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권. 제 12장 칠살마검 (140/228)

제 12장  칠살마검

 - 말 안 듣는 개는 달밤에 다스린다.

야한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방심을 했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지리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흑칠랑이 지금 펼친 검초는 그의 상상을 크게 넘어서고 있엇다.

흑칠랑이 근래에 무공을 완성한 줄 모르고 있었으니 당연히 의아할 수 밖에 없는 야한이었다.

야한이 침을 꿀꺽 삼키며 흑칠랑을 바라본다.

흑칠랑이 한 손을 내밀었다.

창백한 얼굴의 야한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도끼 자루."

야한은 자신도 모르게 도끼 자루를 흑칠랑에게 넘겼다.

흑칠랑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달이 밝지?"

야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그거 아냐?"

"뭐, 뭘 말이오. 서, 선배."

영 떨떠름한 표정의 야한이었다.

"원래 말 안 듣고 건방진 개를 교육시킬 때는 달밤이 최고하는 것."

"그, 그게."

"내가 태어난 동네에서 건방진 후배와 말 안 듣는 개는 동급으로 취급하지. 그럼 지금부터 달밤의 교육을 실시하겠다."

동시에 흑칠랑의 손이 야한의 혈을 점해 그가 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야한의 눈이 정말 보름달 만해졌다.

"서, 선배! 어, 언제부터 우리 자객의 도에 야만이 침투했단 말이요. 선배는 자객들이 대형이 아니오! 넓은 아량과 이해심은 대형의 근본이오. 그러니 제, 제발 진정하시오."

"오! 말은 잘하는군, 그런데 네가 언제 나를 대형으로 취급이나 했었냐? 그리고 난 무지 쪼잔한 대형이 될 거다. 그러니 걱정 마라!"

"그게 --   크악!"

"빠각" 소리와 함께 흑칠랑의 휘두른 도끼 자루가 경쾌하게 야한의 머리를 강타했다.

"전에 보니까 네가 이렇게 휘드르던가?"

흑칠랑은 두 손으로 도끼 자루를 잡고 수평으로 휘둘렀다.

퍽!

야한의 옆구리에서 북소리가 들리면서 야한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흑칠랑에 의해 무공을 제압당한 야한으로서는 피할 능력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흑칠랑이 도끼 자루에 내공을 많이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햐, 이거 감촉 한번 좋구나, 네가 그래서 이 맛에 중독이 되었었군."

야한은 분노로 인해 얼굴이 붉게 변하였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젠 악에 받친다.

"이, 이런 미친 새끼! 네가 선배면 다냐? 이런 쌍 --- "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겨우 참고 발딱 일어서면서 고함을 지르던 야하의 입이 닫혀졌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흑칠랑을 본다.

흑칠랑이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굉장히 익숙한 눈빛.

그렇다 언제인가 자신이 도끼 자루를 들고 흥분했을 때, 우연히 본 동경 속의 그 눈과 동일했따.

당시 야한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도끼 자루를 휘둘러 상대를 묵사발로 만들어 놓은 적이 있었다.

야한은 몸이 굳어졌다.

때리는 것은 좋지만 맞는 것은 싫었다.

"그래! 개겨라. 개겨! 내가 오늘 하늘과 선배가 왜 동급이라고 하는지. 그걸 제대로 가르쳐 주마!"

빠각!

"컥!"

"이 씨발눔아 정말 ---  미 --- "

퍽!

"자, 잠깐 --- "

빠악!

"커억, 이 개새끼야 날 죽여라! 죽여!"

"호, 좋다 좋아 개와 말종은 개겨야 맛이 나지. 이엽."

기합과 함께 도끼 자루가 야한의 이마를 강타했다.

"컥! 이익."

그렇게 반각이 지났다.

"커억, 서, 선배니 ---"

퍼억!

"흑흑, 선배님 제 ---."

퍽, 퍼퍽.

드디어 일 각.

"끄으으, 선배 아니 하늘림 제, 제발."

야한은 흑칠랑의 발을 부여잡고 울면서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흑칠랑은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칠 때 확실히 치라는 아운의 교훈을 그는 결코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야한이 하던 행동을 그는 항상 봐 왔었다.

잡을 때 확실하게 안 하면 더 기어오른다.

"어엉, 서, 선배 --- "

야한이 바들바들 떨면서 울부직을 때, 숲에서 자고 있던 금룡단원들과 한상아가 나타나싿.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안 나타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한상아를 본 야한이 엉금엉금 기어가서 한상아의 발을 부여잡고 매달렸다.

"어헝!, 혀, 형수님!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아무래도 저놈이 미친 모양이오."

흑칠랑도 한상아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한상아는 잠시 흑칠랑을 쏘아본 다음, 앉아서 얼굴을 수평으로 놓고 야한을 바라본다.

"어머! 동생, 많이 아픈가 봐?"

"흑흑, 형수니임 ---."

한상아가 야한의 머리를 토닥거리며, 일어서서 흑칠랑을 보고 말했다.

"흥, 당신은 그런 힘으로 어떻게 나를 거두려고 하는 것이죠? 대체 얼마나 곡소리가 났는데, 아직도 쌩쌩한데다 얼마나 어설프게 다루었으며 지금도 후배가 선배한테 이놈 저놈 할 수 있는 거예요? 좀 확실하게 하라구요."

야한의 입이 딱 벌어졌고, 금룡단원들도 몸을 으스스 떤다.

흑칠랑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어허, 이제 시작이오. 차근차근 교육을 시켜야지. 아직 밤 새려면 멀었지 않소."

야한의 입에서 거품이 뿜어지고 있었다.

"흐흐."

흑칠랑의 입가에 괴소가 어린다.

역시 달밤은 운치가 있다.

특히 후배 교육시키는 맛이 아주 일품이다.

금룡단원들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날 야한은 자신이 중독되어 누리던 행복을 불행으로 착실하게 맛볼 수 있었다.

*                *                 *

맹주부의 밀실

야율초가 한 명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왕 일행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가?"

부복하고 있던 장년의 남자는 마뇌의 심복으로 새롭게 밀영대의 대주가 된 자였다. 대대로 밀영대주는 밀영일호하는 호칭으로만 불렀다.

밀영일호는 고객를 숙이고 말했다.

"이미 하남성으로 들어섰습니다. 하루 이틀 안에 정하촌에 도찰할 것 같습니다. 모두 세 대의 마차로 오고 있는데, 매우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세 대의 마차 안에 검왕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 외에 또 누가 타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검왕의 존재가 부담스러워 쉽게 접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하촌은 무림맹을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보통 무림맹을 오는 무인들 중 상당수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잔 후 오전에 무림맹으로 들어온다.

그렇기 때문인가 정하촌은 강호 무림의 어지간한 도시 이상으로 발달해 있었고 최고급 객잔만 해도 열 개가 넘었다.

무림맹 때문에 발전한 몇 개의 마을 중 가장 큰 곳 중 하나였다.

"검왕의 움직임을 항상 주시하라!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 외에 내가 지시한 금룡단의 동태는 어찌 되었는가?"

"맹 내에서는 아직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금룡각 역시 쉽게 접근할 수가 없어서 확인이 쉽지 않습니다. 어르신의 말대로 금룡단은 맹 내가 아니라 맹 밖에 있을 지도 모릅니다."

"으음."

마뇌의 입가에 작은 신음이 흘러 나왔다.

이제 건곤일척의 승부를 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마뇌는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작은 의문 하나가 자칫하면 대업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야율초는 조진야에게 전권을 위임받자마자. 우선 밀영대를 자신의 친위 세력으로 완전히 바꾼 다음 그들로 하여금 권왕과 동심맹, 그리고 호연세가의 동태를 철저하게 살피도록 하였던 것이다.

특히 갑자기 실종된 듯 사라진 금룡단의 위치와 매화각으로 아운과 북궁연을 찾아온 고수들은 철저하게 확인을 해야만 했다. 또한 사라진 사마무기에 대해서도 빨리 그 행적을 찾아야만 했다.

와룡의 경우 그냥 놔두기에는 너무 아는 것이 많았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인재로 반드시 살려서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장 우사나 옥룡의 행방은 어찌 되었는가?"

"그들은 모두 하남성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우연인가? 아니면 혈궁의 누군가가 그들을 이어 준 것인가?"

야율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밀영일호가 말했다.

"그들의 방향은 공교롭게도 무림맹이지만 우연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도 혈궁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려면 무림맹의 그늘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ㅏㄷ. 그것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일이란 항상 최악의 상황을 먼저 고려하고 생각해야 한다. 우연이듯 운명이든 그건 상관없다. 철저히 수색해서 그들을 찾아라! 발견 즉시 모두 생포하라! 어차피 장 우사는 대전사님께 팔 하나를 잃었다. 대세에 큰 문제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냥 두면 귀찮아진다. 장우사를 포함한 비밀 세력은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 특히 혈궁의 누가 그들과 관련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혹시라도 배신자가 있다면 우리의 대업이 그르칠 수 있다."

"명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사형들 몇 분에게 부탁을 해 놓겠다. 그분들이라면 능히 처리하고도 남을 것이다. 대전사님이 장 우사를 살려 둔 것은 우리에게 맡기겠다는 뜻이셨을 것이다. 어차피 그분은 피를 흘리지 않고 대업을 이루려는 분이시니,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찾아보라고 한 암혼살문의 안가는 어찌 되었느야?"

"아직 숭산이나 태원 근교에 있는 안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뇌는 눈을 번득거리며 말했다.

"반드시 찾아라! 지금까지 상황을 정리해 보면 권왕은 암혼살문과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암혼살문의 안가는 승산 어딘가애 있을 것이다. 금룡단도 그곳에 있을 것이고, 실종된 와룡이 권왕과 관련이 있자면 역시 안가 어딘가에 잡혀 있을 것이다. 특히 매화각에서 나오는 인물들에겐 철저히 미행을 시켜라 그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안가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곳을 알아 놔야 후에 권왕과 그 족속들을 뿌리채 뽑을 수 있다. 특히 내가 지정한 숭산 인근엔 밀각의 고수들이 항상 숨어서 대기하도록 해라! 어차피 금룡단이 안가에 있다면 결국 언제인가는 나올 것이다. 그들을 최초로 발견한 곳에서부터 집중적으로 찾아가면 결국 안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밀영일호가 된 중년의 사내는 누구보다도 마뇌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단 한 범의 의심스런 점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그 의문을 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고, 공격적인 성격이었지만, 철저하게 계산적인 성격이었다.

아무리 충복이라도 자신이 시킨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엄벌에 처해진다. 그리고 저렇게 단호하게 말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로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따.

"명심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철저하게 감시를 하고 있습니다. 단지 권왕 때문에 가까이 접근해서 살펴보진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조금 답답할 뿐입니다."

"무리하진 말아라! 자칫 들키면 그들은 더욱 조심스러워 할 것이다."

"명."

밀영일호가 밖으로 나간 다음 야율초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준비는 완벽하게 갖추어 가고 있었다.

특히 그동안 연구해서 근래에 완성한 철마형성과 천마폭인들까지 충분히 대기를 시켜 놓은 상태였다.

'권왕은 이미 천마혈성과 천마폭인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했다. 겨루어서 그들을 이겼다고 했었지. 그리고 천마혈성의 독혈도 무용지물이라고 했었따. 결국 상황을 봐서 권왕은 광전사들이 실력으로 처리해야 겠구나. 아깝다. 그놈은 잡아서 연구해 보고 싶은 물건인데, 그러기엔 너무 위험하니."

마뇌 야율초의 눈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흐흐, 이제 중원은 다시 한 번 대초원의 전사들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부모를 죽인 놈들, 이번에 씨를 말리고 말겠다.!"

야율초는 이 날을 기다리며 평생을 살아 왔는지 모른다.

칠십 년 전 갑자기 공격해 온 중원의 고수들에게 부모가 처참하게 죽어 가던 모습이 아직도 그의 머릿속엔 생생하게 살아남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마뇌 야율초가 세상을 가장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는 대전사였다. 하지만 그는 대전사의 꿈마저 존경하는 것은 아니었다.

"싹을 잘라야 한다. 강호의 무린들 중 강자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전부 죽여 다시는 대항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대전사님께는 죄송하지만, 이 년 안에 강호엔 대전사님은 물론이고 우리 광전사들과 겨룰 수 있는 무인들조차 없을 것이다. 아니 절정 고수란 것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야율초의 눈에 살기가 반짝거렸다가 사라진다.

*                   *                   *

" 준비는 되었는가?"

호연각의 물음에 총관인 추산령의 독사눈에 광채가 어렸다.

"걱정 마십시오. 모든 준비는 완벽합니다."

"특히 장음지독을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물론입니다."

"밀각과 호각의 고수들은 모두 출발했는가?"

"그들은 모두 흩어져서 출발했습니다. 무림맹 근처에 준비해 둔, 세가의 분타에서 모두 모일 것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대기하도록 한다. 나와 총관을 비롯해서 몇몇 고수만 무림맹 안으로 들어간다. 권왕이란 아이가 얼마나 강한지 직접 눈여겨 봐주지. 그리고 그놈의 최후는 반드시 내 손으로 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출발한다."

"준비하겠습ㄴ디ㅏ."

추산령의 허리가 힘차게 숙여진다.

"하 공자님."

소홀이 부르는 소리에 아운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누가 하 공자님을 찾고 있습니다."

"누가 말입니까?"

"누구인지는 잘 모르겟습니다. 단지 이것을 보내 왔습니다."

아운은 소홀이 보낸 서신을 펴 보았다.

그 안에는 일곱 개의 작은 검과 쥐 한마리 그리고 용의 꼬리 두개가 그려져 있었다.

"누군인지 알 것 같습니다. 오늘 밤 자정에 쌍용객잔의 뒤뜰에서 보자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밤에 만나자 하는 것을 보니 무엇인가 긴밀하게 전해 줄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밤에 몰래 매화각을 빠져나갔다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아운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연 누이나 잘 부탁드립니다."

소홀 역시 웃으면서 말했다."그거야 뭘 걱정이십니까? 제가 아니라도 고금전하제일충복에 고금천하제이고수가 지키고 있는데."

아운은 그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마치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아운이나 소홀은 우칠이 정말 듬직하기만 하였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우군은 다시 찾기 힘들리라.

*                    *               *

"물"

"기다리십시오. 선배님."

흑칠랑의 말에 눈탱이가 밤탱이처럼 부르튼 야한이 죽어라 하고 달려 나갔다.

잠시 후 야한은 물 한 사발을 들고 나타나싿.

한상아가 빙긋이 웃으면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야한은 한상아의 눈빛을 받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이번의 일로 인해 여자에 대해서 새롭게 깨우친 것이 있었다.

여자의 친절을 믿지 말라!

특히 남의 여자가 자가 남자에게 퉁명스럽게 굴며 자신에게 친절하다고 해서 그녀를 믿고 그녀의 남자에게 덤비면 그건 바로 병신이다.

결국 결정적일 떈 자기 남자의 편을 드는 것이 여자란 것을 매우 아프게 깨우친 야한이었다.

벌컥 거리며 물을 마신 흑칠랑이 거칠게 물잔을 던지자 야한이 팽이처럼 몸을 날리며 그 잔을 받았다.

"훈련은 잘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선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좋아! 그럼 수고하라고, 사랑스런 후배."

"옙, 선배님!"

야한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몸을 돌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화기 애매한 광경은 이미 눈을 씻소 찾아보아도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야한의 절대 복종만이 있을 뿐이었다.

흑칠랑 앞에서 숨도 바로 쉬지 못하는 야한의 모습을 보면서 한상아는 곱게 웃는다. 그런데 문 밖으로 나가던 야한이 다시 돌아왔다. 한상아와 딱 입맞춤을 하려던 흑칠랑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권왕께서 오셨습니다. 선배님."

"헉!"

흑칠랑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가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이런 빌어먹을! 난 왜 권왕 그 새끼 이야기만 나오면 쪼그라들지?  내가 그놈 수하도 아닌데."

생각할수록 분했다.

그는 오기로 발까지 꼬고 앉아서 아운을 기다렸다.

다분히 도전적인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야한의 얼굴도 상기가 된다.

"그래, 흑칠랑 잘한다. 그렇게 버티다 나처럼 터져 봐아!"

야한은 흑칠랑이 끝까지 버티다 아운과 한 판 붙기를 간절히 원했다.

아운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운은 담담한 얼굴로 다리를 꼬고 앉아서 자신을 보고 있는 흑칠랑을 마주 내려다본다.

"으음."

흑칠랑은 괜히 식은땀이 흐른다.

하지만 태연한 척 물었다.

"무슨 일로 왔지?"

아운은 대답을 하지 않고 흑칠랑을 바라만 보고 있다.

자꾸 불안해진다.

야한은 마른침을 삼켰다.

"권왕님, 제발 참지 마십시오."

흑칠랑이 결국 슬그머니 발을 내린다.

그러나 여전히 아운을 말이 없었다.

"흠흠"

흑칠랑은 기지개를 켜듯이 몸을 틀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절대로 아운의 위압감에 져서 일어난 표정을 짖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야한의 입가에 실망이 어렸다.

"비겁한 새끼! 연약한 나한테만 좇나 강하고, 권왕 앞에서는 비루먹은 강아지 같은 주제에, 썅. 그나저나 앞날이 캄캄하네, 나도 죽어라 노력을 해서 다시 한 번 붙어야지. 이거야 억울해서."

야한으로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겉으로는 감히 표혀조차 못했다.

새롭게 폭력의 미학에 중독성을 보이는 흑칠랑에게 다시 달밤의 개가 되긴 싫었던 것이다.

흑칠랑은 조금 퉁명스럽게 다시 한 번 묻는다.

"혹시 이번에도 대답을 안 하면 어쩌지. 이것 자칫하면 오늘 결전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심으로 표 안 나게 걱정을 하면서.

"무슨 일인데?"

"너와 야한에게 부탁이 있다."

"부탁? 아하하! 뭐 친구의 부탁이라면야, 그래, 무엇인가?"

흑칠랑의 얼굴이 확 밝아졌고, 야한의 얼굴은 확 구겨진다.

내심 흑칠랑과 권왕이 한판 붙기를 원했던 그의 바람은 물 건너 가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아운은 떡판이 된 야한의 얼굴을 보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따.

"대체 무슨 일인가? 얼굴이 왜 그래."

"그게 그러니까?"

"허험."

흑칠랑이 헛기침을 하면서 야한을 바라보았다.

"헉."

야한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일으키면서 아운을 본다.

아운은 더욱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그런 거야?"

"그러니까 --- ."

야한은 망설이고 흑칠랑의 눈은 독사처럼 빛이 났다.

"--- ?"

"달밤에 도끼 자루로 무공을 연구하다가 제가 개가 되었섰습니다. 흑흑."

야한은 결국 서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흑칠랑은 못 본 채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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