로 상대를 경계하던 사람들이 놀라서 괴성이 들린 곳으
로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선 조진양과 겨루고 있던 호연각이 동작을 멈추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몰골은 괴성이 어울릴
정도로 괴물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은 전부 하늘로 올라갔으며 눈은 휜 자위만 남고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폭풍처럼 휘몰
아치는 기세는 당장이라도 제일연회장안을 날려 버릴 것
같았다.
모두들 놀라서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몸이 터질듯이 부
풀어 올랐다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휜 자위만 있는 눈동자에서 은은한 광체가 어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송문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마성이 너무 지나쳐서 주화입마의 위기를 넘겼다 오히
려 전화위복이 되어 극마의 경지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자칫하면 큰 후환을 두게 될 것 같은데."
능유환 역시 놀라서 호연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호연각의 상태를 능히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익힌 칠절탈명검법이 마도의 검학이었기에 누구보다
도 호연각의 상태를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아운 역시 호연각의 상태를 보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
다 '만약 평상시라면 저 극마의 경지를 넘어서서 강호 최고
의 무사가 될 수도 있었는데, 아쉽구나 '
극마(克魔) ,
마공을 익힌 자들이 반드시 건너야 한다는 마지막 경지가
바로 극마의 경지였다. 마공을 익힌 자가 이 극마의 경지
를 넘어서면 마공으로 이룰 수 있는 극의에 도달한다고 알
려져 있었다.
강호 무림사에서 이 극마의 경지를 넘어선 자는 천마가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이제 강호 무림사의 두 번째로 극마의 경지에 달한 고수
가 생겨난 것이다. 이는 호연각에게 있어서 기연이라면 기
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기연을 다른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송문과 능유환이 일제히 호연각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몽고의 전사들 중 몇 명이 천천히 호연
각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아운은 그들이 은영단의 살아남은 살수들이란 것을 한 눈
에 알 수가 있었다.
지금까지 아운이 가장 경계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들 역시 아운의 경계로 인해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
고 있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감각으로 아운이 자신들의 기운을 읽고 있다는 것
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가 칸인 조진양을 호위하는 일이었다.
일단 조진양이 위험하다고 판단이 들자, 은자의 술을 풀
어버리고 조진양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운은 은영단원들을 보고 미련없이 돌아섰다.
지금 이 순간 호연각을 위해 목숨을 걸 생각도 없었거니
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이곳을 빠져 나갈 생각을 한 것이
다.
아운은 나가기 전 호연각을 슬쩍 바라보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자극하면 완전히 극마의 경지에 도달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대신 이들을 잡고 시간을 끌기
에 좋겠지 '
판단이 선 아운은 바로 호연각에게 전음을 보냈다.
- 호연 선배 무척 미안하지만 호연란은 아직 죽지 않았소
아마 지금 쯤 이곳으로 죽을힘을 다해 달려오고 있는 중일
것이오. 물론 여기 와서 나에게 이용당하고 죽겠지만. 지
금까지 벌여 놓은 죄값이라 생각하고 잘 싸우다 죽으시오.
그리고 내세엔 좀 선하게 살다 가시오.
아운의 전음은 호연각의 희미하게 돌아오던 이성마저 날
아가게 만들었다 움찔거리던 마기와 분노가 한꺼번에 폭
발하면서 그의 심성을 극마의 중심으로 끌고 들어간다.
"크아아, "
괴성과 함께 돌아서서 아운을 향해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그가 돌아서자, 마침 그를 향해 다가서던 송문과 능유환은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줄 알고 협공으로 호연각을 공격하였
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운은 유유히 제일연회장 밖으로
사라지 고 있었다.
"으드득"
그 모습을 보면서 마뇌는 이를 갈았지만, 감히 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아운을 상대할 순 없는 것이다.
'그래 이 곳에서는 네가 이겼다. 그렇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네 놈은 물론이고 오늘 무림맹에 있던 인간은 누구를 막
론하고 단 한 명도 무림맹 밖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마뇌는 아직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아운과의 승부는 잠시 보류 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이연회장으로 보냈던 무사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에게 또 하나의 걱정거리였다
"끄르륵"
신음과 함께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무사는 마뇌가 제이연
회장으로 보냈던 바로 그 무사였다 그리고 무사가 죽은
곳에 한상아가 자신의 검을 들고 환상처럼 나타난다.
그녀의 입가에는 묘한 살소가 어려 있었다
'나를 원망하지 마세요, 그래도 고통 없이 죽었으니까,'
그녀는 진심으로 죽은 무사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기를 바
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