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권. 장음지독 (138/228)

장음지독

-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적이었다.

밀실안.

거대한 두 개의 통 속에 검은 액체가 가득 차 있고, 그 통 하나 하나엔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들어가 있었는데, 부글거리며 끓엉오르고 있는 액체에서는 독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연각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 통 안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옆에는 도저히 나이를 알 수 없는 노파 한 명이 용두괴장을 들고 서 있었다.

호연각이 노파에게 물었다."언제쯤 일어날 것 같습니까?"

"클클, 걱정 말게 오늘 오후쯤이면 둘 다 건강하게 회복될 것일세. 그러나 란이의 완전히 뭉개진 코는 크게 흔적이 남을 것이고, 설비향이란 아이도 뭉개진 입 부문을 완전히 고치기는 어려울 것일세."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 정도만 해도 다행입니다."

노파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여자에게 납작해진 코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일세."

"이겨 내야지요."

노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래야겠지, 그래 이제 어쩔 셈인가?"

"일단 설 군사가 정신을 차린 후 의논할 생각압니다."

노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클클, 둘을 살리느라 그동안 만들어 온 만독지액을 전부 사용하고 말았네. 독이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더 없는 영약이 되기도 하는 것.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어 호연가의 가장 죵요한 두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니 그걸로 충분히 제값을 했다는 생각일세."

"독후 고모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독후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모두가 호연세가를 위해 준비한 것. 고마울 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보다도 자네는 괜찮은가?"

호연각은 독후의 물음에 두 주먹을 꾹 쥐었다가 폈다.

노파가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만독지액으로 구할 수 있다 해도 완전히 고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당해 있었습니다. 평생 장애를 가진 채 무공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여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살 바엔 차라리 내 손으로 죽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었습니다."

독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연각이 독후를 보고 말했다.

"호연세가를 위해서 여자의 몸으로 평생 동안 지하에서 살아온 고모님도 계십니다. 이 정도의 고통은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클클. 그러고 보니 처음 호연세가의 초대가주님인 호연성 님의 유품을 발견하고, 지금의 호연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지도 백년이 되었군. 내가 초대가주님의 유품에서 장음지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독을 재현하기 위해 연구한 지도 백 년이 다 되었고,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야 뜻을 이루었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네."

호연각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백 년 전 가문의 지하 밀실에서 초대가주였던 호연성의 유품이 발견되었다.

그 유품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호연세가는 자신들의 성이 모용인 줄만 알았었다. 그러나 호연각도 호연성이 왜 지하 밀실에서 죽어 있었는지.  자신이 준비해 놓은 무공을 전부 익히기 전까지는 호연이라는 성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초대가주였던 호연성이 누군가의 암습으로 죽어 있었다는 사실만 짐작할 뿐이었다.

물론 이는 누군가의 암습이 아니라 그가 불괴음자를 독으로 암습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당한 채 겨우 도망쳐 나왔다가. 미처 자신의 유품을 전하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을 그의 후예들이 알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당시 호연세가의 가주이자. 호연각의 아버지였던 호연찬이 찾은 호연성의 유품은 명옥천마도법과 명옥천마신공 그리고 명옥수 외에 혈안심기전과 광천칠기도법 등이었고, 그가 죽기 전에 써 놓은 몇 자의 혈서였다.

나는 호연성이고 강호에서는 모용성이라 한다. 후대가 나의 유품을 찾게 되면 이 안의 무공을 완전히 터득한 후 호연이란 성을 되찾기 바란다. 그리고 상 ----

혈서는 이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흐릿한 글자를 조합하여 겨우 알아낸 내용들이고 그 뒤는 겨우겨우 쓰다가 죽은 것 같았다. 그리고 유품 중에는 이들 무공서 외에 또 하나의 책과 작은 옥병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장음지독이었다.

사실 호연각이나 그의 아버지인 호연찬이 무림 재패라는 꿈을 가지게 된 것은 무공이 아니라 바로 이 장음지독의 존배 때문이었다.

천하의 어떤 절대도수라도 단 한 방울이면 죽일 수 있는 무형무영의 극독.

이는 독의 제왕이라는 사천당문에서조차 만들어 내지 못한 극독이었다. 아쉬운 것은 호연성이 무공들과 장음지독을 어디서 구했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호연찬의 여동생으로 독문의 제자였던 호연하가 이 장음무형의 독을 제조하기 위해 나섰고, 무려 백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겨우 독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고모님."

노파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고맙긴, 덕분에 나는 독후란 이름에 어울릴 만큼 독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네. 지니고 있던 독공도 극성에 이르게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독에 대해서눈 그 세대에 따를 자가 그리 많지 않았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독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 뜻하는 의미를 잘 아는 호연각이었다.

현재 그녀의 독에 대한 지식가 독공의 화후는 사천당문이나 세외 최고의 독문이라는 묘강 천독궁의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호연각조차 그녀의 독공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짐작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무공은 자신을 능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연각은 잠시 독후를 바라보았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

내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독공을 익힌 흔적도 없다.

그저 평범한 부잣집 노파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고모님은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빈말이라도 고맙군. 그보다도 이제 장음지독을 완성한지 열흘이 넘었는데. 자네는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 참인가?"

"곧 사용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군,"

"마침 그 자리엔 이번 일의 원흉이나 다름없는 권왕. 그놈이 있습니다. 죽이더라도 그리 쉽게 죽이진 않을 생각합니다."

"권왕이란 아이가 그리도 대단한가? 하지만 장음지독 아페서는 그 어떤 대단한 무공도 무용지물. 기대하고 있겠네."

독후는 자신 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장음지독을 잘만 이용하면 천하에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하는 장음지독 아래 굴복할 것입니다."

독후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                  *                   *

산 중턱.

거대한 소나무 몇 그루가 수백 년의 세월을 짊어지고 나란히 서 있는 뒤쪽으로 폐허가 된 사찰 하나가 나이 든 노인처럼 누워 있었다.

폐사찰 안에는 장문산 일행과 초무영 일행이 빙둘러 앉아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장문산과 초무영은 그 자리에 없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였지만 상대가 혈궁이란 사실 때문인가. 조금 어색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사찰 뒤.

장문산과 초무영이 마주보고 있었다.

사찰 안과는 달리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함이 없었다.

장문산은 궁금한 것이 많았다.

혹시라도 엿 듣는 사람이 있을까 진기를 모아 사방의 기척을 살핀 다음 안전을 확인하자 궁금한 것을 물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혈궁의 소궁주인 자네가 혈맹의 일원이라니, 그렇다면 구천의 한 명이 사혼마자란 말인가.?"

"맞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바로 천혈이십닏.ㅏ"

장문산은 놀라움 반 당황함 반의 표정으로 초무영을 바라본다.

이건 그의 상상을 너무 많이 넘어선 대답이었던 것이다.

혈궁 내에 간세가 있고, 그 간세가 혈맹의 일원 중 한 명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따.

아니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 혈궁 내의 구천 중 한 명이 칠사 혹은 혈궁의 중요 인물일 거란 사실까지도 눈치 채고 있었다. 비록 사파의 인물이지만 정의감을 가지고 있는 그로 인해 지금의 혈맹이 결성된 것이다.

그런데 설마 혈궁의 궁주가 구천혈맹의 맹주인 철혈일 줄이야.

구천혈맹의 목표엔 혈궁도 포함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생각도 못하고 짐작도 못했던 일이었다.

"허허. 그랬던가? 대체 어찌된 일인지 좀 자세히 말을 해 주게."

"의문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혈궁은 우리 구천이 상대해야 할 가장 큰 적 중 한 곳이었네. 그런데 그 혈궁의 궁주가 구천의 맹주인 천혈이라니. 내가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사연이 조금 복잡합니다."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네."

초무영은 잠시 숨을 돌리고 이야기할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혈궁 대전이 벌어지기 전의 일입니다. 아버님은 무림에 큰 야심을 가지고 있었던 때였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한 정파의 무리들에게 큰 반발심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아버님의 야심이란 무림을 정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황교를 무림 제일의 명문으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명황교?"

장문산은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보니 원래 혈궁의 이름은 명황교였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그 명확교를 혈궁이라고 지칭하게 되었고, 혈궁은 사악한 무리들이 모인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혈궁대전 당시 벌인 살육을 잘 아는 장문산으로서는 초무영의 말 중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따. 그러나 장문산은 초무영의 말이 끝날 때까지 들어주기로 하였따.

"그렇습니다. 그리고 명확교는 그때까지만 해도 강호에 별다른 해악을 끼치지도 않았는데. 제멋대로 우리를 혈궁이라 지칭한 후, 마의 무리로 몰아 무림의 공적으로 몬 사실은 우리 교도들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장문산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혈궁대전 이전의 명황교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했지 특별하게 그들의 잘못이 드러난 부분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를 계속 하시게."

"그때 일곱 명의 절대 고수들이 아버님을 찾아왔었습니다. 그들은 아버님에게 자신들과 함께 손을 잡고 무림을 도모하자고 했습니다. 평소 같은 패도의 길을 걷는 그들과 아버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친분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은연 중 아버님을 대형으로 모시는 중이었기에, 혈궁에서는 그 누구도 그들의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특히 그들 일곱의 절대 도수들은 만약 뜻을 함께 할 경우 모두 명황교에 들어와 스스로 수하가 되어 싸우겠다고 다짐까지 하였습니다. 혈궁의 힘과 일곱 명의 절대 소구, 아버님은 그 정도 힘이라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무림에 큰 피보라가 몰아칠 것 같았기에 거절하여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고. 아버님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렇습니다. 이미 아버님을 중심으로 마도의 고수들이 뭉친다는 말을 들은 정파가 무림맹을 결성하고 전면적인 공격을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 사소한 수많은 혈전이 있었고. 그것이 씨앗이 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혈궁대전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혈궁대전 동안 전혀 엉뚱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아버님은 스스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엉뚱한 일이란 것이 무엇인가?"

"아버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던 것입니다."

"혈궁대전은 말 그대로 전쟁일세, 죽고 죽는 것은 다영한 일 아닌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님이 어디어디 문파를 공격하되, 그 문파를 그저 제압한 하라! 하는 형식으로 명령을 내리면 그렇게 이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칠사의 수하들 중 상당수가 정파를 공격하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바람에 그들이 저지른 업보를 명황교가 전부 뒤집어쓰게 되었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굴 명황교는 정말 혈궁이 되고 만 것이지요.

그렇게 되자. 혈궁을 상대하기 위해 조직된 무림맹의 손속도 점점 잔인해지고 서로 감정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게 된 것입니다. 아버님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 채고 혈궁대전을 중단하려 했지만. 이미 떄가 늦은 다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버님은 혈궁대전을 중단하려도 노력을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명황교만 해도 친인을 잃은 수하들의 분노가 대단했고, 칠사는 칠사대로 강경하게 반대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문산은 초무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혈궁을 오해했음을 깨우쳤다. 원래 장문산은 혈궁의 궁주인 사혼마자 초비향을 현 무림을 노리고 있는 대원의 원흉 중 한 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초무영의 말을 듣고 보니 초비향은 결국 칠사에게 이용을 당한 상황인 것 같았다.

"결국 예상대로 무림맹의 맹주인 조진양과 혈궁이 짜고 무림을 농락했던 것은 사실이군, 단지 원흉이 초비향이 아니라 칠사하는 것이 다른 것인가?

장문산의 안색이 굳어졌다.

문제는 칠사 전부가 이 일에 가담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 중 일부가 가담한 것인지 그게 궁금했다. 그리고 탐우라의 경우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초무영이 나타나기 전 만약 탐우라가 끝까지 공격을 하였다면 자신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탐우라는 공격을 중단하고 스스로 물러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탐우라가 자신을 봐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칠사 전부가 말인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마도신사 탐우라도 대원의 광전사가 분명한 것이다. 그런데 왜? 장문산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그 일을 자신의 가슴에만 남겨 두기로 하였다. 어쩌면 초무영의 설명 중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 이야기 해 보게."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혈궁대전을 멈추지 못하게 되자. 아버님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상황을 정리하면서 누군가가 혈궁대전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엔 자신을 돕고 있는 찰시의 상당수가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신 자신과 명황교는 물론이고 무림맹 역시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명황교가 혈궁으로 몰린 이유도 석연치 않은 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누군가가 명확교의 인물로 위장을 하고 많은 협겁을 저질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짐작일 뿐 명확한 증거도 없었고,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구분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흉들의 중심이 누구인지도 전혀 알길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장문산의 얼굴이 굳어졌다.

초비향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 또한 그렇게 힘들어 했었기 대문이었다.

초무영은 잠시 장문산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다행스럽게 혈궁대전은 끝이 났습니다. 특히 혈궁대전의 휴전에는 신주오기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ㅏㄷ."

장문산이 고객를 끄덕였다.

당시 혈궁대전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자. 신주 오기를 중심으로 휴전을 종용하게 되었고, 의외로 혈궁의 궁주는 쉽게 휴전에 응했었다.

지금도 혈궁의 궁주가 쉽게 휴전을 선언한 것에 대해서 의문스런 점이 있었는데, 지금 초무영의 말을 들으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장우사님을 비롯한 오기가 휴전에 대해서 언급을 하자 그렇지 않아도 혈궁대전을 끝내려던 아버님이 힘을 얻을 수 있었고, 그땐 칠사도 반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상자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혈궁대전이 끝난 후 아버님과 칠사는 무림맹에 대항하기 위해 혈궁지맹이란 이름 아래 한 울타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그 맹의 맹주이자. 혈궁의 궁주가 된 것입니다."

"고생이 심하셨겠군, 그래서 그 이후 어떻게 되었니?"

"이미 장 우사님도 짐작하셨겠지만, 한 울타리 안에 여덞이나 되는 대호가 우글거리며 산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실상 아버님이 맹주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혈궁은 칠사의 독립된 세력과 명황교가 모인 하나의 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칠사는 혈궁 내에서 각자 독립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불간섭의 원칙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으로선 무림맹의 위협에서 명황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여 왔습니다."

장문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혈궁 내에서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명황교를 제외한 칠사가 서로 협력하고 있을 뿐아니라 그들은 이미 오랜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림맹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질되고 있었으며, 명황교의 장로들 중 일부가 칠사의 명령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은 차근차근 칠사의 뒷조사를 하였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고 있어서 스스로 무언가를 안아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놀랍게도 칠사가 무림맹주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천혈이란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던 것이군."

"그렇습니다. 일단 가장 믿을 수 있는 장 우사님과 검왕에게 접근하여 현 무림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 때문이었었습니다."

장문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은 굳이 초무영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특히 혈궁이 칠사를 끓어 앉고 갔던 점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혈궁대전이 끝난 후 시간이 지날수록 명예욕에 눈이 멀어가는 장로원을 보면서 장문산과 검왕 북궁손우는 단순히 그들이 보기 싫어 무림에 은거하다시피 하였다.

그때 장문산과 검왕에게 복면을 한 천혈이 나타났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혈궁대전의 배후가 누군가가 있으며 현 무림을 누군가가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 후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복면인을 장문산과 검왕은 믿을 수 없었기에 처음엔 외면하려 하였다. 그러나 복면인의 말에 진심이 어려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상황이 미묘하다는 것을 눈치 채었다.

그 후 장문산과 검왕 북궁손우는 무림을 은밀하게 주시하였고, 복면인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우쳤다.

그 후 다시 만난 그들 세 사람은 혈맹을 맺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모두 아홉 명으로 조직된 구천 혈맹은 그렇게 맺어졌다. 그러나 그들이 혈맹을 맺고 무림의 암류를 조사하기 시작했을 땐 이미 그들 아홉 명조차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중추세력들 거의 전부가 변질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무림은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을 깨우쳤지만, 그들로서는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선 누가 적이고 누가 아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조사를 할수록 무림맹의 맹주부와 칠사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구천혈맹은 암류의 세력에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특히 검왕과 장문산은 무림맹의 맹주부를 뒤똧다가 그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당시 검왕이 중독되어 겨우 살아 돌아가는 사태가 벌어졌고, 장문산은 그 일로 급하게 천혈을 만나려 했었다. 그날 검왕이 중독되긴 했지만 몇 가지의 단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맹주부와 칠사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정체까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장문산은 광전사 중 한 명이 은밀하게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의 뒤를 쫓은 자는 맹주부 은영단의 단주로 장문산조차 그의 흔적을 눈치 채지 못했었다. 그리고 장문산과 천혈이 만났을 때 그들을 덮친 것은 은영단주와 탈명검사, 그리고 마도신사와 명왕수가 등 네명이었다.

친혈과 장문산은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 이후 칠사는 혈궁 내에서 누군가가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었지만 그가 누군인지 알 수 없었다.

구천혈맹의 맹약대로 장문산조차 천혈이 누군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혈궁에 구천혈맹의 맹약자가 모두 두명 정도란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칠사의 한 명이 아닐까 짐작만 하고 있었다.

설마 혈궁의 궁주 당사자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혈맹의 맹약에 의해 장문산과 검왕, 그리고 천혈은 각자 두 명의 맹우를 혈맹으로 끌어 들였고, 그 두 명은 그들을 끌어 들인 각자만이 그 정체를 알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는 추후에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사실상 검왕과 장문산은 서로 끌어 들인 사람이 누군인지 서로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역시 천혈의 정체를 모르고 그가 혈궁과 관계가 있을 것란 짐작 때문에 네 사람의 정체를 비밀로 한 상황이었다.

단지 일호 이호 하는 형식으로만 서로 불렀고, 맹주인 천혈이 일호, 검왕이 이호, 장문산이 삼호였었다. 문제는 은영단주의 은밀한 추척으로 인해 장문산의 정체가 밝혀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후 장문산의 뒤를 쫓는 것은 칠사의 몫이었다.

은영단주는 자신의 정체가 장문산에게 들키자 바로 사라졌던 것이다. 장문산은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이미 알아낸 실마리를 바탕으로 맹주부와 칠사의 뒤를 캐기 시작했고, 긴급하게 자신의 제자이자 양녀인 옥룡에게 피신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후 장문산은 그 뒤를 캐어 초원까지 가서 대전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 맹주부와 칠사의 뒤가 대원이란 사실을 확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전사는 그 상황에서 자신을 살려 보냈다.

자신의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죽여야 하는데, 살린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하든지 이미 그들은 자신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리도 할 것이다.

한편 옥룡 일행은 장문산의 뜻에 따라 맹우이자. 구천혈맹의 한 명이었던 대활불이 있는 포탈랍궁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설마 그곳까지 칠사가 쫓아와 포달랍궁을 멸궁시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현재 대활불을 대신해서 명라한 소달극이 구천형맹의 한 명으로 옥룡을 보호하는 중이었지만, 이는 장문산도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장문산은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전사라는 존재의 무게감도 큰 문제였고, 긴급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비밀로 붙였던 천혈이 긴급하게 자신의 아들을 맨 얼굴로 보내서 스스로 정체를 밝혔다면 그만큼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장문산은 초무영에게 물었다.

가슴속에 얹힌 무게와는 다르게 장문산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당했다. 자신의 무게를 아직 어린 초무영에게까지 나누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상황은 대충 알겠네. 그런데 자네가 직접 이렇게 나타난 것을 보면 상황이 아주 안 좋은 것 같군. 대체 무슨 일인가?"

초무영은 마른 침을 삼키고 장문산을 바라보았다.

"아버님의 정체를 칠사가 어느 정도 눈치 챈 것 같습니다."

장문산의 표정은 의외로 담당했다.

조금은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엔 소리 하나로 탐우라를 물리치던데, 그렇다면 그렇게 위험한 순간은 아니지 않는가?"

초무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초적은 어머님의 신물로 참우라는 어머님이 나타나신 줄 알고 물러선 것입니다. 세상에서 탐우라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저의 어머님이기 때문입니다."

"대체 자네의 어머님이 누구이신가?"

"오괴음사라 불리는 능유화입니다."

장문산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감추지 못하는 놀아움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그는 지금 상황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큼 초무영의 대답은 그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서, 설마 그 정말 그 요  --- 아니 능유화가 자네의 어머님이 맞는가? 탈명검사 능유환의 여동생이자, 칠사의 한 명인?"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는 낭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참으로 많은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말해보게 도대체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인가?"

초무영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버님과 어머님을 생각하면 그는 항상 가슴이 아파왔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언제나 상대에게 비수를 겨누고 살아가는 부부, 그 사이에서 세상을 모르고 살아가던 남매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던가?"

다시 그 아픈 상처를 끄집어 내기 싫었다. 그러나 지금은 말을 해야 할 때 였다.

장문산은 초무영의 표정을 보면서 무척 복잡한 사연이 있음을 알았다. 두 사라므이 이야기는 그 후로도 한동안 이어졌다.

장문산은 자신이 손 하나를 잃은 사연도 초무영에게 말해 주었다. 초무영은 장문산의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십사대 고수가 상대할 수 없는 고수가 있었으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칠사와 조진양의 배후가 대원의 잔당이란 말엔 더더욱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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