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 혈풍무림 ()
여적산은 묵묵히 눈앞에 있는 술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풍겨오는 사향 냄새를 억지로 외면하느라 그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여적산의 자리는 금룡단원들이 앉은 맨 마지막 자리였고, 그의 옆에서부터 봉황대의 여자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청매() 금향은 화산의 제자로 제이장로인 수윌금검() 구천기의 제자였다. 구천기는 무림맹 섬서지단의 단주인 여건의 직전 제자였고, 현 화산에서 전대의 고수들과 선은들을 제외하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금향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여적산을 슬쩍 바라보았다 곰처럼 큰 덩치와 어물리지 않게 순진한 모습이었고,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풋"
금향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말았다 여적산은 당황해서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었다. 혹시 먹던 밥알이 얼굴에 붙은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만약 그렇다면 이건 정말 개망신이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밥알은 붙어 있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거지 '
여적산은 금향이 웃은 이유 때문에 불안했다. 괜히 얼굴이 뜨끈거린다. 금향은 그런 여적산이 너무 귀여워 보인다
"소녀는 금향이라고 합니다. 강호의 친구들은 청매라 부르고 있구요,"
"험 "
더욱 당황한 여적산은 우선 헛기침을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킨 추에 말했다
"여적산입니다. 친구들은 저를 ‥‥‥"
말을 하던 여적산은 금룡단 이전의 별호와 금룡단에 들어와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호 사이에서 고민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금룡단의 친구들이 붙여준 별호를 말했다.
"철완도()라고 합니다. "
"철완( 쇠팔뚝 ),"
그녀는 말을 하면서 여적산의 팔뚝을 보았다. 마치 강철처럼 근육으로 뭉친 그의 팔뚝이 한눈에 들어온다 미세한 근육이 철갑처럼 둘러쳐진 팔뚝은 그가 얼마나 지독하게 수련을 했는 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와아. 정말 대단해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하고 말았다. 그녀의 감탄사에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모아졌고, 여적산의 얼굴은 더욱 붉어 졌다. 청매 금창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자가 그녀를 보고 물었다. 그녀는 종남의 속가 제자 중 한 명인 삼절쾌() 소려려로 금향과는 적운 봉황대 안에서 가장 절친한 사이 중 한 명이었다.
"대체 무엇물 보고 그리 감탄한 거야,"
막상 친구가 물어오자, 금창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무안해졌다. 아녀자가 남자의 팔뚝을 보고 감탄사나 터트리다니 그녀와 봉황대의 친구들이 비웃을 것만 같았다
"벼 ‥‥ 별 거 아니야 , "
급하게 둘러댔지만, 그녀는 자신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여적산의 팔뚝에 머무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소려려는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을 정확하게 보았다.
그녀는 내심으로 감탄을 하였지만, 시침을 뚝 떼고 말했다
"호호 내 여태까지 미남의 얼굴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남자의 팔뚝을 보고 한눈에 반한 여자는 처음 보았다. "
소려려의 말에 금향은 그만 당황하였고, 적운봉황대와 금룡단의 무사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고명이 조금 음흉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적산이가 부럽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팔 운동 좀 열심히 해 놓을걸 "
그 말에 다시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여적산과 금향은 얼굴을 붉힌 채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금향은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소려려를 노려 보며 말했다
"내가 언제 여기 여형의 팔뚝을 보고 반했단 말이냐?"
"헉 벌써 여형이라니 , 언제 그렇게 가까워진 것이야?"
"그, 그게 "
"이 계집애야 그럼 싫단 말이냐? 싫으면 내게 양보해,"
"내가 언제 싫다고 했냐? ‥‥‥ 그‥‥ 그게 한 눈에 반한 것은 아니란 말이지"
말하다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금창을 보고 소려려는 잔인하게 웃으면서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꼽았다
"그럼 두 눈에 반했구나. 호호 미안 넌 매꾸가 아니었으니 두 눈에 반한 것이 맞다. 맞어 "
다시 웃음바다로 변해 버린 좌중
그 중엔 옆 사람에게 주먹질까지 하면서 웃는 사람도 있었다.
여적산은 그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야 이 계집 애야, "
드디어 금향이 참지 못하고 발끈하자 소려려가 얼른 딴 짓을 한다, 이렇게 몇 번의 웃음은 금룡단과 적운봉황대의 어색함을 완전히 거두어 내었다, 그들은 잠시 후면 서로 등을 의지하며 생사 대전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사이라 탄탄한 동지 의식까지 지니고 있었기에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특히 여적산의 철완은 적운 봉황대의 여자들에게 든든한 믿음을 주었다, 금룡단원들이 얼마나 무섭게 수련을 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수련이 권왕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면 이들의 무공 수위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함께 싸워야 하는 동지로서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대주인 당수련을 비롯해서 무림에서 여고수들로 따지면 최고의 추기지수들이라 할 수 있는 봉황대의 여인들은 금룡단의 무사들과 아주 잘 어을려 보였다,
금룡단의 무사들 중 과거 삼충이라 불리던 금룡단의 무사들이나 고가장의 고명을 비롯해 여가의 여적산등은 얼굴이 극도로 상기되어 있었다,
자신들이 무림 최고의 여자들에게 집중 관심의 대상이 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금룡단원들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한 명의 여인과 네 명의 노인들이 상 하나에 빙 둘러 앉아 독한 백주에 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제이연회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 느긋한 표정들이었고, 허리엔 각자 검 한 자루씩을 차고 있었다,
제일연회장과는 다르게 제이연회장은 무사들이 자신의 무기를 소지하고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철혈사자대의 대원들과 흑룡의 얼굴은 모두 굳어 있었다, 그들은 가끔 살기를 머금고 금룡단을 노려보곤 하였지만 금룡단의 무사들이나 적운봉황대의 여무사들은 그들을 거들떠 보지조차 않고 서로 이야기꽂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의 주변에 있는 젊은 무사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금룡단원들을 바라볼 때, 참다못한 철혈사자대의 한 무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금룡단원들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려 하였다,
- 멈춰라!
흑룡의 전음에 철혈사자대의 무사가 움찔하며 흑룡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금룡단과 한판 벌이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 잠시 후면 싫어도 그들을 죽여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적운 봉황대의 계집들은 모두 우리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경거망동하지 말고 참아라!
철혈사자대의 무사는 두 주먹을 꾸욱 쥐었다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으며, 어느새 연회는 점차 시들해져 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북 쪽의 대문이 열리면서 연회장 안으로 오백여 명의 무사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완전 무장을 한 무사들이 갑자기 들어서자, 연회장 안은 조용해졌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새롭게 나타난 오백여 명의 경장 무사들을 향해 있었다,
이때 흑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오백의 무사들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철혈사자대의 대원들도 자리에서 일어선 후 흑룡을 따라 오백의 무사들에게 다가섰다,
이윽고 오백의 무사들 앞에 선 흑룡이 돌아서서 좌중을 둘러본 후 말했다,
"모두들 잘 먹었는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실컷 먹었으니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은 없겠지 , "
흑룡의 말에 지켜보던 무사들이 웅성거린다 그리고 그들 중에 성질 급한 몇 명의 무사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흑룡의 망발에 대해서 성토를 하였다,
"뭐야 흑룡이면 다인가? 아무리 무림맹의 소공자라지만 이 자리엔 명문파의 장로급 선배님들도 상당수 있는데,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오,"
삿대질까지 하면서 흑룡에게 따지는 청년 무사는 오대세가 중 하북 펑가의 팽담이었다, 그는 성질이 포악하고 급한 것으로 유명한 자였다, 그러나 무공만으로 따진다면 팽가의 추기지수들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그래서 강호의 친구들을 그를 열혈패도()라고 불렀다, 그는 오백의 무사들과 흑룡이 있는 곳에서 불과 삼장 거리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참이 었다, 그는 술이 얼큰하게 취해 있던 참에 흑룡의 말을 듣고 흥분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참에 자신의 용기와 배짱을 가문의 어른들에게 알리고 싶은 치기어린 마음도 그 안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흑룡과 일장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흑룡의 입가에 잔인한 살기가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참고 참았던 그의 울분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흑룡이 팽담에게 한 발 다가서며 말했다,
"어리석은 놈, 낄 때와 안 낄 때를 모르니 제 명에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뭐 ‥‥ 뭐라고 하는 것이오, "
"지금 네 놈이 죽는다고 말했다,"
흑룡의 주먹이 허공을 질렀다, 그의 주먹에서 뿜어진 권경이 일장의 거리를 격하고 팽담의 머리에 작렬하였다,
"퍽 "
둔탁한 소리가 들리면서 팽담의 머리가 깨어지면서 몸만 남은 그의 신형이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연회장이 고요해진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은 결코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하북 팽가의 고수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표정은 살기등등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들 중 한 명의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측룡에게 말했다,
"지금 네 놈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아느냐? 백주 대낮에 사람을 죽이다니, 더군다나 그는 우리 팽가의 후손이다,"
흑룡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하북 팽가의 자식이라서 죽였으면 안 되었다는 말인가?"
노인의 눈썹이 곤두선다,
그는 분노를 억지로 눌러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놈 살인을 했으면 그 이유를 말해라! 네가 제대로 변명을 하지 못하면 결코 네 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큿, 어차피 나도 네 놈들을 살려 놓을 생각이 없다, 아니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종자들은 우리 대원의 무사들 이외에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노인은 흑룡의 선언을 듣고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무어라고 한 것이냐?"
"간단하게 오늘 이 안에 있는 인간들은 모두 죽는다고 했다,"
흑룡의 단호한 말에 하북 팽가의 노인은 이제야 상황이 더욱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팽담의 죽음은 상대의 실수가 아니라 계획 중에 하나였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 뿐이 아니라 각 건물에서 음식과 술을 마시던 수많은 무인들이 몰려 나왔다, 어느새 그들은 흑룡 일행과 대치를 이루면서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몹시 분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강호 무림의 연장자로서 흑룡의 야만적인 말을 도저히 묵과할 수 얼었던 것이다,
각 대문파의 고수들이 모여들고 있었지만, 흑룡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어차피 벌일 판이라면 제법 고수다운 자들이 몰려오길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어느 정도 모여들자, 흑룡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발사 준비 , "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백명의 무사들은 품안에서 대나무통 하나씩을 꺼내 들었다
그들은 대나무 통 뒤에 있는 줄을 잡고 그 반대쪽을 강호의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한 후 동작을 멈추었다 당가의 장로 중 한 명인 무형산()당하곤은 그 죽통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저 건 철죽포인데 , "
그의 근처에 있던 섬서 쾌도문의 섬전소광도() 문평이 물었다. 둘은 상당히 가까운 친구 사이로 섬서 쾌도문은 구파일방 오대세가 다음으로 쳐주는 구중 정문 중 하나였다.
현재 금룡단의 문형기가 소속되어 있는 문파였으며, 현쾌도문의 문주인 비천광도() 문광의 친 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