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장 구천혈맹
- 진법도 하나의 무공이다.
폐사찰 앞. 초무영 일행과 소설, 그리고 편일학을 비롯한 장문산 등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초무영이 포권지례를 하면서 말했다.
"이제 저희들은 물러가겠습니다. 장 우사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려 하십니까?"
"나는 여기 일행들과 함께 무림맹 쪽으로 가려 하네, 원래는 산동성의 북궁세가에 가려 했었지만, 상황이 조금 여의치 않아서 마음을 바꾸었네, 친우인 검왕이 지금 편치 않은 상황이기도 하고."
"검왕이 크게 다쳐서 꼼짝도 못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 검왕은 지금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것으로 압니다."
초무영의 말에 장문산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것이 진짜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보대로라면 마도신사 담대환과 빙한천사 요가람이 북궁세가를 습격했었다고 합니다. 그때 검왕과 북룡철권 우문각이 나서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당시 검왕은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담대환과 겨루었다고 들었습니다."
초무영의 말을 들은 편일학과 소설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눈치껏 칠사와 초무영의 관계가 껄끄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따. 그리고 초무영과 장문산이 무엇인가 연관이 있으리란 것도 눈치를 챘지만. 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초무영이 칠사의 두 명이 북궁세가를 습격했다고 하는 말투에서 마치 남 이야기 하듯이 말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혈궁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표정이니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의 입에서 검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북궁세가는 아운의 처가였기 때문이었다.
장문산의 얼굴이 밝아졌다.
사실 장문산은 검왕이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초무영의 말에 어느 젇도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도 검왕의 독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해약을 찾다가 포기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초무영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다짐을 하듯이 다시 묻는다.
"그게 사실인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두 분은 곧 무림맹으로 갈 것 같습니다."
"무림맹?"
"이번 권왕의 결전 때문입니다."
권왕의 결전이란 말이 나오자 모두들 얼굴이 상기되었다.
소설이나 벽룡을 비롯한 풍운령은 물론이고 편일학의 표정도 상기된다. 포무영은 그 변화된 분위기를 느꼈음인지. 자신도 모르게 약간 긴장감을 느꼈다.
장문산은 조금 의문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권왕의 결정? 이야기는 대충 들었네만 --- "
"자금 무림은 권왕과 동심맹 장로들의 결전으로 인해 시끌벅쩍합니다. 무림의 어디를 가나 그 이야기뿐입니다. 현재 권왕의 결전은 이십 년 전 사라신교의 혈전 이후 가장 큰 사건이고 화셋거리입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각 문파의 선은들 대부분이 나섬으로써 강호무인들은 더더욱 환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젠 권왕과 동심맹 장로들의 대결이 아니라 권왕과 동심맹의 장로들이 포함된 전 문파와의 대결이 된 상황입니다."
초무영은 현 강호 무림에 대한 이야기들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특히 그 중 대부분을 권왕게 대해서 할애를 하였고, 그렇지 않아도 아운의 소식에 목말라 하던 소설 일행을 만족하게 해주었다.
모두들 권왕과 동심맹의 결전에 대한 이양기는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을 기회가 없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 하던 참이었다. 특히 권왕의 결전이 무림의 명문파들 거의 전부가 나설 정도로 확대된 줄은 모르고 있었다.
선은들의 경우도 한두 명 정도 나설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지금 초무영의 말을 들어보면 결전의 규모가 훨씬 커진 것 같았다.
벽룡 등 풍운령들과 소설, 그리고 편일학은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초무영을 바라보았다.
좀 더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하는 시선이었다.
초무영은 장문산을 제외한 소설 일행이 권왕과 인연 있는 사람들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혹시 무림맹으로 가시려는 것이 권왕을 마나러 가려는 것입니까?"
그의 목소리엔 호기심이 강하게 어려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권왕이 누리고 있는 명성과 실력이 부럽기도 하고 은근히 결쟁심을 느끼기도 하는 초무영이었다.
한떄는 젊은 세대에서 가장 강한 무인 중 한 명이었었지만 이미 삼무룡과 삼봉은 권왕의 그늘에 가려진 지 오래였다. 아무리 담대한 성격의 초무영이지만, 은근히 상실감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언제고 만나면 그의 실력을 꼭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었다.
장문산이 소설 일행을 대신하여 말했다.
"그렇다네, 이들은 모두 권왕과 절친한 사이들이고, 저기 네분은 권왕의 의형제들일세,"
초무영이 놀라서 풍운령을 바라보았다.
"의형제?"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들의 무공은 권왕과 의형제를 맺을 많한 수준은 아니었다.
벽룡이 희죽 웃으면서 말했다.
"아운 형님은 우리에게 의형이자, 주군이신 분이오. 그리고 우린 그분과 오랜 사이라, 강호 무림의 인연이 아니니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벽룡이 단 한 번에 자신의 마름을 헤아리고 말을 하자. 초무영은 가슴이 뜨끔 하는 것을 느꼈다.
최소한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란 것을 깨우칠 수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니 벽룡을 비롯한 네 사람의 무공은 절정에 달한 수준은 아닐지 몰라도, 그들 몸에서 뿜어지는 투기나 힘은 결코 쉽게 볼 수준도 아닌 것 같았다.
초무영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포권을 하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항상 동경하고 있던 권왕의 의형제분들이라 하여 제가 조금 놀랐던 것 같습니다. 기분 상하셨다면 용서하기 바랍ㄴ디ㅏ."
"무슨 용서까지야! 그 보다도 지금 아운 형님의이야기를 조금 더 해 주시오."
"아운?"
"권왕 형님을 우리끼리 부를 땐 아운이라고 합니다."
초무영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소설 일행은 초무영을 통해서 아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초무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문산은 아운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했다.
들을수록 권왕이 대단한 자임을 깨우친 것이다.
"지금 권왕은 겨우 스물다섯 내외라 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무공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동심맹의 장로들이 포함된 모든 문파들과 당당하게 겨루는 배짱이라니. 이건 내가 아니라 십사대 고수들 중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후에 대전사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일지도 모르다. 우선 한번 만나 보아야 할 것 같다. 마침 손우의 친구라 하니 먼저 무림맹 쪽에 가서 그를 기다려야 겠구나."
장문산은 먼저 북궁손우와 우문각을 만나 대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권왕을 만날 계획을 세웠다. 소설 일행과 함께 아운을 만나면 쉽게 만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검왕을 만나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장문산에게 지금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담녀 당연히 양녀이자 제자인 옥룡이었다.
그녀의 소식이 궁금하고 한시바삐 만나고 싶었지만, 상황이 너무 여의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옥룡을 생각하던 장문산은 문득 자신의 제자를 쫓는 무리가 칠사 중에 한 명인 탈명검사임을 생각해 내었다.
벽룡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추무영을 보고 장문산이 물었다.
"혹시 자네는 옥룡의 행방을 알고 있는가?"
그 말을 들은 초무영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도 그 소식도 전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지금 옥룡도 무림맹 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방이 발견된 곳은 저도 대충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라도 말해 보게"
초무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전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엔 구천 혈맹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 탈명검사가 옥룡의 뒤를 쫓고 있는데, 저도 그 정보를 얻기가 무척 힘이 들어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가 옥룡을 쫓는 이유가 바로 구천혈맹과 아버님 때문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와 아버님은 은밀하게 조사를 하여 탈명검사가 있는 대략의 위치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보고 옥룡 일행이 무림맹쪽으로 향했음을 짐작했던 것입니다.
장문산은 기대어린 표정으로 초무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역시 전음이었다.
소설 일행은 두사람이 전음으로 말을 주고 받는 것을 알았지만, 모르는 척한다.
- 그들은 혈궁, 아니 명황교 몰래 뒤쫓고 있었을 텐네, 쉽지 않았겠군.
- 저희 명황교엔 아버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보 조직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같은 상황을 미리 대비해서 만든 조직이죠, 그들은 매우 은밀하게 칠사를 감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저도 장우사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탈명검사는 은밀하게 자신이 옥룡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흘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함정인가?
- 그렇습니다. 그 정보를 가지고 우리가 옥룡을 구하러 나서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때 함께 일망타진 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옥룡을 추척하는 것도 우리 측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희도 섣부르게 옥룡을 돕지 못했습니다.
- 이해하네, 소식을 전해 준 것만으로 고맙네.
초무영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 자신이 아는 옥룡의 행방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주었다.
장문산은 초무영을 통해 자신의 양녀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 자신의 친인 중 한 명이 죽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명황교의 비밀 조직도 탈명검사의 능력을 알기에 근처까지 겁근하지 못하고, 범위 밖에서 그들을 감시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이 매우 단편적인 것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요는 대략적이라도 양녀의 위치를 알았고, 그녀가 가려는 곳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 * *
매화각.
무림맹은 호연세가의 일로 긴장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무림맹 내 매화각은 평화로웠다.
맹의 뒤쪽으로 난 정원으로 북궁연과 아운이 걷고 있었다.
오랜만에 산책을 나선 두 사람의 뒤로는 소홀과 호난화 그리고 우칠이 호위하듯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 중 소홀은 손에 종이를 들고 그것을 보면서 아운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아운은 걸으면서 소홀의 보고를 듣는다.
"공자님의 무위를 직접 확인한 이후, 선은들은 크게 긴장한 채. 자신들의 무공을 점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무림맹으로 들어 온 선은들 중 가장 강한 자들은 소림의 전대 십팔나한들, 그리고 무당의 전대 칠성검수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 개개인의 무공도 대단하지만 그들이 펼치는 진법은 사실 무림의 십사대 고수라도 이겨내기 쉽지 않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소홀은 잠시 멈추고 아운의 등을 보았지만, 아운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소홀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걸음을 멈추고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소홀을 보았다.
그들이 강하다는 말에 놀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들이 강하다는 것은 무림인치고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문제는 선은들 중에서고 가장 강자들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아운을 상대하기 위해 사문을 나섰다는 점이었다.
혈궁대전과 사라신교의 혈전 당시에도 산문 밖을 잘 나서지 않았던 그들의 대거 출현은 북궁연을 놀라게 하고도 남았다.
"정말 그들 모두가 여기에 와 있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아가씨."
북궁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설마 그들은 개개인이 아니라, 정말 칠성검진이나 실팔나한진으로 하 가가를 상대하려 하진 않겠죠. 그래도 무림의 명숙들인게 아득한 후배에게 그런 식으로 협공을 하기엔 자존심도 있고."
"아가씨, 무림에서 진법은 하나의 무공으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협공이 아니라 칠성검진과 나한진법으로 권왕과 겨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정한 대결입니다. 그리고 하 공자님이 비록 후배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명성으로 말하면 그분들 개개인들보다 더 위입니다. 그분들이 수치스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북궁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운을 본다.
십팔나한진이나 칠성검진은 수백 년 동안 무림의 최고로 인정받아온 진법들이었다.
결코 개인 혼자서 이길 수 있는 진법들이 아니었다.
특히 전대의 고수들이 펼치는 칠성검진이나 나한진은 거의 무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평생을 무공에만 정진해온 노고수들이었다. 개개인만으로도 능히 강호에 필적할 수 있는 고수들이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이고 보면 그들이 펼치는 진법은 생각만 해도 아득해진다.
북궁연은 수백 년 동안 전대 고수들이 펼치는 이 진법이 깨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간혹 진법들이 깨진 적은 있지만 그것은 일대제자들이 펼쳤을 때였을 뿐이었다.
북궁연의 걱정과는 달리 아운은 태연한 표정으로 소홀에게 물었다.
"그 외에는 또 누가 왔습니까?"
소홀은 아운의 대범한 표정에 질린 듯 가볍게 고개를 흔든 후 대답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선은들이 무림맹으로 들어왔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왔을 뿐만 아니라, 각 문파에서도 비밀리에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누가 왔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선은들 중 누가 강한지는 그들 사문에서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와 있는 선은들은 모두 수십 년씩 무공만 수련하다가 온 자들입니다. 그 긴 기간 동안 누가 어떤 깨우침을 얻었고 어떤 무공을 더 익혔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알았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아봐 달라고 한 것은 어찌 되었습니까?"
"맹주부를 감시한 결과 얼마 전 마차 한 대가 외부에서 맹주부로 들어간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마차?"
"그렇습니다."
"맹주부에서 나갔던 마차인가요? 아니면."
"나간 적은 없고 들어가기만 했습니다."
"흠. 그게 다인가요?"
"오늘 또 한 대의 마차가 맹주부로 들어가서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마차 중 한 대엔 와룡을 대신할 만한 책사가 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대의 마차가 들어왔다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준비라니요?'
"이번 결전을 좋은 기회라 생각했나 봅니다. 특히 와룡이 사라졌으니 조금 초조하기도 할 것입니다."
"준비라니요?"
"이번 결전을 좋은 기회라 생각했나 봅니다. 특히 와룡이 사라졌으니 조금 초조하기도 할 것입니다."
소홀이 아운의 등을 바라보면서 잠시 응답을 멈추었다.
아운이 한 말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운은 그저 웃으면서 말했다.
"많이도 참긴 했죠."
소홀은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긴장해야겠군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준비도 단단히 해야겠죠. 그리고 호연세가를 주시하는 것 또한 잊지 마십시오. 제가 알고 있는 한 그들은 정말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위험한 물건이요?"
"후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아직은 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북궁연과 호난화, 그리고 소홀은 정말 긴장한 표정이었다.
아운이 위험하다고 말할 정도라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말을 한 아운과 그의 충복 우칠은 태연하다.
우칠로서는 다른 사람이 걱정하는 이유조차 모르고 있었다.
적이 있다면 싸워서 이기면 그만 아닌가?"
위험한 물건이 뭔지 몰라도 어차피 주군을 이기진 못할 것이라고 든든하게 믿고 있는 그였다.
왜냐면 그의 주군은 고금천하제일고수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만의 판단이지만 지극히 우칠다운 생각이었다.
* * *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떄로는 지루하게 느릿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달리는 말처럼 빠른 것이 시간이다.
어느덧 아운과 동심맹 장로들의 결전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고, 이 결전을 보기 위해 무림맹 근처로 몰려든 무인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무림맹에서는 그들 모두들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엄격한 심사기준을 통해 무림에 명망이 있는 고인들과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무인들만을 무림맹 안으로 들이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무림맹은 점점 포화 상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 달빛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한 사내가 달을 정면으로 마주 본 채 서 있었다.
그의 허리에 달랑 걸려 있는 검 아래로 그의 두 팔이 늘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은 무척 한가로워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사내의 모습이 정지 상태로 약간의 흔들림조차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사내의 호흡도 완전히 멈추어 있었따.
온기조차 배제한 그의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가 조각을 해 놓은 것 같았다.
낮게 불어오는 바람이 사내의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휘날리면서 그가 사람이란 것을 확인시켜 준다.
하나의 마른 풀잎이 바람에 날려 허공으로 올라가 맴돌다가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린다.
풀잎이 사내의 눈앞에 도달했을 때였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던 사내의 손이 움직였고, 그의 허리에서 한 가닥의 차가운 섬광이 풀잎을 스치는 듯하더니, 그 섬광은 실타래처럼 엉컸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일 초의 검.
풀잎이 갈라진다.
처음엔 두 조각, 그 다음엔 네 조각.
풀잎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모두 서른 여섯 조각으로 갈라져 있었다.
사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암천마검의 최후조식인 암천분수영을 드디어 완성했다. 이제 천하에 누가 있어 내 검을 피할 텐가?"
없을 것 같았다.
정면 대결이라면 모르지만 숨어서 암격을 한다면 십사대 고수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자신감이 치솟느다.
그때 사내의 머릿속으로 한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으으."
사내의 입으로 시음이 새어 나왔다.
"이길 수 있을까?"
세상의 누구도 자신이 있지만, 지금 떠오른 인간에게는?
"크아악."
갑자기 남자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에이, 씨발! 개폼 다 잡으며 암천마검을 완성했는데, 이걸로 권왕은 커년 권마도 못 이기겠다. 크흐흑."
사부가 원망스럽고 암천살문의 조사들이 미워졌다.
"쌍. 이왕 무공을 만들려면 천하무적으로 만들 것이지. 이 따위로 무공을 만들어 놓고 나더러 고금천하제일사수가 되라고? 이 영감탱이들아, 나더러 철벽에 머리 박고 죽으라고 해라!"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화가 났다.
지들이야 이미 죽었으니 그만이지만 살아서 뭐 빠지게 고생하는 자신은 뭐란 말인가? 생각해 보니 저들은 죽으면서 속편하고 무책임하게 한마디 유언으로 할 일을 다 했지만, 그로 인해 흑살문의 유일한 후계자인 자신은 얼마나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씨발, 날 파문하란 말이오. 파문!"
그렇지만 파문해 줄 사문의 어른도 없다.
결국 꼼짝없이 권왕과 대결을 펼쳐야 하는 흑칠랑으로서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졌다. 그렇다고 스스로 졌다고 말라긴 더욱 싫었다. 더군다나 이제 여자까지 생긴 명실상부한 장부가 아닌가? 절대로 포기하거나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할 순 없었다.
그러나 싸우자니 상대가 너무 버겁다.
정말 무식하게 강한 놈이다.
"으흐흑. 아이고 내 팔자야!"
흑칠랑은 달을 보고 늑대처럼 울부직었다. 그러나 그 팔자가 어디 가랴. 그런데 아픈 그의 가슴을 다시 한 번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선배, 뭐하는 거요? 난 늑대가 우는 줄 알았소."
숲에서 야한이 어깨에 도끼 자루를 걸치고 나타났다.
"산책 중이었다."
"난 또 혹시 권왕과 싸우는 게 두려워 울고 있는 줄 알았지."
빠직.
흑칠랑의 이마에 힘줄이 저절로 돋아난다.
사실이라도 대놓고 말하면 정말 열 받는다.
야한은 슬그머니 흑칠랑의 시선을 피하며 도끼 자루를 열심히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동작이 제법 묘하다.
완전 사람 패는 동작 아닌가?
그것을 본 흑칠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넌 대체 그 도끼 자루를 들고 뭐하는 것이냐?"
"흐흐, 그야 뭐. 이에 아무래도 이걸 쓸 날이 많을 것 같아서 말이요. 이참에 이걸 쓰는 무공을 하나 만들어 보았소. 그래도 죄지은 인간들을 생생하는데, 마구 칠 순 없고 무엇인가 예술적인 면이 필요하지 않겠소, 이 무공의 명칭은 부영탕마곤이라고 할 참이오. 멋지지 않소. 선배?"
"휴"
흑칠랑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저놈은 배알도 없나? 제 동생을 죽인 인간에게 빌붙어서 살더니 이젠 아주 변태가 되어 가는구나? 더군다나 사람 패는데 무슨 에술?"
흑칠랑은 야한의 상태가 심히 걱정되었다.
물론 흑칠랑도 야한과 그의 동생 사이에 어떤 곡절이 있다는 것을 눈치는 채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야한이 동생을 그렇게 내던져 놓고 돌아보지도 않았을 리도 없고, 지금처럼 쉽게 아운에게 굴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칠랑은 야한의 마음을 가끔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적인 권왕에게 빌붙는 모습이 심하게 거슬린다. 흑칠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한이 씨익 웃으면서 그를 본다.
흑칠랑은 감자기 화가 치밀었다.
야한의 웃음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멍청한 새끼야! 잘해 보아라! 그러다 칼 맞아 뒈지지."
흑칠랑은 화가 나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흥! 선배, 너무 그러지 마시오. 내 언제고 이 몽둥이로 선배에게 도전할 참이오. 그땐! 흐흐."
흑칠랑의 눈썹이 곤두섰다.
암혼살문이 자랑하는 숭산의 안가 안 숙소로 돌아가려던 그의 마음이 변했다.
"그래, 너 말 잘했다. 그럼 멀리 갈 것 없이 지금 덤벼라! 흐흐,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내가 싸인 것이 많은데, 너 잘 걸렸다!"
야한은 흑칠랑의 기색을 보고 당황했다.
"어어, 선배 정말 해 보자는 것이오?"
"살수에게 농담은 없다. 이 멍청한 후배 놈아!"
한 가닥의 섬광이 야한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헉, 일점사!"
야한은 기겁을 해서 뒤로 몸을 뒤집어 흑칠랑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한 번 몸을 뒤집고 일어선 야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느새 흑칠랑의 검이 자신의 목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야한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기습이었다고 하지만 흑칠랑의 검초는 그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